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이름을 밝힐 수 없는 이웃 나라 번잡한 도로가 만나는 나무 아래 가재도구들을 펼쳐 놓고, 가슴에 잔뜩 서류를 안고 앉아 있는 여인, 아프가니스탄 여인 비비 나즈다나(20)다. 서류 더미를 세상 어느 것보다 소중히 여긴다고 했다. 어린 신부로 팔려갔다며 스스로를 해방시켜 달라고 2년이나 법정 다툼을 벌여 이혼해도 좋다는 법원 판결을 받은 서류들이다.
3년 전 이달에 재집권한 탈레반 법원은 이를 무효라고 뒤집어버렸다. 이런 일이 한두 건이 아니라고 영국 BBC는 29일(현지시간) 전했다. 그들이 수도 카불에 쳐들어 가는데 열흘 밖에 안 걸렸는데, 그 남자가 그녀가 그토록 열심히 싸워온 이혼 판결을 법원에 뒤집어 달라고 요청하는 데 이레 밖에 걸리지 않았다.
헥마툴라가 처음 나타나 결혼을 요구한 것은 나즈나다가 열다섯 살 때였다. 그녀 아버지가 가족의 적을 친구로 돌리기 위해 하는 이른바 '나쁜 결혼'을 약속한 지 8년이 지났을 때였다.
그녀는 곧바로 법원으로 향했는데 당시만 해도 미국이 지원하는 아프간 정부가 운영하는법원이었다. 그녀는 20대였던 그와 결혼할 수 없다고 애원했고, 법원은 결국 그녀 손을 들어줬다. 재판부는 축하한다며 '당신은 이제 헤어졌으며 자신이 원하는 누구와도 자유롭게 결혼할 수 있다'고 판결했다는 것이 그녀 주장이다.
그러나 헥마툴라가 2021년 항소한 뒤 나즈나다는 자신의 주장을 직접 법원에서 펼칠 수 없다는 황당한 얘기를 들었다. "법정에서 탈레반은 내게 샤리아(이슬람 율법)에 어긋난다며 법원에 돌아오면 안된다고 말했다. 그들은 대신 우리 오빠가 날 대변해야 한다고 말했다." 오빠 샴스(28)는 "우리가 따르지 않으면 누이를 그(헥마툴라)에게 강제로 넘기겠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결국 전 남편이며 탈레반에 새로 가입한 헥마툴라가 2심을 승소했다. 샴스는 남매의 고향인 우루즈간에서 그녀 목숨이 위태로워지게 될 것이라고 항변했지만 쇠귀에 경 읽기였다. 해서 남매는 달아나는 수밖에는 도리가 없다고 판단했다.
탈레반은 재집권하며 부패를 일소하고 샤리야 아래 정의를 구현하겠다고 약속했다. 탈레반은 그 뒤 35만 5000건의 판결을 살펴봤는데 대부분이 형사 재판이고 약 40%는 토지 문제, 약 30%는 나즈다나와 비슷한, 이혼 등 가정 문제라고 했다.
BBC는 카불 최고법원 산하 사무실들에 접근할 수 있는 권한을 얻어 나즈다나의 이혼 판결에 관한 자료들을 파헤쳤다고 설명했다. 아프가니스탄 대법원의 미디어 담당관 압둘와히드 하카니는 그 판결이 헥마툴라의 손을 들어준 것이 맞다며 원심 판결은 그가 궐석한 상태에서 내려졌기 때문에 무효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전 부패한 정부가 헥마툴라와 나즈다나의 결혼을 취소하기로 결정한 것은 샤리아와 결혼 규칙에 어긋난다"고 말했다.
그러나 사법 시스템을 개혁하겠다는 약속은 해결된 사건을 재심리하는 이상으로 막나가고 있다고 방송은 지적했다. 탈레반은 모든 판사들-남녀를 가리지 않는다-을 체계적으로 제거하고 자신들의 강경 노선을 지지하는 사람들로 교체하고 있다. 아울러 여성은 사법 시스템에 참여하는 것이 어울리지 않는다고 선언했다. 탈레반 대법원의 대외관계 및 커뮤니케이션 국장인 압둘라힘 라시드는 "우리의 샤리아 원칙들에서 사법 작업은 고도의 지적 능력을 갖춘 사람들을 요구하기 때문에 여성들은 자격이 없거나 능력이 없다"고 말한다.
사법 체계에서 일했던 여성들에게 이런 손실은 엄청 크게 느껴지지만 자신들만의 일로 그치지도 않는다. 전 대법원 판사 파우지아 아미니는 탈레반이 돌아온 뒤 조국을 탈출했는데 법원에 여성이 출두하지 않는다면 법 아래 여성 보호가 개선될 희망이 없다고 강조했다.
그녀는 "우리는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예를 들어 2009년 여성 폭력 제거 법안은 우리 성공 가운데 하나였다. 우리는 또 여성 피난처나 고아 후견인제, 반인륜적인 인신매매 등을 위해 일했다"고 말했다.
그녀는 또 나즈다나처럼 이전 판결을 뒤집는 탈레반을 개탄하며 "만약 여성히 남편과 이혼한다면 법원 문서들이 증거로 이용될 수 있고 최종적이다. 합법적인 판결이 정권이 바뀌었다고 바뀔 수는 없다"고 단언한다. "우리의 시민권 조항은 반 세기도 더 된 것이며 탈레반이 창설되기도 전에 확립된 것이다. 이혼에 관한 것을 포함해 모든 시민권 조항은 꾸란에 근거해 채택된 것이다."
그러나 탈레반은 과거 통치자들은 충분히 이슬람적이지 않았다고 말한다. 대신 그들은 8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하나피 피크(Hanafi Fiqh, jurisprudence) 종교 법에 크게 의존하는데 "현재의 요구를 만족시키기 위해 업데이트됐다고 압둘라힘 라시드는 목소리를 높였다.
그는 "이전 법원들은 시민권 조항들에 근거해 결정을 내렸는데 이제 모든 결정은 샤리아에 바탕한다"면서 그들이 이미 분류해 놓은 문서 파일들을 자랑스럽게 손으로 가리켰다.
아미니는 아프가니스탄의 법적 체계를 전진시켜 놓을 것이라는 탈레반의 약속을 믿지 못하겠다며 "탈레반에게 질문 하나가 있는데 그네들 부모는 이들 법에 기초해 결혼했는지, 아들들이 써놓으려 하는 법률에 바탕해 결혼했는지?"라고 물었다.
이웃 나라의 나무 그늘 아래에서 지낸 지 어느덧 일년이 돼 간다. 안심이 되는 것은 하나도 없다. 이제 스무 살이 됐다. 이혼 서류를 잔뜩 품에 안고 누군가 자신을 도와주길 기대하고 있다. 그녀의 호소다. "유엔을 비롯해 많은 문들을 두드려봤지만 누구도 내 목소리를 들어주지 않는다. 어디에서 도움의 손길을 찾아야 할까? 여자라서 자유를 누릴 자격이 없는 걸까?" BBC는 헥마툴라에게 코멘트를 요청하려 했지만 접촉할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