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졸업때 논문쓰느라 태종의 왕권 강화책과 관련한 논문을 읽었는데 태종의 저런 행동이 없었다면 세종은 아마 지금보다 더 훨씬 업적이 없었을 거라 생각합니다..그렇게 신권을 약하게 했는데도 한글창제할때 반대한거 보면 답나오죠.. 이방원 자신은 고려와 조선초기를 거치면서 강력한 왕권이 있어야 국가가 제대로 운영될 수 있다는 믿음에 저렇게 왕권을 강화하도록 정책을 펼친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한 인간으로써는 참 못된 짓이죠..
이방원(태종)하면 유동근의 모습을 떠올리지만 ㅋㅋㅋㅋ 실제 이방원의 모습은 아버지 이성계의 장사같은 모습과 무장 출신 형들과의 모습과는 다르게 여리여리하고 마른 몸에 눈물이 엄청나게 많았던 성격이었다고 하더군요. 어찌보면 당연한 말이지만 조선왕 최초이자 마지막 과거급제 출신 왕이기도 하고..결과론적으로 세종을 탄생시킨 것이 평가에 있어 긍정적인 부분이 많다고 보이지만 그 자체로도 정치력만으로도 충분히 고평가 받을만한 왕이라고 생각. 그러나 훗날 세조같은 덜 떨어지고 얍삽한 태종버전이 나와서 얼마 안가 잘나가던 조선의 시스템 자체를 붕괴시킨 폐륜놈이 나왔다는게...태종-문종-단종 라인이었으면 좋았을것을..
그런데 태종의 왕권강화, 세종의 태평성대로 설명되다보니 세종이 다소 유약한 모범생 이미지만으로 그려지는데 실제로 그랬다면 사실 그런 무수한 업적들이 나올 수는 없죠. 그만큼 세종은 강단이 있는 군주였다고 생각합니다. 결과적으로 태종의 역할을 부인할 순 없겠지만 그게 최선이었다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개인적으론 조선 역대 왕 중 가장 스마트하고 가장 합목적적이었던 왕이었다고 봅니다. 형제들을 모두 누르고 왕이 될 만큼 권력에 대한 욕심이 지나쳤다는 비판도 있지만 왕권을 안정시키기 위해 기득권층과 외척세력들을 컨트롤한 것은 굉장히 높게 평가받아야 합니다. 사병 혁파, 외척 세력 숙청 등의 과정이 있었기에 세종대왕은 왕권이 안정된 상황에서 조선 역사상 최대의 전성기를 이끌 수 있었던 거죠. 이방원이 왕권에 위협이 되는 세력들을 제거하지 않았다면 세종"대왕"은 없었을 겁니다. 세종만 존재했을 뿐
@▶◀하라쇼그런데 돌이켜보면 대부분 왕조의 전성기들은 비교적 초기인 경우가 많습니다. 명나라의 경우도 영락제 시기가 사실상 전성기라고 봐야하고, 청도 강희제~건륭제시기인데 역시 비교적 초기이구요, 한나라도 한무제시기를 본다면 역시 비교적 초기라고 봐야할테구요. 그런데 어쩔수 없지 않나 싶습니다. 건국 후 가장 왕성하게 세력을 확장하며 개혁을 하는 시기가 초기일테니까요. 그 이후에는 어떤 왕조건 일종의 매너리즘에 빠지게 되는 경우가 많죠. 조선은 조금 안타까운 것이...조선역사를 통틀어서도 가장 준비된 왕이며 적장자였고, 세종을 가장 많이 닮았다고 평가받는 문종이 단명한 것일겁니다.
방법론적인 부분에 있어서 동의할 순 없지만 전 훌륭한 왕이라고 봅니다. 종종 태종과 세조가 비교가 많이 되는데, 사실 세조는 재능은 할아버지 태종이 비할 수 있을지언정 그릇의 크기가 차원이 다르다고 봅니다. 둘다 왕권국가에서 권력을 위한 냉혹한 모습들이 보이긴 하는데, 태종의 경우에는 적어도 비정함에 철학이 있었다고 봅니다. 정도전이 이상으로 삼는 재상중심의 정치체제는 이방원의 가치관에는 틀린 방향이었고, 이방원은 자신의 정치철학에 따라 그를 관철시키기 위한 권력투쟁을 했던것이죠. 즉 이방원과 정도전은 정적이라고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만, 세조와 단종(문종)의 관계는 군신관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즉 이건 명실상부한 쿠데타라고 봐야하고, 그 과정에서 어떠한 정치철학의 이데올로기 싸움같은 건 보이지가 않아요. 그냥 순수한 권력욕을 향한 정치암투였던 셈이죠. 그 과정에서 조선 정치는 훈구파/공신세력들을 대거 양성하고 이게 조선정치 후퇴의 단초가 되었다고 봅니다. 차라리 세조치세 당시에는 세조자체가 태종에 비할만큼 카리스마가 넘치고 유능한 왕이었고, 또한 세종치세의 흐름이 어느정도 남아있을시기인데다가 세종과 비견할만한 도학군주였던 성종이 후대를 이어주면서 큰 문제가 당장은 없었지만 말이죠.
어쨌든 강력한 왕권을 바탕으로한 왕권중심의 정치체계를 꿈꿔왔던 태종으로서는, 특히나 건국초기에 왕권강화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잘 알고 있었을 겁니다. 태조이성계는 건국왕으로서 카리스마 넘치는 정치가였으나, 정도전이라는 정치적 대리인이 정적인 태종에게 꺾이는 순간 헤게모니가 태종에게 이미 넘어갔고, 태조의 재위기간이 6년정도라는 점을 감안해본다면 사실상 태종은 건국왕으로서의 왕권강화라는 역할까지 같이 떠맡게 된 셈입니다. 그런면에서 오히려 태종은 명 영락제보다는 오히려 홍무제에 더 가까운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광해군은 빠져야 합니다. 분조 활동과 중립 외교는 칭찬할 만하지만 나머지는 별로였죠. 대동법에 대해서도 대중들이 알고 있는 것과는 많이 다릅니다. 폐지하려 하기도 했었구요. 수많은 옥사, 그리고 무리한 궁궐 공사로 백성들을 피폐하게 했습니다. 인조가 반정으로 왕 되고 나서 제일 먼저 한 것 중의 하나가 백성들 세금 줄여준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유교 국가에서 살제는 권력 싸움이라 쳐도 폐모는 최악의 한 수 였죠. 인재 관리도 잘 못해 반정 당시 자기 편도 소수에 불과했구요. 재평가가 가장 시급한 왕이 바로 광해군입니다.
@천윤뭐 궁궐공사와 페모는 최악이었지만 조선왕들중 최초로 스스로 힘을 지키는,강한나라, 자주적인 국가로 만들려고 했고 실제로 가망이 없는건 아니었죠 가장 큰적은 명,금 외부가 아니었고 오히려 명나라와 거래해서 돈버는 사람 그것과 연결된 정치하는 권력,사리사욕만 생각하는 내부사람들였죠
5년만 왕을 더했어도 어떻게 될지 몰랐다고 봅니다. 자기편이 소수인것도 광해에게 등을 돌린 신하들이 나라걱정보다는 본인 처사,권력에 더 신경을 써서 그랬다고 보기에 반정을 일으킨 그들이 그렇게 옳다고도 할수도 없죠
@곰성애자광해군은 정말 뻥튀기된거라 봐야죠.. 비교적 최근에 나온 오항녕 교수의 조선의힘이란 책 한 번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책의 광해군 파트를 보면 사료들로 적나라하게 광해군을 까내리는데 장난아닙니다. 조선 이후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광해군에 대한 재평가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알수있습니다. 실제 최근 조선후기 젊은 연구자 중 광해군을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정치 9단, 숙청의 전문가로써 철혈이나 냉혈한 이미지를 풍기기 쉽지만, 자식 바보라는 것도 의외성이죠. 그렇게나 감싸고 아끼고 혼냈던 양녕대군(이라 쓰고 희대의 양아치라 읽지요)을 끝까지 지키려다 폐위시키는 과정 후에 결국은 세종에게 양위하면서 못난 아들이 잘난 아들에게 폐를 끼칠까봐 수틀리면 양녕을 죽여달라고까지 말했던 사람이니.
첫댓글 http://durl.me/6n6dfr
용의 눈물
PLAY
다음 이성계는 안재모 인가요? ^^
이성계 - 이방원 - 이도 진짜 라인 ㅎㄷㄷ
저에겐 역대 왕중에서 원탑 입니다...
대학교 졸업때 논문쓰느라 태종의 왕권 강화책과 관련한 논문을 읽었는데 태종의 저런 행동이 없었다면 세종은 아마 지금보다 더 훨씬 업적이 없었을 거라 생각합니다..그렇게 신권을 약하게 했는데도 한글창제할때 반대한거 보면 답나오죠..
이방원 자신은 고려와 조선초기를 거치면서 강력한 왕권이 있어야 국가가 제대로 운영될 수 있다는 믿음에 저렇게 왕권을 강화하도록 정책을 펼친 것 같습니다..
그러나 한 인간으로써는 참 못된 짓이죠..
숙청이 전문이네
민주주의 국가에는 어울리지 않는 방법이겠지만 민주주의 국가를 만들기 전 과정에는 뭔가 필요한 방법처럼 느껴지기도 하네요. 쳐낼놈들은 자비없이 쳐냈어야 하는데..
친일파 따위 서슴없이 베어버리셨을것 같네요 사돈의 팔촌까지..... 지지합니다
인간의 도리에 있어선 무서운 사람이지만 왕권강화를 위해서 필요한 인물 같네요. 뭐 그것도 세종이란 위대한 왕의 업적이 나은 결과론 이긴 하지만요
이방원은 천재에요. 아들은 더 착하고 더 천재인게 문제이지....
이방원(태종)하면 유동근의 모습을 떠올리지만 ㅋㅋㅋㅋ 실제 이방원의 모습은 아버지 이성계의 장사같은 모습과 무장 출신 형들과의 모습과는 다르게 여리여리하고 마른 몸에 눈물이 엄청나게 많았던 성격이었다고 하더군요. 어찌보면 당연한 말이지만 조선왕 최초이자 마지막 과거급제 출신 왕이기도 하고..결과론적으로 세종을 탄생시킨 것이 평가에 있어 긍정적인 부분이 많다고 보이지만 그 자체로도 정치력만으로도 충분히 고평가 받을만한 왕이라고 생각. 그러나 훗날 세조같은 덜 떨어지고 얍삽한 태종버전이 나와서 얼마 안가 잘나가던 조선의 시스템 자체를 붕괴시킨 폐륜놈이 나왔다는게...태종-문종-단종 라인이었으면 좋았을것을..
그런데 태종의 왕권강화, 세종의 태평성대로 설명되다보니 세종이 다소 유약한 모범생 이미지만으로 그려지는데 실제로 그랬다면 사실 그런 무수한 업적들이 나올 수는 없죠. 그만큼 세종은 강단이 있는 군주였다고 생각합니다. 결과적으로 태종의 역할을 부인할 순 없겠지만 그게 최선이었다고 생각하지도 않습니다.
만약에 정도전이 이방원을 밀었어도 결국 숙청당했을거 같습니다.
저기서 숙청시키고 이런건 그시대의 기준을 조금 감안해서 생각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강한 왕이죠. 이방원
개인적으론 조선 역대 왕 중 가장 스마트하고 가장 합목적적이었던 왕이었다고 봅니다.
형제들을 모두 누르고 왕이 될 만큼 권력에 대한 욕심이 지나쳤다는 비판도 있지만 왕권을 안정시키기 위해 기득권층과 외척세력들을 컨트롤한 것은 굉장히 높게 평가받아야 합니다.
사병 혁파, 외척 세력 숙청 등의 과정이 있었기에 세종대왕은 왕권이 안정된 상황에서 조선 역사상 최대의 전성기를 이끌 수 있었던 거죠.
이방원이 왕권에 위협이 되는 세력들을 제거하지 않았다면 세종"대왕"은 없었을 겁니다. 세종만 존재했을 뿐
근데 조선 최고의 전성기가 초기라는게 좀 아쉽네요....
@▶◀하라쇼 아쉬운 일이죠.. 사실상 16세기 이후 조선은 한쪽다리가 없는 의자처럼 정상적인 적이 없었다고 봐도 무방할 것같습니다.
@▶◀하라쇼 그런데 돌이켜보면 대부분 왕조의 전성기들은 비교적 초기인 경우가 많습니다.
명나라의 경우도 영락제 시기가 사실상 전성기라고 봐야하고, 청도 강희제~건륭제시기인데 역시 비교적 초기이구요, 한나라도 한무제시기를 본다면 역시 비교적 초기라고 봐야할테구요.
그런데 어쩔수 없지 않나 싶습니다. 건국 후 가장 왕성하게 세력을 확장하며 개혁을 하는 시기가 초기일테니까요.
그 이후에는 어떤 왕조건 일종의 매너리즘에 빠지게 되는 경우가 많죠.
조선은 조금 안타까운 것이...조선역사를 통틀어서도 가장 준비된 왕이며 적장자였고, 세종을 가장 많이 닮았다고 평가받는 문종이 단명한 것일겁니다.
@▶◀하라쇼 조선이라는 한자 뜻풀이가 '아침이 밟은 나라'라는 뜻인데 그래서 그런것일까요
전성기여야만.. 역성 혁명이 가능했겠지요. ㅋㅋㅋ
지금 우리나라에 필요합니다 와서 국회의사당 다 박살내주세요!
사족이지만 명나라 지도가 참 거슬리네요. 조선왕조실톡에서도 만주와 한반도 북부를 삼킨 것처럼 나오던데...
방법론적인 부분에 있어서 동의할 순 없지만 전 훌륭한 왕이라고 봅니다.
종종 태종과 세조가 비교가 많이 되는데, 사실 세조는 재능은 할아버지 태종이 비할 수 있을지언정 그릇의 크기가 차원이 다르다고 봅니다.
둘다 왕권국가에서 권력을 위한 냉혹한 모습들이 보이긴 하는데,
태종의 경우에는 적어도 비정함에 철학이 있었다고 봅니다.
정도전이 이상으로 삼는 재상중심의 정치체제는 이방원의 가치관에는 틀린 방향이었고, 이방원은 자신의 정치철학에 따라 그를 관철시키기 위한 권력투쟁을 했던것이죠.
즉 이방원과 정도전은 정적이라고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만,
세조와 단종(문종)의 관계는 군신관계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즉 이건 명실상부한 쿠데타라고 봐야하고, 그 과정에서 어떠한 정치철학의 이데올로기 싸움같은 건 보이지가 않아요.
그냥 순수한 권력욕을 향한 정치암투였던 셈이죠. 그 과정에서 조선 정치는 훈구파/공신세력들을 대거 양성하고 이게 조선정치 후퇴의 단초가 되었다고 봅니다.
차라리 세조치세 당시에는 세조자체가 태종에 비할만큼 카리스마가 넘치고 유능한 왕이었고, 또한 세종치세의 흐름이 어느정도 남아있을시기인데다가
세종과 비견할만한 도학군주였던 성종이 후대를 이어주면서 큰 문제가 당장은 없었지만 말이죠.
어쨌든 강력한 왕권을 바탕으로한 왕권중심의 정치체계를 꿈꿔왔던 태종으로서는, 특히나 건국초기에 왕권강화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잘 알고 있었을 겁니다.
태조이성계는 건국왕으로서 카리스마 넘치는 정치가였으나, 정도전이라는 정치적 대리인이 정적인 태종에게 꺾이는 순간 헤게모니가 태종에게 이미 넘어갔고,
태조의 재위기간이 6년정도라는 점을 감안해본다면 사실상 태종은 건국왕으로서의 왕권강화라는 역할까지 같이 떠맡게 된 셈입니다.
그런면에서 오히려 태종은 명 영락제보다는 오히려 홍무제에 더 가까운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듭니다.
어느 시대나 이런 왕들은 있죠..고려 광종, 같은 이름의 당 태종, 명 성조요..
광해군이 왕위계승할때 숙청한거는 태종에 비하면 정말 아무것도 아니네요
개인적으로 조선왕들중 훌륭한 왕들 4명을 꼽는데
순위대로
정조 - 태종 - 세종 - 광해군
전 이런 순위로 꼽습니다
광해군은 빠져야 합니다. 분조 활동과 중립 외교는 칭찬할 만하지만 나머지는 별로였죠. 대동법에 대해서도 대중들이 알고 있는 것과는 많이 다릅니다. 폐지하려 하기도 했었구요. 수많은 옥사, 그리고 무리한 궁궐 공사로 백성들을 피폐하게 했습니다. 인조가 반정으로 왕 되고 나서 제일 먼저 한 것 중의 하나가 백성들 세금 줄여준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유교 국가에서 살제는 권력 싸움이라 쳐도 폐모는 최악의 한 수 였죠. 인재 관리도 잘 못해 반정 당시 자기 편도 소수에 불과했구요.
재평가가 가장 시급한 왕이 바로 광해군입니다.
@천윤 뭐 궁궐공사와 페모는 최악이었지만 조선왕들중 최초로 스스로 힘을 지키는,강한나라, 자주적인 국가로 만들려고 했고 실제로 가망이 없는건 아니었죠
가장 큰적은 명,금 외부가 아니었고 오히려 명나라와 거래해서 돈버는 사람 그것과 연결된 정치하는 권력,사리사욕만 생각하는 내부사람들였죠
5년만 왕을 더했어도 어떻게 될지 몰랐다고 봅니다.
자기편이 소수인것도 광해에게 등을 돌린 신하들이 나라걱정보다는 본인 처사,권력에 더 신경을 써서 그랬다고 보기에 반정을 일으킨 그들이 그렇게 옳다고도 할수도 없죠
@곰성애자 광해군은 정말 뻥튀기된거라 봐야죠.. 비교적 최근에 나온 오항녕 교수의 조선의힘이란 책 한 번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책의 광해군 파트를 보면 사료들로 적나라하게 광해군을 까내리는데 장난아닙니다. 조선 이후 일제시대를 거치면서 광해군에 대한 재평가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알수있습니다. 실제 최근 조선후기 젊은 연구자 중 광해군을 긍정적으로 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전 가끔씩 조선말의 왕이 고종이 아닌 이방원이었다면하는 생각도합니다
정치 9단, 숙청의 전문가로써 철혈이나 냉혈한 이미지를 풍기기 쉽지만, 자식 바보라는 것도 의외성이죠.
그렇게나 감싸고 아끼고 혼냈던 양녕대군(이라 쓰고 희대의 양아치라 읽지요)을 끝까지 지키려다 폐위시키는 과정 후에 결국은 세종에게 양위하면서 못난 아들이 잘난 아들에게 폐를 끼칠까봐 수틀리면 양녕을 죽여달라고까지 말했던 사람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