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창조주가 선물한 세상 원문보기 글쓴이: 박종태목사
여호와를 경외하라 (시 34:7-14)
오늘 봉독한 성경은,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아가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일인가에 대해 교훈하신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경외(敬畏)한다는 것을, 한자로 설명하는 것이 더 쉽게 이해가 될 것 같습니다.“공경할 경(敬)”“두려워할 외(畏)”자를 쓰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섬기되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공경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공경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이 무서워서 두려워한다는 의미만이 아닙니다. 여호와는 우주와 만물을 창조하시고 다스리시는 너무도 크고 위대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죄인인 우리에게 상상할 수 없는 크나큰 은혜를 베푸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섬기되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하나님을 공경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왜 하나님을 경외해야 하는지 그 이유에 대해 구약성경 전도서 12장 13절에 밝히시기를“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니라.”하셨습니다. 본분이란 말의 성경원어의 의미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사람의 모든 것”이라는 뜻으로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사람이 행할 의무 전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삶의 모든 것이라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이 삶의 일부분이 아니라 삶의 전체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한 가지의 의미는“모든 사람”이라는 뜻으로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모든 사람이 행할 의무라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모든 사람이 여호와를 경외해야 합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삶의 일부분이 아니라 삶의 전체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모든 인간은 하나님을 경배하는 존재로 지음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사야 43장 7절에 말씀하시기를“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를 내가 지었고 그를 내가 만들었느니라.”하셨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지음을 받은 존재라는 것입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경외하도록 하기 위해 지음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온 마음과 온 정성을 다해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사람이 마땅히 행해할 본분인 것입니다.
一. 여호와를 경외하는 방법은 무엇이겠습니까?
여호와를 경외하는 방법에 대하여 본문 10절에 이어 11절~14절에 말씀하시기를“너희 자녀들아 와서 내 말을 들으라 내가 여호와를 경외하는 법을 너희에게 가르치리로다 생명을 사모하고 연수를 사랑하여 복 받기를 원하는 사람이 누구뇨 네 혀를 악에서 금하며 네 입술을 거짓말에서 금할지어다 악을 버리고 선을 행하며 화평을 찾아 따를지어다.”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에서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의 삶의 방법 2가지를 밝히고 있습니다.
첫째, 혀를 악에서 금해야 합니다.
본문 13절에“네 혀를 악에서 금하며 네 입술을 거짓말에서 금할지어다.”라고 했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입을 조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의 삶에 대해 왜 혀에 대해 말씀을 하셨을까요? 인간은 철저하게 타락했고, 그 타락이 입술을 통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타락한 인간의 입술에 대해 로마서 3장 10절~18절에 기록하시기를“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으며 깨닫는 자도 없고 하나님을 찾는 자도 없고 다 치우쳐 함께 무익하게 되고 선을 행하는 자는 없나니 하나도 없도다 그들의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일삼으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 그 발은 피 흘리는 데 빠른지라 파멸과 고생이 그 길에 있어 평강의 길을 알지 못하였고 그들의 눈앞에 하나님을 두려워함이 없느니라.”하셨습니다. 타락한 인간의 입술은“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일삼으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라고 하셨습니다. 이처럼 추하고 더러운 입술로는 여호와를 섬길 수가 없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사람은 입술로 찬송을 부릅니다. 입술로 기도를 드립니다. 입술로 감사의 뜻을 나타냅니다. 그러므로 입술을 주의하지 아니하면 여호와를 경외할 수가 없습니다.
입술이 타락한 사람은 하나님에 대하여 원망을 일삼습니다. 광야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에 대한 원망과 불평을 일삼았던 광경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그들만의 이야기가 아닙니다. 우리 모두의 거울입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이 광야와 같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받은바 은혜를 쉬 잊었습니다. 하나님이 나타내신 기적을 눈으로 보고도 곧 잊었습니다. 하나님이 애굽에 내리신 열 가지 재앙을 보았습니다. 홍해를 가르신 전무후무한 기적도 체험을 했습니다. 하늘에서 날마다 내려주시는 기적의 양식인 만나를 40년간 먹었습니다. 마실 물이 없어 애태울 때 반석에서 샘물이 나는 기적도 체험했습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의 기적을 곧 잊었습니다. 그들은 현재의 작은 어려움만 바라보며 원망과 불평을 일삼았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원망과 불평은 그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고 낙심으로 이어졌습니다. 낙심한 그들은 떠나온 애굽을 그리워하며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야단을 쳤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배신하고 우상까지 만들어 섬겼습니다. 이러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끝내 하나님으로부터 저주를 받아 가나안 복지에 들어가지 못하고 모두가 광야에서 죽었습니다. 이 모두는 그들의 입술의 결과였습니다.
또한 입술이 타락한 사람은 남에 대해 비판과 험담을 일삼습니다. 마태복음7장 1절~5절 말씀에“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보라 네 눈 속에 들보가 있는데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하겠느냐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어라 그 후에야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서 티를 빼리라.”고 하셨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고치기 힘든 습관은 불평과 불만을 토하며, 남을 헐뜯는 입술의 악습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여호와를 경외하는 성도는 입술을 조심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향해 원망하거나 불평하는 것이 아니라 범사에 감사해야 하는 것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성도는 이웃에 대해 흉보며 헐뜯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덮어주는 것입니다. 우리의 억만 죄악을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로 덮어주셨기 때문입니다.
야고보서 3장 8절~12절에 타락한 인간의 입술에 대해 말씀하시기를“혀는 능히 길들일 사람이 없나니 쉬지 아니하는 악이요 죽이는 독이 가득한 것이라 이것으로 우리가 주 아버지를 찬송하고 또 이것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사람을 저주하나니 한 입에서 찬송과 저주가 나오는도다 내 형제들아 이것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 샘이 한 구멍으로 어찌 단 물과 쓴 물을 내겠느냐 내 형제들아 어찌 무화과나무가 감람 열매를, 포도나무가 무화과를 맺겠느냐 이와 같이 짠 물이 단 물을 내지 못하느니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본문인 시편 34편 12절~13절에 말씀하시기를“생명을 사모하고 장수하여 복 받기를 원하는 사람이 누구뇨 네 혀를 악에서 금하며 네 입술을 거짓말에서 금할지어다.”라고 하셨습니다. 타락한 입술로는 여호와를 경외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둘째, 선을 행하며 화평을 따르라 하셨습니다.
본문 14절에“선을 행하며 화평을 찾아 따를지어다.”라고 하셨습니다. 선을 행하는 것이 여호와를 경외하는 성도의 삶이라는 것입니다. 선이란 사랑의 실천입니다. 사랑은 말로서도 가능하지만 선은 말이 아닌 행동입니다.
디모데전서 6장 18절~19절에 말씀하시기를“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을 많이 하고 나누어 주기를 좋아하며 너그러운 자가 되게 하라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하셨습니다. 선을 행하는 것이 지금 당장은 내 수중에서 돈이 나가고 내 소유가 줄어드는 것처럼 보이지만 장래에 삶의 터전이 된다는 것입니다. 장래란, 내 생애의 훗날일 수가 있고, 자녀들에게 나타날 수가 있고, 하늘나라에서 갚아주시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선은 결코 낭비가 아니라 가장 좋은 투자입니다.
주기철 목사님이 시무하시던 산정현교회에 유계준 장로님이라는 훌륭한 장로님이 계셨습니다. 그 분은 참으로 모범적인 장로님이었습니다. 유장로님은 염전사업과 목재사업을 해서 돈을 잘 벌었습니다. 그는 얻어진 소득으로 교회를 헌신적으로 받들어 섬기며, 십일조 생활은 물론이며, 주의 종들을 잘 받들어 섬겼습니다. 이 장로님은 특히 순교자의 가족들을 잘 돌아보다가 결국 자신도 순교를 당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유계준 장로님께서 뿌린 사랑과 헌신의 씨앗에 풍성한 축복의 열매가 맺히도록 하셨습니다. 장로님은 여덟 명의 아들을 두었는데, 첫째 아들인 유기원 박사는 전 메디컬센터 원장이었습니다. 둘째 아들, 유기형 박사도 치과의사였고, 셋째 아들, 유기선 박사도 역시의사였고, 넷째 아들, 유기천 박사는 서울대 법대 학장이었고, 다섯째 아들, 유기진 박사도 의사이고, 여섯째 아들, 유기옥 박사도 의사였습니다. 일곱째 아들, 유기숙 박사도 의사이고, 여덟째 아들, 유기묵 박사도 의사입니다. 유계준 장로님의 자손들 가운데 108명이 의사, 박사, 교수들이라고 합니다. 이처럼 부모가 선한 씨앗을 심으면 그 후 들이 축복의 열매를 거두게 됨을 알 수 있습니다.
선을 행하는 사람의 마음가짐에 대해 갈라디아서 6장 9절에 말씀하시기를“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하셨습니다. 어디서 어떤 열매를 맺을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래리 슈트어트’라는 한 노숙자가 캔자스시티의 한 식당 앞을 서성이다가 배고프니 먹고 보자는 심보로 식당에 들어가 음식을 시켜 허겁지겁 정신없이 다 먹었습니다. 돈이 없는 그는 어떻게 식당을 잘 빠져나갈까를 궁리하고 있었는데 그를 지켜보던 주방장이 그에게 다가와 당신이 흘린 돈을 바닥에서 주었다며 20달러를 손에 쥐어 주었습니다. 이 사람은 주방장의 따뜻한 마음에 용기와 희망을 얻으며“나도 돈을 벌면 어려운 이웃을 도우리라”고 결심 했습니다. 그 후, 그는 많은 어려움을 극복하고 장거리 전화 사업과 케이블 TV사업으로 크게 성공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어려울 때 자신을 도왔던 주방장을 떠 올리며‘비밀 산타’가 되어 불우한 이웃을 돕기 시작 했고 그의 이러한 자선 활동은 많은 사람들을 감동시켜 미국 전역에 수많은 비밀 산타들이 생겨나 어려운 이웃을 돕는 일에 동참하고 있습니다. 하루하루 절망 속에 살아가던 노숙자에게 20달러는 돈보다는 커다란 희망이 되어 그에게 다가와서 그가 절망의 늪에서 벗어날 수 있는 용기와 힘이 되어 주었습니다.‘래리 슈트어트’는 20달러의 사랑의 빚을 갚기 위해 비밀 산타가 되어 130만 달러나 되는 돈을 어려운 이웃을 돕는데 썼다고 합니다. 나의 작은 선행이 절망의 늪을 헤매는 자에게 구원의 등불이 될 수 있고, 커다란 용기로 환란을 극복할 수 있는 디딤돌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선행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성도가 마땅히 행해야 할 도리인 것입니다.
또한 여호와를 경외하는 사람은 화평을 도모해야 합니다. 본문 14절에“선을 행하며 화평을 찾아 따를지어다.”라고 하셨습니다. 화평에 대해 예수님꼐서 마태복음 5장 9절 말씀하시기를“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라고 하셨습니다. 화평을 도모하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된 증거라는 것입니다. 만일 화평하지 못하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자녀라 부름 받을 자격이 없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를 경외하는 사람은 반드시 선을 행할 뿐만 아니라 화평을 따라야 하는 것입니다.
옛날 우리 조상들은 숯불을 담은 다리미로 옷을 다렸습니다. 이 다리미는 한 집에 두 개 있으면 하나는 없애는 것이 상식이었습니다. 그래서 시집갈 때는 혼수품으로 다리미를 가져가는 것은 금기(禁忌)로 돼 있었습니다. 그 까닭은 다리미질을 할 때는 자칫 사이가 멀어지기 쉬운 시어머니와 며느리, 시할머니와 며느리, 시누이와 며느리 그리고 처첩과 동서들끼리 서로 마주잡고 옷을 다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 다리미질은 둘이서 서로가 은연중에 힘과 호흡을 맞추어 협력하고 조화시킴으로서 가능한 일입니다. 다리미질을 한다는 것은 가정 안에 있을 수 있는 서로의 상한 감정을 해소시키는 효과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만약 한 집안에 다리미가 두 개 이상 있으면 마음을 하나로 묶는 소중한 기회를 잃을 가능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조상들은 가정의 이질(異質)적 요인을 자연스럽게 동질화시키는 지혜가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와 민족이 불행한 원인이 무엇입니까? 화합하지 못한 데서부터 온 것입니다. 우리 조상들이 화합하지 못하고 서로 싸우다가 일본에게 나라를 빼앗겼던 때가 있었습니다. 나라를 되찾은 지 60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그 후유증은 우리 사회와 민족의 상처로 남아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단일 민족이지만 아직도 화합하지 못하고 남과 북으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언어가 같고 문화가 같은데 둘로 나뉘어져 있습니다. 이로 인한 이산가족의 슬픔과 고통이 얼마나 큽니까? 또 국가 예산의 손실은 얼마나 큽니까? 더 나아가 모든 인류의 불행의 원인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과 화목하지 못한 데서부터 오는 것입니다. 이것이 인간 불행의 가장 근원적인 요인입니다. 그러므로 화평을 찾아 따라야 합니다.
二. 여 호와를 경외함의 결과는 무엇입니까?
여호와를 경외하며 살아가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너무도 귀한 축복을 약속하셨습니다.
1. 천사의 보호입니다.
본문 7절에“여호와의 천사가 주를 경외하는 자를 둘러 진 치고 그들을 건지시는 도다.”라고 하셨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사람에게 나타내신 천사의 보호에 대해 이야기로 설명하겠습니다.
영국을 해가 지지 않는 나라로 만든 사람은 하나님을 경외한 빅토리아 여왕입니다. 빅토리아 여왕은 왕위에 오를 무렵 무릎을 꿇고 성경을 펼쳐들고 기도하기를“주여, 제가 영국의 왕이 되면 하나님의 말씀대로 통치하게 해주시옵소서!”라고 했습니다. 그는 64년 동안 왕위에 있으면서 자신이 기도한 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나라를 다스린 결과 영국을 해질 날이 없는 대영제국으로 변화시켰습니다.
이러한 빅토리아 여왕이 어느 날 특급열차를 타고 안개가 짙은 밤길을 달리고 있었습니다. 기관사는 시간 내에 무사히 목적지까지 모시려고 신경을 곤두세우고 있었습니다. 기차가 한참 달리고 있는데 헤드램프 앞에 검은 옷을 입은 사람이 손을 흔들고 있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곳은 교량 가까이 있는 지점이라 기관사는 급정거를 하고 차장과 열차승무원들이 나가보았으나 아무도 보이지 않았습니다. 이상한 예감이 들어 몇 야드를 더 나가보았더니 놀랍게도 교량 한 가운데가 급류에 휩쓸려 끊겨 있었습니다. 만약 그 이상한 형상이 아니었다면 수백 명이 강에 쳐 박혀 몰살하는 사고가 났을 것입니다. 그 후 교량이 복구되고 열차가 무사히 런던에 도착한 후, 기관사가 기관차 헤드라이트 아래쪽을 살펴보니 큰 나방 하나가 죽어 있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 나방의 날개가 라이트 유리에 붙어서 흐느적거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차에 올라가 헤드라이트를 켜보니 바로 그 날개가 깃발을 흔드는 사람처럼 보였습니다.
여왕에게 이 사실을 보고하자 빅토리아 여왕은 말하기를“그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지키시는 방법이었소.”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경외하면 하나님께서 친히 어려움에서 보호하시는 것입니다.
2. 모든 것에 부족함 없이 채워주시는 것입니다.
본문 8절~10절에 말씀하시기를“너희 성도들아 여호와를 경외하라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부족함이 없도다 젊은 사자는 궁핍하여 주릴지라도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에 대해 부족함이 없도록 채워주심에 대해 약속하시면서“젊은 사자는 궁핍하여 주릴지라도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고 하셨습니다. 전혀 있을 수 없는 젊은 사자의 궁핍을 예를 들어 약속의 확실함을 밝히셨습니다. 젊은 사자는 절대로 굶주리지 않습니다. 사자들이 살고 있는 곳에는 다른 동물들도 많이 서식을 합니다. 다른 동물들이 살지 않는 곳에는 사자도 살지 못합니다. 초원에 살고있는 모든 동물은 사자의 밥입니다. 백수(百獸)왕자가 사자이기 때문입니다. 늙은 사자가 죽는 것은 먹이가 없어서가 아니라 먹이를 눈앞에 두고도 먹지 못해 죽는다고 합니다. 젊은 사자는 먹지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초원에 서식하는 모든 동물들은 사자의 먹이 감입니다. 그러므로 젊은 사자가 궁핍하여 굶주릴 가능성은 전혀 없습니다. 하나님은 이처럼 가능성이 전혀 없는 젊은 사자의 굶주림의 경우를 예를 들어, 여호와를 경외하는 사람에게“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고 확약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다윗이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말씀입니다. 다윗은 가난한 유목가정의 막내둥이였습니다. 배운 것도 별로 없었습니다. 그의 앞길에 도움이 될 만한 가정적인 배경은 전혀 없었습니다. 그러한 시골 목동 다윗이 블레셋 나라의 침략자 골리앗을 단숨에 죽이고 나라를 건지므로 일약 명장이 되었습니다. 그 후 많은 고난도 있었지만 그 누구도 다윗을 해치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여호와의 사자가 지키셨기 때문입니다.
훗날 다윗은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대왕이 되었습니다. 자신만이 아니라 다윗으로 인해 후손들까지 축복의 보장을 받아 20명의 대왕이 그의 형통에서 일어났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까지 다윗의 혈통으로 오셨습니다. 이처럼 자신에게 나타내신 하나님의 은혜의 경험을 바탕으로 기록한 것이 본문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면 천국에서 영광을 누리는 것만 아닙니다. 험한 세상을 이길 수 있도록 천사를 시켜 보호하실 뿐만 아니라, 모든 것에 부족함이 없도록 채워주시기로 약속하셨습니다. 이것이 여호와를 경외하는 사람에 대한 축복의 약속입니다.
말씀을 마치겠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려면 소중한 시간을 드려야 합니다.
여호와를 경외하여 선을 행하려면 내 재능과 물질을 드려야 할 때도 있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로서 평화를 도모하려면 내게 잘못한 것이 없지만 그래도 화평을 위해 바보처럼 참고 살아야 할 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이 가르쳐주신 삶의 방법입니다.
이것은 세상을 이기는 하나님의 지혜입니다.
이것은 사람의 방법이 아닌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이것은 세상의 지혜가 아닌 하늘의 지혜입니다.
“여호와의 천사가 주를 경외하는 자를 둘러 진 치고 그들을 건지시는도다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너희 성도들아 여호와를 경외하라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부족함이 없도다 젊은 사자는 궁핍하여 주릴지라도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편 34:7~10)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해 여호와를 경외하는 지혜로운 성도, 복된 성도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이익로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