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해안의 너른 바다 위로 아침 태양이 둥실 떠오른다. 윤슬이 바다 위에 찬란히 부서지고 태양을 독대한 채 한 남자가 아우라에 둘러싸여 바닷물에 발을 담그고 미동도 없이 태양 앞에 우뚝 서 있다. 천천히 제법 먼 모래밭을 걸어 아우라에 둘러싸인 그의 뒤에 멀찍이 섰다. 해안까지 드리워진 그의 그림자가 가슴 끝에 닿아 그가 나인 듯 내가 그인 듯 빙의되어 한참을 그의 그림자 끝자락에 서 있었다.
아름답다. 황홀하다. 장엄하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신과 무언의 독대를 하는 건가?
가족여행 중이다. 이른 아침에 잠에서 깨어나 베란다에 나가니 끝없이 펼쳐진 바다가 벅차게 가슴에 와닿는다. 서둘러 채비하고 바다를 만나러 길을 나섰다. 한참을 걸어가도 해안가가 나타나지 않는다. 제법 차가운 날씨가 버거워 돌아갈까 말까 망설이는데 한쪽 마음이 "그래, 포기하고 돌아가자" 속삭인다. 또다른 마음이 "포기하면 안 돼. 조금 더 가면 나타날 수도 있잖아" 한다. 포기를 말리는 마음을 단단히 부여잡고 발길을 옮긴 지 몇 분 후, 놀랍게도 해안가가 짠 하고 펼쳐지고 거대한 태양과 물아일체가 된 남자가 눈 앞에 영화 장면처럼 펼쳐져 있는 게 아닌가! 짜릿하다.
갑자기, 절실한 것도 힘껏 잡지 못하고, 상황에 밀려 원하는 것을 힘없이 놓아 버린 일들의 대가를 톡톡히 치르며 걸어온 나약했던 지난 삶이 가슴을 툭 건드린다. 이른 포기로 놓친 것이 어찌 한둘일까! 포기하지 않고 기어이 바닷가를 찾아온 오늘의 날 칭찬한다.
아우라에 휩싸여 있는 남자의 끝자락에 서서 눈앞에 펼쳐진 장면을 한 껏 팔을 벌려 품에 안았다. 가슴속으로 바다가 들어왔다.
양희자 aurea7@hanmail.net 부지런한 다람쥐처럼 일 년 내내 가꾼 농산물을 갈무리해두고 마음의 부자가 되어 겨울을 지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