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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國이 보관중인 朝鮮時代 寫眞 1880년대 당시의 남대문 1880년대의 남대문 중앙로 조선시대의 길거리를 가운데 두고 늘어선 초가집 1931년 박흥식(朴興植)이 서울 종로(鍾路)2가에 세운 "화신 백화점" 1988년 재개발 사업으로 철거되어 1999년 그 자리에는 미국 건축가 설계로 "삼성 종로타워"가 들어섰다. 1935년 서울 남대문 왼족의 상업은행과 오른쪽 중앙 "레토크림" 평양에서 영업중인 왕복 노면전차 -운임 5전- 1942년 흥남공업 도시 조선 질소비료공장 . 일본 마그네슘 . 조선광업 등 수풍 댐 수력 발전소 일제 강점기인 1937년에 만주국과 조선의 전력확보를 위해 건설이 개시되었다. 건설된 것은 압록강하류의 평안북도 신의주부터 80 km지점의 한만국경(현재는 중.북 국경). 총공비는 약 5억엔이다. 태평양전쟁이 한참인 1944년 3월에 수풍수력 발전소(발전 능력 60만 kW)와 함께 준공했다. 1940년 당시의 일본내의 수력 발전 규모가 280만 kW와 비교해도 그 크기는 용이하게 비교할 수 있다. 전쟁 당시인 1945년 8월 9일 소련군이 침공하여 총 7기의 발전기중 5기를 약탈해 갔다. 약탈된 발전기는 카자흐스탄 공화국, 이리티슈 카와카미류의 댐에서 확인되었다. 1940년 당시 조선을 대표하는 호텔 "조선호텔" 무용가 崔承喜의 모습 고종 황제 대한제국 황궁인 덕수궁 석조전에서 촬영한 황실가족 사진. 왼쪽부터 영친왕, 순종, 고종황제, 순정효황후, 덕혜옹주
1897년10월12일 고종의 황제 즉위를 축하하는 덕수궁 대한문(대안문) 앞은 백성들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고종황제의 장례행렬 1919년 1월21일 덕수궁 함녕전에서 고종황제가 승하했다. 갑작스런 그의 죽음을 둘러싼 독살설은 전국으로 퍼져 3.1운동의 기폭제가 된다. 1919년 19살의 영친왕비 이방자(1901~1989) 여사와 진왕자가 탄생했을 때의 영친왕 부부. 덕수궁 석조전에서 영친왕(가운데)의 모습 영친왕비 이방자(1901~1989) 여사의 일본친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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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었던 조선시대 아낙네들의 대담한 모습
당시 양반계급의 여성이 외출 때의 모습 노점상, 비녀를 비롯하여 면빗, 얼레빗, 참빗들이 꽈배기 장수의 청년과 소년 경복궁의 서문인 영추문의 붕괴사고 장면 원인은 영추문 바로 옆을 종점으로 하여 운행된 전차의 진동 때문인 것으로 밝혀졌다. 독뚜껑위에 자배기를 지게에 교묘하게 올려놓았다. 이 당시에는 자배기와 독뚜껑은 특히 여인들이 잘 깨뜨리는 그릇이었다. 닭을 어리에 넣고 짊어지고 팔러 다니는 닭장수 옹기그릇 시장 한강 용산 나룻터 참숫 팔러 가기 1900년 무렵의 조선 호랑이 사냥군들
평양의 장터 길 일본의 조선 철도 기공식 당시 신작로가 전부였던 조선에 일본인들에 의해 조선반도 곳곳에는 급속히 철도가 부설되기 시작했다. 천하 대장군과 천하 여장군 기생의 나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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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귀한 자료를 주셨네요.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130여년 전의 모습이라 참 많이도 변했습니다요.
신기하고 귀한 사진들 잘 보았습니다.
옛 우리나라의 귀중한 사진을 보고 많은 생각이 스쳐가게 됩니다.
다양한 우리선조님들의 모습들입니다.
무용가 최송희님두 있네요.
오랜옛날 귀한 사진 잘 보고 갑니다.
좋은 자료입니다만 다만 당시 여인네들 왜 젖가슴을 내놓고 다니는지 이해가 안가요.
아들 낳은 것을 자랑 하너라 그렇다고 하네요,
아들 낳은 것을 자랑 하너라 그렇다고 하네요,
한국사회의 빠른 발전을 실감나게 하는 사진이군요.%%
한국여인들?.....그 땐 대담해서도 아니고 섹시해서도 아니고 웃저고리의 기장이 짦은게 유행이었던 탓일겝니다.ㅋㅋ
허허 저런 사진이 어디서 나왔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