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상도 가시나들
“가시나 또는 가시내”라는 말은 경상도, 전라도, 충청도 권에서 주로 사용되는 젊은 여자애들을 지칭하는 말이다. 흔히들 비속어로 알고 있지만 비속어가 아니라 사투리일 뿐이라고 한다. 이 “가시나 또는 가시내”의 어원에 관해서는 여러 설이 있다.
첫째로 가장 유력한 설은 여자를 뜻하는 “각시”라는 말이 있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연음화되고 언제부터인가 끝말에 “니내들/니네들”처럼 복수를 의미하는 “내”가 붙어 가시내가 되었다는 설이다. 특히 “확실히”를 “학실히”로 발음하는 경상도 사람들은 “아”발음을 좋아하기 때문에 “가시나”로 부른다는 것이다.
둘째로 신라의 화랑들 중 처녀들로만 구성된 화랑집단을 “가시나”라고 불렀는데 그 말이 일반적인 여성들을 아우르는 말로 확대되었다는 설이다. 이와 관련된 이야기가 하나 있다. 옛날에 아주 짖궂고 씩씩한 여자아이가 있었다. 돌팔매로 산토끼를 잡고, 펄펄 뛰는 황소 등에 사뿐히 올라타는 여자아이였다. 그때 나라에 전쟁이 나고 그 여자아이는 남정네들처럼 자기도 싸우겠다며 군대를 거느린 장군 앞에서 자신의 활 솜씨와 돌팔매 솜씨를 보여 주었지만 혼만 나고 쫓겨났다. 하지만 전쟁이 아군에게 불리하게 돌아갔을 때 어디선가 나타난 갓 쓴 어린 장수가 전세(戰勢)를 역전시키게 되었다. 그래서 병사들은 “갓쓴 애”를 연호하며 칭송하였다. 그 “갓쓴 애”가 바로 전쟁에 자원하고 나섰던 여자아이였다고 한다. 그때부터 젊은 여자아이를 “갓쓴애”라고 부르기 시작했고 세월이 흐르면서 연음화되어 “가시내”가 되었다는 것이다.
셋째로 행주대첩 때 생긴 말이라는 설이다. 왜(倭)는 중국 명나라로 가는 길을 내어달라는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내세워 조선을 침략해 왔고 어느덧 행주산성까지 포위했다. 그 당시 권율 장군은 겨우 2,300여 명의 군사를 이끌고 행주산성을 지키고 있었다. 그러나 왜군은 3만 명이 넘었다. 수적으로 도저히 이길 수 없는 싸움이었다. 권율 장군이 어떻게 하면 적은 수의 병사로 수많은 왜군을 물리칠까를 궁리하며 고민에 빠져 있었을 때 막사 밖에서 “장군님, 저희도 싸울 수 있게 해 주세요.”하는 여인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권율 장군이 “티끌 모아 태산이라 했듯 작은 힘이라도 모이면 큰 도움이 될 것”이라며 그 여인들을 받아들였다. 드디어 왜군들이 몰려오기 시작하자 권율 장군은 총공격을 명령했다. 여인들은 긴 치마를 짧게 잘라 입고 돌을 날랐다. 이에 병사들도 힘을 얻어 죽을 각오로 싸운 결과 10배가 넘는 왜군을 물리치고 승리를 거두었다. 바로 그 행주대첩에 힘을 보탰던 여인들을 “가사내”라고 불렀는데 세월이 흐르면서 연음화되어 “가시내”가 되었다는 설이다.
넷째로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의 대첩과 관련이 있다는 설이다. 이순신 장군은 명량대첩, 옥포대첩, 한산대첩 등, 대첩이 있을 때마다 아군의 병사가 적을 물리칠만큼 충분히 많다는 사실을 적군에게 알려 적의 사기를 꺾기 위해 밤마다 산등성이에 남장을 한 여인들이 횃불을 들고 오가게 했다고 한다. 그렇게 왜군을 깜짝 놀라게 하여 사기를 꺾은 뒤 여러 대첩에서 왜군을 전멸시켰다는 것이다. 이순신 장군의 이런 전략도 뛰어났지만 그렇게 적군의 사기를 꺾는 데 한몫을 했던 가짜 사내들을 “가사내”라고 불렀는데 훗날 그 발음이 연음화되면서 “가시내, 가시나”가 되었다는 것이다.
특히 이순신 장군의 한산대첩과 김시민 장군의 진주대첩은 임진왜란을 승리로 이끈 가장 중요한 대첩으로서 경상도 여인들의 뒷바라지가 큰 몫을 했다고 한다. 그때부터 경상도 여인들이 “가시나”의 주인공으로 떠올랐고 그 결과 지금까지 사내처럼 우악한 말괄량이 여인들을 “경상도 가시나”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경상도 가시나들”은 위기에 강한 여자, 당돌한 여자, 우악한 여자이면서도 집안과 나라가 위기에 처하면 앞장서는 여자들이라는 참으로 좋은 의미를 지니고 있는 말이라 하겠다. 이쯤되면 “경상도 가시나들”은 충분히 자부심을 가져도 좋을 가시나들임이 틀림없을 것이다. 경상도 가시나들, 멋진 가시나들, 환영합니다. 짝짝짝...
ㅡ 옮긴글 ㅡ
Daum 메일앱에서 보냈습니다.
첫댓글 할매가 아닌 경상도 가시나라면 얼마나 좋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