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18년 나해 10월30일 [(녹) 연중 제30주간 화요일]
제1독서 에페소서 5,21-33
복음 루카 13,18-21
◈ [서울] 연중 제30주간 화요일
2018년 나해 10월30일 연중 제30주간 화요일
제주도에는 숲길이 많습니다. 사려니 숲길, 장생이 숲길, 치유의
숲길을 가보았습니다. 화산섬인 제주도에는 바위가 많습니다. 숲길은
그 바위 위에 뿌리를 내리고 자라는 나무들이 많았습니다. 바위는
나무를 뿌리치지 않고 받아들이고 있었습니다. 나무는 바위를 보듬어
안으며 하늘높이 자라고 있었습니다. 거친 자연환경이지만 서로를
밀치지 않고, 조화를 이루면서 아름다운 숲을 만들어가는 바위와
나무였습니다. 그곳에 신선한 공기가 있었고, 둥지를 틀고 살아가는
새들과 나비가 있었습니다. 자연은 적자생존의 치열한 싸움터가
아니었습니다. 자연은 약육강식의 구조로 이루어진 생존의
피라미드가 아니었습니다.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이는 다윈의 진화론은 같은 생각을 가졌던
알프레드 러셀 윌리스라는 사람과 함께 연구된 것입니다. 윌리스는
다윈과 같은 진화론을 연구하였지만 적자생존을 이야기하기보다는
약한 존재들을 보호하고, 힘을 주는 진화론을 전개했습니다. 최고의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서 싸우기 보다는 서로 연대하고 협력하는
진화론을 전개했습니다. 평민이었던 윌리스의 진화론이
받아들여졌다면 우수한 종족만이 살아남아야 한다는 나치의 광기는
약한 이웃을 도와주는 온기가 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윌리스의
진화론이 받아들여졌다면 탐욕의 시장으로 변한 빈익빈부익부의
세상이 만인은 일인을 위해, 일인은 만인을 위해 서로 돕고 연대하는
세상이 될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한 사람의 욕심이 세상은 강자만이
살아남는다는 인식을 심어주었고, 그 결과는 생태계의 파괴를 이끄는
원인이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하느님나라는 어떤 나라였을까요? 머물 곳이
너무 많아서 아무도 도태되거나, 무시되지 않는 나라입니다. 작은
겨자씨가 큰 나무가 되듯이 하느님나라는 작은 꿈이 아름다운 현실이
되는 곳입니다. 작은 누룩이 큰 빵을 만들 듯이 작은 꿈이 모여서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 가는 곳입니다. 아픈 이, 외로운 이, 가난한
이, 이방인, 난민, 어린아이, 장애인들도 모두가 사람다운 대접을 받는
곳입니다.
잘못했을지라도 뉘우치면 공동체로 돌아올 수 있는 따뜻한 곳입니다.
정의와 평화가 서로 입을 맞추고, 사랑과 평화가 함께 춤을 추는
곳입니다. 바위와 나무가 아름다운 숲을 만드는 곳자왈이 되었듯이,
사랑하는 사람들이 함께 연대하여 하느님나라를 만들어가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인류와 세상에 새로운 진화를 이야기하셨습니다.
그것이 아름답게 드러나는 것이 돌아온 아들을 품어주는 아버지의
자비입니다. 자신이 것을 기꺼이 나누고 빚진 것이 있다면 4배로 갚아
주겠다는 자캐오의 회심입니다. 강도를 당한 이웃을 따뜻하게 보듬어
주었던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연민입니다. 새로운 세상은 적자생존,
약육강식의 싸움터가 아니었습니다. 희생과 나눔, 자비와 헌신으로
이루어지는 하느님나라입니다.
이제 중요한 것은 인식의 전환과 선택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선택의
기준을 참된 행복을 통해서 보여 주셨습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슬퍼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
온유한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땅을 차지할 것이다.
옳은 일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만족할 것이다.
자비를 베푸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자비를 입을 것이다.
마음이 깨끗한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하나님을 뵙게 될 것이다.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이 될
것이다. 옳은 일을 하다가 박해를 받는 사람은 행복하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나 때문에 모욕을 당하고 박해를 받으며 터무니없는
말로 갖은 비난을 다 받게 되면 너희는 행복하다.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받을 큰 상이 하늘에 마련되어 있다.
옛 예언자들도 너희에 앞서 같은 박해를 받았다."
†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 서울 대교구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 -
◈ [수원] 요셉 신부님의 매일 복음 묵상 - 하느님 나라를 품은 이의
특징
2018년 나해 10월30일 연중 제30주간 화요일
<하느님 나라를 품은 이의 특징>
복음: 루카 13,18-21
정신과 의사 정혜선 씨는 모든 사람을 “당신이 옳다!”는 마음으로
대하라고 말합니다. 30년 동안 정치인, 법조인, 경제인, 대통령
후보들, 고문 피해자, 세월호 피해자 등 약 12,000명의 환자와 만나본
경험을 통해 내린 결론이라고 말합니다.
한 중학생 아이는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두세 시간씩 배회하다가
친구에게 전화를 겁니다. 그러면 친구는 “집에 안 들어가고 뭐해. 빨리
들어가, 병신아!”라고 말한다고 합니다. 그러면 산소가 필요해 창문을
열었는데 매연이 확 들어오는 느낌을 받는다고 합니다. 더 이상
산소가 없으면 사람은 무슨 생각을 하게 될까요? 살 힘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집에 들어가야 하는지는 자신도 압니다. 그 대답을 들으려고 전화한
것이 아닙니다. 사람은 해답을 찾으려 사람을 만나는 것이 아니라
살아갈 수 있는 산소, 양식을 찾으려 사람을 만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래, 무슨 일 있어?”라는 관심, 그리고 “그렇구나, 그럼
나라도 안 들어가겠다!”는 식의 ‘공감’으로 대해줄 필요가 있다고
말합니다. 사람을 죽이고 싶다거나 가출하고 싶다고 말해도 “네가
옳다.”라는 식으로 공감해주라고 합니다. 그러면 십중팔구는 좋은
선택을 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해답이 아니라 힘을 얻으려
사람을 만납니다.
한 번은 정혜선 씨에게 자녀가 죽어 슬퍼하는 어머니가 찾아왔다고
합니다. 어느 날 아침부터 이유 없이 눈물이 쏟아지기 시작하여
멈추지 않는 증세가 시작된 것입니다. 병원에도 갔지만 눈물은 계속
지속되었습니다. 그리고 정혜선 씨를 만나 “저 미쳐가나 봐요. 저
미친년 맞죠?”라고 묻더랍니다. 정혜선 씨는 “아니, 자식이 죽었는데
눈물이 안 나는 게 미친년이지 하루 종일 눈물 흘리는 게 뭐가 미친
거예요.”라고 말해 주었습니다. 그러자 그분은 “그렇죠?”라고
말하더니 곧 잠에 곯아떨어졌고 몇 시간 뒤에 일어났는데 눈물이
멈추었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찾는 것은 자신이 피신할 공간과 자신의
허기를 달래줄 공감인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은 하느님 나라를 겨자씨와 같다고 말합니다.
어떤 사람이 자신의 정원에 겨자씨를 심었더니 큰 나무가 되어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들었습니다. 겨자씨가 심겨진 정원은 우리의 마음을
의미합니다. 우리 안에 하느님 나라가 심겨지면 큰 나무가 생겨서
힘들고 지친 사람들이 쉬어갈 수 있는 공간이 생깁니다. 자신 안에
하느님 나라가 없으면 사람들을 쉬게 하지 못하고 오히려 힘들게
합니다. 휴식을 주려고 해도 자신의 정원에 나무는 없고 가시덤불밖에
없기 때문에 결국 상처를 주게 됩니다.
그리고 하느님 나라는 누룩과 같다고 하십니다. 하느님 나라가 사람을
상징하는 밀가루 서 말 속에 들어가면 그 서 말의 밀가루가 온통
부풀어 오릅니다. 빵에 누룩을 넣는 이유는 반죽이 부풀어 먹기 좋게
만들기 위함입니다. 밀가루로만 만들어 구우면 딱딱하게 되어
배부르게 해주기보다는 치아를 아프게 할 수도 있고 또 목에 걸려 잘
넘어가지 않게 됩니다. 그러나 하늘나라를 품은 사람은 누구를 만나든
그 사람의 허기를 달래줄 수 있습니다.
사람과의 관계가 힘든 이유는 사람을 만날 준비가 되어있지 않은
상태로 만나기 때문입니다. 내가 휴식이 되고 양식이 되어주어야
하는데 상대를 통해 휴식을 찾고 양식을 찾으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하늘나라는 성령을 통하여 이루어지는 사랑과 평화와 기쁨입니다.
내 안에 사랑과 평화와 기쁨의 나무가 없다면 누구에게도 휴식을 줄
수 없고, 누구의 배도 채워줄 수 없습니다.
사실 사람을 아프게 하는 것은 나의 자아가 살아있기 때문인데,
하늘나라가 내 안에 이루어졌다는 것은 하느님의 뜻이 내 안에
이루어지게 하기 위해 나를 죽였다는 뜻입니다. 하느님이 지배하는
나라가 하느님 나라입니다. 그렇게 나를 죽였으면 그 사람은 온유하고
겸손하게 됩니다. 그래서 이웃과의 좋은 관계를 원한다면 먼저
하느님과의 관계부터 회복해야 합니다. 그러면 이웃과의 관계는
저절로 잘 되게 될 것입니다. 내 안의 하느님 나라는 힘든 사람이 쉴
공간이고, 배고픈 사람이 먹을 양식입니다.
http://www.수원교구영성관.com/
- 수원 교구 전삼용 요셉 신부 -
◈ [수원] 하늘나라에 대한 비유 / 조욱현 토마스 신부 강론
2018년 나해 10월30일 연중 제30주간 화요일
복음: 루카 13,18-21: 하느님의 나라를 무엇에 비길 수 있을까!
하느님의 나라가 겨자씨에 비유되는 까닭은 씨앗이 뿌려져 싹을
틔우고 자라나는 모습이 믿음이 커가는 것과 똑같기 때문이다. 그
나라는 하느님의 말씀 한 마디로 왔기 때문이다. 그 나라는 들음으로
받아들여지고 믿음으로 씨 뿌려진다. 믿음을 통하여 뿌리내리고
희망으로 자란다. 그 나라는 신앙고백으로 퍼져나가고 덕행으로
넓어진다. 그러면서 많은 가지로 뻗어 간다. 그리고 그 가지들을
하늘의 새들의 보금자리로 내어 준다.
하느님 나라가 겨자씨와 같고 믿음이 겨자씨와 같다면, 믿음이 곧
하느님 나라이며 하느님 나라가 곧 믿음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믿음을 지닌 사람에게는 하느님 나라가 있다. 그 나라와 믿음이 우리
안에 있다 주님께서는 “보라,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 있다.”
(루카 17,21)고 말씀하셨다. 신앙을 고백한 베드로는 사람들을
하느님의 나라로 들어가게 해 주는 열쇠를 받았다(마태 16,19 참조).
겨자씨는 그리스도를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겨자씨처럼 아주 작고 낮게 겸손한 모습으로써 인간으로 태어나셨고,
하늘에 오르심으로써 나무처럼 커지셨다. 고난을 당하실 때는
씨앗이시고 부활하실 때는 나무이시다. 시장하실 때에는 씨앗이시고
빵 다섯 개로 오천 명을 먹이실 때는 나무이시다. 복음에서 그분은
당신을 씨앗으로 표현하신다.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요한 12,24)
누룩은 조금만 넣어도 금세 반죽 전체에 퍼져 제 역할을 한다.
하느님의 말씀도 우리 안에서 이렇게 작용한다. 우리가 말씀을
받아들이면, 말씀은 우리를 거룩하고 흠 없게 만든다. 머리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가슴에 고루 배어들어 영적인 인간이 되게 한다. 우리는
이성적이며 거룩한 누룩을 마음에 받아들인다. 이 값지고 거룩하고
순결한 누룩 덕분에 하느님의 자녀로서의 삶을 잘 살아갈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에게 영적인 누룩이시다. 반죽 속의 누룩이
겉모양이 아니라, 그 능력으로 반죽을 능가하듯이 그리스도께서는
하느님으로서 모든 인간들을 능가하신다. 복음에 나오는 여인은
교회를 의미한다. 우리는 이 여인의 반죽이며, 여인은 하늘 지혜의
빛이 우리의 영을 속속들이 모두 덮을 때까지 우리 마음속 깊숙한
곳에 주님을 숨겨둔다.
우리 인간의 뜻과 욕망이 성령을 거스르지 않고, 성령께서 바라시는
것이 육을 거스르지 않을 때(갈라 5,17 참조), 우리 안에 변화, 즉
발효가 일어난다. 우리가 하느님의 뜻에 반대되는 행위를 죽이면
(로마 8,13 참조), 우리는 하느님의 숨을 통해 생명의 숨을 얻었음을
알게 되어, 주님의 뜻을, 주님의 말씀을 잘 실천하고, 하느님의 일을
선택하여 살게 될 것이다.
- 수원 교구 조욱현 토마스 신부 -
◈ [기타] 10월 30일 (화) - 예수님의 마음을 품은 성도
오늘은 “예수님의 마음을 품은 성도”에 대해서 은혜의 시간이
되겠습니다.
빌립보서 4장 2절 말씀에 “내가 유오디아를 권하고 순두게를 권하노니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오늘 이 말씀에서 유오디아는 빌립보에 사는 한 여 성도로서 빌립보
교회의 불화의 원인인 순두게에게 예수 안에서 예수님의 낮아짐을
본받아 사랑과 겸손으로 하나가 되라고 권면을 합니다.
유오디아와 순두게는 같은 여자 성도이면서 서로 늘 지나친 경쟁으로
바울의 걱정거리가 되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들에게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한마음이 되라고
권면합니다. 교회생활 중에 가장 힘든 부분이 예수님이 기뻐하는 일을
하는 성도가 되지 못하고 사람을 의식함으로 인하여 파생하는 수많은
문제들이 주위에 참 많지 않습니까?
유오디아의 이야기를 들으면 딱 맞는 이야기라고 하는데 순두게의
이야기를 들으면 더더욱 맞는 이야기라고 하게 됩니다. 참 이상하게도
둘이 만나면 물과 기름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결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 아닙니다.
서로가 부족해도 하나 되는 마음일 때 주위에 보는 사람이나 지도자는
참 든든하지요. 든든한 성도가 되겠습니까?
조마조마한 성도가 되겠습니까? 할렐루야!
- 인천 부평 사랑밭 교회 권태일 목사 -
◈ [청주] 소리없는 변화|반신부의 복음 묵상
2018년 나해 10월30일 연중 30주간 화요일 (루카13,18-21)
소리 없는 변화
“하느님 나라는 무엇과 같을까? 그것을 무엇에 비길 수 있을까?”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나라는 겨자씨와 같고, 누룩과 같다고
말씀하십니다. 왜 겨자씨와 누룩과 같다고 하셨을까? 겨자씨는 씨
중에서 가장 작은 씨입니다. 오늘 그 씨를 보여드립니다. 얼마나
작은지 보십시오. 그런데 겨자씨가 자라서 큰 나무가 되고 새가
깃들만큼 우거집니다. 누룩 역시 밀가루 반죽 속에서 아주 작은
부분을 차지할 뿐입니다. 누룩도 밀가루 양에 비해서 아주 보잘 것
없을 만큼 적은 양이지만 밀가루 반죽에 들어가서 밀가루 전체의
성질을 변화시킵니다.
마찬가지로 한 사람의 역할이 중요합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인
한 사람이 내 삶의 자리와 머무는 곳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믿음을
가진 우리 한사람, 한 사람이 겨자씨와 누룩의 역할을 해야 합니다.
내가 바로서면 지금은 미약하지만 분명 큰 변화를 가져올 것입니다.
한 사람이 참으로 중요합니다. 한 사람이 큰 나무 역할을 하게 될 때
얼마나 많은 사람이 그 그늘의 고마움을 느끼게 될런지요.
콩나물을 키울 때 콩나물에 물을 부으면 물이 다 빠져나갑니다.
하지만 콩나물은 크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성장과 변화는
드러나지 않게 이루어집니다. 실망과 좌절 안에서도 여전히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예기치 않은 역경과 시련도 믿음의 사람에게는
은총의 기회요 희망입니다. 따라서 순간순간을 감사해야 합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예수님의 활동을 통해서 드러나게 되었는데 아직
완성되지는 않았습니다. 이미 왔는데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는 것이
우리에게는 천만다행입니다. 왜냐하면 완성에로 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의 삶은 시작과 완성 사이의 긴장
안에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마음속을 스쳐가는 순간순간의 생각,
꿈같이 왔다 갔다 하는 우리의 상상, 마음 속 깊이 숨은 티끌 같은
비밀 하나까지 하느님의 전지전능하신 눈앞에 숨겨져 있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성 아우구스티노).
그러므로 정신을 바짝 차려 깨어 있어야 합니다. 사도 바오로도
말합니다. “하느님께서는 각 사람에게 행실대로 갚아 주실 것입니다”
(로마2,6). 이 말씀은 믿는 이들에게는 두려움 보다는 기대의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겨자씨의 비유를 통해서 성장을, 그리고
누룩의 비유를 통해서 자연스런 변화를 말해줍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주님의 가르침이 마음 안에 새겨져서 자연스런 삶의 변화를 통해
증거 될 것입니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하느님나라가 언제 오겠느냐는
바리사이파 사람들의 질문을 받으시고 “하느님 나라가 오는 것을
눈으로 볼 수는 없다. 또 ‘보아라, 여기 있다’ 혹은 ‘저기 있다’라고
말할 수도 없다. 하느님 나라는 바로 너희 가운데 있다”(루카17,21)
고 하셨습니다.
결국 지금 내가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삶을 살고 있다면 이미 하느님의
나라가 내 안에 성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일을 하든지
따지지 마십시오. 자동차 운전을 하든지, 부엌일을 하든지, 짐을
나르든지 상관없이 마치 사제가 성체를 모시고 가듯이 하십시오. 매
순간마다 이렇게 ‘천국을 위하여 일하십시오”(알베리오네). 내 삶의
자리를 하느님의 나라로 만드는 하루가 되기를 희망합니다. 미룰 수
없는 사랑에 눈뜨기를 희망하며 더 큰 사랑으로 사랑합니다.
@@@ 유다교 랍비와 신부님이 만났습니다. 신부님이 말했습니다.
“어제 밤 꿈에 유다교의 천국을 보았는데 너무 지저분해서 가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은 없고 유다인들만
우글거리고 있더군요.”
그러자 랍비가 말했습니다. “그래요? 나도 간밤 꿈에 천주교인들의
천국을 보았지요. 밝고 화사하고 꽃이 만발한 너무도 아름다운
곳이더군요. 그런데 이상한 것은 아무리 찾아보아도 사람이 눈에 띄지
않더라구요”. @@@ 알아들을 귀가 있는 사람은 알아들으십시오.
- 청주교구 반영억 라파엘 신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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