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자, 고속도로 옆 50m는 비워놔”
1968-70년은 내가 고등학교 2,3학년이었다. 고속도로건설 현장과 가까이 집이 있어서 인근 주막에 건설 노동자들이 자주들러 막거리를 마시고 가는 모습을 보았다.
"야, 저 고속도로 포장은 말이야, 100미터에 10미리 오차정도만 허용할 정도야. 그래야 시속 100킬로로 달려도 차가 흔들리지 않지."
건설현장에 십장이라는 사람이 호기롭게 말했다. 시속 100킬로이면 초당 약 30미터를 나간다니 비포장도로에 먼지나고 털털거리는 시골버스만 타본 나로서는 신기하게 들렸다. 당시에 자금이 부족해서 4차선 도로로 건설되었지만 박대통령은 50년후를 내다보고 주변에 여분의 건설부지까지 미리 확보해 놓았다.
고속도로가 건설되던 1968-1970년 당시의 대한민국은 전형적인 후진국이었다. 1961년 5.16 군사혁명후에 경재개발5개년 계획이 추진되고 있었지만 1인당 국민총생산(GNP) 142달러, 연간 수출액은 3억 2,000만 달러였다. 지금은 하루에 20억달러를 수출하고 있으니 반나절치도 안되는 미미한 숫자이었다. 고속도로 완공후 10년만에 산업화에 속도가 붙고 수출이 늘어 1970년대말에 대망의 수출 100억달러, 국민소득 1천불을 달성할 수 있었다.
1967년 우리나라 차량 대수는 6만대에 불과했고, 1969년까지 도로 포장률은 8%밖에 되지 않는 실정에 대도시조차 포장도로도 흔하지 않던 시기에 고속도로 건설은 생뚱맞은 계획이었다. 도대체 누가 차를 몰고 고속도로를 달리겠느냐고, 누워서 다행이지 세워 놓았다면 와우아파트처럼 무너질 것이라고 반대가 극심했다. 박정희 대통령은 관광용 도로가 아니라 진짜 산업고속도로, 미래를 위한 국가대동맥건설을 구상했다. 그는 독일 시찰중에 고속도로가 산업화의 요체임을 보았다. 그러나 돈이 없었다
한일 국교정상화로 경협자금 마련
전후 일본의 부흥을 지켜본 박대통령은 굴욕외교라는 비판을 감수하고 한일회담을 성사시키고 5억달러를 받아왔다. 5억달러는 당시 일본 외화보유고 16억달러의 1/3이었다. 검은 돈 힌돈 가릴 처지가 못되었던 박대통령은 월남파병으로 벌어들인 돈을 경제개발에 투자했다. 경부고속도로 건설자금 429억원의 대부분은 한일국교정상화 댓가로 받아온 대일청구권 자금이었다. 그래도 부족한 재원을 채우기 위하여 휘발류세, 통행세를 올리고 도로공채까지 발행하는 그야말고 영끌 건설자금을 만들었다.
외화벌이의 첨병 정주영 회장
고속도로 건설경험은 정주영 회장의 현대건설이 유일했다. 그덕분에 박대통령한테 정회장이 자주 불려 다녔다. 나머지는 단순토목공사나 하는 수준이었다. 태국의 파타니-니라티왓 고속도로를 수주해 완공(1968년 3월)한 경험으로 경부고속도로 건설구간의 40%를 담당하고 나머지는 대림산업, 동아건설, 삼부토건, 삼환기업, 아주토건, 대한전척등 주 시공사와 군소건설사 등 총 15개사에 군 공병단까지 달라 붙었다.
건설사들은 이때의 건설경험으로 실력을 쌓아 사우디 고속도로 건설등 중동건설붐에 참여할 수 있었다. 현대건설은 20세기 최대의 공사라는 사우디 쥬베일 산업항만 공사를 단독으로 9억3천만 달러에 수주하여 중동신화를 창조해 냈다. 80년대에 수출역군으로 중동사막을 누비고 다닐때 고속도로 옆에 세워놓은 ICC, 삼부토건, 삼환기업등 입간판은 나의 향수를 달래 주었다.
국가총력전으로 수행하는 고속도로 건설의 최고 사령관은 박대통령이었다. 수시로 헬기를 타고 건설부지를 시찰하러 다녔다. 현장 사령관은 대통령의 특명을 받은 정주영 회장이었다. 그는 야전천막에서 날밤을 세우기 일쑤일 정도로 열성적으로 추진했다. 그 덕분에 산지가 70%인 나라에 말이 고속도로이지 굴곡지도 만들고 터널도 뚫고 하면서 공사를 완공해냈다. 난공사에 77명의 인명도 희생됐다. 박대통령의 지시로 충북 옥천군 금강휴게소 인근에 '경부고속도로 순직자 위령탑'이 세워졌다.
영웅을 잊어버린 나라
정치논리에 눈이 먼 지금 대한민국은 그 두분의 영웅들을 잊어 버렸다. 한분은 군부 독재자로, 한분은 타도해야할 재벌의 대명사가 되었다. 고속도로 건설에 극렬하게 반대하던 자들은 민주화의 영웅이 되어 평화재단에 컨벤션센타까지 만들어 기념하고 있다. 박대통령은 그 흔한 기념관 하나없이 고향 구미에 초라한 생가만 남아있다. 옛날 같았으면 국가 사당을 지어 재신으로 추모해도 충분한 근대화 산업화의 영웅이다. 그분들의 애국심과 열정이 있었기에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다.
박정희 국제공항을 만들자
새로 건설하는 국제공항이 있다면 '박정희 공항'으로 이름을 지어 기념해도 좋을 것이다. 세계로 비상하는 대한민국의 관문 인천 국제공항을 박정희 공항으로 바꿔도 좋를 법하다. 울산시는 현대 정주영시로, 중화학 제철공업을 육성한 박대통령의 업적을 기려 포항제철을 박정희 제철로 바꾸면 어떨까?
북한은 김책공대, 김책시를 만들었다. 김일성 종합대학도 있다. 미국 워싱턴에는 내셔날 공항을 개명한 레이건 공항이 있고, 뉴욕에는 게네디 공항이 있다. 대만에도 장개석 국제공항이 있다. 장총통 지시로 국부 손문 기념관도 지었다. 대만 국립박물관의 명칭은 손문의 아호를 딴 중산 박물관이다. 미국 워싱턴에는 국회의사당을 마주보고 고대 그리스 신전처럼 지은 국부 링컨 기념관이 있다.
박정희 대통령이 일으킨 나라에 박정희가 없다. 그분이 있어야할 자리에 객들이 기웃거리고 있다. 영웅을 기릴줄 모르고 박대하는 나라에 누가 영웅이 되어 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