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종모 주교의 명상 칼럼] "지선아 사랑해!"
치유는 '있는 그대로' 받아 들일때
고통스럽고 아픈 현실을 직면하는 용기를 가지고, 거기에서 어떤 의미를 발견하여 행동하면 치유를 경험하고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셔터스톡
어떤 일을 받아들인다는 것은, 비록 그것이 슬프고 고통스러운 것일지라도 치유에 이르는 지름길이다.
치료가 불가능한 암 선고를 받았을 때 사람들은 보통 암에 걸린 사실 자체를 부정하거나 분노를 터뜨리거나 한다. 그러나 여기에서 필요한 마음의 디자인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오래 전 일인데, 신문에서 이런 기사를 읽고 마음이 아팠던 적이 있었다. 초등학교 5학년인 어떤 여학생이 어버이날 전날에 부모님께 드릴 선물을 사 왔다. 그리고 어버이날 당일에 도로 건너편에 있는 문방구에서 꽃을 사 가지고 도로를 건너오다가 급히 달리는 구급차에 치여 숨졌다는 기사였다.
한 일주일 후에 그 사건의 뒷얘기가 신문에 또 실렸다. 숨진 아이는 화장으로 장례를 치렀는데, 장례 후에 사람들이 아이 아버지에게 딸이 사 온 선물을 끌러 보자고 했다.
그러나 그는, 딸이 선물을 아빠 혼자 끌러 보지 말고 같이 끌러 보자고 했다면서, 딸이 와서 같이 끌러 보기 전에는 절대로 혼자 끌러 볼 수 없다고 고집을 부린다는 기사였다.
나는 그 아버지의 고통이 가슴에 느껴져 마음이 아팠다. 그의 마음의 상처가 치유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물론 시간이 가면 마음의 상처가 조금씩 희미해져 갈 것이다.
그러나 그가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기 위하여 먼저 해야 할 일은 딸의 죽음을 받아들이는 용기를 가지는 일이다.
“아가, 너는 인생의 꽃을 피워 보지도 못하고 아빠 곁을 떠나갔구나. 그러나 너는 착한 아이였으니 좋은 곳으로 갔으리라고 아빠는 믿는단다. 아빠는 네가 보고 싶어 죽을 지경이지만, 이를 악물고 참으면서 네 몫까지 열심히 살 거야. 아빠도 언젠가는 죽어서 네 곁으로 가겠지. 그때 다시 만나자꾸나.”
일상생활에서 이미 일어난 일을 부정하거나 저항하는 데 너무 많은 에너지를 쓰다 보면, 사실을 사실대로 받아들이는 힘이 고갈되기 쉽다. 긍정적으로 변하려는 힘이 고갈되면 치유와 성장은 일어나기 어렵다.
수용하는 태도의 신비한 치유의 힘은 심리치료 상담에서도 강조되고 있다. 치유는 치료 기법보다는 인간관계에서 오는데, 로저스(Carl Rogers)는 상담자가 내담자를 공감하면서 수용할 때 치유가 일어난다고 했다.
수용한다는 것은 모든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본다는 뜻이다.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본다는 것은 '나'라는 집착에서 벗어나서 자연의 섭리 가운데서 사물을 본다는 뜻이다. 그러나 이것은 변화와 성장에 대한 욕망을 포기하거나 부정까지도 인정하라는 말은 물론 아니다.
<지선아 사랑해>라는 책으로 유명해진 이지선이라는 여성의 얘기를 해보자. 그녀는 젊고 아름다운 20대의 여성이었다. 그런데 대학 졸업을 앞둔 어느 날, 교통사고로 3도 화상을 입어 얼굴이 원래의 모습을 찾아볼 수 없을 만큼 심하게 일그러지고 말았다.
누구라도 이런 사고를 당하면, 자신의 상황을 좀처럼 받아들이지 못하고 좌절하게 마련일 것이다. 이지선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덧없이 고통의 세월을 보내던 그녀는 마치 매일을 죽어가기 위해 사는 것 같은 자신을 발견하고는 더 이상 스스로를 버리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그리고 자신의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로 결심했다.
그녀가 가장 먼저 한 일은 거울에 비친 자신의 얼굴을 보면서 “지선아!” 하고 불러보는 연습이었다. 연습이 거듭되고, 그녀는 마침내는 자신을 있는 그대로 사랑해야겠다고 생각해서 “지선아, 사랑해!”라고 말하게 됐다고 한다.
그녀는 자신의 이런 경험을 책으로 써서 베스트셀러가 되기도 했는데, 그녀의 이야기는 치유에서 중요한 하나의 원리를 보여준다. 그것은 치유의 첫걸음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데에서 시작된다는 것이다.
만일 그녀가 자신의 현실을 계속 거부하거나 회피했더라면 마음의 상처는 치유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인생 자체도 잃어버리고 말았을 것이다.
현실이, 현재의 상황이 비록 어렵다 할지라도, 그것을 거부하거나 회피해서는 안 된다. 현실의 거부나 회피는 결국 파멸과 불행의 결과를 가져올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고통스럽고 아픈 현실을 직면하는 용기를 가지고, 거기에서 어떤 의미를 발견하여 행동하면 치유를 경험하고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용기는 또한 삶의 지혜이기도 하다.
출처 : 마음건강 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