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그를 더럽힌다
<연중 제5주간 수요일>(2023. 2. 8. 수)
(마르 7,14-23)
“예수님께서는 다시 군중을 가까이 불러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모두 내 말을 듣고 깨달아라. 사람 밖에서 몸 안으로 들어가
그를 더럽힐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오히려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그를 더럽힌다.’ 예수님께서 군중을 떠나 집에 들어가시자,
제자들이 그 비유의 뜻을 물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너희도 그토록 깨닫지 못하느냐? 밖에서 사람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무엇이든 그를 더럽힐 수 없다는 것을 알아듣지 못하느냐? 그것이
마음속으로 들어가지 않고 배 속으로 들어갔다가 뒷간으로 나가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모든 음식이 깨끗하다고
밝히신 것이다(마르 7,14-19).”
여기서 예수님의 말씀에는 세 가지 가르침이 들어 있습니다.
1) “죄는 너 자신이 짓는 것이다. 죄를 짓고 나서 남 탓을 하지 마라.”
2) “물질 자체는 선한 것이다.”
2) “몸만 씻지 말고 마음을 씻어라.”
1) ‘악’은 분명히 ‘사람 밖에서 안으로 들어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죄’는 ‘내가 짓는 것’입니다.
잘 아는 ‘친한 사람’의 모습으로 오든지 잘 모르는 ‘낯선 사람’의
모습으로 오든지 간에, 박해로 오든지 유혹으로 오든지 간에,
밖에서 오는 그 ‘악’이 나를 죄짓게 하지만,
그래도 어떻든 ‘죄’는 내가 짓는 나의 일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이렇게 말합니다.
“정신을 차리고 깨어 있도록 하십시오. 여러분의 적대자 악마가
으르렁거리는 사자처럼 누구를 삼킬까 하고 찾아 돌아다닙니다.
여러분은 믿음을 굳건히 하여 악마에게 대항하십시오(1베드 5,8-9ㄱ).”
믿음을 굳건히 하고, 정신을 차리고 깨어 있으면서 악을 물리치는
사람은 죄를 짓지 않는데, 자만심에 빠져 있거나 방심한 상태로
있는 사람은 악에 굴복하거나 물들어서 죄를 짓게 됩니다.
‘악’이 죄를 짓도록 유혹했고 압박했다고 핑계를 대겠지만,
지은 죄에 대한 책임은 죄를 지은 사람 자신에게 있습니다.
죄를 짓고 나서 ‘다른 사람 탓’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남 탓’을 한다고 죄가 줄어드는 것도 아니고 없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죄가 더 커질 뿐입니다.
다른 사람 탓을 하는 것은 자기가 죄를 지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태도이고, 회개하지 않겠다는 태도입니다.
진실하게 회개하는 사람들은 긴 말을 하지 않습니다.
자기 죄를 인정하고 뉘우치는 말만 합니다.
반대로 회개하지 않는 사람들은 항상 말이 많습니다.
죄를 짓게 된 원인이나 이유를 설명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 설명은 사실상 변명입니다.
2) 음식이든지 다른 무엇이든지 간에 물질 자체는 선한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만드신 것들 가운데 악한 것은 없다는 것이
우리의 믿음입니다.>
레위기 11장과 신명기 14장에 ‘먹을 수 있는 짐승과
먹으면 안 되는 짐승’에 관한 율법이 나옵니다.
모든 음식이 깨끗하다는 예수님 말씀은,
바로 그 율법을 폐지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특별히 음식을 언급하신 것은, 아마도 그 당시에
음식 문제가 사람들을 가장 많이 압박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마카베오기 하권에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매우 뛰어난 율법학자들 가운데 엘아자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이미 나이도 많고 풍채도 훌륭하였다. 그러한 그에게 사람들이
강제로 입을 벌리고 돼지고기를 먹이려 하였다. 그러나 그는
더럽혀진 삶보다는 명예로운 죽음을 택하는 것이 낫다고 여겨,
자진해서 형틀로 나아가며 돼지고기를 뱉어 버렸다. 이것이 바로
목숨이 아까워도 법에 어긋나는 음식은 맛보는 일조차 거부하는
용기를 지닌 모든 이가 걸어가야 하는 길이다(2마카 6,18-20).”
돼지고기 먹기를 거부하고 죽음을 선택할 정도로
유대인들에게 음식 문제는 대단히 민감하고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그런데 바로 다음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법에 어긋나는 이교 제사의 책임자들이 전부터 엘아자르와 친분이
있었기 때문에 그를 따로 데리고 가, 그가 먹어도 괜찮은 고기를
직접 준비하여 가지고 와서 임금의 명령대로 이교 제사 음식을
먹는 체하라고 권하였다. 그렇게 하여 엘아자르가 죽음을 면하고,
그들과 맺어 온 오랜 우정을 생각하여 관대한 처분을 받게
하려는 것이었다(2마카 6,21-22).”
박해자들이 돼지고기를 먹으라고 강요한 것은,
사실은 ‘배교’하라고 강요한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이 이야기는 특정 음식을 먹기를 거부해서 죽은 이야기가
아니라, 신앙을 지키려고 순교한 이야기입니다.
<예수님께서 음식 규정을 폐지하셨다고 해서 구약성경에
기록되어 있는 순교자들의 신앙까지 부정하신 것은 아닙니다.
지금 예수님의 말씀은, 회개는 하지 않고 외부 탓만 하는 사람들을
겨냥해서 하신 말씀입니다.>
3) 회개는 몸이 아니라 마음과 영혼을 씻는 일입니다.
몸을 잘 씻는다고 회개하는 것이 되는 것이 아니라,
마음과 영혼을 씻어야 회개하는 것이 됩니다.
이 말은 바로 앞의 ‘식사 전의 정결예식 논쟁’에(마르 7,5) 연결됩니다.
정결 예식을 엄격하고 철저하게 실행하는 사람이
깨끗한 사람이 아니라,
마음과 영혼과 삶이 정결한 사람이 진짜로 깨끗한 사람입니다.
음식 문제에 대해서도 같은 말을 할 수 있는데,
거룩한 음식을(성체를) 먹는다고 해서
그것만으로 거룩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무엇을 먹든지 간에 무슨 마음으로 어떻게 먹느냐가 중요합니다.
<굶주리는 사람이 옆에 있는데도
혼자서만 배불리 먹는 것은 분명히 죄입니다.
남의 것을 훔쳐 먹거나 빼앗아 먹는 것도 죄입니다.
절제하지 않고 ‘탐식’하는 것도 죄입니다.
그 죄들은 모두 그 사람 자신의 마음에서 나온 것입니다.
바로 그 마음을 깨끗이 씻어야 합니다.>
- 송영진 신부님 -
첫댓글 마음과 영혼과 삶이 정결한 사람이
진짜로 깨끗한 사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