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넥스 티슈 외 2편
정성희
각티슈 두 장이
오월 햇살로 눈부신
그늘 하나 없는 심심한 공터를 뒹굴고 있다
마치 사랑 놀음 하듯 붙었다 떨어졌다
한 몸 되어 한 방향으로 뒹굴다간 떨어져
서로 어긋난 방향으로 달아나듯
낮게 날다 멈추었다간 또 만나 함께 뒹굴고 결국은
바람에 떠밀려 바람의 방향으로 움직인다
면밀히 지켜보니
우리네 삶이 얼비친다 그러하기에
떠돌다 어느 한 계기로 가시에 걸려 혹은
양지바른 언덕에 닿아 자리 잡게 될 때까지
겹겹 장애물이 앞을 가로막더라도
혼자보다는 이왕이면 둘이 한 몸으로 엉겨
활발하게 사랑하며 넘어보라고
주례사 읊듯 조용히 생각을 얹어보는 순간
껑충껑충 바빠진 한 생이 내 머릿속에서
바람의 급물살을 타고
족보에 한 획을 그으며
행진곡에 맞춰 먼 길 떠날 채비를 한다
공터에 널브러져 길게 누웠던 고요가
눈부신 하객 되어
일제히 손뼉 치며 일어선다
사라진 말씀들
시어머니 선산에 묻던 날
오늘 쉬는 날이제?
안 올래? 출발했나?
너그는 조상도 없나?
너그는 더 자고 가그라이
네 맛 내 맛도 없네
면전에서 혹은 전화선을 타고
나를 불편하게 했던 말씀들
시어머니 한 생이 흙에 묻히던 날
함께 묻혔다
듣는 내내 억울하고 속상했지만
단 한 번도 대들거나 변명조차 해보지 못했던
시어머니 말씀들
어쩌면 머지않아 나는
저 말씀들을 그리워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사라진 것들은 언젠가 그리워하기 마련이니
개누므 새끼들
할아버지는 오늘도 정치인 싸잡아 개누므 새끼들이다
한 달에 한 번꼴로 오시는 할아버지 연세는 여든둘
목포에서 울산으로 고등어 운반 일을 하시는 할아버지는
일단 가게에 오시면 신문부터 읽으신다
할아버지께서 읽으시는 신문에는
행간마다 개누므 새끼들이 들어 있기라도 한 걸까
후렴구 읊듯
에라 잇 개누므 새끼들 개누므 새끼들 하시는데
그 목소리가 어찌나 거칠고 크던지
행여 이웃이 우리하고 싸우는 줄 알까 봐
개누므 새끼들이 여간 귀에 거슬린 게 아니었다
오늘도 사무실 들어오시자마자
TV 뉴스 채널 틀어놓고
여러 번 개누므 새끼들 하시더니
신문을 펼쳐 들고 앉으시고는
정치인들 싸잡아 얼굴에 똥칠이라도 하겠다는 듯
손가락 끝에 침 꾹꾹 눌러 묻히고
에라 잇 개누므 새끼들이다
촛불 집회로 정권이 바뀐 때나 지금이나
별반 다를 게 없는 현실에 맞닥뜨리고 나니
할아버지의 개누므 새끼들이 시원하다
속으로 따라 해본다
(에라 잇 개누므 새끼들)
― 정성희 시집, 『사라진 말씀』 (문학의전당 / 2022)
정성희
경북 영천에서 태어나 2005년 《모던포엠》 신인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 저서로 6인 동인지 『한 그루 나무를 심다』 『궁궁이』 등이 있다. 현재 〈비익조〉 동인과 울산작가회의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