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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원 경지의 꿈
2024년 8월 11일 칠석 법회 수기 교훈
어느 젊은 부부의 일화로 평범한 한직장인이 I M F이후 직장 을 잃고
치킨집을 열어 열심히 일하는데 형제인 동생의 횡포와 성공한듯 형
을 무시 하는 서러움속에서 하루 하루 지내는중 매출이 없어 유지가
어려운 상황의 연속이라 가게를 접어야지 하고있는데 동생의 무시와
행패로 동생 과의 인연을 정리 하게되고 가게 정리 날 만을 기다리는
와중에 뜻밖의 꼬마 손님이 문앞에서 1000원 짜리 한장을 들고 서성
거리메 이유를 묻자 홀로집에 계신 어머니의 선물이 필요 한데1000원
한장 가지고 살게 없아 그런다는 말에 두부부는 이벤트 핑계로 아이에
심적 부담을 덜어주며 치킨 두마리를 정성스레 포장해 주었는데 그후
일주일후에 그아이 엄마가 써놓은 게시글이 화재가 되며 치킨 본사의
후원과 주변 사람들의 사랑의 마음이 발동되여 사업도 성공하고 행복
한 삶에 주인공이; 되는 일화는 우리 들의 삶에 많은 가르침과 교훈 을
주기에 충분하다 생각되여 공유 해보려 함니다
1) 하고자 하는 목표를 위해 참고 인내하는 기다림 ( 운기 칠삼 )
*좋은 인연 승화 시켜려면 기다림, 믿음 , 헌신,만이100프로 충전(인)
2) 동생과의 인간관계 정리 (대운이 들어올 조짐 알아 차리는 지혜)(과)
3) 모든 사물을 자비에 마음으로 보는 부처님 일대사 인연 의 가피(응)
4) 감사함과 고마운 마음으로 주변의 보시공덕을 함으로 행복유지(보)
* 모든 사람에게 똑 같은 사례는 아니므로 가벼운 마음으로 읽어보세요
하지만 인연의 기도 날 (칠석) 을 함께 하며 한번쯤 음미해볼만해서요
삼사체험 법문의 추가 설명븐을 수록 하여 이해를 견고히 한다
2024년 7월 29일 오전 8:04 231 읽음(대원 경지의 꿈을 꾸고7월 28일 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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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원(大圓)은 아주 크고 둥글다는 뜻이고
경지(鏡智)는 거울같이 밝게 비추는 지혜라는 뜻입니다.
제8식 아뢰야식(阿賴耶識)이 바뀌면 대원경지가 됩니다.
아뢰야식(阿賴耶識)을 藏識 含藏識이라 하며
장(藏) 함장(含藏)은 우주의 온갖 정보 즉 나의 과거
몇 만 억 생의 정보가 저장되었다는 뜻입니다.
시간과 공간 전체가 크고 원만한 거울과 같은
지혜라는 뜻입니다.
지어온 행위대로 맑고 밝은 거울 앞에 모양이 드러나듯
우리의 행위와 업보를 훤히 비추어 보는 지혜가
대원경지입니다.
거울이 비추어주는 것이 아니라 사물이 비쳐지는 것입니다.
웃는 얼굴엔 웃는 얼굴이 비치고
찡그린 얼굴엔 찡그린 얼굴이 비쳐집니다.
우주허공의 커다란 거울이 겹겹이 우리의 모습을 비춰줍니다.
옛날에 남편이 장에서 동경(銅鏡)을 하나 사와서
아내에게 주었는데 아내가 들여다보니
웬! 예쁜 여자가 비추는 것을 보고 남편에게 화를 냈지요.
웬 여자를 숨겨놓고 다니느냐고
남편이 거울을 들여다보니 웬 사내놈이 들어있느냐고
서로 싸우는 것과 같지요
거울 속 자신의 예쁜 얼굴을 다른 여자로 착각하고
자신의 늠름한 얼굴을 다른 남자로 착각하여
자신인줄 모르고 서로 싸우는 세계가
중생들의 세계입니다!
거울 속에 모습이 자신인줄 확실히 아는 것이
대원경지입니다.! (사실 인지)= 대원 경지
천강유수천강월 (千江流水千江月)
천개의 강에 흐르는 물에 천개의 달이 비춘다
허공에 떠 있는 달은 하나이지만 물에 비치는 달은
물의 수만큼 많습니다.
어느 유생이 스님께 물었습니다
부처님은 한분인데 어느 절로 오십니까?
저녁에 오면 알려 주지요.
절에 있던 모든 그릇에 물을 담아 마당에 놨습니다.
달이 그릇 그릇마다 다 들어 있어요.
천백억화신(千百億化身)으로 비추어 집니다.
부처님과 아라한 성인들이 갖추어진 지혜입니다.
우주 삼라만상과 허공이 거울과 같이 보일 때
부처님의 慈悲光明!
자비에는 엄청난 광명(光明)이 비춥니다.
세존좌도량 (世尊座道場)
비여천일출 (譬如千日出)
세존이 앉아계신 도량에는
천개의 태양이 비추는 것과 같다!
마하반야바라밀 1
자신의 그릇
진목대사의 누이 아들과 며느리에 일타스님 글
(도움을 주혀해도 그릇을 먼져 만들어야)
석가모니불의 화신으로 추앙받았던
조선시대 중기의 고승 진묵대사(1562~1633)는
많은 이적을 남기신 대 도인이었다.
스님 에게는 누이동생이 하나 있었고
누이동생이 낳은 외동아들이 찢어지도록 가난 하게 살고 있었다.
이 조카가 가난을 면하기 위해서는 복을 쌓아야한다고
생각 하신 스님은 7월 칠석날 조카 내외를 찾아가
단단히 일러 주었다.
"애들아 오늘 밤 자정까지 일곱 개의 밥상을 차리도록 해라.
내 특별히 칠성님들을 모셔다가 복을 지을 수 있도록 해 주마"
진묵스님이 신통력을 지닌 대도인임을 아는 조카는
‘삼촌이 잘 살게 해주리라’ 확신하고
열심히 손님맞이할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집안을 깨끗이 청소하고 맛있는 음식을 푸짐하게 장만하여 마당에다 자리를 펴고 일곱 개의 밥상을 차렸다.
밤 12시 정각이 되자 진묵스님이 일곱 분의 손님을 데리고 집안으로 들어오는데 하나같이 거룩한 모습의 칠성님은 아니었다.
한 분은 째보요 한 분은 곰보 또 다른 분은 절름발이요
곰배팔이요 장님이요 귀머거리였다.
거기에다 하나같이 눈가에는 눈곱이 잔뜩 붙어있고
콧물이 줄줄 흐르고 있는 것이다.
‘삼촌도 참, 어디서 저런 거지를 영감들을 데리고 왔노?
쳇, 덕을 보기는 다 틀려버렸네.’
조카내외는 기분이 크게 상하여 손님들에게 인사도 하지 않고 부엌으로 들어 가 솥뚜껑을 쾅쾅 여닫고
바가지를 서로 부딪치고 깨면서 소란을 피웠다.
이에 진묵스님의 권유로 밥상 앞에 앉아 있던 칠성님들은
하나, 둘 차례로 일어나 떠나가기 시작했다.
마침내 마지막 칠성님까지 일어서려 하는데
진묵스님이 다가가 붙잡고 사정했다.
“철없고 박복한 조카가 아니라 나를 봐서
한 숟갈이라도 드십시오.”
일곱 번째 칠성은 진묵스님의 체면을 보아 밥 한술을 뜨고
국한 숟갈을 먹고 반찬 한 젓가락을 집어 드신 다음 떠나갔고 진묵스님은 조카를 불러 호통을 쳤다.
"에잇, 이 시원치 않은 놈!
어찌 너는 하는 짓마다 그 모양이냐?
내가 너희를 위해 칠성님들을 청하였는데
손님들 앞에서 그런 패악을 부려 다 그냥 가시도록 만들어
도무지 복 지을 인연조차 없다니...
"그래도 마지막 목선대군이 세 숟갈 잡수셨기 때문에
앞으로 3년은 잘 살 수 있을게다.“
이튿날 조카는 장에 갔다가 돼지 한 마리를 헐값에 사 왔는데
이 돼지가 며칠 지나지 않아 새끼를 열두 마리나 낳았고
몇 달이 지나자 집안에는 돼지가 가득하게 되었다.
또 돼지들을 팔아 암소를 샀는데
그 소가 송아지를 두 마리를 한꺼번에 낳았다.
이렇게 하여 진묵스님의 조카는 3년 동안 아주 부유하게 살았다.
그런대 만 3년째 되는 날
돼지우리에서 불이 나더니 불이 소 외양간으로 옮겨 붙고
다시 안채로 옮겨 붙어 모든 재산이 사라지고 말았다.
3년의 복이 다하자 다시 박복하기 그지없는 거지 신세로
전락한 것이다.
복은 특별한 권능 자가 내리는 것 아니라
이 복은 내가 짓고 내가 받는 것이다.
복을 담을 수 있는 마음가짐을 갖추어져 있고
또 정성을 다하면
저절로 다가오게 되어 있는 것이다.
- 일타스님 법문중에서
삼재(三災)는 무엇인가?
소삼재와 대삼재가 있습니다.
소삼재는
중생들이 살아가는 가운데 겪게 되는
배고픈 기근재(饑饉災)
질병의 질역재(疾疫災)
전쟁의 도병재(刀兵災)입니다.
대삼재는
우주적 삼재로 성주괴공(成住壞空)에 따른
괴겁(壞劫)에 일어나는 징조(徵兆)로
온 지구가 물로 차는 수재(水災)
지구가 태양과 같이 타는 화재(火災)
지구가 날아가는 풍재(風災)로
지구의 종말을 이야기 하는 것입니다.
정초에 삼재풀이 한다는 삼재는
누구나 12띠에 9년 주기로 들어와 3년을 머물게 되는데
그 원리는 12포태법에 의합니다.
1 포(胞:음양교접)
2 태(胎:태에 안착)
3 양(養:배속에서 길러지고)
4 생(生:태어나고)
5 욕(浴:목욕 시키고)
6 대(帶:성장하고)
7 관(冠:관대를 두르고)
8 왕(旺:왕성해지고)
9 쇠(衰:늙고 쇠퇴)
10 병(病:병들고)
11 사(死:죽고)
12 묘(墓:묘에 들어감)중에
병(病).사(死).묘(墓)에 드는 해가 삼재(三災)인데
병사(病死)는 고통스럽지만 묘(墓)지에 들어가면
오히려 편안함으로
병(病)은 들어오는 삼재!
사(死)는 머무는 삼재!
묘(墓)는 나가는 삼재!
복(福)삼재는 괜찮고
다음해인 겁살(劫殺)운이 더 나쁘다고 합니다.
중생의 삼재는
탐내고! 성내고! 어리석은!
탐진치(貪瞋痴) 삼독에서 오는 마음의 삼재입니다.
마음을 편히 하여 병고액란 소멸되고 만사형통 하소서
마하반야바라밀 🙏
*분별하고 집착하는 마음 내려놓으면
여래를 보게 됩니다
매 순간 성불하고 있음에도 알지 못하는 것은
분별의식 때문 수행을 대단하게 여기지만
있는 그대로 알아가는 과정일 뿐
‘화엄경’ 공부는
경문을 바로 이해해 여래를 보기 위한 목적!
“이때 세존께서 미간 백호상으로부터 대광명을 뿜어내어
비추시니 이름이 여래출현이라.
그 광명이 허공법계 일체 세계를 널리 한 곳도 빼놓는 곳 없이 비추어서 오른쪽으로 열 바퀴를 돌고 여래의 무량 자재를 나타내며 한량없는 보살대중을 깨우쳤느니라.”
‘여래출현품’에서는 방광이 두 번 나오는데
한 번은 미간백호상 광명이고 한 번은 구중광명
입안에서 하는 광명입니다.
“여래방광이 시방법계를 널리 다 비추고 열 바퀴를 돈다”는 것은 어느 곳이든지 여래 광명이 비추지 않는 곳이 없다는 뜻입니다.
이 책상에도 여래광명이 비추고 이 경전에도 비추고 여러분의 모든 몸에 다 비추고 화면으로 참가하는 모든 대중에게
다 비추어서 광명이 없는 곳 없이 다 비춥니다.
광명은 무슨 일을 하는가
여래와 다른 생각을 하는 그런 생각들을 그 광명으로
다 없앱니다.
여래는 한 가지 두 가지로 출현하는 것이 아니라
무량법 한량없는 법으로 출현하신다고 했습니다.
화엄이라는 것은 인행과 과덕이 원만 구족한 상태입니다.
인행이 있으면 과덕이 있고 과덕이 있으면 인행이 있어서
그 무량법 하나하나가 전부 여래 출현이 됩니다.
이것을 화엄의 총별(總別) 원융이라고 합니다.
예를 들면 총은 십이고 별은 하나인데 열이라고 하는 숫자에는 반드시 그 하나가 들어있습니다.
그런데 열을 볼 때는 하나하나가 보이지 않습니다.
그리고 하나하나를 볼 때는 열이 안보입니다.
그러나 하나를 떠난 열이 없고 열을 떠난 하나가 없다
이것이 총과 별이 원만구족 원융무애한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여래가 출현하는 것은
무량한 인연으로 출현하는 것이지 한 두 가지 인연이
아니라고 합니다.
우리가 언제 성불을 하는가라고 하는데 지금 순간순간
성불하는 것입니다.
화엄법문 듣는 이 순간에 성불하고 있는 겁니다.
그렇지만 하나를 볼 때는 열이 안보이듯이
지금 성불하고 있는 것을 모릅니다.
그것이 화엄입니다.
그것은 마치 꿈을 꾸고 있는 사람과 꿈을 깬 사람이
같은 방에 누워 있는데 꿈꾸는 사람은 꿈꾸는 동안
자신이 편안한 방에 있다는 걸 모르는 것과 같습니다.
꿈을 깨고 나서야 압니다.
꿈에서 깨어나지 못했다고 하더라도
방에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있는 것을 알게 하는 것이 ‘수행’입니다.
수행은 남의 집에 가서 머슴 사는 것이 아닙니다.
또 수행은 맨땅을 파는 것이 아닙니다.
수행은 즐거운 것이고 수행은 있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그런데 수행한다고 하니까 엄청난 것을 하는 것 같고
대단한 것 같다고 하는데 대단할 것도 하나도 없습니다.
자기 방에 있는 것을 꿈꾸다가도
자기 방 그대로 아는 것뿐입니다.
그래서 일체 국토.일체 중생.일체 처소에서
전부 여래신을 봅니다.
여기 경탁 위 물잔이라는 그릇이 상입니다.
이것을 의식으로 분별하면 그릇입니다.
이 그릇에는 자성이 없습니다.
지혜로 보면 그릇은 없고 여래신만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못 보는가.
그것을 의식으로 상으로 분별하고 거기서 집착하니까
모르는 것입니다.
얼음과 물이 있는데 얼음이 물인 겁니다.
얼음이라고만 보면 물이 보이지 않습니다.
물이 보이지 않아도 물이 없어진 것이 아닙니다.
여래신을 그렇게 본다는 것입니다.
옛날에는 ‘화엄경’을 공부하려면 전부 소초(疏鈔)를 갖고
공부를 했습니다.
1960년대 사찰 강원에서는 목판으로 찍은 고서로 공부했습니다.
1970년대 이후 영인본이 나왔습니다.
원본은 비싸서 사지 못하고 영인본으로 공부했습니다.
그 이후로 한글대장경이 나왔습니다.
경에는 경문(經文)이 있고 경의(經意)가 있고
경지(經志)가 있습니다.
‘화엄경’은 80권입니다.
경문만 해석하는 것을 문해간경(文解看經)이라고 하는데
이것도 쉬운 것이 아닙니다.
예를 든다면, ‘십주품’에서 여래십력(如來十力)을 이야기하는데
처(處) 비처(非處)라고 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이에 대한 해석이 전부 다릅니다.
그런데 어떤 해석이 옳은 것인가
경문에 있는 것으로 아는 게 옳은 것입니다.
사전에 나와 있는 설명이 아니라 경문에 의해서
경문을 이해하는 것이 가장 옳습니다.
‘십주품’ 게송에는 “삼세인과명위처(三世因果名為處) 아등자성위비처(我等自性為非處)”라는 구절이 있습니다. 처(處)를 아는 지혜는 삼세인과를 아는 지혜입니다.
이것이 옳은 해석입니다.
또 비처(非處)를 아는 지혜는 우리 자성을 아는 지혜입니다.
이렇게 경문에 의해서 경문을 이해하는 것이
‘문해간경’의 옳은 태도입니다.
그다음 의해간경(意解看經)이 있습니다.
‘의해간경은 경의 뜻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에 초점을 맞춥니다. 그런데 해석이 전부 다릅니다.
예를 들면 의상 스님은
‘화엄경’의 경문을 전혀 해석하지 않으셨습니다.
‘화엄경’과 ‘십지경론’을 종합적으로 모아서 ‘일승법계도합시일인’이라 했고
그 내용은 ‘원교종요(圓敎宗要)’라고 했습니다.
종(宗)이라는 건 뿌리와 같다는 것이고
요(要)라는 것은 줄기입니다.
이것이 의상 스님이 펼친 의해입니다.
다른 경문 자체는 전혀 해석하지 않았습니다.
중국 청량 법사는 ‘대방광불화엄경’ 일곱 글자를
한 자 한 자에 각기 열 가지 뜻을 담아
총 70가지 의미로 설명하셨습니다.
고려 말 순지 스님은
“대방광은 비로자나.불은 문수보살.화엄은 보현보살”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조선시대 ‘화엄사기’를 보면
“대방광은 체와 용이다.
대는 체이고 방광은 용이다.
불화엄은 인과다. 불은 과이고 화엄은 인이다”고
설명하는 것이 ‘의해간경’입니다.
경지(經志)는 견불간경(見佛看經)입니다.
경이라고 하는 것을 등불로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등불은 등인(燈人) 등불을 드는 사람이 있습니다.
또 등을 들려면 등체(燈體)가 있습니다.
등의 몸체입니다. 등체에서는 등광(燈光)이 비칩니다.
그런데 등은 그걸 들고 다니려고 만든 것이 아니라
뭔가 중요한 걸 보려고 등불을 들고 다니는 것입니다.
이것을 등조(燈照)라고 합니다.
등이 비추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등조가 무엇을 말하는가
어둠 속에 있는 보물을 보는 것입니다.
등불을 통해서 어둠 속의 보물을 본다는 것은
곧 경전 속에 들어있는 경지(經志)를 깨닫는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이 경을 보는 자세입니다.
경을 외우고 경만 보다가 끝내라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경을 통해 경지를 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범행품’에서는 여러 가지 관법을 이야기합니다.
관법이 깊어지면 “지일체법 즉심자성 성취혜신
부유타오(知一切法 即心自性 成就慧身 不由他悟)”라,
일체 법이 마음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관이 없으면 안 됩니다.
그다음 혜신(慧身)을 성취하는 것 이것은 깨달음입니다.
다른 사람을 말미암아 깨닫는 것이 아니라
관(觀)을 통해서 다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곧 관하라는 이야기입니다.
‘야마궁중게찬품’에 보면
“약능견불신(若能見佛身) 청정여법성(淸淨如法性)
만약 불신이 청정하기가 법성과 같음을 본다면”
이 말은 법성을 보면 불신을 본다는 겁니다.
또, “차인어불법(此人於佛法) 일절무의혹(一切無疑惑)
그러면 어떻게 되는가.
이 사람은 불법에 의혹이 없다”고 합니다.
우리가 관행 공부를 해서 마음의 번뇌 망상이
밝아지기 전에는 의혹이 떨어지지 않습니다.
관행이 없으면 의심은 떨어지지 않는다
이것이 경지를 깨닫는 방법이고 ‘견불간경’인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경전을 보는 방법은
문해간경.의해간경.견불간경이 있습니다.
여기에서 견불은 곧 관행으로 경지를 보는 것입니다.
* 간경 : 불경을 소리내지 않고 눈으로만 읽다
‘야마궁중게찬품’에 있는 경문을 한 구절 더 소개하겠습니다. “약견일체법(若見一切法) 본성여열반(本性如涅槃)”
“일체법의 본성이 대열반과 똑같다”라는 의미입니다.
지금 제가 들고 있는 이 그릇은 형상입니다.
이 상의 법성 본성이 대열반입니다.
물이 얼음을 떠나지 않고 있다는 말과 같습니다.
그렇게 되면 ‘시즉견여래(是則見如來)
구경무소주(究竟無所住)’라
“법성에서 대열반을 보면 여래가 구경에는 머무는 데가 없다”고 합니다. “무소주(無所住)를 본다”
그것이 깨달음입니다.
‘화엄경’ 공부는 관행만 하는 것도 아니고
경문도 이해하고 뜻도 이해하되 마지막으로 여래를 보는
견불을 하는 것입니다.
‘여래출현품’ 마지막 부분에
‘견문공양제여래(見聞供養諸如來)
소득공덕불가량(所得功德不可量)’라는 게송은
“부처님을 형상불이라도 보고 명호라도 듣고 공양을 올리면
그 얻는 공덕이 한량이 없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염불문입니다.
염불문에서는 제일 처음 하는 것이 공불(供佛)입니다.
그다음에 예경하는 예불(禮佛)이고,
그다음이 항상 생각하는 염불(念佛)입니다.
이런 행이 자꾸 깊어져서 더 들어가면 견불(見佛)
부처를 봅니다.
초지보살(初地菩薩)이 되면 견불합니다.
견불이 되면 그다음에는 불(佛)에 머무는 주불
그다음에는 마지막 현불이고 현불이 곧 방광입니다.
길이 이렇게 모두 정해져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간경 공부도 길을 잘 따라가야 합니다.
이 법문은 영축총림 통도사에서 봉행된
‘화엄산림대법회’ 25차 법회에서
宗梵 스님이 ‘여래출현품’을 주제로 설한 내용을
요약 정리한 것입니다. (법보신문)
-중앙승가대 전 총장 종범 스님-
초파일 법문
/
시간가니 세월 가고
그렇게 한해두해 가면서
나이를 먹는다
나이 많아져 저세상 가는데
예외는 없다
/
아쉽고 후회 원망스러워도
그건 내 욕심이고 마음인데
세월가니 다 부질없구려
다시 돌아 갈수는 없지만
그렇다면 천사처럼 살까
/
깨우치기 까지는 많은 시간
경험 연륜이 필요한거 같다
무슨 말을 해도 집착과 욕심
완전 버릴 수는 없고
순리대로 참을 뿐이로다
/
걍 "그러려니"하고 잘 참고
잘 다스리는 게 인생인가
구차한 이유.변명하면 뭐하나
주변 두루두루 살피면서
내가 부처가 된 이후로 지내온 많은 세월은
한량없는 백천만억 아승지로다.
自我得佛來 所經諸劫數
無量百千萬億阿僧祗
이 구절은
법화경 여래수량품(如來壽量品)에 있는 말씀인데
법화경의 골자입니다.
쉽게 말하자면
'내가 성불한 뒤로 얼마만한 세월이 경과했느냐' 하면
숫자로써 형용할 수 없는 한없이 많은
세월이 경과했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보통으로 봐서 이것은 이해가 안될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인도에 출현해서 성불하여 열반하신 지
지금부터 2천 5백여 년밖에 안되었습니다.
그런데 어째서 부처님 말씀이 자기가 성불한 지가
무량백천만억 아승지 이전이라고 했을까?
어째서 숫자로 헤아릴 수 없는 오랜 옛날부터라고
그렇게 말씀하신 것일까?
사실에 있어서 부처님이
2천 5백년 전에 출현하여 성불하신 것은 방편이고
실지로는 한량없는 무수한 아승지겁 이전에
벌써 성불하신 것입니다.
이것을 바로 알아야 불교에 대한 기본자세.근본자세를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불교의 목적이 무엇이냐고 보통 물으면 '성불이다',
즉 부처되는 것이라고 합니다.
으례껏 그렇게 말하지만 실제로는 맞지 않는 말입니다.
실제 내용은 중생이 본래부처(本來是佛)라는 것입니다.
깨쳤다는 것은 본래부처라는 것을 깨쳤다는 말일 뿐
중생이 변하여 부처가 된 것이 아닙니다.
그 전에는 자기가 늘 중생인 줄로 알았는데
깨치고 보니 억천만 무량아승지겁 전부터 본래로
성불해 있더라는 것입니다.
무량아승지겁 전부터 본래로 성불해 있었는데
다시 무슨 성불을 또 하는 것입니까?
그런데도 '성불한다.성불한다' 이렇게 말하는 것은
우리 중생을 지도하기 위한 방편으로 하는 말일 뿐입니다.
부처님이 도를 깨쳤다고 하는 것은 무량아승지겁 전부터
성불한 본래모습 그것을 바로 알았다는 말입니다.
이 말은 부처님 한 분에게만 해당되는 말이 아닙니다.
일체 중생.일체 생명.심지어는 구르는 돌과 서 있는 바위
유정 무정(有情 無情) 전체가 무량아승지겁 전부터
다 성불했다는 그 소식인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이 세계를 '사바세계'라 합니다.
모를 때는 사바세계이지만 알고 보면 이곳은
사바세계가 아니고 저 무량아승지겁 전부터
이대로가 극락세계입니다.(지금이 극락이다)
그래서 불교의 목표는
중생이 변하여 부처가 되는 것이 아니고
누구든지 바로 깨쳐서
본래 자기가 무량아승지겁 전부터 성불했다는 것
이것을 바로 아는 것입니다.
동시에 온 시방법계가 불국토(佛國土) 아닌 곳
정토(淨土) 아닌 나라가 없다는 이것을
깨치는 것이 불교의 근본목표입니다.
다른 종교에서는 '구원'이라는 말을 합니다.
'구원을 받는다'
'예수를 믿어 천당 간다'고 합니다
그러나 불교에서는 구원이라는 말이 해당되지 않습니다.
본래 부처인 줄 확실히 알고 온 시방법계가 본래 불국토며
정토인 줄 알면 그만이지
또 무슨 남에게서 받아야 할 구원이 있겠습니까?
그래서 불교에는 근본적인 의미에서
절대로 구원이란 없습니다.
이것이 어느 종교도 따라 올 수 없는
불교의 독특한 입장입니다
실제 어느 종교 어느 철학에서도
이렇게 말하지 못합니다.
불(佛)! 부처란 것은
불생불멸(不生不滅)을 이르는 말입니다.
무량아승지겁 전부터 성불했다고 하는 것은
본래부터 모든 존재가
불생불멸 아닌 것이 없다는 그 말입니다.
사람은 물론 동물도.식물도.광물도
심지어 저 허공까지도 불생불멸인 것입니다.
또한 모든 처소 시방법계 전체가 모두 다 불생불멸인 것입니다.
그러니 이것이 즉 정토이며 불국토인 것입니다.
즉 모든 존재가 전부 다 부처고
모든 처소가 전부 다 정토다 이말입니다.
그러면 어째서 사바세계가 있고 중생이 있는가?
내가 언제나 하는 소리입니다.
아무리 해가 떠서 온 천하를 비추고 환한 대낮이라도
눈 감은 사람은 광명을 못 봅니다.
앉으나 서나 전체가 캄캄할 뿐 광명을 못 봅니다
그와 마찬가지입니다.
마음의 눈을 뜨고 보면
우주법계 전체가 광명인 동시에 대낮 그대로입니다.
마음의 눈을 뜨고 보면 전체가 부처 아닌 존재 없고
전체가 불국토 아닌 곳이 없습니다.
마음의 눈만 뜨고 보면!!!
그러나 이것을 모르고 아직 눈을 뜨지 못한 사람은
'내가 중생이다'
'여기가 사바세계다'라고 말할 뿐입니다.
근본 병은 어디에 있느냐 하면
눈을 떴나, 눈을 감았나 하는 여기에 있습니다.
눈을 뜨고 보면 전체가 다 광명이고
눈을 감고 보면 전체가 다 암흑입니다.
마음의 눈을 뜨고 보면 전체가 다 부처이고
전체가 다 불국토이지만
마음의 눈을 감고 보면 전체가 다 중생이고
전체가 다 사바세계 지옥인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이것저것 말할 것 없습니다.
누가 눈감고
캄캄한 암흑세계에 살겠다고 하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누구든지 광명세계에 살고 싶고
누구든지 부처님 세계에 살고 싶고
누구든지 정토에 살고 싶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한시 바삐 어떻게든 노력하여
마음의 눈만 뜨면 일체 문제가 다 해결됩니다.
가고 오고 할 것이 없습니다.
천당에 가니 극락세계에 가니 하는 것은
모두 헛된 소리입니다.
어떻게든 노력해서 마음의 눈만 뜨면
일체 문제가 다 해결됩니다.
그래서 부처님께서 내가 아승지겁 전부터 성불했더라.
본래부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중생을 제도하기 위하여 방편으로 열반을 나타내지만
실제는 내가 죽지 않고 항상 여기서 법을 설한다.
爲度衆生故 方便現涅盤
而實不滅度 常住此說法
이 구절은 앞의 게송에 계속되는 구절인데
무슨 뜻인가 하면
부처님께서 무량아승지겁 전부터 성불하였을 뿐만 아니라
미래겁이 다하도록 절대로 멸하지 않고
여기 계시면서 항상 법문을 설한다는 것입니다.
'여기'라 함은 부처님 계신 곳을 말함이지
인도를 말하는 것도 아니고 한국을 말하는 것도 아닙니다. 부처님이 나타나 계시는 곳은 전부 여기입니다.
부처님께서는 천백 억 화신을 나타내어
시방법계에 안나타나는 곳이 없으시니까
시방법계가 다 여기입니다.
그래서 이것을 상주불멸이라고 하였습니다.
항상 머물러 있으면서 절대로 멸하여 없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과거에도 상주불멸.미래에도 상주불멸
현재에도 상주불멸 이렇게 되면 일체 만법이
불생불멸 그대로입니다.
나지도 않고 멸하지도 않는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영원토록 화장찰해(華藏刹海)
무진법계.극락정토 뭐라고 말해도 좋은 것입니다.
이름이야 뭐라고 부르든 간에
과거.현재.미래를 통해서 부처님은 항상 계시면서
설법을 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것은 석가모니라고 하는
개인 한사람에게만 해당되는 것인가?
아닙니다.
삼라만상 일체가 다 과거부터 현재 미래 할 것 없이
항상 무진법문을 설하고 있으며
무량불사(無量佛事)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무진장)
심지어는 저 산꼭대기에 서 있는 바위까지도
법당 안에 계시는 부처님보다 몇 백배 이상 가는 설법을
항상 하고 있는 것입니다.
바위가 설법한다고 하면 웃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바위가 무슨 말을 하는가 하고 말입니다.
그러나 실제 참으로 마음의 눈을 뜨고 보면
눈만 뜨이는 것이 아니라 마음의 귀도 열립니다.
그러면 거기에 서 있는 바위가 항상 무진설법을 하는 것을
다 들을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불교에서는 무정설법(無情說法)이라고 합니다.
유정(有情) 즉 생물은 으례 움직이고 소리도 내고 하니까
설법을 한다고 할 수 있지만
무정물(無情物)인 돌이나 바위.흙덩이는
움직이지도 않으면서 무슨 설법을 하는가 하겠지만
불교를 바로 알려면 바위가 항상 설법하는 것을 들어야 합니다.
그 뿐 아닙니다.
모양도 없고 형상도 없고 보려고 해도 볼 수 없는
허공까지도 항상 설법을 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되면 온 시방세계에 설법 안 하는 존재가 없고
불사(佛事) 안하는 존재가 하나도 없습니다.
이것을 알아야만 불교를 바로 알 수 있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누구를 제도하고 누구를 구원한다고 하는 것은
모두 부질없는 짓입니다!
오직 근본요(根本要)는 어디 있느냐 하면
본래면목(本來面目). 본래부터 성불한 면목
본지풍광(本地風光).본래부터가 전체 불국토라는 것
이것만 바로 알면 되는 것이지 다른 것은
아무 것도 소용없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참 좋은 법이야.
우리 모두가 불국토에 살고.우리 전체가 모두
부처라고 하니 노력할 것이 뭐 있나
공부도 할 것 없고
이래도 좋고 저래도 좋고 아무래도 안 좋은가.'
이렇게도 혹 생각하겠지만 이것은 근본을 몰라서 하는 소리입니다.
본래 부처이고 본래 불토(佛土)이고
본래 해가 떠서 온 천지를 비추고 있지만
눈감은 사람을 광명을 볼 수 없습니다.
자기가 본래 부처이지만 눈감고 있으면 캄캄한 것입니다.
비유하자면
마알간 거울에 먼지가 꽉 끼어 있는 것과 같습니다.
거울은 본래 깨끗하고 말갛기 때문에
무엇이든지 있는대로 다 비춥니다.
그렇지만 거기에 먼지가 꽉 끼어 있으면 아무 것도
비추지 못합니다.
명경(明鏡)에 때가 꽉 끼어 있으면
아무 것도 비추지 못하는 것 여기에 묘(妙)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본래 부처라는 이것만으로는 안됩니다.
내가 본래 부처다 내가 본래 불국토에 산다
이것만 믿고 '내가 공부를 안해도 된다'
'눈뜰 필요없다', 이렇게 되면 영원히 봉사를 못면합니다.
영원토록 캄캄 밤중에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가지 자신을 가질 수 있습니다.
무슨 자신을 가질 수 있느냐 하면
설사 우리가 눈을 감고 앉아서 광명을 보지 못한다고 해도
광명 속에 산다는 것 광명속에 살고 있으니
눈만 뜨면 그만이라는 것
설사 내가 완전한 부처의 행동을 할 수 없고
불국토를 보지 못한다고 해도 본래 부처라는 것
본래 불국토에 산다는 그런 자신을 가질 수 있습니다.
다만 한 가지 흠이라는 것은
눈을 뜨지 못하여 그것을 보지 못하고
쓰지 못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쓰지 못한다고 하지만
전후좌우에 황금이 꼭 차 있는 것을 알 것 같으면
눈만 뜨면 그 황금이 모두 내 물건 내 소유이니
얼마나 반가운 소식입니까?
이것을 철학적으로 말하면
'현실 이대로가 절대다'하는 것입니다.
즉 현실 이대로가 불생불멸인 것입니다.
전에도 얘기한 바 있습니다.
현실 이대로가 절대이고 현실 이대로가 불생 불멸인데
이 불생불멸의 원리는 자고로 불교의 특권이요
전용어가 되어 있다고.
그러나 과학이 발달함에 따라
원자물리학에서도 자연계는 불생불멸의 원리 위에
구성되어 있음을 증명하게 된 것입니다.
그것이 과학적으로 증명되었다고 해서
불교가 수승하다 하는 것이 아닙니다.
불교에서는 원래 그런 원리가 있는데 요즘 과학이
실험에 성공함으로써 불교에 가까이 온 것뿐입니다.
그러니까 부처님께서는 이미 2500여 년 전에
우주법계의 불생불멸을 선언하셨고
과학은 오늘에 와서야 자연의 불생불멸을 실증함으로써
시간의 차이는 있으나 그 내용은 서로 통하고 있습니다.
인간의 근본존재는
무량아승지겁 전부터 성불하여
무량아승지겁이 다하도록
무량불사를 하는 그런 큰 존재입니다.
다만 병이 어느 곳에 있느냐
눈을 뜨지 못하여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입니다!!!
1981.6.30 해인사 대적광전에서 하신
성철스님 법문 (月刊 海印에서 拔萃)
프레임 법칙
한 친구가 물었다.
“자네는 기도 중에 담배를 피워도 된 다고 생각하나?”
“글쎄 잘 모르겠 는데 신부님께 한번 여쭤보는게 어떻겠나?”
신부님에게 다가가 물었다.
“신부님 기도 중에 담배를 피워도 되나요?”
신부는 정색하면서 대답했다.
“기도는 신과 나누는 엄숙한 대화인데 절대 그럴 순 없지."
친구로부터 신부님의 답을 들은 다른 친구가 말했다.
“그건 자네가 질문을 잘못했기 때문이야.
내가 가서 다시 여쭤보겠네.”
다른 친구가 신부에게 물었다.
“신부님 담배 피우는 중에는 기도를 하면 안 되나요?”
신부는 얼굴에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기도는 때와 장소가 필요 없다네.
담배를 피는 중에도 기도는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것이지.”
이처럼 동일한 내용도 관점에 따라 다르게 볼 수 있다는 점
"프레임(frame)의 법칙"입니다!
여대생이 밤에 술집에서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하면
사람들은 손가락질을 할 것입니다.
하지만 술집에서 일하는 아가씨가
낮에 학교를 다니면서 열심히 공부한다고 하면
사람들의 반응이 어떨까?
원하는 답을 얻으려면 질문을 달리 하십시오!
질문이 달라지면 답이 달라집니다!
나는 과연 어떤 프레임에 매달려 있지는 않은지?
또 다른 각도로 생각해봅니다.
'프레임의 법칙이란,!
똑같은 상황이라도 어떠한 틀을 갖고
상황을 해석하느냐에 따라
사람들의 행동이 달라진다'는 법칙입니다.
꼭 읽어 보시길 바랍니다
아버지! 옛날에 어떻게 사셨어요?
과학기술도 없고!인터넷도 없고!
컴퓨터도 없고! 드론도 없고!
휴대폰도 없고! 카톡도 없고!
페이스북도 없었고!
아버지께서 대답하셨습니다.
너희 세대가 오늘날
인간미도 없고! 품위도 없고!
연민도 없고! 수치심도 없고
명예도 없고! 존경심도 없고!
개성도 없고! 사랑도 없고!
겸손도 없이 살고 있는 것처럼 그렇게는 안 살았지!
너희들은 우리를 늙었다고 하지만
우리는 참 축복 받은세대란다.
우리 삶이 그 증거야.
헬멧을 쓰고 자전거 를 타지 않았고!
방과 후에는 우리 스스로 숙제 했어!
해질 때까지 들판에서 뛰놀고!
페이스북이나 카톡 친구가 아니라 진짜 친구랑 놀았다!
목이 마르면 생수가 아닌 샘물을 마셨고!
친구들이 사용한 잔을 함께 사용해도 아픈 적이 없었다!
빵 과자를 많이 먹어 비만하지도 않았고!
브렌드 신발 없어도 맨발로 뛰어 놀았다!
여보시요! 저기요 저기요!
지금 사는 게 재미 있습니까?
지금 꿀이 뚝뚝 떨어집니까?
뭐. 그래봤자 어디 젊은날만 하겠어요?
싱싱하던 시절이 그립죠!
암요! 암! 아무려면!
그래도 지금 두 다리로 멀쩡히 걸어 다니고
봄날 꽃구경 다니고 맛난 거 찾아 다니면
당신은 큰 행운 입니다.
삶의 필름을 잠시만 되 돌려보면
몇 달 사이에도 주변에 황당한 일이
정말 많이 생기 더라고요.
그것도 며칠 전에도 멀쩡하게
아침 마다 인사 카톡 보내던 놈이
연락 두절 되고요.
즈그 자식들 잘 산다고 마구마구
떠벌리며 골목 골목 누비며 폐지줍던
그영감 쟁이도 요즘 모습 감췄고요.
옛날 소주 한잔 마시다가 진보니 보수니 거품 물고
정치 얘기 하던 골통 그놈도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졌죠.
산 좋다고 주말마다 건강 챙기며
이산 저산 등산 가자 조르던 절친
그놈 졸지에 심장마비로 저세상 가버렸죠.
당구 300에 어떤 짠돌이
난데 없이 신장 이상이 생겨 투석하며
두문 불출 괴로운 방콕 삶이구요.
빌딩 몇채 가졌다고 어깨에 힘주던
술값 밥값 계산의 달인도 요양원 직행했죠.
이런 일이 부쩍부쩍 요즘 왜 그렇게 많이 벌어 지죠?
생각해 볼 수록 결코 남의 일이 아닙니다.
나와 그대에게서 일어나는 반복 되는 일상의 일입니다.
오늘은 쬐메 유식 하게 한문과
운율에 맞춰 서리 읇어 보겠습니다.
流水不復回 (유수불복회)
흐르는 물은 다시 돌아 오지 않고
行雲難再尋 (행운난재심)
떠도는 구름은 다시 볼 수 없네.
老人頭上雪 (노인두상설)
늙은이의 머리 위에 내린 하얗게 쌓인 눈은
春風吹不消 (춘풍취불소)
봄바람이 불어와도 녹지 를 않네
春盡有歸日 (춘진유귀일)
봄은 오고가고 하건만
老來無去時 (노래무거시)
늙음은 한번오면 갈 줄을 모르네
春來草自生 (춘래 초자생)
봄이오면 풀은 저절로 나건만
靑春留不住 (청춘유불주)
젊음은 붙들어도 머물지 않네
이 위에 글은 우리 들의 현실이고 현장 아닌가요?
그러니까!
지금같이 이빨 성할때 맛난 것 많이 먹고!
걸을 수 있을 때 열심히 다니고!
눈으로 볼 수 있을 때 실컷 구경하고!
귀로 들릴 때 듣고 들어야 하며!
베풀 수 있을 때 남에게 베풀며!
즐길 수 있을 때 마음껏 즐기는 게 최고 입니다!!!
이것이 인생길 후반 잘 사는 방법 아닌가요!
人生이란 따지고 보면
지금같이 늦 인생을 즐기며 사는 게 최고 입니다.
언젠가
못 보고 못 듣고! 못 먹고 못 입고 못 걷고!
내손으로 아무 것도 못할 그런날이 올겁니다!
오늘 즐거움을 미루지 말고 누구를 미워도 말고
부르면 번개처럼 나와 줄 그 사람과 신나게 즐기세요!
우리 나이에는 정확한 내일은 없습니다.
오늘의 지금 이 순간이 인생 최고의 날입니다!
꽃이 화려한들 무슨 소용입니까!
우리는 지금도 움직여야 꽃피는 봄날이 된답니다!
인생은 일장춘몽이라!!!
멋진글 공유합니다
방하착
한 스님이 탁발을 하러 길을 떠났는데
산세가 험한 가파른 절벽 근처를 지나게 되었다.
그때 갑자기 절벽 아래서
'사람 살려!' 라는 절박한 소리가 실낱같이 들려왔다.
소리가 들려오는 절벽 밑을 내려다보니
어떤 사람이 실족을 했는지
절벽으로 굴러 떨어지면서
다행히 나뭇가지를 붙잡고 대롱대롱 매달려
살려달라고 발버둥을 치고 있는 것이었다.
'이게 어떻게 된 영문이오?' 라고
스님이 물어보니 다급한 대답이 들려왔다.
'사실은 나는 앞을 못보는 봉사 올시다.
산 넘어 마을로 양식을 얻으러 가던 중
발을 헛딛어 낭떠러지로 굴러 떨어졌는데
다행히 이렇게 나뭇가지를 붙잡고
구사일생으로 살아 있으니 뉘신지 모르오나
어서 속히 나좀 구해주시오
이제 힘이 빠져서 곧 죽을 지경이오!' 하는 것이었다.
스님이 자세히 아래를 살펴보니
그 장님이 붙잡고 매달려 있는 나뭇가지는
땅 바닥에서 겨우 사람 키 하나 정도 위에 있었다.
뛰어 내려도 다치지 않을 정도의 위치였던 것이다.
그래서 스님이 장님에게 외쳤다.
'지금 잡고있는 나뭇가지를 그냥 놓아 버리시오.
그러면 더 이상 힘 안들이고 편안해 질 수 있소!'
그러자 절벽 밑에서 봉사가 애처롭게 애원했다.
'내가 지금 이 나뭇가지를 놓아버리면
천길 만길 낭떠리지로 떨어져 즉사할 것인데
앞 못보는 이 사람을 불쌍히 여기시어
제발 나좀 살려주시오~'
라고 애걸복걸 했다.
그러나 스님은 봉사의 애원에도 불구하고
살고 싶으면 당장 그 손을 놓으라고 계속 소리쳤다.
그런 와중에 힘이 빠진 봉사가 손을 놓치자
땅밑으로 툭 떨어지며 가볍게 엉덩방아를 찧었다.
잠시 정신을 차리고 몸을 가다듬은 장님은
졸지간에 벌어졌던 어처구니 없는 상황을 파악하고
멋적어 하며 인사 치례도 잊은 채 황급히 자리를 떠났다.
그렇다! 우리도 앞 못보는 장님과 크게 다를 바 없다.
봉사가 붙잡고 있는 나뭇가지가 오직 자신을 살려주는
생명줄 인 줄 알고 죽기살기로 움켜쥐듯이
끝없는 욕망에 집착하며 현재 자신이 가지고 있는 것을 놓아버리면 곧 죽고 못살 것 처럼
아둥바둥 발버둥치는 청맹과니 같이
눈뜬 장님이 바로 우리들이 아닌지!
썩은 동아줄과 같은 물질을 영원한 생명줄로 착각하고
끝까지 붙들고 발버둥치는 불쌍한 우리네 중생들!
방하착(放下着)은 집착하는 마음을 내려 놓아라
또는 마음을 편하게 가지라는 뜻이다.
우리 마음 속에는
온갖 번뇌와 갈등 스트레스 원망 집착 등이 얽혀있는데
그런 것을 모두 홀가분하게 벗어 던져버리라는 말이
방하착이다!
방하착(放下着)!
중국 당나라 때
배휴(裴休)라는 유명한 정승이 있었다.
운명은 자신의 마음이 만들기 나름이다
그는 쌍둥이로 태어났다.
그것도 등이 맞붙은 기형아로 태어나자
부모가 칼로 등을 갈라 살이 많이 붙은 아이를 형으로
살이 적게 붙은 아이를 동생으로 삼았다.
부모는 형과 동생의 이름을 '도'자로 짓되
형의 이름은 '법도 도'로 하고 동생은 '헤아릴 탁'이라고 불렀다.
배휴는 어릴 때의 형인 배도가 장성한 다음 새로 지은 이름이다.
어려서 부모를 여읜 배도와 배탁은
외삼촌에게 몸을 의탁하고 있었다.
어느 날 일행선사(一行禪師)라는 밀교의 고승이
집으로 찾아와서 그들 형제를 유심히 바라보더니
외삼촌과 이야기를 나누는 것이었다.
"저 아이들은 누구입니까?"
"저의 생질들인데 부모가 일찍 죽어 제가 키우고 있습니다."
"저 아이들을 내보내시오."
"왜요?"
"저 아이들의 관상을 보아하니 거지상이요
그냥 놓아두면 저 아이들로 말미암아 이집이 가난해집니다.
그리고 저 아이들이 얻어먹는 신세가 되려면
이 집부터 망해야 하니 애당초 그렇게 되기 전에 내보내십시오."
방문 밖에서 외삼촌과 일행선사의 대화를 엿들은 배도는
집을 떠났다.
집을 떠난 형제는 머리를 맞대고 상의하였다.
"우리가 이렇게 산다면 (조상 숭배는 자아 개발이다)
일찍 돌아가신 부모님의 혼령도 편안하지 못할 것이다.
산으로 들어가서
숯이나 구워 팔면서 공부도 하고 무술도 익히자."
"먹을 양식꺼리 만치 숯을 팔고 남은 것은 나누워 주었다.
이렇게 꾸준히 숯을 보시하자
처음에는 의아하게 생각하던 마을 사람들도 감사하게 생각하였고 숯이 도착할 시간이면 '양식에 보태라.'며 쌀을 대문밖에 내어놓기까지 하였다.
그들 형제들은 먹을 만큼 이상의 양식은 절대로 가져가지 않았다.
"이만하면 충분합니다. 감사합니다."
어느 날 외삼촌댁에 들은 그들이 집에 이르자
때마침 일행선사도 오셨는데
배도를 보더니 깜짝 놀라는 것이었다.
"얘야 너 정승이 되겠구나."
"스님, 언제는 저희 형제더러 빌어먹겠다고 하시더니
오늘은 어찌 정승이 되겠다고 하십니까?
거짓말 마십시오."
"전날에는 너의 얼굴에 거지 팔자가 가득 붙었더니
오늘은 정승의 심상(心相)이 보이는구나.
그동안 무슨 일을 하였느냐?"
배도와 배탁이 그동안의 일을 자세히 말씀드리자
일행선사는 무릎을 치면서 기뻐하셨다.
"그러면 그렇지!
너희들의 마음가짐이
거지 팔자를 정승 팔자로 바꾸어 놓았구나."
그 뒤 참으로 배도는 정승이 되었고
동생 배탁은 대장군의 벼슬을 마다하고 황하강의 뱃사공이 되어
오가는 사람을 건네주며 고매하게 살았다고 한다.
심상(心相)이 바뀌면 만상(萬相)이 바뀝니다!
관상(觀相) 사주(四柱) 성명(姓名) 골상(骨相) 풍수(風水) 등등
온갖 것이 심상(心相)보다 중요한 것은 없습니다.
그래서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 합니다!!!
마하반야바라밀
물처럼 유연하고 겸손하게 살아라.
부처님께서 도를 깨닫고 나서 깜짝 놀라셨어요. 그리고 크게 감동하셨지요.
도를 깨닫기 위해서 그렇게 노력했는데 알고 보니 일체중생이 한 명도 빠짐없이 본래 부처였다 이거에요.
그런데 왜 중생의 탈을 쓰고 있을까.
그 탈을 벗게 하려고 부처님께서 45년간 불철주야(不撤晝夜)로 법을 설하셨습니다.
법화경에서는 부처님이 이 세상에 오신 까닭으로,
일체중생으로하여금 부처님의 법을, 깨달음을 얻게 하고자 오셨다 했습니다.
일체중생에게 부처님의 깨달음을 보이시고자 이 세상에 오셨다,
일체중생으로 하여금 부처님의 깨달음을 깨닫게 하고자 이 세상에 오셨다,
일체중생으로 하여금 부처님의 깨달음에 들게 하고자 오셨다는 겁니다.
불교는 깨달음의 종교이고, 지혜의 종교입니다.
불교를 오래 믿으면 중생 스스로가 지혜로워져서 부처님과 같아집니다.
지혜로워진다는 것은 판단이 명석해지는 겁니다.
세상을 지혜롭게 살아 나가는 명석함을 갖기 위해서,
판단력을 갖추기 위해서 우리 중생들은 부처님을 따라 배우고자 정진해야 합니다.
부처님의 깨달음을 따르기 위해서는 부처님의 가르침을 진실로 믿어야 하고,
그 가르침을 행하면 행복해질 수 있다는 것을 확신해야 합니다.
부처님 말씀이 담긴 경전을 열심히 공부하고 마음을 닦는데 방일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불성적(佛性的)인 자기를 새롭게 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불성을 지니고 있다는 걸 확실히 믿어야 자기의 삶 하루하루가 소중하게 느껴질 것입니다.
중생심(衆生心)에 매몰되어 함부로 살아서는 안 됩니다. 그렇기에 늘 자기 탐구에 힘써야 하지요.
남의 일에 관심을 두고 이러쿵저러쿵 할 때가 아닙니다.
자기를 바라보고 자신의 인생에 대해 진지하게 탐구해 보세요.
부처님이 어떤 사람인지 아십니까? 가장 평범한, 보통 사람이라고 나는 생각합니다.
우리 중생들은 보통 사람에 미치지 못하거나 보통을 지나친 사람들이에요.
가장 평범하고 보통 사람인 부처님의 성품을 닮기 위해 우리는 공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부처님 앞에서 무엇을 빌고 있습니까? 부처님을 닮겠다는 건가요?
아파트에 당첨되기를, 남편의 승진을,
또는 자녀들이 좋은 대학에 붙기를 더 바라고 있지 않나요? 왜 절에 다닙니까?
우리의 정신세계를 정상화하기 위해서 오는 것이다. 라고 나는 말합니다.
법은 특별한 것이 아닙니다. 당연한 것을 당연하게 하는 것이 법입니다.
불교에서 중도를 말하지요. 가운데 중(中), 길 도(道)를 쓰는데 이 중(中) 자가 맞을 중 자입니다.
이치에 턱 들어맞는다. 라는 뜻이지요. 화살을 쏘아 과녁에 맞으면 적중했다 하잖아요. 들어맞았다는 것이지요.
불교는 비판주의적 종교라 할 수 있습니다. 반야심경(般若心經)에는 없을 무(無)가 많이 나옵니다.
그러나 없다는 소리가 아니지요. 아니라는 소리도 있다는 겁니다.
반야심경의 무(無)는 전부가 비판입니다. 우리가 절을 하더라도 비판 정신이 없으면 절하는 의미가 없습니다.
한번 절을 함으로써 아직은 멀었다 그 뜻입니다.
또 한 번 절하고 그것도 아니다, 한 번 더 절하고 그것도 아니다. 3천 배를 했어요.
그러나 과연 그 가운데 진실한 절이 3번이나 있을까 말까. 하다는 얘기예요.
금을 캐러 금광에 들어간 사람이 삽질하고는 홱 집어 던집니다. 왜 집어 던집니까? 이것은 아니다. 라는 뜻이지요.
뭐가 아니냐. 금이 아니다 이거지요. 또 한 번 삽질하고는 홱 집어던지면, 그것도 아니라는 뜻이지요.
이것도 아니요, 저것도 아니요, 그것도 아니다. 뭐가 아니냐.
열반에 이르기까지 계속 비판 정신을 가지고 탐구하라는 뜻입니다.
유마경(維摩經)에 곧은 마음을 쓰는 일이 보살의 정토이니
보살의 성불(成佛)-시에 왜곡된 말을 하지 않는 중생은 내세에 극락을 간다고 했습니다.
또 깊고 깊은 마음속에 부처와 보살이 있다고 했고 보리심을 내면 극락에 태어난다고 했습니다.
곧은 마음과 깊은 마음, 보리심을 가진 사람이야말로 공덕을 구족 하고 진실한 행복감을 느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 인생을 함부로 살아서는 안 됩니다.
바둑 하는 사람이 한 돌, 한 돌 정성을 다해 신중하게 놓아가듯,
어떻게 사는 것이 진정한 행복의 길인가 생각하며 하나하나 정성을 들여야 합니다.
서양의 과학자가 이런 말을 했어요.
오늘날 세계는 크게 세 가지 점에서 대량 살상이 자행될 우려가 있다고 했습니다.
전쟁으로 핵무기가 터져 대량으로 죽거나, 공해에 의한 완만한 인류의 대량 살상이 올 수 있다 했습니다.
가치관 혼란에서 오는 정신적인 대량 살상도 이야기했어요.
외부적인 환경의 오염뿐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오염되고 있는 것을 경계하는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어떤 환경 속에서 살고 있는가요. 정신적으로 황폐한 시대, 암담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정신적인 오염이 심각합니다. 시민정신은 갈수록 악화일로에 놓여있어요.
인성이 대단히 잔인해지고 있어요. 천박해져 갑니다.
시민의식은 너도 살고 나도 살자는 공생 의식인데,
천민 의식은 세상 사람 다 죽어도 나만 살고 싶다는 것이에요.
이 병폐를 치유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먼저 해야 할 일이 자기를 바로 볼 줄 아는 지혜를 기르는 일입니다.
남이 아니라 자기 인생을 볼 줄 알아야 다른 것도 볼 수 있는 겁니다.
그러고 나서 자기의 조국을 보고, 그리고 국제사회를 볼 줄 알아야 합니다.
흔히 세계인, 세계인 하는데 세계인이라고 말로는 쉽지만, 진실한 세계인이 되기가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닙니다.
현대사회는 탐(貪) 진(眞) 치(痴)가 더욱더 극성을 부리기에 종교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불교를 포함한 모든 종교가 오늘의 혼탁한 사회를 정화해 나가야 할 막중한 책무가 있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사고(思考)가 편파적이고 격합니다. 자기만 최고로 알고 양보하거나 남을 살피지 않습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와글와글 끓는 뜨거운 가마솥 같아요. 우리는 21세기를 살고 있습니다.
지난 20세기에는 정치 경제 사회적으로 어느 분야나 물질 위주로 생각해 왔습니다.
탐욕스럽게 살아왔습니다. 그런 관념이 21세기까지 이어져서는 안 됩니다.
오늘의 시대를 해결하기 위해 서양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해 왔을까요.
그들은 존재론, 구조주의와 같은 사상들이 오늘의 시대를 대처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실존주의입니다.
그러한 존재론을 가지고 현대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지요.
중국 사람들은 어떠했습니까. 그들은 도(道)에 근거했어요. 도가 오늘의 시대를 해결해 줄 것이다.
그러면 불교사상은 어떠한가요. 법(法), 즉 다르마에 의해서 극복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반야심경(般若心經)에 색즉시공(色卽是空) 공즉시색(空卽是色)이란 말이 있다는 것은 누구나 알 것입니다.
색(色)이란 것은 현상적 세계를 말하고, 공(空)이라 정신세계를 뜻합니다.
이 현상적 세계와 이상적 세계를 합친 것이 인간의 모습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행위가 어떠해야 할까요?
현상적이라는 말은 1차원의 세계입니다, 권세, 재물, 현상적인 이익 등 거기에 매몰되면 현실주의자입니다.
정신적인 것은 2차원의 세계입니다. 고귀한 정신주의적인 태도지요, 그런데 극단적인 이상주의적 태도도 있어요.
이러한 사람들은 현실 세계와 대화가 없어요.
자기만이 정당하고 자기만의 만족을 위해서 다른 사람들을 가련하게 보고, 망상, 환상주의에 빠지기가 쉬워요.
그렇다면 21세기 사회는 어때해야 하느냐? 이 양자를 바라볼 수 있는 반야의 지혜가 나와야 합니다.
반야의 지혜가 21세기 사회를 이끌어가는 지도 원리가 돼야 합니다.
이 3차원의 반야사상에 관해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조사록(祖師錄)에서 말하기를,
이 세상 사람들이 하루 종일 반야를 외워도 자성 반야를 모르면, 밥을 말하고 있되 배고픈 것과 같다고 했어요.
입으로만 말하는 밥은 배부를 수가 없지요.
입으로만 진리를 말하면 만겁의 세월이 흘러도 견성(見性)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반야의 지혜를 체득할 수 있도록 우리 불자들로부터 열심히 수행 정진해야 합니다.
마음이 어리석은즉 사바세계요, 마음을 깨달은즉 이상세계다.
마음이 삿된즉 사바세계요, 마음을 바로 하니 이상세계다.
열반경(涅槃經)에 나오는 말입니다. 우리가 세상에 태어날 때는 누구나 평등하게 태어나는 것이지만,
스스로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심성이 천박해질 수도 있고 고귀해질 수도 있습니다.
지혜롭게도 되고 마냥 어리석을 수도 있습니다. 생명의 원천은 우리의 심성에서 나옵니다.
천당 지옥이 우리들의 심성(心性) 가운데 있어요.
극락이니 천당이니 지옥이니 하는 것이 이 마음에서 나온다는 것을 안다면 늘 행복하고 안락할 수 있습니다.
성인들은 세상을 살아 나가는데 가장 으뜸가는 태도는 물처럼 사는 거라고 말합니다.
물이라는 것은 대단히 유연합니다. 내가 서 있는 발바닥 밑 지하를 흐르고 있지만 그 물은 만물을 길러냅니다.
모든 생명은 물이 없으면 살 수가 없어요.
가장 낮은 곳을 흐르지만, 만물을 길러내는 물처럼 유연하면서 또 겸손하게 사는 것이 지혜로운 삶입니다.
물은 생명을 길러내지만 내가 기른다. 공을 내세우지도 않습니다.
나는 불자 여러분들이 물처럼 겸손하며 포용력 있게,
그리고 고요를 즐기는 사람으로, 마음을 잘 쓰면서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현대인들은 고요한 시간을 갖기 어려워요. 고요를 즐길 줄 모르는 사람은
불법도 알기 어렵습니다.
물이 고요할 때는 하늘의 달그림자가 선명히 나타나지만, 물이 흔들리면
달그림자는 일그러져 보입니다.
마찬가지예요.
마음이 흔들리면 객관적인 것을 판단하는 지혜가 나올 수 없습니다.
마음이 고요할 때만 판단이 바로 선다는 것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 무진장 스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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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치바보라도 누구나 한번쯤은 신통한 경험을 한다.
자신만의 순간적인 경험을 진실로 믿으면 안 됩니다.
자신의 부족한 인지능력과 부족한 안목으로 경험한 것을
모든 사람의 인생인양 산다면 결국에는 수렁에 빠질 것입니다.
동쪽으로 갈 길을 서쪽으로 서쪽으로 갈 길을 동쪽으로
무한정 간다면 어떻게 될까요.
박학절문(博學切問)!
널리 배우고 간절히 물어라.
일반적 상식과 이치에 맞나?
일반적 상식과 자연의 법칙에 어긋나면
아무리 하늘을 나는 재주라도 결국은 나락에 떨어져
고통을 벗어나기 어려울 것입니다.
과거를 회상한다고 돌아오지 않고
오지 않은 미래를 너무 꿈꾸지 말며
현재도 바로 지나가기 때문에
금강경에
과거심불가득 (過去心不可得)
과거의 마음은 얻을 수 없고
미래심불가득 (未來心不可得)
미래의 마음은 오지 않았으니 얻을 수 없고.
현재심불가득(現在心不可得)
현재는 찰나에 지나가니 얻을 수 없다.
찰나생(刹那生)찰나에 일어나고.
찰나멸(刹那滅)찰나에 사라진다.
순간(瞬間)이나 찰나(刹那)는 엄청나게 짧은 시간입니다.
1찰나는 75분의 1초(약 0.013초)에 해당하는
극히 짧은 시간이라고 하니 엄청 짧은 시간이죠.
바로 지금 여기서 별안간 생기고 사라지는 우주
이것이 엄청난 무상(無常)입니다.
이 세상 끝은 어디인가
저 세상 끝은 어디인가
이 세상 끝은 이 자리요
저 세상 끝도 이 자리니
천당 극락은 어디인가
천당 극락도 이 자리요
아귀 지옥은 어디인가
아귀 지옥도 이 자리니
이 자리는 어디인가.
일으키는 생각이 이 자리니
일으키는 생각을 들여 보며
지금.여기서.바로.행복한 마음으로 건강하시길!
마하반야바라밀
광년(光年)이란
빛이 1년간 가는 거리
빛의 속도는 1초에 약 30만Km
지구 둘레가 약 4만Km이니 빛은 1초에
지구둘레를 7바퀴 반을 돈다는 이야기입니다.
태양빛이 지구에 도달하는데 8분 걸린다고 하니
우리가 눈으로 보는 태양은
8분전의 태양을 보는 것
1억 광년 거리의 별을 보는 것은
1억 년 전의 별을 보는 것
이미 없어진 별을 있다고 착각하여 보고
새로 생긴 별은 1억년 후에 보게 되니
이미 생긴 것을 못보고 없다고 하는 것
과거심불가득(過去心不可得)
과거의 마음을 지나갔으니 얻을 수 없고
미래심불가득(未來心不可得)
미래의 마음은 오지 않았으니 얻을 수 없고
현재심불가득(現在心不可得)
현재의 마음도 찰나에 지나가니 얻을 수 없다.
일체유위법(一切有爲法)
일체의 만들어진 법은
여몽환포영(如夢幻泡影)
꿈과 같고 환영(幻影)과 같고 물거품과 같은 것
금강경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거품이 일어났다 꺼졌다 반복하는 것이
우주의 생멸과 같은 것입니다.
천당 지옥도 꿈과 같고 그림자와 같이
영원한 행복이나 고통은 없는 것
지금 이 순간이 행복하면 천당이요.
지금 이 순간이 괴로우면 지옥입니다.
摩訶大法王(마하대법왕)
부처님은
無短亦無長(무단역무장)
짧지도 길지도 않으시며
本來非皂白(본래비조백)
본래 희거나 검지도 않으며
隨處現靑黃(수지현청황)
모든 곳에 인연 따라 나타나시네.
건강하고 행복하길 기원합니다🙏
부처님이 제타숲의 정사에 계실 때였다.
비구들이여!
오늘은 연기라는 것과 연생(緣生)에 대해서 말하리라.
우선 연기란 무엇인가?
예를 들자면 생이 있으므로 노사(老死)가 있다.
이는 내가 있건 없건 정해진 것이다.
존재의 법칙으로 정해져 있는 것이다.
그 내용은 상의성(相依性)이다.
그것을 나는 깨달았다.
깨달았기 때문에 그대들에게 가르치고 설명하여
그대들에게 보이고자 하는 것이다.
부처의 정각의 내용을 한마디로 말하면
상의성이라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비구들이여!
다음에 연생이란 어떤 것인가
예를들면 노사(苦)는 연생이다.
조건이 있어서 생기는 것이다.
따라서 조건을 없앰으로서 노사도 없앨 수 있는 것이다
부처님의 출가의 과제는 노사 혹은 고(苦)였다.
인간의 유한성에 짓눌리는 인간존재를 구제할 길은 없는가
그 길을 부처는 연기의 법을 깨달음으로써 찾아 낸 것이다.
바라나시(波羅捺)의 미가다야에서 첫 설법을 한 다음
부처님은 아직 그 곳에 머물고 있었다.
그 동안 그의 설법을 듣고 그의 제자가 된 사람이
60명이나 되었다.
어느 날 부처는 혼자 숲 속에서 쉬고 있었다.
젊은이들이 숲 속에서 우왕좌왕 하며 무엇인가 찾고 있더니
부처가 거기에 앉아 있는 것을 보고
"여기 여자가 한 사람 도망쳐 오지 않았읍니까"하고 물었다.
그들은 그 근처 양가의 자제였는데
약 30명이 각자 아내를 데리고 이 숲 속에 놀러 왔었다.
그러나 그 중 한 사람만이 총각이어서 아내 대신
유곽여자를 데리고 왔다.
그런데 그들이 정신없이 놀고 있는 사이 그 유곽의 여자가
그들의 돈을 홈쳐 달아나 버렸기 때문에
그 여자를 찾고 있는 것이었다.
이 사정을 들은 부처는 그들에게
"젊은이들이여 그대들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달아 난 여자를 찾아 헤매는 것과
자기 자신을 찾아내는 것과 어느 쪽이 중요할까"하고 물었다.
이 질문은 그들의 의표를 찔렀다.
정신없이 놀다가 또 정신없이 여자를 찾던 그들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물론 나 자신을 찾아내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젊은이들 중 한 사람이 그렇게 대답했을 때
부처님은 그들에게 말했다.
"그럼 모두 거기에 앉아 보게
내가 이제 자기 자신을 찾아내는 법을 가르쳐 주겠네"
젊은이들이 모두 거기에 앉게 하고 부처님은
정연하게 인생을 바로 보는 법!
올바르게 사는 방법! 등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젊은이들의 마음은 아직 인생의 때가 묻지 않았었기 때문에
곧 부처님의 가르침을 이해하고 부처님을 따라 출가하여
그의 제자가 되었다 한다.
이것은 부처의 내관 즉 자기탐구의 가르침이
구체적으로 표현된 얘기다.
어느 날 아침 부처님의 젊은 제자 앗사지가
라자그하 거리에서 탁발하고 있었다.
그 태도가 매우 훌륭했기 때문에 어느 수행자가
매우 감탄을 했다.
"만일 이 세상에 참된 성자가 있다면
이 사람은 그 사람의 제자일 것이다
도대체 스승이 누군가 물어 보리라"
탁발에는 법이 있어서 탁발 도중에는
얘기 해서는 안되게 되어 있다.
그래서 그 수행자는 그의 탁발이 끝날 때까지
조용히 그의 뒤를 따랐다.
이윽고 그의 탁발이 끝나자 그에게 물었다.
"당신은 매우 행동거지가 훌륭하고 얼굴빛도 빛나고 있읍니다
당신의 스승은 도대체 누구십니까"
그는 부처님의 제자며
그의 가르침을 받드는 자라고 답을 했다.
"그러면 당신의 스승은 어떤 것을 가르치시는지요?
그것을 들려주실 수 없읍니까?"
그러나 앗사지는 아직 부처님의 제자가 된 지 얼마 안되므로
그 가르침을 요령있게 말할 수 없다고 거절했다.
그러나 그 수도사는 그 편린이라도 다소나마
가르쳐 달라고 재차 물었기 때문에
앗사지는 다음과 같이 답했다 한다.
"이 세상 모든 것은 원인이 있어 생긴다
부처님은 그 원인을 설법하신다.
이 세상 모든 것이 멸하는 것에 대해서도
또 그와 같이 설법하신다"
그 설명만으로 그 수행자는
부처님의 가르침이 어떤 것인가를 알고
즉시 부처님의 제자가 되었다.
후에 부처님의 수제자가 된 사리불(舍利佛)이
바로 그 사람이었다.
마하반야바라밀 🙏
생각해보면 기초가 없었어.
젊을 땐 한심하게 살아도 그 젊음이 영원할거라 생각했지.
부모님의 잔소리도 주변사람들의 조언들도...
모두 나와는 상관없는 일일뿐인데 왜 저렇게 참견을 할까?
한 귀로 듣고 흘릴뿐이었지.
그러다보니 그 나이에 해야했던 기초공사가 부실해졌지.
토대가 부실하고 흔들리니 건물 하나하나를 올릴때마다
남들보다 몇배는 힘들었고 편법을 사용해야 겨우 가능한
경우가 태반이었어.
결국은 높이 올리지도 못하고 남들보다 낮은 곳에서 멈춰야했지.
시간이 흘러 나이는 먹어가고 그나마 올린 낮은 건물조차도...
부실한 기초공사로 인해 무너지는 것을 보면서도...
무너지는 나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은 아무것도 없더라.
뻔히 보고 있으면서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었어.
그리고 무너진 건물들과 황폐화 된 주변을 돌아봤을 땐...
힘내라며 격려해주던 사람들도, 항상 내 편이었던 부모님도...
모두 내 곁을 떠난 상태였지.
기생수 제도는 다시 출발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제도가 아니야
도움이 없이는 살 수 없는 사람들.
아무런 희망도 없이 길거리로 내몰면 사고치고 범죄저지르고
난리나는 게 오히려 국가로 볼 땐 더 자원의 낭비니까...
최소한의 돈으로 딱 먹고만 살 수 있게끔.
사고 안치고 살 수만 있게끔.
그렇게 유지시켜주는 생명유지장치 같은 제도지.
이젠 다시 건물을 어떻게 지어야 하는지 기억조차 나질않아.
후회한다. 제 나이에 당연히 해야했던 것들을 거부했던
지난 날들을...
선종의 기틀 !
☆ 六祖 慧能禪師(혜능 선사) (638-713) ☆
중국의 선종은 달마대사를 初祖로 삼고
그로부터 육대 되는 慧能을 六祖라 한다
그의 속성은 盧씨
지금의 광동성 조경부 신흥에서 태어났다
세살 때에 아버지가 죽고 집이 가난해 공부하지 못했으며
날마다 나무를 팔아서 어머니를 봉양하였다
스물네살 때에 장터에서 어떤 스님이
금강경 읽는 소리를 듣고 마음에 열린 봐가 있었다
그 스님의 지시로 양자강을 건너 황주부 황매산에 가서
五祖 弘忍大師를 뵙고 그가 시키는 대로
여덟달 동안이나 방아를 찧고 있었다
오조스님이 법을 전하려고
제자들의 공부를 시험할 때
敎授師인 神秀는 다음과 같은 글을 지었다
°몸은 보리의 나무요(身是菩提樹)
마음은 밝은 거울과 같나니(心如明鏡台)
때때로 부지런히 털고 닦아서(時時勤拂拭)
티끌과 먼지 묻지 않게 하라(勿使有塵埃)
이 글을 본 盧行者는
°菩提本無樹 明鏡亦非台
本來無一物 何處惹塵埃
본래 나무가 없고 밝은 거울 또한 틀이 아니라
본래 한 물건도 없는데 어디에 티끌이 묻을까
라고 지었다
오조스님은 그를 印可하고
부처님의 법통을 표시하는 가사와 발우를 전해 주었다
그는 시기하는 사람들을 피해 남쪽으로 돌아가
18년 동안이나 숨어 지내다가 비로소 계를 받고
스님이 되었다
소양의 曹溪山에서 禪法을 크게 일으키니
見性하여 그 법을 이은 제자만 40여 명이나 되었다
당나라 玄宗 開元 1년에 76세로 입적하였다
불기 2568년 10월 26일 (2024년)
°然이나 法有多義하고
人有多機하니 不妨施設이로다
그러나 법에도 여러 가지 뜻이 있고
사람에게도 기질이 있으므로 여러가지
방편을 벌이지 않을 수 없다
*(法)*者는 一物也(물이)요
人者는 衆生也라
法有*(不變隨緣)*之義하고
人有*(頓悟漸修)*之機하니
故로 不妨文字語言之施設也라
此가 所謂官容針이나 私通車馬也
衆生이 雖曰圓成이나
生無慧目하야 甘受輪轉故로
若非出世之(金비)면
雖刮*(無明)*之厚膜也리오
至於越苦海而登樂岸者가
皆由大悲之恩也라
然則恒沙身命으로도
難報萬一也라
此는 廣擧*(新熏)*하야
感佛祖深恩이니라
법(法)이란 한 물건이고
사람이란 중생을 가리킨다
법에는 변하지 않는 것과
인연을 따르는 두 가지 이치가 있고
사람에게는 단박 깨치는 이와
오래 닦아야 하는 두 가지 기질이 있으므로
문자나 말로 가르치는
여러 방편이 없을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이 옛말에 이른바
공사에는 바늘끝 만큼도 용서할 수 없으나
사정으로는 수레도 오고간다 는 것이다
중생이 아무리 본래부터 원만하게 이루어졌다 하지만
천생으로 지혜의 눈이 없어서 윤회를 달게 받는다
만약 세상에서 뛰어난 금칼이 아니라면
누가 무명의 두꺼운 껍질을 벗겨 줄 것인가
고생바다를 건너 즐거운 저쪽 기슭(彼岸)에 오르는 것은
모두 부처님의 크게 가없이 여기는 은혜를 입은 때문이다 그러므로 한량없는 목숨을 바치더라도
그 은혜의 만분의 일도 갚을 수 없다
이것은 새로 닦는 이치를 널리 들어
부처님과 조사들의 깊은 은혜에
감사할 것을 말한 것이다
*법(法)*
모든 것을 총칭하여 이르는 말
온갖 사물과 이치 옳은 것(是) 그른 것(非)
참된 것(眞) 거짓된 것(妄)이 모두 이 법에 들어 있다
그러나 흔히 부처님이 가르친 敎法만을
법이라 한다
*불변수연(不變隨緣)*
환경의 온갖 사물이 나에게 어떤 감촉이나
교섭이 있을 때에 그것을 緣이라 하고
이 緣에 따라 동작이 일어나고 변천이 생기는 것을
인연 따름(隨緣) 혹은 用이라 한다
그러나 순간마다 일어나는 緣에 따라
작용은 천변만화할 지라도 그 진리의 본체는 늘
그대로 고요하고 움직이지 아니하여 언제 어디서나
변하지 않는 것이므로 이를 不變 혹은 體라 한다
이 원리를 眞如.圓寂.平等.寂滅 같은 말로
나타내기도 하고 주관적으로 말할 때에는
體性이라고 한다
*돈오점수(頓悟漸修)*
사람은 저마다 성격과 습관이 다르다
불교를 수행할 때에도 그 사람의 기질에 따라
여러 가지 형태로 나타난다
차츰차츰 여러 단계를 밟아 올라가 나중에
크게 깨닫는 것을 오래 닦음 곧 漸修라 하고
단번에 크게 깨쳐서 부처의 경지에 이르는 것을
단박 깨침 곧 頓悟라 한다
이치는 비록 단박 깨쳤다 할지라도 오랫동안
익혀온 버릇 곧 多生의 習氣는
한때에 완전히 끊어버릴 수 없다
현실의 사물 처리에 자유자재하기 어렵기 때문에
오래오래 닦아 나아가야 한다
깨치는 그 순간은 분명히 단박 깨친 것이지만
그 저변에는 무한한 닦음이 쌓여 마침내 눈을 뜬 것이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아무 노력도 없이
거저 깨친 것은 아니다
필사적인 고행과 정진 끝에 보리수 아래서 깨쳤다는 것은
이를 가리키고 있는 것이 아닌가
불교는 부처님의 가르침일 뿐 아니라
우리들 스스로가 부처가 되는 길이므로
부처님의 생애 자체가 또한 불교(가르침)일 수 있다
그러나 눈을 뜨지 않고는 옳게 닦을 수 없다는 입장에서 조사스님들은 닦는 일보다 깨치는 일을
중요하게 말한다
*무명(無明)*
어리석은 마음! 어두컴컴한 마음!
(起信論)에는 무명을 두 가지로 나누어
法界의 참 이치에 어둡게 된
맨 처음 한 생각을 根本無明이라 하고
이 근본무명으로 말미암아
가늘거나 거칠거나 망령된 생각이 일어나는 것을
枝末無明이라 했다
*신훈(新熏)*
어떤 중생이나 다 저절로 갖추어진 本來面目은
부처님과 조금도 다를 바 없다
그것을 本覺이라 한다
그러나 무명의 業障(업장)이 두터운 중생은
佛 菩薩의 교화를 받아 發心하고 부지런히 닦아
비로소 크게 깨친 뒤 부처의 열매(佛果)를 새로 맺게 된다
이것을 始覺이라 하는데
시각을 이루는 수단 방법이 새로 닦는 것!
곧 신훈이다!!!
윤회 (輪廻)
세상의 물질이나 힘은 어느 것이고
아주 없어져 버리는 것이 하나도 없다
오로지 우주질서
즉 因果의 法則에 따라 相依相關(상의 상관) 하면서
변 하여 갈 뿐이다
마치 물이 수증기로 되듯이
모든 것은 고정불변함이 없이
인연따라 돌아다닌다
그러므로 우리의 業識도
육체가 분해될 때에 육체를 따라
아주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모든 중생들은
온갖 생각이 일어났다 꺼졌다 하므로
쉴새없이 愛憎과 喜怒哀樂 속에 浮沈한다
그러다가 육신이 죽어면
생전에 지은 業力에 따라
지옥.아귀.축생.수라.천상.또는 다시 인간으로
수레바퀴 돌듯 돌아다니게 된다는 것!
또한 죽은 후에만이 아니라
갈등과 모순 속에 살고 있는 현재의 生!
자체가 윤회다!
그러나 자기 성품을 깨쳐
일어났다 꺼졌다 하는
갈등과 무지가 사라지면
輪廻는 끊어지고 만다!!!
마하반야바라밀 🙏
2024년 10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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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强立種種名字하여
惑心惑佛惑衆生이라 하나
不可守名而生解이다
當體便是니
動念卽乖니라
굳이 여러 가지 이름을 붙여서
마음이라.부처라 중생이라 했으니
이름에 얽매여 분별을 낼 것이 아니다
다 그대로 옳다
한 생각이라도 움직이면 곧 어긋난다
一物上에 强立三名字者는
敎之不得已也요
不可守名生解者는
亦禪之不得已也라
一擡一닉하며
旋立旋破함이
皆法王法令之自在者也라
此는 結上起下하야
論佛祖事體各別이로다
한 물건이 굳이 세 가지 이름을 붙인 것은
부처님 말씀의 부득이한 일이고
이름에 얽매어 분별을 내지 말라는 것은
禪法의 부득이한 일이다
한번 들어 보고 한번 눌러 놓으며
곧 세우고 곧 깨뜨리는 것이
모두 법왕*法王*이 내리는 명령의 자유자재다
이것은 윗 것을 맺고 이랫 것을 일으켜
부처님과 조사들의 방편이 각각 다른 것을 말함이다
°久旱에 逢佳雨하고
他鄕에 見故人이로다
오랜 가뭄끝에 단비 내리고
천리 타향에서 친구 만났네
*법왕(法王)*
부처님을 가리킨 말!
부처님은 법(진리)을 가장 밝게 깨치고
법을 걸림없이 쓰며 널리 법으로 제일 높은
어른이라는 뜻에서 법왕이라 존칭한 것이다
또한 모든 세속의 임금들에게도 큰 스승이 되고
온갖 성인들 중에서도 으뜸이 된다고 해서
法王이라 한다!
-禪家龜鑑 ! 西山大師-
☆업력(業力)☆
업(業)의 종류는 무수히 많지요.
농사를 지면 농업(農業).장사를 하면 상업(商業)
만들면 공업(工業).수산업(水産業).어업(漁業)등등
업은 행위의 총체적 결성(結成)과정을 뜻하는 것입니다.
뜻하지 않은 사고 불의(不意)의 사고
뜻하지 않은 재물 불의(不意)의 재물
삶이란 그 자체가 업이며
생명활동 자체가 業 아닌 것이 없습니다.
業! 즉 행위는
몸과 입과 생각의 세 가지로 짓는 것으로
이를 身.口.意 三業이라 합니다.
삼업이란 인생의 삶을 총망라한 것입니다.
業! 즉 행위는 연속성과 연결성을 갖고 있어
과거의 업(행위)은 현재를 낳게 한 원인(原因)이 된 것이며
현재의 업은 미래를 창조하는 원인이 되어
필요는 새로운 업(業)이 되는 것입니다.
자신의 행위를 몰랐을 때는 이것을
이상한 힘에 이끌려 간다고 생각하며
밖을 향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끌려가는 그 힘이
바로 훈습(薰習)에 의한 업력이 되는 것이며
계속 원인이 되고 계속 결과(結果)를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인과(因果)는 계속적이며 동시적이며
별개의 동시적이기도 합니다.
因-果. 원인은 결과 결과는 새로운 원인으로
계속 이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생활 습관에 의한 훈습(薰習)이 무서운 것입니다.
훈습(熏習)이 업력(業力)입니다.
업의 힘인 업력(業力)에 의하여 이끌려 다니며
새로운 업을 만들어 가는 것입니다.
중생 노릇을 하면 중생!
부처 노릇을 하면 부처!
이 모두가 自作自受요! 自業自得!이며 自繩自縛!입니다
자승자박에서 스스로 푸는 것이 解脫입니다
해탈은 무명으로 인해서 자신이 스스로 묶은 끈을
스스로 푸는것이 진정한 解脫입니다
업은 인과(因果)의 법칙이며!
인과의 법칙은 우주 운동의 법칙이며!
자연 질서의 법칙이며! 생성소멸의 법칙이며!
질량불변의 법칙이며! 관성의 법칙이기도 합니다!
마하반야바라밀
이 세상에 나고 죽는 것도
모두 업에 의한 원인(因)과 결과(果)입니다.
세상에 태어나기를 원치 않는데도 태어나고
죽기를 원치 안는데도 죽으며
죽기를 원하는데도 죽어지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은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노력하며 고생하는데도 못살고
어떤 사람은 놀기만 하는데도
편안히 잘사는 경우도 있습니다.
조그마한 부정으로
형무소에 가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큰 부정을 하고도 요리저리 피해
잘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러한 경우 어떤 전지전능한 신(神)이 있거나
조물주.창조주.하나님이 있어 한 짓이라면
신의 모순이 아닐까요.
명심보감에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장람(贓濫)이 만천하(滿天下)하되
부정한 재물을 취하는 사람이 천하에 가득할지라도
죄구박복인(罪拘薄福人)이니라.
죄는 복이 옅은 사람이 걸린다.
복이 적은 사람은 누구일까요
이 복도 부처님이나 하느님이 준다면
얼마나 모순된 일이 아닐까요.
우리 인생은 삼세(三世)를 통하여 살고 있습니다.
현재의 복덕 재물은 과거의 행위
보시.지계.인욕.정진.선정.지혜.수행.기도
원력(願力)등등 선업(善業)이 원인이 되어
현재의 결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호환팔자(虎患八字)
호랑이에 물려 죽을 팔자!
지금의 호랑이는 자동차이지요!
별안간 달려드는 차는 아무리 조심해도 피할 수 없지요.
자신도 모르는 사이 순간(瞬間)에 화내는 진심(瞋心)이
결과로 전이(轉移)되어 나타나게 됩니다.
별일도 아닌데 화내는 마음이 불쑥불쑥 일어나면
재앙이 옵니다.
끝없는 선행으로 규범을 지키는 계율의 존엄과
이를 위한 인내와 노력이 필요하게 되는 것입니다.
보시(布施) 지계(持戒) 인욕(忍辱)
정진(精進) 선정(禪定) 지혜(智慧)
이것이 육바라밀(六波羅密)입니다.
생명에 익힌 기운.습기(習氣).훈습(熏習)은
하루아침에 바뀌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이 행복의 시작이며 지금이 불행의 끝이다
一念卽是無量劫
내 안의 우주가 내 삶의 기적공장 입니다
회자정리 거자필반(會者定離 去者必返)
만난 사람은 헤어짐이 정해져 있고
가버린 사람은 반드시 돌아온다
불교 경전 法華經에 나오는 말이다.
모든 만남에는 헤어짐이 있고
헤어짐 이후에는 또 만남이 있다
가는 사람은 반드시 돌아오게 돼있다는 뜻이다.
遺敎經에는 세상은 모두 덧없는 것이니
만나면 반드시 이별이 있다
(世皆無常 會必有離)라고 했다.
涅盤經에는 흥성함이 있으면 반드시 쇠퇴함이 있고
만남이 있으면 이별이 있다(夫盛必有衰 合會有別離)
라는 말이 나온다.
생명이 있는 것에는 반드시 죽음이 있다(生者必滅)과
함께 어떤 일이나 인간관계에서의
무상함을 나타내는 말로 쓰인다.
누누이 강조하는 부처님 말씀은 이렇다.
너에게 가장 요긴한 시간은 ‘바로 지금’이다.
너에게 가장 소중한 일은 ‘지금 하고 있는 그 일’이다.
너에게 가장 소중한 사람은 ‘지금 만나고 있는 그 사람’이다.
모든 만남은 영속(永續)될 수 없기에
만남의 매 순간순간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그리고 최선을 다했으니 이별의 순간에도 아쉬운 마음이
덜해서 덜 괴로울 것이다.
태어나면 죽음이 있고 만남은 분명 헤어짐이 있다.
부처님께서 베사리(바아살리)성의 큰 숲에 계실 때
열반을 예고하시자 아난존자가 슬퍼했다.
그때 부처님께서 아난존자에게 말씀하셨다.
“인연으로 이루어진 이 세상 모든 것들은
빠짐없이 덧없음(無常)으로 귀착되나니
은혜와 애정으로 모인 것일지라도 언제인가
반드시 이별하기 마련이다.
이 세상의 모든 것들 으레 그런 것이거늘
어찌 근심하고 슬퍼만 하랴.”라고 하셨다.
아난은 계속해 눈물 흘리면서 말씀드렸다.
“하늘에서나 인간에서 가장 높으시고 거룩하신
스승님께서 머지않아 열반에 드신다니 제가 어찌
근심하고 슬퍼하지 않으리이까!
이 세상의 눈을 잃게 되고 중생은
자비하신 어버이를 잃나이다.”
“아난아! 근심하거나 슬퍼하지 말라.
비록 내가 한 겁 동안이나 머문다 하더라도
결국은 없어지리니
인연으로 된 모든 것들의 본 바탕(性相)이
그런 것이니라.”(生者必滅! 會者定離!)
세상을 어떻게 바라 보면서 사느냐가
정말 잘 사는 인생이 될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善知識이 필요하다는 이야기 입니다
우주는 나를 위해 존재하는데
내가 바로 우주라 생각하면
나의 한 생각이 바로 우주의 근원이 됩니다
이것이 한 생각 一切唯心造 입니다
세상사 내가 주인공인데
주인공이 주인공으로 살면 잘 사는 것이요
주인공이 業에 매여 허겁지겁 살면
평생을 허겁지겁 살게 됩니다
내 안의 因을 잘 살펴보는 것이
바로 나의 貪欲을 경계하는 것입니다
한 생각이 바로 나의 존재! 나의 창조주 입니다
내 안의 창조주를 잘 다스려 사는 것이
제일 잘 사는 인생입니다
이것이 智慧롭게 사는 것입니다
나 안의 창조주는 내 생각되로 움직입니다
내 안의 창조주는 이 무변한 우주에 존재하는
온갖 기운들과 다 교감하면서 상존합니다
이것이 相依相關입니다
한 생각이 어두우면 내 우주도 깜깜해 지지만
한 생각이 밝아지면 내 우주도 밝아 집니다
내가 바로 우주를 멋지게 재단하면서 사는
天上天下唯我獨尊의 사람입니다
내가 태어날때 나의 우주도 태어났고
내가 없으면 나의 우주도 소멸되고 없어 집니다
한 생각이 나의 우주를 다스립니다
나의 우주는 항상 나를 위해 존재합니다
그러나 팥을 심어놓고 콩을 기다리면
이것은 나의 어리석음의 소치입니다
이 세상은 是非分別의 세상입니다
전부 내 옳고 네 그러다는 상대분별의 세계입니다
여기서 한번 쉬고 갈때 福이 생깁니다
오늘도 나의 우주를 잘 다스려
항상 멋진 인생을 만들어 가십시다
이것이 覺者의 日常입니다
曰 一切唯心造라 했다!!!
내 뜻대로 순종하기를 바라지 말라
(寶王三昧論) 2568년 11월 11일
*어인불구순적 (於人不求順適)
사람이 내 뜻대로 순종해 주기를 바라지 말라.
*인순적즉내심자긍 (人順適則內心自矜)
남이 내 뜻대로 순종해주면 마음이 스스로 자만하게 되나니
*시고대성화인(是故大聖化人)
그래서 부처님이 말씀하시되
*이역인위원림 (以逆人為園林)
내 뜻을 거스르는 사람들을 집에 울타리
숲(원림)처럼 여기라 하셨느니라.
**대중화합의 묘책이 여기 있습니다.
자기 자신도 자기 맘에 들지 않는데
어찌 남이 내 맘에 들기를 바라리오***
옛날에 훌륭한 임금은
귀가 열려 있어 싫은 소리를 많이 듣었고
폭군은 귀를 닫아 싫은 소리를 들으면
화를 내고 벌을 주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현인(賢人)들은 곁을 떠나고
나라는 피폐하여 백성이 토탄에 빠지지 않았던가!
훌륭한 기업인은 종업원의 뜻을 헤아리고
여러 사람의 의견을 수렴하여
지혜를 모았습니다
부처님을 생각하는 念佛로 祈禱하고 명상하며
주말에 사찰을 찾아
禮敬하는 습관을 갖는 것이 좋습니다.
좋은 습관는
건강을 증진 시키고 삶을 행복하게 만들어 줍니다.
마하반야바라밀
공부하는데 장애 없기를 바라지 말라!
(寶王三昧論)
*구심불구무장 (究心不求無障)
공부 하는데 장애가 없기를 바라지 말라.
*심무장즉소학렵등 (心無障則所學躐等)
마음에 장애가 없으면 배울 바를 건너뛰게 되나니
*시고대성화인 (是故大聖化人)
그래서 부처님이 말씀하시되
*이장애위소요(以障礙為逍遙)
장애를 다니는 산책길로 여기라 하셨느니라.
장애란 많은 시행착의 뜻도 있습니다.
많은 시행착오는 시련과 고난과 장애가 뒤따릅니다.
기술과 학문은 촘촘히 배워야하기 때문에 힘들고
장애가 따릅니다.
부처님의 가르침이 윤회사상인데
어느 스님은 윤회는 없다 라고 합니다.
부처님의 말씀을 믿지 않는 것이지요
잘못 알고 남에게 일러주면
자신도 죽이고 남도 죽인다는 말이 있죠
다장중생(多障衆生) 염불관(念佛觀)!
장애가 많은 중생은
念佛觀을 하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언제나 念佛觀으로 장애를 극복하길 바랍니다.
오유지족 (吾唯知足)!
스스로 만족할 줄 안다는 뜻으로
知足의 마음으로 즐거운 날들이 되길 기원합니다.
마하반야바라밀
2024년 11월 13일 오전 5:43 545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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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로움이나 즐거움이 모양이 없는데
괴롭다 즐겁다 하는 그것은 무엇인가
바로 마음의 작용이다!
이 마음의 작용에서 일어나는
행위의 제반 행동을 모르고!
운명이니 숙명이니 팔자니 신의 섭리니 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것이 중생들의 삶이다
역사는 엄연히 기록과 기억 속에 존재하지만
미래는 한 치의 앞도 예측할 수 없는 것
그렇지만 미래는 존재하지 않는 가운데 엄연히
어떤 형태로든 확실하게 존재하게 되는데
그것이 바로 우리의 훈습과 습관.행위.행동
생각과 의식의 작용이 미래로 향하고 있는 것이며
미래란 우리의 과거의 행위의 연속이며
생각이 투영(投映)된것!
극락.천당.지옥이 바로 우리 행위의
결성(結成)과정이 만들어낸 결정체 일뿐!
미래란 바로 우리의 현실이 짖는 행위의 연속입니다!
미래를 알려면 반드시 과거의 행위를 보아야 하고
현재의 생각인 마음 씀씀이를 보면 아는 것입니다.
*욕지전생사(欲知前生事)
전생의 일을 알고자 할 진댄
*금생수자시(今生受者是)
금생에 받고 있는 바로 이것을 보면 알 수 있고
*욕지래생사(欲知來生事)
미래의 일을 알고 싶으면
*금생작자시(今生作者是)
금생에 하고 있는 이것이 바로 그것이다.
원인을 모르고
자신이 잘못 계획한 삶의 日誌대로
컴컴한 터널을 지나듯 컴컴하게 살아간다면
얼마나 답답하겠습니까!
어둠을 밝히기 전에는
어둠속에서 잘못된 길을 헤매고
원인을 모르니 더욱 잘못된 계획을 꾸미고 그리며
전도(顚倒)된 생각으로 신(神)을 만들고
조물주를 만들어 섭리(攝理)라고 포기하게 됩니다
지금 중동 전쟁은
여호와와 알라의 신(神)들의 전쟁!
바로 아수라들의 전쟁입니다!
여호와를 믿는 이스라엘의 역사는
핍박의 전쟁과 고난의 역사!
알라를 믿는 중동 국가들의 역사는
전쟁과 파괴의 역사!
지금 바로 아수라장입니다!
어리석음에 의해 만들어진 창조주!
조물주에 매달려 구원 없는 구원을
바라고 있는 것입니다!
마하반야바라밀
2024년 11월 14일 오전 4:14 517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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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이 쉽게 되기를 바라지 말라!
(寶王三昧論)
*모사 불구이성 (謀事 不求易成)
일을 도모하되 쉽게 되기를 바라지 말라.
*사이성즉 지성경만 (事易成則 志成輕慢)
일이 쉽게 성취되면 뜻이 경솔해지게 되니
*시고 대성 화인 (是故 大聖 化人)
그래서 부처님이 말씀하시되
*이사란 위안락 (以事難 爲安樂)
일의 어려움을 안락함으로 여기라. 하셨느니라.
°청신조기(淸晨早起) 선고후락(先苦後樂)
새벽에 일찍 일어나면 먼저는 괴롭지만 뒤가 안락하고
°독송경전(讀誦經典) 선고후락(先苦後樂)
경전을 읽고 외우는 것은 먼저는 힘들지만 뒤가 안락하다.
°수행정진(修行精進) 선고후락(先苦後樂)
수행하고 정진하는 것이 먼저는 힘들지만 뒤가 안락하다.
모든 직업이 그 분야에 성공을 하려면
몇 만 번을 연습해야 하고!
아차 하는 순간의 방심(放心)이
지울 수 없는 실수 실패를 하게 됩니다!
수많은 실수와 시행착오의 반복이
실력을 탄탄하게 해줍니다!
전광석화(電光石火)와 같은 번뜩이는 지혜는
많은 경험에서 생깁니다!
그 번뜩이는 지혜(智慧).직관(直觀)은
염불이나 사색의 습관적 생활의 힘에서 나옵니다!
때로는 아는 문제도 못 풀고
엉뚱한 답을 쓰고 나오는 경우가 가끔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장애이고!
확실하게 알지 못한 어설픔의 앎이기 때문에!
반복의 힘으로! 확실하게 각인! 시키는 것이 중요합니다!
염불이나 기도 명상은 반복의 힘으로
자체신기(自體神氣)가 향상되는 것입니다!
기도하고! 영불하고! 명상하는! 지족의 마음!
지족이 도솔천이며 극락입니다
마하반야바라밀
지족 : 분수를 지켜 만족 할줄아는것
2024년 11월 15일 오전 7:31 111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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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利)를 따라 벗을 사귀지 말라.
(寶王三昧論)
*교정 불구익성 (交情 不求益成)
사람을 사귐에 있어 내가 이롭게 되기를 바라지 말라.
*정익오즉 휴실도의 (情益吾則 虧失道義)
내가 이롭고자 한다면
올바른 도와 의리를 저버리고 잃게 되나니
*시고 대성 화인 (是故 大聖 化人)
그래서 부처님이 말씀하시되
*이폐교 위자량 (以弊敎 爲資糧)
순결하게 힘써 사귐을 자량으로 삼으라 하셨느니라.
성인이라도 참으로 힘든 내용이지요
사람을 사귀는 일이 쉽지 만은 않습니다.
°총명(聰明)도 다암매(多暗昧)
총명한 사람도 어리석을 때가 많고
°산계(算計)도 실편의(失便宜)
산술과 계획을 잘 세워놔도 불편할 때가 많다.
자기 자신이 총명하고
계획을 잘 세워놔도 불편할 때가 많은데
어찌 사람을 사귀는 일에 있어서
이익만을 보겠다고 사귀겠습니까
°대면(對面)공화(共話)
서로 얼굴을 맞대고 이야기하면 공통점이 있고.
°심격(心隔)천산(千山)
마음에 틈이 벌어지면 천 가지 산이 막는 것과 같다.
조금 손해보고 산다고 생각하면
상대의 심기(心氣)가 편해집니다.
기도하고 축원하는 습관으로 스스로 만족하는
지족(知足)의 마음으로 행복한 나날이 되길 기원합니다.
마하반야바라밀
2024년 12월 2일 오전 6:20 313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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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원부 상좌 라는 스님이 광효사에서
열반경을 강설한 인연으로 어떤 선지식을 만나
확연히 깨닫게 된 이야기
강의하던 일을 멈추고 열흘 동안 방 안에서
조용히 좌선하다가 새벽 예불을 할때
북을 치는 소리를 듣고 법신의 진정한 의미를 확연히 깨달았다
경전을 보면서 항상 마음은 문자를 따라다녔지만
강의하던 일을 멈추고 조용히 좌선에 드니 경전의 내용을 마음으로 반조하게 되었다
반조하는 일이 지극하여진 뒤에 들리는 북소리가
그대로 청정 법신의 소식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것이다
마치 소동파 거사가 깨달은 사례와 비슷하다
그는 송나라 신종 원풍 7년 황제의 명을 받고
황주를 떠나 새 부임지인 여주로 가는 도중에
여산 동림의 흥룡사 상총조각 선사를 만나서
법문을 청해 들었다
상총 선사에게 왜 유정설법 만을 들으려고 하는가!
무정설법을 들을 줄 알아야 한다!라는 말을 듣고
다음 날 길을 가면서 무정설법이 무엇인가를
골똘히 생각하였다
그러다가 큰 폭포수가 굉음으로 쏟아지는 것을 듣고는
비로소 무정설법의 이치를 깨달았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오도송을 지었다
개울 물 소리는 곧 부처님의 장광설인데
산 빛이 어찌 청정한 법신이 아니겠는가!
밤이 되니 그 설법 8만 4천 게송이나 되는데
뒷날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일러 줄 수 있을까!
알고 보면 천지 만물과 산천초목과 두두 물물이
모두가 그대로 완전무결한 진리 그 자체인데
그 사실을 알지 못하고
달리 다른 곳에 진리가 있다고 여기며 찾으려는
그 생각 때문에 착각하고 있을 뿐이다
태원부 상좌도 그동안 열반경을 강의하면서
법신불이 따로 존재하는 것이라고 생각 하였던 것이다
다른 방법은 없다
오직 눈앞에 펼쳐진 실상에 눈을 뜨는 일밖에
-무정설법-
인생의 괴로움은 무엇인가
네 가지 피할 수 없는 근본 고통
괴로움을 근본 사고(四苦)라 합니다.
●生.老.病.死!
*생고(生苦)! 태어는 고통과 괴로움
*노고(老苦)! 늙어가는 고통과 괴로움
*병고(病苦)! 병들고 아픔의 고통과 괴로움
*사고(死苦)! 죽는 두려움과 괴로움의 고통
*애별리고(愛別離苦)
부모형제 자식등 사랑하는 사람과 헤어지는
괴로움과 고통
*원증회고(怨憎會苦)
밉고 싫은 사람과 만나는 괴로움과 고통
*구부득고(求不得苦)
한없는 욕망으로 구하고자 하는데 얻지 못하는 고통
*오음성고(五陰盛苦)
오음이란 몸의 구성 성분으로
몸과 마음의 작용 등으로 이 몸 자체를
이루고 있는 것의 괴로움과 고통
이 8가지는 생명으로 사는 한
그 누구도 피할 수 없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죽어 이별을 해도
모든 것은 무상(無常)하구나 알아차리면
덤덤하여 괴로움이 적어지고!
원수를 만나도 용서하는 마음을 일으키면
괴로움이 사라지거나 적어지고!
구하고자 하는데 못 구하면 괴로운데
탐욕을 놓아 집착을 버리면 괴로움은 사라지고!
몸을 잘 관리하여 규칙적으로 건강을 유지하며
죽는 날까지 건강하면 괴로움이 적어지고!
四苦 八苦는 천신(天神)을 믿고 하느님을 믿고
부처님을 믿고 그 어떤 조물주나 창조주를 믿어도
피할 수가 없습니다!
오직 진리의 가르침을 깨닫고
이를 통한 스스로의 해탈과 열반뿐입니다!!!
내일이 아닌 지금! 현재! 바로! 여기서!
건강하고 행복하고 즐겁길 기원합니다.
-인생은 四苦 八苦다-!
2024년 12월 12일 오전 8:22 287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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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과 공간!
이것이 무상(無常)하지요.
무상이란 항상(恒常)하지 않다는 뜻입니다.
만약에 항상(恒常)한다면 그것이 영원입니다.
이 우주는 영원한 것이 없습니다.
즉 항상 하는 것이 없다는 뜻입니다.
계속 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무상(無常)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무상한 것은 괴로움인가 즐거움인가!
변화를 헤아릴 수 없으니 이것이 무상이기 때문에
무상은 괴롭다고 하는 것입니다.
괴로움을 고(苦)라고 합니다.
이 고(苦)는 주인이 없습니다.
실체가 없다는 뜻이지요.
이 실체가 없는데
나(我)라는 것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나!라는 자아(自我)가 없기 때문에
무아(無我)라고 하는 것입니다.
무상(無常)하기 때문에 고(苦)!
괴로움에는 실체가 없어 무아(無我)라고 합니다!
이것을 무상(無常)!고(苦)!무아(無我)라고 하며
부처님의 가르침인 삼법인(三法印)이라고 합니다.
영원하다는 것을 항상(恒常)이라고 하지만
항상(恒常)은 없습니다.
태어난 생명은 반드시 죽습니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죽을지 모릅니다
남의 생명을 대신 살아주거나
대신 죽어 줄 수 없습니다!
생각의 集中!
마음의 집중!
의식의 집중!
다 같은 말이지만
집중하고 알아차리는 것을
지관(止觀)이라고 하며
빠알리어로 위빠사나라고 합니다.
지(止)는 집중!이고
관(觀)은 통찰!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은 무상하기 때문에 괴롭고!
괴로움에는 실체가 없으므로 내 것이 아니다!
내 것이 아니기 때문에 무아(無我)라고 관찰하여
모든 집착에서 놓습니다!
자기가 지어온 행위대로
인연에 따라 온 세상이니
무상(無常)! 고(苦)! 무아(無我)!의 도리를 깨달아!
건강하고 즐거운 하루가 되시길 기원합니다.
諸行이 無常하니 是 生滅法이요
生滅이 滅已하니 寂滅이 爲樂이라
마하반야바라밀
정암
祈禱(기도) 목적
1. 離苦得樂(이고득락)
: 괴로움을 잊고 즐거움을 얻기 위함이요,
2. 止惡修善(지악수선)
: 악행을 그치고 착함을 행하기 위함이며,
3. 轉迷開悟(전미개오)
: 미혹함을 걷어내 깨달음을 얻기 위함이다.
福(복)만 달라고 바라는 祈福(기복) 기도에서 탈피하여
즐거움을 얻고,
선을 행하고,
깨달음을 얻을 수 있는 방편으로 기도하리라.
복은 받는게 아니라 짓는 것임을
다시금 되내어 본다.
作福(작복; 짓을 作 복 福) 합시다.
2024년 12월 15일 오전 3:34 78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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至極한 精誠은 神과 같다.
中庸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신막신어지성(神莫神於至誠)
신(神)이 없다고 하지 말라
신은 정성이 지극한 곳에 있다.
黃石公 素書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모든 일이 신(神)과 같다면
뜻을 쉽게 이루겠지요.
항심(恒心) 항상(恒常)하는 마음이
정성이 지극한 것입니다.
신(神)이란 스스로의 자신(自神)이며!
자체신기(自體神氣) 현상으로
자신의 精神과 몸의 기운인 體氣의 작용으로
응신주기(凝神注氣)!
정신을 집중하면
기운이 응집된다는 것입니다!
지극한 精誠!을 지성(至誠)이라 합니다.
정성이 지극하면 하늘도 감동한다고 하여
지성감천(至誠感天)이라 합니다!
어떻게 하는 것이 지성일까요
지성은 특이한 고행(苦行)이 아닙니다
견디기 힘든 인내를 하는 것이 지성이 아닙니다.
꾸준히 정진(精進)하는 것!
항상 하는 마음인 항심(恒心)!
마음을 항복(降伏) 받는 항심(降心)이 지성입니다!
열심히 반복하는 노력이 지성입니다!
기도는 꾸준함 입니다!
매일 반복하는 기도(祈禱)와
수행 정진(精進)이 지성입니다!
반복하는 데서 뜻이 이루어집니다!
마하반야바라밀
2024년 12월 16일 오전 9:50 195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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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스님의지혜의길]
옛 사람들은 좋은 일이 있으면 나쁜 일도 따라온다고 말합니다. 여기에는 하늘이 사람에게
부여한 운의 양은 모두 동등하고 마땅히 그래야 한다는 도덕적 사고방식이 깔려 있습니다.
그러나 사람의 운이라는 것은
결코 정해져 있지 않으며, 그 사람의 사고방식이나 행동에 따라서 운이 따르거나 그렇지
않거나 할 뿐입니다.
다만 큰 운을 얻으면 그에 의존하여 사고방식이 안일해져서 행동이 게을러지고, 그러면 좋은 일은 운이 나쁜 쪽으로 변하는 계기가 될 수 있기에 이를 경계하는 측면에서 귀담아 들을 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운의 선택을 받을 만한 합리적인 선택과 성실한 노력을 평소에 많이하는 사람에게는 큰 행운이 따르고 나서도 계속해서
다시 큰 행운이 찾아올 수 있습니다.
겸손하고 열린 마음을 갖고 살아가면 지혜로운 선택과 행동을 할 수 있습니다.
ㅡㅡㅡ
좋은 사람들과
함께하는 세상이
기쁘고 감사한
아침입니다
이 세상에는
섬기고 공경할 만한
일곱 종류의
사람들이 있다
사랑하는 마음은
가진사람
연민하는 마음을
가진사람.
남을 기쁘게 하는
사람
남을 보호하고
감싸는 마음을.
가진사람
어떤 것에도
집착하지
않는사람
부질 없이 생각을
하지 않는 사람
바라는 것이
없는 사람이다
- 증일아함경 -
ㅡㅡㅡ
덕분입니다 고맙습니다
건강하세요~~
< 지원합장 >
2024년 12월 17일 오전 8:57 388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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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스님의지혜의길
진실한 말을 해야 상대방의 마음 가운데 실한 열매를 맺게
할 수 있습니다.
하루의 삶을 살아가면서 내가 하는 말이 상대방의 마음 가운데
실한 씨앗을 심어주고 있는지
항상 살펴보아야 합니다.
마음의 토양에 심어진
아름다운 씨가 열매를 맺으면 풍요로운 미래를 열어갈 수
있습니다.
부처님의 말씀은 모든 사람들의
마음 가운데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하는 씨앗이 됩니다.
~~~~~~~
부처님과 시작하는
아침은 언제나
즐겁고 행복한
아침입니다~~^^
마을에서나
숲에서나
계곡이나
평온에서나
거룩한
님이
머문다면.
그. 곳은
즐거운
곳이라네
- 법구경 -
2024년 12월 18일 오전 9:05 527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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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스님의지혜의길]
내가 정말 행복하다는 것은 자존감과 관련 있습니다.
자존감이 좋아지는 방법은 바로 남을 칭찬하는 것입니다.
남을 칭찬하려면 뭐 하나라도 장점을 찾아내어야 합니다.
자신이 긍정적이지 않으면 남에게서 장점을 찾아내기 어렵습니다.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찾아야죠.
미소가 아름다워~, 목소리가 좋아, 오늘따라 예뻐보여, 설거지 잘하네,
맛있어요, 등등
아주 작은 것이라도 칭찬하려 노력 하여야 합니다.
ㅡㅡㅡ
마음을 고요하여
모든 어려움에서
벗어나는
아침입니다~^^
더이상
울려 퍼지지
않는 것처럼.
그대 자신을
고요히
지켜낼 수 있다면
틀림없이 열반을
얻으리니
그대에게
가혹함이란 얻으리
- 법구경 -
ㅡㅡㅡ
덕분입니다 고맙습니다
지혜로운 날이시길 ~
2024년 12월 19일 오전 11:27 111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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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스님의지혜의길
《보왕삼매론》에 ‘일을 도모하되 쉽게 되기를 바라지 말고,
수행하는 데에 마가 없기를 바라지 말라.’고 하였습니다.
사람은 고통이나 장애를 뛰어 넘는 가운데 더욱 단단해 집니다.
장애와 어려움을 극복해가는
과정에서 발전이 있고 큰 성취도
이룰 수 있습니다.
~~~~~
항상 절재하는
삶으로 가볍게 하는
아침입니다^^~~
음식을 정도에
알맞에 절재하면
마음의 세 가지 좋은
결과가 뛰따른다
첫째. 포식으로 인한
육체적 고통이
없어지고
둘째. 수명이
연장되며.
셋째 젊음이
지속된다
- 아함경 -
~~~~~~~
덕분입니다 고맙습니다
건강하세요 ~~
< 지원 합장 >
일체 만법이
불생불멸인 것을 확실히 알고
이것을 바로 깨치고 바로 알아 나갈것 같으면
천당도 극락도 세계도 필요없고
앉은자리 선자리 이대로의 그 전체가
절대의 세계입니다
불법에서는 근본적으로
현실이 절대세계인 것이다
극락세계를 먼데서 찾을 것이 아니고
현실 이대로가
상주불멸한 절대세계임을 알아야 한다
현실이 즉 절대이므로
3차원 세계가 본래 4차원 세계이어서
4차원의 절대 영원한세계에 살고 있으면서
3차원의 상대유한의 세계로 착각하여
살아가고 있으니
착각한 망견만 버리면
원래 우리는 4차원 세계의
절대 영원한 존재인 것이다
마음의 눈을 감고 살면
상대생멸의 세계 속이며
마음의 눈을 뜨고 살면
모두가 불생불멸의
절대세계에서 사는 것이다
성철스님 법문중에서
2024년 12월 25일 오전 4:35 227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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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숫타니파타에 있는
현대인을 위한 구절 10가지 입니다
*분노를 이기는 자가 진정한 승리자이며
진실한 삶을 사는 자가 올바른 삶을 사는 것이다
*자신을 사랑하는 자는 남을 해치지 않는다
다른 이를 해침으로써
자신의 행복을 추구하는 자는
결코 행복할 수 없다
*모든 생명은 행복하기를 바란다
그러므로 자신의 행복을 위해 남의 행복을 해치지 말라
*모든 집착에서 벗어난 자는 걱정이 없다
그러나 집착하는 자는 늘 걱정하며 산다
*진정한 친구는 곤경에 처했을 때 알 수 있다
진실한 마음은 시간이 지난 후에 알 수 있다
*자신의 평화를 찾는 사람은
어디서든 평화롭게 살 수 있다
*진정한 지혜는 자신을 아는 것에서 시작된다
*마음이 흔들리지 않는 자는 슬픔도 없고 근심도 없다
*모든 만남에는 헤어짐이 있다는 것을 알면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를 얻을 수 있다
*남을 비난하기 전에 자신을 돌아보라
자신의 허물을 보는 자가 지혜로운 자이다
●이 구절들은 2500년 전 부처님의 가르침이지만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큰 위로와 지혜를 줍니다
특히 불안.스트레스.경쟁.상실감 등으로 힘들어 하는
현대인들에게 마음의 평안을 주는 말씀들 입니다🙏
2024년 12월 25일 오전 8:08 287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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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스님의지혜의길
우리는 모두가 영원성을 지닌 불생불멸의 존재들입니다.
죽음은 영원으로 가는 하나의 과정이고 현상일 뿐입니다.
육신은 영원하지 못하므로
때가 되면 갈아입어야 하는
낡은 겉옷과 같습니다.
죽음이란 지금 입은 겉옷을
벗어 놓고 다른 옷으로 바꿔
입는 것입니다.
죽음은 영원한 진보를 향한 과정입니다.
~~~~~~~~
나 자신을
먼저 바르게
하기 위해
스스로 반성하고
개선하는
아침입니다~~~
자신을 먼저
바르게 하고
남을 바르게.
가르쳐 주라
자기 자신도
바로 잡지
못한자가
남을 어떻게.
가르칠 수 있는가
- 법구경 -
~~~~~~~~
덕분입니다 고맙습니다
따뜻한 하루되세요
< 지원 합장>
2024년 12월 29일 오전 9:34 373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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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스님의지혜의길
남을 이롭게 하면 다른 사람이 아닌 내가 이롭습니다.
내가 남을 위해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내 주변을 도울 수 있을까만 생각 하십시오.
나의 기도 가운데 남이 들어 있어야 이 탁한 세속에 살면서도 아름다운 연꽃으로 피어날 수 있습니다.
ㅡㅡㅡ
[부처님 말씀]
"사람들로부터 멀리 떨어져서 홀로 숲 속에 사는 것은 진정한 은둔이 아니다.
진정한 은둔이란 좋고 싫음의 분별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반야경>
ㅡㅡㅡ
덕분입니다 고맙습니다
아름다운 휴일 되시길 ~~
< 지원 합장 >
2025년 1월 3일 오전 7:39 73 읽음(까페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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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기2025년 천태종 김도용종정예하 신년법어●
2025년 새해를 맞이하여
대한불교천태종 종정이신
김도용 대종사께서
신년법어를 내려주셨습니다.
불자님 ! 일심으로 정진하시며
성불의 길로 나아가십니다.
새해 복 많이 받으십시요.
절영지회 (絶纓之會)
"갓끈을 자른 연회"라는 뜻으로
남의 잘못을 관대하게 용서하고
자신의 허물을 깨우친다는 의미의 고사성어 입니다.
絶 끊을 절! 纓 갓끈 영!
之 갈 지! 會 모일 회!
남의 잘못을 탓하지 마라!
남의 단점을 보지도 마라!
나의 단점을 정당화 하지 마라!
오로지 나의 단점을 고치기에 힘쓰라!
2025년 1월 3일 오전 10:01 519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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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스님의지혜의길]
세상은 고통의 바다라고 하였습니다.
아무리 어렵더라도 예외 없이 태양은 다시 떠오르고 밝아 옵니다.
생명이 허락하는 한 앞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만상은 흘러가는 것이고 변해가는 것이며 무상한 것입니다.
올 한해도 부처님과 더불어 계속정진 하세요.
좋은 길로 부처님 나라로 나아가야 하기에 정신 똑바로 차리고
나아가는 길을 주시해야 합니다.
영원을 향해 나아갈 것입니다.
ㅡㅡㅡ
꿀벌이 꽃향기는
취하지 않듯이
우리는 음식을
약으로 상아
욕심없이 정진하는
아침입니다~
항상 인자하고.
불쌍히
여기고
부처님 가르침대로
청정하며
만족할 줄 알고
그칠줄 알면
그것은 생사 를
건너는. 것이다
- 법구경 -
2025년 1월 5일 오전 8:59 69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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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스님의지혜의길
밤하늘은 별들이
쏟아질 듯 영롱한
빛을 발하고 있습니다.
유마경 보살품에
선남자여,모든 공양 가운데는 법공양이 으뜸이니라.
부처님 말씀대로 수행하는 공양과 중생들을 이롭게 하는 공양과 중생들을 거두어 주는 공양과
중생들의 고통을
대신하는 공양과 선근을 닦는 공양과 보살의 할 일을 버리지 않는 공양과
보리심을 여의지 않는 공양들이 바로 그것이니라.
ㅡㅡㅡ
입을 잘 단속하여
구업을 짓지 않도록
항상 말조심을 하는
아침입니다~💗💗
헐뜯어야 할
사람을 칭찬하고
칭찬해야 할
사람은
헐뜯는 자는,,
입으로 거듭
죄악을 짓고
그 죄악으로
인하여 행복을
잃어버리게 된다 ,,
- 소부경전 -
덕분입니다 고맙습니다
평안한 휴일 되시길 ~
< 지원 합장 >
2025년 1월 5일 오전 5:08 336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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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스로 다스릴 수 없는 마음이 곧 지옥!
숨 한번 크게 쉬면 화난 마음이 가라앉는다
하심(下心)! 마음을 내려놓는 것이 하심!
모든 것은 마음에서 비롯된다는 一切唯心造!
같은 여건이라도 긍정적이면 기쁘고 행복해지며
부정적이면 괴롭고 불행해집니다.
행복과 불행.즐거움과 괴로움.삶과 죽음
세상만사 모두 마음먹기에 따라
완전히 달라진다는 이야기 입니다!
천당과 지옥이 본래부터 있는 것은 아닙니다!
천당 지옥을 물어보는 권세(權勢)있는 무사(武士)가
노승(老僧) 찾았다
“천국과 지옥의 차이를 가르쳐 주십시오.”
노승은 퍽이나 마땅찮은 표정으로 답했다
“말해 줄 수야 있네만 그대가 그것을 이해할 만한
머리가 있는지 모르겠네.”
무사는 애써 분을 삭이며 말했다.
“무례하오!
당신이 지금 누구와 이야기하고 있는지 알고 있소”
목소리에 노여움이 묻어났지만
노승은 깔보는 태도를 굽히지 않았다.
“별로 대단한 사람은 아니지
자네는 어리석어 그 사실을 모르는 것 같지만.”
무사는 분에 못 이겨 몸을 떨었다.
그럴수록 노승은 한층 더 놀리는 말투로 말했다.
“허리에 찬 것은 검이라 부르는 물건인가
음식을 자르는 칼처럼 보잘 것 없어 보이는군.”
“뭣이라!”
무사에게 그 이상의 모욕은 없었다.
당장 칼로 목을 칠 기세로 검을 잡는 순간
노승이 말했다.
“그게 바로 지옥이라네.”
무사의 얼굴에 순간 깨달음이 스쳤다
‘스스로 다스릴 수 없는 마음이 곧 지옥이로다.’
무사가 조용히 칼집에 칼을 꽂자
노승이 다시 입을 열었다.
“그게 바로 천국일세.”
내가 내 마음을 다스릴 수 없을 때가 지옥이고!
내가 내 마음을 다스릴 수 있을 때가 천국이라네!
행복하다! 불행하다! 좋다! 싫다!
이런 것 모두가 마음의 문제다!
내 마음을 내가 다스릴 수 있느냐 없느냐
그것이 중요한 것이다
불교는 신구의(身口意)의 삼업을 중요시합니다.
몸으로 어떤 행위를 하고!
입으로 어떤 말을 하고!
마음으로 어떤 생각을 하느냐!
부처님은 항상 알아차리라고 가르치십니다!
진리의 법에 감사하며!
모든 분들이 건강하고! 행복하시길 기원합니다!
2025 을사년 한해 무탈 하시고
원하시는 일들이 술술 풀어지고
원만성취 되길 불보살님 전에 발원합니다!
마하반야바라밀
2025년 1월 6일 오전 8:14 80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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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스님의지혜의길
모든 어려움의 근원은
자기 자신에게 있는 것입니다.
어느 것 하나 남 탓할 일이 없습니다. 스스로의 잘못을 알고 개선할 수 있는 능력을 양성하기 위해
우리는 끊임없이 부처님의 말씀을 공부하고 기도해야만 합니다.
부처님 말씀은
모든 고통과 어려움을 타파하는 묘약이기 때문입니다.
~~~~~~~
몸과 마음을 다스려서 매순간 주인이 되는 아침입니다~^^❣️💔
몸을 다스리는. 것
좋은 일이며
입을 다스리는 것
좋은일이며
뜻을 다스리는 것
또한 그러하거니
일체를 잘
다스리는 것
또한 그러하다
- 법구경 -
2025년 1월 6일 오전 9:29 223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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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시부지(好時不知)! 좋을 때를 알지 못한다
좋은 것만 있을 때는
그것이 어찌 좋은 것인지 알지 못하고!
사랑할 땐 사랑의 방법(方法)을 모르고!
이별(離別)할 때는 이별의 이유(理由)를 모르고!
생각해보면
누구나 바보처럼 산 적이 많습니다.
건강할 때 늘 건강할 줄만 알고 건강에 소홀히 했고!
넉넉할땐 늘 넉넉할 줄 알아 가난의 아픔을 몰났고!
소중한 사람이 곁에 있을 때는 소중한 줄 모르고!
언제나 늘 곁에 있는 줄만 알았다.
당연히 내것인 줄 알았던 걸 차차 잃어 갈때
뒤늦게 후회 합니다
바보는 좋을 때는 그 가치를 모르면서
평생 바보처럼 산다는 걸 모릅니다.
오늘 時間이 最高 좋은 때라 생각하며
천천히 걸어도 빨리 달려도
우리에게 주어진 時間은 오직 한 世上입니다!
더러는 조금 살다가
더러는 오래 살다가
우리는 가야할 곳으로 떠나 갑니다.
소중한 시간! 사랑하며 사세요!
지난 날 돌이키며 後悔하기 보다는
지금.오늘.이 시간!
最善을 다하며 사는!
행복한 하루를 보내시기 바랍니다!
마하반야바라밀
2025년 1월 7일 오전 5:16 52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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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교의 근본은 자기개발에 있다
초월적인 신은 부정하고
부처도 조사도 믿지 말며
석가도 조사도 필요 없다는 말은
불교의 근본을 나타내는 말이다!
오직 자기 자신이
부처님이고 절대자이며
영원한 생명과 무한한 능력을 가진
사람임을 알아야 한다!
그러면 어떻게 자기 개발을 해야 할까?
팔만대장경을 다 외우면
무심삼매를 얻을 수 있는가?
대도를 성취하여 성불하는데
이론과 문자는 장애물이되
이로움을 주지 못한다!
모든 지식과 언설을 다 버리고
오직 마음을 한 곳에 모아야 한다!
부처님이 깨달은 것은 중도이고!
그 깨달음을 얻으려면
참선을 해서 선정을 닦아
무심삼매를 얻어야 한다!
팔만대장경은 일종의 약방문이고
약처방대로 실천하고
선정을 닦는 좌선을 해야 한다!
부처님께서 평생 가르친 것이 좌선이다!
-성철스님 법문중에서-
2025년 1월 7일 오전 8:59 204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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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도재일 (成道齋日)
음력 12월 8일에
석가모니 부처님이
깨달음을 얻어 성불한 것을
기념하는 절기,
불교행사
음력 12월 8일
성도절(成道節)을 말한다.
성도절은
부처님오신날 · 열반절 ·
출가일과 더불어
불교에서는 4대명절의 하나로
손꼽는 날이다.
그리하여 이 날에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성도(成道)를 기념하기 위한 법회를 갖는다.
성도재일은 의례의 성격상으로 보면 보은의례(報恩儀禮)에 해당하는 것이며,
석가모니 부처님의 성도한 날을 맞이하여
승려나 신도가 자신의 신행(信行)을 확인하기 위하여,
또는 포교의 기본적 수단으로서도 행하여진다.
성도재는
산림식(山林式)이라고도 한다.
법회 때에는 수행과정을 거쳐
결국 성도하게 된다는
상징적 의미를 부여한 의식절차와
실제 수행법의를 행한다.
그 법회의 의식절차를 보면,
먼저 모게송(暮偈頌)으로
원래의 불(佛)의 경지를 찬탄하고, 참회게 참회진언으로 참회를 한 다음 불보살에 귀의하며,
조게송(朝偈頌)과
입지게(立志偈)로서 성도를 위한
수행의 의지를 다지고 발원한 다음
다시 참회한다.
그리고 벽을 향하여
입산게(入山偈)를 외우면서 좌정수도(坐定修道)를 상징화하고, 한편 염불게(念佛偈)로써
염불수행법을 상징화한다.
이어 나무아미타불 염불을 행하고 출산게(出山偈)를 행한 다음 십바라밀정진(十波羅蜜精進)을
하게 된다.
십바라밀정진 가운데
보시(布施)는 원월형(圓月型)으로, 지계(持戒)는 반월형(半月型)으로,
인욕(忍辱)은 신발형(鞋經型)으로,
정진(精進)은 가위형(剪子型)으로,
선정(禪定)은 구름형으로,
지혜(智慧)는
금강저(金剛杵) 모양으로,
방편(方便)은 좌우 우물형으로, 원(願)은 전후 우물형으로,
역(力)은 두 개의 고리형으로,
지(智)는 별 가운데 달형으로 돌게 된다.
이처럼 수행법에 상징적 의미를 부여하여
여러 사람들이 이상의
열 가지 모양을 이루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와 같이 여러 사람이
여러 모양을 변화시키면서 이루는 양식은 농악놀이의 양식과도
공통점이 발견되어 주목된다.
재래의 종교의례가 계절적 우주표상력(宇宙表象力)을 지니는 것이라면
성도재는 석가모니 부처님의
성도라고 하는
신성한 역사적 사건의
상징적 현재화가 법회로 표현된 것이다.
성도절은 불탄절 다음으로
성대한 행사를 행하나,
불탄절은 사원 밖에서도
사회적으로 행사를 하는 데 비하여 성도재는 수행의 의미를 강조한 법회로 사원 안에서만 행하고 있다.
이는 성도회가 지니는 수도회로서의 상징적 의미를 시사하는 것이다.
참고문헌
『고려사(高麗史)』
『석문의범(釋門儀範)』
『범음집(梵音集)』
(출처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2025년 1월 7일 오전 8:46 296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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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옵션
누구나 살면서 많은 인연을 만납니다.
그 인연을 소중하게 잘 가꾸면서 좋은 일을 쌓아가면 다른 귀인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인복은 결국 스스로 만드는 것입니다.
인복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소중히 여기고 관계를 충실히 합니다.
우리가 사교적인 태도와 현란한 화술로 사람을 대하다 보면 아는 사람은 많이 생기겠지만 귀인을 만나기 어렵습니다.
귀인을 만나려면 먼저 호의를 베풀고 다른 사람을 진심으로 대하고 겸손한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방법이 서툴러도 진심은 통하게 됩니다.
참 좋은 인연입니다.
날마다 좋은 날 되세요
ㅡㅡㅡ
어떤 경계에서도
교만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겸손하고 성실하게
나아가는
아침입니다^❤️❤️
저 홍수가
부실한 다리를
무드뜨리듯
모든 교만을
부숴 버린
사람은
이 언덕과 저 언덕을
모두 떠난다
뱀이 묵은 허물을
벗어 버리듯
- 숫타니파타 -
~~~~~
덕분입니다 고맙습니다
건강하세요 ~~❤️❤️
< 지원 합장 >
2025년 1월 8일 오전 3:49 370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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無相.無念.無我에 대하여!
선지식아!
밖으로 모든 모양을 여의는 것이 무상이다
다만 모양을 여의면 성품의 체는 청정하다
그러므로 무상으로써 본체를 삼는다.
모든 경계에 물들지 않는 것을 무념이라 하니
스스로 생각 위에 경계를 여의어
법에 대한 생각을 내지 않는 것이다
백 가지 사물을 생각하지 않고
생각을 모두 없애지 말라.
한 생각 끊어지면 곧바로 없어져
다른 곳에 몸을 받아 태어날 것이다
도를 배우는 사람은
마음을 써서 법의 뜻을 쉬어라
자기의 잘못은 그렇다 하더라도
다시 다른 사람에게 권하겠는가
미혹한 사람이 스스로 알지 못하고
또 경전의 법을 비방하니
그러므로 무념을 세워 종으로 삼는다
미혹한 사람이 경계 위에 생각을 두고
그 생각 위에 곧 삿된 견해를 일으키므로
모든 번뇌와 망령된 생각이 이로부터 생긴다
善知識!
外離一切相 是無相
但能離相 性體清淨
是以無相為體
於一切境上 不染名爲無念
於自念上離境
不於法上念生
莫百物不思念盡除却
一念斷卽無 別處受生
學道者用心 莫不息法意
自錯尙可更勸他人
迷不自見 又謗經法
是以立無念為宗
即緣迷人 於境上有念
念上便起邪見
一切塵勞妄念從此而生
-六祖壇經-
2025년 1월 8일 오전 8:25 164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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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의지혜의길]
남에게 베풀고 나서 받으려는 마음을 내는 사람은 마음이 가난한 사람입니다.
베푸는 데서 기쁨을 느낄 뿐 베풀고 난 후 받으려는 마음을 잊어야 합니다.
받으려는 마음을 잊어버리면 그 마음이 무한대로 확산되는 것입니다.
그 같은 마음이 무한 복을 부릅니다.
ㅡㅡㅡ
일어났다 사라지는
모든 존재들에게
마음을 빼앗가는않는
아침입니다^❤️❤️
형성된 것들은
참으로 무상하여
일어났다가는
사라지는 법
일어났다가는
소멸되니
이들의 가라앉음이
행복이로다
- 디가니까야 -
마하수닷사나경
ㅡㅡㅡ
덕분입니다 고맙습니다
지혜로운 날이시길 ~~❤️❤️
< 지원 합장 >
2025년 1월 9일 오전 9:15 4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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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을 떠나 도(道)를 구하지 말라
색류자유도(色類自有道)
형상(몸)이 있는 것엔 스스로 도가 있나니
이도별멱도(離道別覓道)
도를 떠나 따로 도를 보고자 한다면
멱도불견도(覓道不見道)
도를 보고도 도를 보지 못하나니
도두환자오(到頭還自懊)
도리어 스스로 한탄하게 될 것이다.
약욕탐멱도(若欲貪覓道)
만약에 애써 도를 찾고자 할진댄
행정즉시도(行正卽是道)
바른 행위(行爲)가 곧바로 도이니
자약무정심(自若無正心)
스스로 바른 마음이 없을 것 같으면
암행불견도(暗行不見道)
어둠속을 걸어감이라 도를 보지 못한다.
- (六祖壇經)-
우리의 행위에 도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몸을 떠나 몸을 보려하고
생각을 떠나 마음을 보려 하면 안 된다는 뜻입니다.
항상 자기 자신을 순간순간 알아차리고
자신의 행위를 깨닫는 것입니다.
부처님 진리의 법에 감사하며
세계가 평화롭고 나라가 평안하고
모든 분들이 건강하고 행복하시길 기원합니다.
마하반야바라밀
2025년 1월 12일 오후 1:46 454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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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에 가면「보살」이라는
칭호를 자주 듣게 되지만
일반인들은
그 의미를 잘 모릅니다.
보살은 대승불교에서
등장하는
새로운 구도자의 모습입니다.
보살(菩薩,
산스크리트어 :
बोधिसत्त्व bodhisattva,
팔리어 : बोधिसत्त bodhisatta)은
부처가 되기 위해
수행하는 사람,
또는 여러 생을 거치며
선업을 닦아
높은 깨달음의 경지에 다다른
위대한 수행자를 뜻합니다.
특히 대승불교에서 강조되었는데
보리살타 · 보살마하살 ·
각유정(覺有情) 등으로도
불리고 있습니다.
보살은
상구보리 하화중생
(上求菩堤 下化衆生)의 정신으로
육바라밀을 실천합니다.
위로는 부처님의 진리를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을 교화하는
대승불교의 이상적 인간상으로
중생 속에서 살며
지혜와 자비를 실천하는 구도자를
말합니다.
<육바라밀(六波羅密)
2025년 1월 13일 오전 10:04 262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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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스님의지혜의길
부처님 안에서 진리를 벗삼아 사는 사람의 마음은 밝고 즐겁습니다. 마음이 밝아야 세상이 밝게
빛나 보이는 법입니다.
마음 따라 만상이 지어지므로
마음이 천당도, 극락도, 지옥도 짓습니다. 마음이 부처임을 아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자신을 부처로 생각하지 못하는 사람은 타인을 부처로
볼 수 없습니다.
여기 바로 이곳이 부처님의
나라이고 부처님 앞임을
믿어야 합니다.
<지원 합장>
2025년 1월 16일 오전 11:31 170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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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년 을사년에는 부처님의 자비광명으로
모든 재양과 질병이 소멸하는 불자님 가족모두 건강하고 행복한 삶이시길 기원드립니다,
하루의 시작은 아침에 있고
한해의 시작은 정초에 있습니다,
부처님의 한결같은 가피를 얻어
일년내내 가족모두 건강하고 가정은
평안하여
각자 소원성취를 이루어 주시길 기원하는
정초불공을 15일 동안 부처님전과
신중님전에.
정성을 다해 기도합니다
~~~~~~~~~
● 음력 1월 1일 부터 음력 15일까지
●정초불공동참 한가정에 3만원
정초불공에 올리 생미와 초 향 과일 떡 등을.
시주하실 분과 설판및 대중공양
접수받습니다
●접수 및 문의
010~2745~9915
● 기도동참계좌농협3510 9981 64033
정초불공 동참 인연 공덕으로
꿈과 희망이 모두 이루어지는
행복한. 한해가 되시길 축원합니다
인. 평. 사 지원
사람은 무엇보다 타고난 성품이 좋아야 한다.
청나라 황제 강희제는 이렇게 말했다.
"인재를 논할 때 반드시 덕을 기본으로 삼아야 한다.
짐은 사람을 볼 때 반드시 심보를 본 다음 학식을 본다.
심보가 선량하지 않으면 학식과 재능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학식, 경력, 학벌, 지위, 환경 등 그 어느 것도 타고난 성품을 대신할 수 없다.
나라나 어느 단체나 조직의 지도자는 일단 성품이 진실하고 좋아야 한다.
2025년 1월 18일 오전 11:04 329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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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스님의지혜의길
법화경 데바닷타품에 일생동안 부처님을 해하기 위해 노심초사한 데바닷타에게 부처님이 수기를
내리는 장면이 있습니다.
부처를 향하는 죄보(罪報)가 무량하거늘 부처님께서는
“데바닷타 역시 내가 부처되는데 이바지한 점이 있으니 미래세에 부처가 되리라.”고
하셨습니다.
여러분들은 주변에서 벌어지는
모든 사건들과 만나는
모든 사람들을 관세음보살님의 화신이라고 생각하세요.
성불의 길로 이끄시는
관세음보살님의 커다란
보살핌으로 받아들이신다면
우리의 앞날에는 찬연한
부처로의 길이 활짝
열릴 것입니다.
~~~~~~~~>
부처님의 제자로서
언제나 빈틈없이
늘 맑게 깨어있는
아침입니다~^^
온전히 깨어있어
늘 빈틈없는
사람들
바로 고타마
( 석가모니 )의
제자들이
밤낮으로 부처님
성품을 깊이
생각하네
- 법구경 -
2025년 1월 20일 오전 8:37 102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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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스님의지혜의길
공양이란 무량복덕의 문을 여는 길이며 애착과 간탐심을 뿌리
뽑는 성스런 작업입니다.
우리는 마음의 문이 활짝 열리도록 진실로 아낌없이, 바램없이
지성껏 공양해야만 합니다.
부모님과 형제와 모든 이웃에게 공양하며, 부처님께 공양하듯 차별없이 정성 다 바쳐 공양해야 합니다. 부처님의 무량공덕이 우리 생명에 흘러오는 것을 가로막고
있는 마음의 장벽들이 모두 다 무너지도록 청정한 마음으로
공양해야 합니다.
~~~~~~~~
머무는바 없는
마음으로
계산하지 않는
행동으로
늘 청정하고
여여한 아침입니다~^^
조건 지어진 것들은
모두 영원하지 않네
지혜로서 이름
살편보면
고통에서
냉정하게. 되네
이것이 청정행에
이르는 길이라네
- 법구경 -
~~~~~~~
덕분입니다 고맙습니다
행복한 하루되세요
< 지원 합장 >
2025년 1월 20일 오전 7:08 129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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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서오능(鼯鼠五能)
‘여러 가지를 조금씩 잘하는 것은
한 가지에 집중하느니만 못하다.
날다람쥐는 다섯 가지 재주가 있어도
기술을 이루지 못한다.’
중국 최고의 가훈서인 안지추의
‘안씨가훈(顔氏家訓)’에 인용된 말이다.
날 줄 알지만 지붕은 못 넘고
나무를 올라도 타넘지는 못한다.
수영은 해도 골짜기는 건너지 못하고
굴을 파지만 제 몸은 감추지 못한다.
달릴 줄 알아도 사람보다 빠르지 못하다.
오서오능(鼯鼠五能)이란
날다람쥐의 다섯 가지 재주를 말하는데
이것저것 하기는 해도 뭐 하나
제대로 하는 것이 없다는 뜻으로 쓰는 말이다.
팔방미인(八方美人)과 비슷한 말이다.
“말을 많이 하지 말라.
말이 많으면 낭패가 많다.
일을 많이 벌이지 말라.
일이 많으면 근심이 많다.”
‘공자가어(公子家語)’에 나오는 말이다.
또 이런 말도 있다.
잘 달리는 놈은 날개가 없고
날 나는 놈은 발가락이 적고
여각자불여치(與角者不與齒)라 하여
뿔이 있는 녀석은 윗니가 없고
뒷다리가 강한 놈은 앞발이 힘이 없다.
공평한 사물의 이치를 비유한 말이다!
이것저것 잘하는 팔방미인보다는
한 분야를 제대로 하는 사람이
더 나은 대접을 받는 시대다.
전문가의 시대!
하나의 문으로 들어가 大成하면 모든 문이 열린다.
균형 잡힌 안목으로 자신의 핵심역량을 길러야 한다.
깊은 우물이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 법이다.
누구에게나 같은 양의 에너지가 잠재되어 있기 마련이다.
하지만 사람들은 보통 여러 가지 하찮은 일에
정력을 소비하고 만다.
우리가 위인이라고 부르는 사람
성공했다고 부러워하는 사람들은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엄청난 집중력으로
자기 일에 몰두했고
그 결과 특별한 명예와 부를 차지한 사람들이다.
한 가지 일에 전념하라!
재능은 10배!
집중은 1000배의 차이를 만들어 낸다!!!
마하반야바라밀
2025년 1월 21일 오전 8:45 343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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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스님의지혜의길
부처님께서는 공양을 할 때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 마음으로 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지극한 마음으로 할 것이며, 부처님을 믿는 마음으로 할 것이며,
감사로움을 항상 느끼며 때를 잃지 않고 할 것이며,
남을 시켜하지 말고 손수 할 것이며, 법답게 하라.”
또한 “공양한 뒤 대가를 바라지 말 것이며, 집착을 떠난 마음으로 할 것이며,
상(相)을 떠난 마음으로 할 것이며, 과보를 염두에 두지 말며,
남이 보답함이 없게 하라.”고도 말씀하셨습니다.
~~~~~~~
마음의 독을
씻어 내고
부처님의 말씀을
마음에
새기는 건강한
아침입니다~^❤️❤️
인간에서 있어서
가장무서운
독극물은
이 세 가지
보다 더한 것은 없다
첫째 , 욕심 [ 탐 ]
둘째 , 분노 [ 진 ]
셋째 ,어리석음 [치 ] 이다
- 열반경 -
수천 년을 살아온 선바위가 神仙에게 묻고 있다
신선께서 인간들을 보실 때 가장 어리석은 것
신선께서 미소로 말씀하셨다.
첫째는 어린 시절엔 어른 되기를 어른이 되어서는 다시 어린 시절로
돌아가기를 갈망하는 것이 도무지 무얼 모르는 철부지 같다.
둘째는 돈을 벌기 위해서 건강을 잃어버린 다음
건강을 되찾기 위해서 돈을 모두 병원과, 약방에 잃어 버리는 것이다.
셋째는 미래를 염려하다가 현재를 놓쳐 버리고는
결국 미래도 현재도 둘 다 누리지 못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인간은 절대 죽지 않을 것처럼 살지만
조금 살다가 살았던 적이 없었던 것처럼
죽는 것을 모르고 사니까 참으로 어리석은 것이다
또 선바위는 인간들이 꼭 알고 살아가야 할 교훈을 이렇게 말한다
신선이 말씀하셨다.
대개 '사랑한다'는 말은 하지 아니하여도
그를 지극하게
사랑하는 사람이 아주 많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또 하나는 어느 사람에게 상처를 주기는
단지 몇 초의 시간 밖에 걸리지 않지만
그 사람의 상처가 아물기에는
몇 년이 걸릴 수도 있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행복한 부자는
아주 많이 가진 사람이 아니라
가진 것이 적어도 그것으로 만족하며
이웃과 나누며 사는 사람이
가장 행복한 부자인 것을 꼭 기억 해두어야 한다.
커피 한 잔 마시며
처음에는 뜨거워서 못 마시겠더니
마실만하니 금방 식어버리고!
인생도 그렇다!
열정이 있을 때가 좋을 때이고
식고 나면 너무 늦다!
커피는 따뜻할 때 마시는 것이 잘 마시는 것이고
인생은 지금 이순간에 사랑하면서
즐겁게 사는 것이 잘 사는 것이다!
우리는 사랑을 알때 쯤 사랑은 변하고!
부모를 알때 쯤 부모는 병들고!
자신을 알때 쯤 많은 걸 잃었다!
흐르는 강물도 흐르는 시간도 잡을 수 없다.
모든게 너무 빨리 변하고 지나간다.
우린 항상 무언가를 보내고 또 얻어야 한다
서로 사랑하며 사는 것이 최고의 보약이다!
매일 서로 인사를 나눌 수 있는 것도 福이다!
2025년 1월 23일 오전 8:46 202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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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스님의지혜의길
부처님께서는 타인을 위해,
사회를 위해 의미 있는 일을
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대승보살도에 입각해 삶을 펼쳐 나가라고 하셨습니다.
인간존재의 기본적 삶은 이웃과
함께 하는 것이며,
우리가 인간일 수 있는 것은
함께 살아가는
모든 이웃들과 상호간 책임이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자신을 연마하는 가장
빠른 길은 남을 일깨우고 돕는 일이라고 하셨습니다.
타인의 구원을 위한 행동을
시작하면 그것이 바로 참된 깨달음이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
마음의.얼룩을
잘 닦아서
부처님을 향한
한 마음으로
물들이는
아침입니다~~
얼룩새의
몸은 하나지만
몸의 색깔은
수 없이 많듯
사람 역시
몸은 하나지만
마음의 얼룩은
얼룩새의 빛깔보다
더 많으리라
- 잡아함경 -
~~~~~~
덕분입니다 고맙습니다
평온한 날이시길~~
<지원 합장 >
2025년 1월 24일 오전 5:56 166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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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것을 반야(般若)라고 하는가?
반야는 지혜이다.
모든 때에 있어서 생각마다 어리석지 않고
항상 지혜를 행하는 것을 곧 般若行이라고 하느니라.
한 생각이 어리석으면 곧 반야가 끊기고
한 생각이 지혜로우면 곧 반야가 나거늘
마음속은 항상 어리석으면서
'나는 닦는다'고 스스로 말하느니라.
반야는 형상이 없나니
지혜의 성품이 바로 그것이니라.
어떤 것을 波羅密이라고 하는가?
이는 서쪽 나라의 범음으로
'저 언덕에 이른다(彼岸到)'는 뜻이니라.
뜻을 알면 생멸을 떠난다.
경계에 집착하면 생멸이 일어나서
물에 파랑이 있음과 같나니
이는 곧 이 언덕(此岸)이요
경계를 떠나면 생멸이 없어서
물이 끊이지 않고 항상 흐름과 같나니
곧 저 언덕(彼岸)에 이른다고 이름하며
그러므로 바라밀이라고 이름하느니라.
미혹한 사람은 입으로 외고
지혜로운 이는 마음으로 행한다.
생각할 때 망상이 있으면 그 망상이 있는 것은
곧 진실로 있는 것이 아니다.
생각 생각마다 행한다면
이것을 진실이 있다고 하느니라.
이 법을 깨친 이는 반야의 법을 깨친 것이며
반야의 행을 닦는 것이다.
닦지 않으면 곧 범부요
한 생각 수행하면 법신과 부처와 같으니라.
선지식들아!
번뇌가 곧 보리니(卽煩惱是菩提)
앞 생각을 붙잡아 미혹하면 곧 범부요
뒷 생각에 깨달으면 곧 부처이니라.
선지식들아!
마하반야바라밀은
가장 높고 가장 으뜸이며 제일이라
머무름도 없고 가고 옴도 없다.
삼세의 모든 부처님이 이 가운데로부터 나와
큰 지혜로써 저 언덕에 이르러
오음(五陰)의 번뇌와 진로(塵勞)를 쳐부수나니
가장 높고 가장 으뜸이며 제일이니라.
가장 으뜸임을 찬탄하여 최상승 법을 수행하면
결정코 성불하여 감도 없고 머무름도 없으며
내왕 또한 없나니
이는 정(定)과 혜(慧)가 함께 하여
일체법에 물들지 않음이다.
삼세의 모든 부처님이 이 가운데서
삼독을 변하게 하여 戒定慧로 삼느니라.
선지식들아!
나의 이 법문은 팔만 사천의 지혜를 좇느니라.
무엇 때문인가?
세상에 팔만 사천의 塵勞가 있기 때문이다.
만약 진로가 없으면
반야가 항상 있어서 자성을 떠나지 않느니라.
이 법을 깨친 이는 곧 無念이니라.
기억과 집착이 없어서 거짓되고 허망함을 일으키지 않나니
이것이 곧 眞如의 성품이다.
지혜로써 보고 비추어
모든 법을 취하지도 아니하고 버리지도 않나니
곧 자성을 보아 부처님 도를 이루느니라.
-敦煌本 六祖壇經-
2025년 1월 26일 오전 7:39 69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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佛敎에서는 輪廻를 이야기 하지만
이는 우리가 흔히 아는 환생과는 전혀
다른 개념입니다
還生은 영혼(我)이 몸을 바꿔가면서
계속 존재 한다고 믿는 개념이지만
불교는 영혼이나 고정된 자아를 부정합니다!
불교에서 말하는 것은
우리의 경험과 의도 즉 業(카르마)이 조건이 돼서
의식의 흐름이 이어진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마치 하나의 촛불이
다른 촛불에 불을 붙이는 것과 같습니다!
불은 연결 되지만 같은 불이 아닙니다
즉 윤회는 내가 다시 태어난다는 개념이 아니라
업의 결과를 새로운 존재가 이어지는 과정입니다!
이 깨달음은
集着에서 벗어나기 위한 중요한 가르침 입니다
왜냐하면 윤회란
내가 다시 태어나는 고정된 존재가 아니라
업의 결과로 나타나는
새로운 현상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이 깨달음은 집착에서 벗어나기 위한
중요한 가르침 입니다
이 깨달음을 통해서 우리는
나에 대한 집착을 내려 놓을 수 있고
그것이 바로 고통에서 벗어나는 길이라는
불교의 핵심 가르침을 담고 있는 것입니다!
마하반야바라밀
을사년. 정초기도발원문
부처님 발원드립니다
부처님 법대로 살아가기를 발원합니다
나와 인연있는 모든분들과 더블어
행복하기를 발원합니다
모든 불자님들. 부처님 품안에서 살아가기를
발원합니다
하고자 하는 모든 일들이 원만하게 성취되길.발원합니다
염원의 작은 불꽃 하나 하나마다
모여서 이 어두운 세상을 훤히 밝힐수 있다는
믿음으로
사르고 촛불과 등불 밝히겠습니다
어려울때 일수록 나누는 지혜를
어제의 잘못을 조금씩 개선하여
오늘은 저지르기 않기를
바른 부처님 가르침에 따르지 못하고
성내고 탐냈던 어리석음을 크나큰.
가르침으로
깨우쳐 주시옵소서
오늘 이곳의 모든 불자님 인평사
인연님들 에게 부처님의 가피하기를
발원드립니다
마하 반야 바라밀 마하 반야 바라밀 마하반야 바라밀
진짜로 영원한 것은
귀에 들리고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것은
한 부분이요 일시적인 것이다!
그것은
모두 순간적인 것이고
잠시 있다가 사라지는
찰나에 불과하다!
눈에 보이지도 않고
귀에 들리지도 않고
손에 잡히지도 않지만
그 밑바탕을 이루는 곳에
정신의 세계가 있다!
이것은 영원한 것이다
이것이 본질이다
이것은 달변이 아니라
침묵으로 이루어진 세계라 할 수 있다!
영성으로 충만한 세계라 할 수 있고
불교에서 말하는
空의 세계라고도 할 수 있다!
-법정스님-
2025년 1월 28일 오전 9:45 604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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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스님의지혜의길
중생제도는 우리의 의무이며 운명입니다.
항하사의 칠보로 보시하는
것보다 부처님 말씀 한마디
보시하는 공덕이 더 크다
하셨습니다.
항하사의 칠보는 이 땅을
등지면 끝입니다.
그러나 마음 가운데 심어진
부처님의 종자는 영원을 가는
지혜와 복덕의 바탕이 됩니다.
무량한 지혜와 복덕의
원천이 됩니다.
진정 부처님 말씀은 무한한
가치를 지닙니다.
~~~~~~~~
초심으로 돌아가는
겸손한
아침입니다~^
"마땅히 달처럼
살고처음 출가한
사람처럼
수줍어하고
물을 건널 때나
가파른 산을 오를 때
조심하듯
자신을 잘 단속하여
스스로 뽑내지 마라
- 잡아함경 -
2025년 2월 1일 오전 6:35 174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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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번개 같으니(日月似電光)
시간을 잘 아껴라(光陰良可惜)
죽고 사는 것이 숨 쉬는 데 있으니(生死在呼吸)
아침에는 살아 있지만 저녁까지 살아 있을지(難以保朝夕)
돌아 다니고.머물고.앉고.눕는 동안(行住坐臥間)
한 순간도 헛되이 버리지 말라(寸景莫虛擲)
용맹에 용맹을 더하기를(勇猛加勇猛)
우리 부처님 같이 하며(如我本師釋)
정진하고 또 정진하되(精進復精進)
마음은 언제나 또렷하면서 고요히 하며(心地等惺寂)
부처님과 조사의 말씀하신 뜻을(深信佛祖意)
깊이 믿고 분명히 판단하라(須要辨端的)
이 마음이 그대로 부처이거늘(心卽天眞佛)
어찌 밖을 향해 찾으랴(何勞向外覓)
모든 일 다 놓아 버리기를(放下萬事着)
감옥에 갇힌 것 같이 하며(路窮如鐵壁)
모든 생각을 다 끊어 버리고(妄念都滅盡)
끊었다는 생각마저 잊어 버려라(盡處還抹却)
몸과 마음이 허공 같을 때(身心如托空)
고요한 광명이 빛나리라(寂然光達爀)
내 본래 모습이 무엇인고(本來面目誰)
간절히 의심해 가면(纔擧箭沒石)
의심덩이 문득 부서지고(疑團百雜碎)
한 물건이 하늘땅을 덮으리라(一物盖天碧)
이 경계를 모르는 이에게 말하지 말고(莫與無智設)
기뻐서 날뛰지도 말고(亦莫生悅懌)
눈 밝은 선지식을 찾아가(須訪見宗師)
얻은 바를 인가 받아야 한다(呈機復請益)
그래야 비로소 조사의 법을 이었다 할 것이니(然後名繼祖)
그러기 전에는 함부로 알았다고 하지 말라(家風不偏僻)
이런 뒤에야 잠 오면 자고(困來展脚眠)
배고프면 먹고(飢來信口喫)
누가 법을 묻거든(人問是何宗)
비 내리는 것 같이 몽둥이와 할로
사정없이 대하라 (棒喝如雨滴)
*參禪錄! -太古普愚-
***태고보우 스님은
본관은 홍주(洪州) 속성은 홍씨(洪氏)
호는 태고(太古) 법명은 보우(普愚)이다
홍주(洪州)출신 아버지는 홍연(洪延)이며
어머니는 정씨(鄭氏)이다
대한불교 조계종의 종조(宗祖)로서
불교계의 통합과 정계(政界)의 혁신을 도모하였다**
2025년 2월 4일 오전 8:16 177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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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스님의지혜의길]
내것을 아끼지 말고 남의 것을 탐내지 마세요.
삼악도의 고통을 가져오는 데는 탐욕이 으뜸입니다,
여섯 가지 바라밀다는 보시가 제일입니다.
아끼고 탐내는 것은 선한 길을 막고 자비로 보시함은 나쁜 길을 방비합니다.
가난한 사람이 와서 빌거든 아무리 구차하더라도 인색하지 마세요.
올 때도 빈손으로 왔고 갈 때도 빈손으로 가는 것입니다
내 재물도 아끼는 마음이 없는데 어찌 남의 것에 마음을 두겠습니까
아무 것도 가져가지 못하고 평생에 지은 업만 이 몸을 따를 것입니다.
사흘 닦은 마음은 천 년의 보배입니다
백년 탐낸 물건은 하루아침 티끌입니다.
어찌하여 괴로운 삼악도가 생겼는가 오랜 세월 익혀온 애욕 탓입니다.
ㅡㅡㅡ
[부처님 말씀]
일찍 일어나
정진하는
아침입니다~^^
"법은 이 세상에서나 다른 세상에서나 가장 높은 것이니라."
<아함경>
무주상 보시
2025년 2월 6일 오전 8:27 120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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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월(慧月)스님(1862~1936)이 계셨습니다.
천진도인으로 알려진 스님입니다.
부산 선암사에 계실 때
신도 한 분이 찾아와서 아버지 49재를 지내달라며
100원을 시주하였습니다.
그 당시 시절에
쌀 한가마니가 1~2원 정도 할 때였습니다.
그러므로 100원은 큰 돈이었습니다.
스님은 이 돈을 가지고 재에 필요한 물건들을
사기 위해 원주스님을 데리고 시장을 갔습니다.
그런데 아기를 안은 젊은 새댁이 시장입구
바닥에 앉아 슬피우는 것입니다.
스님은 새댁에게 다가가 그 까닭을 묻자
우는 새댁 옆에 있던 한 늙은이가 사연을
대신 설명해 주었습니다.
"이 새댁은 몇 해 전에 결혼을 했는데
이듬해에 아기를 밴 다음부터 남편이
큰 병에 걸려 자리에 눕게 되자
여러해 동안 병 수발하며 아기를 키우다 보니
많은 빚을 지게 되었답니다.
더구나 힘들게 간호를 하였지만
결국 남편이 죽고 말았지요.
어린 아기와 살기도 힘들텐데 빚까지 지게 되어
그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나서 큰 액수가 되었고
그 돈 때문에 빚쟁이 들에게 매일 시달리고 있습니다.
조금 전에도 빚쟁이들이 찾아와서 한바탕 난동을
부리고 갔습니다."
"새댁! 그 빚이 얼마나 됩니까?"
"80원 쯤 됩니다."
그 말이 끝나자 마자 혜월 스님은 허리춤에 차고 있던
주머니을 풀어 80원을 꺼내더니 그 여인에게
주었습니다.
큰 돈을 잠시의 주저함도 없이 꺼내어 주는 스님의
그런 행동에 구경하는 모든 사람들이 술렁거리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스님은 분위기에 아랑곳 하지
않고 다시 새댁에게 말했습니다.
"그래 빚을 갚은 다음에는 어떻게 살려고 하느냐?"
대답이 없자 스님은 주머니에 나머지 20원을 꺼내
새댁에게 주고는 절로 되돌아 왔습니다.
이 모든 것이 순간에 일어났기 때문으로 옆에 있던
원주스님도 말릴 틈이 없었고 새댁도 또한 미처
감사하다는 인사조차 하지 못했습니다.
다음 날 천도재를 지내러 왔는 齋主를 보고
원주스님은 매우 미안해하면서
자초지종을 이야기하였습니다.
그런데 재주는 나무라기 보다 혜월 스님에게
다시 100원을 시주 하면서
"스님! 저의 아버님을 위하여 참으로 진짜 재를
지내주셨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혜월 스님의 자비심도 대단하지만
재를 지낼려 하신 그 불자님의 마음씀이도
훌륭하지 않습니까!
따지지도 더 이상 묻지도 않고 다시금
100원을 선뜻 내 놓는 마음!
집착 없는 마음씀! 이것이 무주상보시의 마음!
혜월스님의 보시가 바로 참다운
무주상보시가 아니겠습니까!!!
-慧月스님 逸話中에서-
2025년 2월 8일 오전 8:42 47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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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스님의지혜의길]
기도의 목적은 업장소멸과 소원성취입니다.
업장소멸하여 탐욕과 성냄 어리석음에서 벗어나 나와 남을 행복으로 이끌어
가기 위해서입니다.
자비와 지혜를 닦아 모든 생명을 소중히 여겨 절대 화를 내지 않고,서로이해*공감
배려*존중 하는 불자가 되어야 합니다.
서로 인사하고, 칭찬하며, 챙겨주고, 비밀을 지켜주고, 뒷담화 하지 않으며, 서로를 위해 기도해 주어야 합니다.
봉사하는 삶, 기도하는 삶, 공부하는 삶으로 나아가기 위해 기도 정진을 하는 것입니다.
모든 중생을 걱정에서 벗어나고, 생사 윤회에서 벗어나고, 고통에서 벗어나게 하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부처님전에 여러가지 공양물을 올리며 예배 공경하며 찬탄 올리옵고 참회 하며 법을 청하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ㅡㅡㅡ
2025년 2월 9일 오전 9:37 71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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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스님의지혜의길]
"이 세상 모든 것들은 그저 오고 갑니다.
내가 원한다고 다 오는 것도 아니고, 싫어한다고 오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인연의 뜻대로 올만 하면 오고, 갈 만 하면 갑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내 뜻대로’ 오고 가는 줄 알고, 자기 뜻을 정해 놓은 뒤, 그 뜻대로 세상이 통제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괴롭습니다. 삶을 통제하려 애쓰지 마세요. 그저 인연 따라 흘러갈뿐.
내 쪽에서 ‘이건 되야 하고 저건 되지 말라’
고 명령을 내리면 괴롭습니다.
늘 최선을 다할 뿐 결과는 나에게 달린 일이 아닙니다
인연에 순응하세요. 되면 하면 되고, 안 되면 내 일이 아니었던 것입니다.
통째로 받아들여 보세요 삶이 가벼워 집니다.
ㅡㅡㅡ
[부처님 말씀]
마음의 집착을
내려놓기위해
꾸준히 기도 하는 아침입니다~^^
"법이란 마음 법이다."
<임제록>
2025년 2월 11일 오전 7:04 273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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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男子의 人生
남자의 인생에는 세 갈래의 길이 있습니다...
*하나는 妻子를 위한 굳건한 家長의 길이고,
*하나는 社會的 地位의 上昇과 成功의 길이고,
*하나는 언제든 혼자일 수 있는 自由의 길입니다.
남자의 인생에는 세 女子도 있습니다...
*하나는 아내가 닮았으면 하는 어머니이고,
*하나는 全能한 어머니였으면 하는 아내이고,
*하나는 가슴에 숨겨두고 그리는 女人입니다.
남자의 인생에는 세 가지 重要한 것도 있습니다...
*하나는 人生을 걸고 싶을 만큼 貴한 親舊이고,
*하나는 고단한 길에 指針이 되어주는 先輩이고,
*하나는 自身을 成熟케 하는 書籍입니다.
남자의 인생에는 세 번의 몰래 흘리는 눈물이 있습니다...
*하나는 첫사랑을 보낸 후 흘리는 成熟의 눈물이고,
*하나는 失敗의 苦杯를 마신 후 뼈 아픈 눈물이고,
*하나는 부모를 여의었을 때의 不孝의 피눈물입니다.
2025년 2월 15일 오전 3:39 313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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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쪽으로 가라는데 서쪽으로 가면 어떻게 될까요
수유근행(雖有勤行)이나 무지혜자(無智慧者)는
비록 근면하게 열심히 수행하나 지혜가 없는 사람은
욕왕동방(欲往東方)이 향서행(向西行)이라.
동쪽으로 가고자 하나 서쪽을 향하여 열심히 가고 있다.
유지인(有智人)의 소행(所行)은 증미작반蒸米作飯)이요.
지혜가 있는 사람의 소행은 쌀로서 밥을 짓는 것이요.
무지인(無智人)의 소행(所行)은 증사작반(蒸沙作飯)이라.
지혜가 없는 사람의 소행은 모래로 밥을 짓는 것과 같다.
(원효대사 발심수행장)
무지(無智)란 엄청나게 무서운 것입니다.
동쪽으로 가면 천당 극락인데
반대로 서쪽으로 열심히 가고 있다.
무지한 사람이
열심히 반대로 부지런히 간다면
천당이나 극락의 반대인 지옥으로
아주 열심히 빨리 가는 것과 같습니다.
쌀로 밥을 지으면 20~30분이면 짓지만
모래가 쌀같이 희게 생겼다고 밥을 짓는 다면
영원히 밥은 되지 않습니다.
우리가 수행을 함에 있어서 쌀로 밥을 지으면
20~30분이면 충분하듯이
올바른 수행과 기도를 한다면 20~30분
즉 2~3개월 100일이면 즉시 몸에서 부터
느낌의 효험이 나타나지만
어리석은 방법의 수행은
모래를 쌀로 착각하여 밥을 짓는 행위라!
염불(念佛)은 부처님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염념상속(念念相續)!
생각 생각 이어지는 것이 念念相續입니다.
오늘도 건강하고 행복하길 기원합니다.
마하반야바라밀
2025년 2월 19일 오전 4:35 262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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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화(世界一花)로 유명한 만공스님은
수덕사 초당에서 거문고를 즐겨 타셨다
어느 날
한 스님이 만공스님과 함께 차를 마시면서
만공스님께 여쭈었다.
“스님 거문고를 타면 마음이 즐거워지십니까
아니면 슬퍼지십니까?”
만공스님은 찻잔의 물을 가리키며 질문한 스님에게
되물었다
“이 찻잔의 물이 깨끗한 것이냐? 더러운 것이냐?”
“그야 깨끗한 것이지요.”
“자! 그럼 내가 마신 찻잔의 물이 나중에 오줌으로 나올 것이다.
그 오줌물은 깨끗한 것이냐? 더러운 것이냐?”
상대방 스님은 이 번에는 더러운 것이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만공스님은 그 스님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말을 이어갔습니다.
“그 오줌이 땅에 젖어 물기가 되고 그 물기를 도라지가
빨아먹어 꽃을 피웠다.
그 꽃은 깨끗한 것이냐? 더러운 것이냐?”
“그 꽃은 깨끗한 것입니다.”
그러자 만공스님은 스님의 대답에 빙그레 웃으시면서
한 소리를 하셨다.
“너는 물 한 잔을 가지고
깨끗했다 더러웠다 마음대로 바꾸는구나.”
보아라! 물은 원래 더럽지도 않고 깨끗하지도 않은 것이다.
그것이 찻잔에 담기면 깨끗해지고
오물통에 담기면 더러워진다!
같은 물이라도 이렇게 다르게 보이는 것이니라!
거문고 가락도
슬픈 사람이 들으면 슬프게 들리고!
기쁜 사람이 들으면 기쁘게 들리는 것일 뿐!
애당초 기쁘고 슬픈 것은 없는 것이다!.”
-滿空스님 逸話-
안녕하세요.
사람들은 저마다의 가슴에 길 하나를 내고 있습니다.
그 길은 자기에게 주어진 길이 아니라 스스로가 만든 길입니다.
매 순간 꽃길을 걷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평생동안 투덜대며
비탈진 자갈길을 걷는 사람이 있습니다.
지금도 늦지 않습니다.
새로운 꽃길을 만들면 됩니다.
원력의 땅에다 사랑이라는 꽃씨를 뿌리고, 자비라는 물을
부어주기만 하면 됩니다.
우리가 수행을 하는 것은
새삼스럽게 깨닫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 깨달음을 드러내기
위해서다.
닦지 않으면 때 묻기 때문이다.
마치 거울처럼.
닦아야 본래부터 지니고 있는
그 빛을 발할 수 있다.
사람은 누구든 자기 자신안에
하나의 세계를 가지고 있다.
사람은 누구나 그 마음 밑바닥에서는 고독한 존재이다.
그 고독과 신비로운 세계가
하나가 되도록 안으로 살피라.
무엇이든 많이 알려고 하지 마라.
책에 너무 의존하지 말라.
성인의 가르침이라 할지라도
종교적인 이론은 공허한 것이다.
진정한 앎이란 내가 직접 체험한 것,이것만이 내 것이 될 수 있고
나를 형성한다.
2025년 2월 21일 오전 8:25 162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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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원스님의지혜의길]
‘친구는 내 슬픔을 등에 지고 자는 자‘라고 합니다.
내가 힘들 때 친구는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위로해 주고, 울어주고, 웃어주는 등 함께 해주기 때문입니다.
친구라면 그렇게 하는 것이 당연하죠.
그래서 경청은 좋은 친구를 만들어 준다고 합니다.
잘 들어준다는 것은 공감해주고, 이해해 주는 것을 말하죠.
뒤담 하지 말고
누구나에게 좋은 친구가 되어주세요.
ㅡㅡㅡ
[부처님 말씀]
"탐욕은 마치 밧줄 같아서 세상을 능히 결박하나니, 어리석은 이는 미혹하지만 지혜로운 이는 항상 멀리 한다."
<불설호국경>
2025년 2월 21일 오전 7:33 250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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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기 자신답게 살라
(법정 스님)
어떤 사람이 불안과 슬픔에 빠져 있다면 그는 이미 지나가버린
과거의 시간에 아직도 매달려
있는 것이다.
또 누가 미래를 두려워하면서
잠 못 이룬다면 그는 아직 오지도
않은 시간을 가불해서 쓰고 있는 것이다.
과거나 미래 쪽에 한눈 팔면
현재의 삶이 소멸해 버린다.
보다 직설적으로 표현하면
과거도 없고 미래도 없다.
항상 현재일 뿐이다.
지금 이 자리에서 최선을 다해
최대한으로 살 수 있다면
여기에는 삶과 죽음의 두려움도 발붙일 수 없다.
저마다 서 있는 자리에서
자기 자신답게 살라
오 늘의 부 처 님 설법
`하 늘을 은 너 의 집 에 있 다
하 늘 을 섬 기 고 자 하 면 먼 저 부 모 님 께 공양 하 라
잡 아 함 경 [ 雜阿含經]
무모 를 생 각 하 는 자 식 의 마 음 은 시 간 이 지 날 수 록 깊어 진 다 특히
나 이 들어 가 는 부 모 님 을 뵐 수 록 그 리 고 한 분 이 돌아 가 시 기 라 도 하 면 부 모 님 의 사랑 과 은 해 가 새 록 새 록 가 슴 에 와 닿 는 다 그 런 데 도 이 상 하 게 자 식 들은 평소 에 는 그 런 마 음 을 잊고 산 다 밖에 서 힘 든 일이
있 으 면 부 모 님 께 짜증 을 부리 는 일이 많 다 언 제 나 받 아 주는 부 모 님
이 기 에 함 부로 대 하 고 화 풀이 를 하 는 것 이 다 심 지 어 는 일 이 잘 풀 리
지 않 을 때 도 원 망 하 는 마 음 을 품 기 마 련 이 다
나 한 데 해 준 게 뭐 가 있 어 조 금 만 뒷 받 침 을 해 줬 어 도 이 고생은안 하 지
현 실 적 으 로 자 식 을 단 순 히 학교 만 보 낸 다 고 되 지 않 는 다 해 외
연 수 나 유 학 을 시 켜 야 하 는 일 도 많 고 결혼 할 때 는 번 듯 하 게 집 을
장 만 해 줘 야 한 다 고 하 고 부 모 노 릇 한 다 는 것 이 여 간 힘 든 게 아 니
다 열 심 히 뒷 바 라 지 를 해 줘 도 모 자 라 게 느 껴 지 는 그 런 시 대 가 된
것 이 다
물론 사 회 에 나 가 자 리 를 잡 기 까 지 요 즘 젊 은 이 들 의 삶 도 무 척 힘
들 어 졌 다 하 지 만 조 금 더 깊 이 생 각 해 보 면 조 그 마 한 원 망 도 죄 송
한 일 이 라 는 것 을 깨 닫 게 될 것 이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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