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닝글로리
김 우
30분 후에 출발하는 한국행 비행기에 탑승하라는 호치민 공항의 안내방송이 흘러나온다. 기다리며 서있던 그녀의 두려움이 내 손을 꼬옥 잡는다. 여린 웃음에 감춘 열대의 불안이 뜨겁게 건너온다. 서서히 비행기는 활주로를 이륙하고 저 멀리 태평양의 광활함이 커다란 낯설음으로 그녀의 눈에 들어온다.
- 식사는 소고기 야채볶음과 비빔밥 두 가지가 있는데 어떤 것을 드릴까요?
승무원이 건네 준 도시락 뚜껑을 열자 숙주 호박 당근 버섯 고사리…… 각자 살아온 고향의 색깔과 향기를 품고 가지런히 놓여 있다. 팔색 화반의 나물들이 튜브 고추장으로 입술을 바르고 참기름 향수로 온 몸을 치장한다. 마지막으로 대접 구석구석의 나물을 섞으며 조화롭게 골고루 비빈다. 잘 비벼진 한 숟갈을 그녀에게 내민다.
민지는 오늘도 나와 함께 새벽조업을 나간다. 어둠을 가르며 달려가는 뱃머리에 서면 고향에 두고 온 부모와 남동생 생각 간절하지만, 사랑하는 두 아이를 생각하며 전어 그물을 힘껏 끌어올린다. 가을의 속살을 먹고 살이 잔뜩 오른 전어가 그물코 사이에서 몸부림친다. 아침 햇살에 반짝이는 비늘 비늘들. 한국에서의 그녀 새날처럼 곱다.
- 어이서 저딴 걸 델꾸 와가 이 고생이고. 뭔- 말을 해도 말귀를 알아듣나. 글타꼬 없는 집구석 살림이라도 잘 챙기나. 아- 잘 낳는 거 아이면 오데 쓸 데가 있어야제.
어머니는 오늘도 민지에게 잔소리를 해댄다. 욕을 먹어도 그녀 심성은 늘 한결같다. 새벽조업에 집안 살림, 홀어머니 봉양까지 화를 내거나 큰 소리 한 번 치지 않는다.
- 만약 현실에 굴복하여 각자의 맛을 잃는다면, 더 이상 한 데 섞어 비빌 이유가 없겠죠. 다양한 재료가 섞여 비벼질 때 차별화되고 더 훌륭한 상위의 맛을 내는 게 한국의 생활이고, 우리의 비빔밥이에요.
요리 강사의 낭랑한 목소리가, 어느새 어부의 아내 생활에 익숙해진 민지의 귓가로 침착하고 다정하게 내려앉는다.
오늘도 주방에서 민지는 어머니와 남편 그리고 아이들의 저녁을 위해 비빔밥 만들 나물을 다듬고 있다. 언제부턴가 숙주 호박 당근 버섯 고사리에 모닝글로리*를 섞는다. 아이들은 모닝글로리가 제일 맛있다며 엄마에게 생긋한 웃음을 날린다.
*모닝글로리 : 공심채라고 불리기도 한다. 볶아서 먹는 베트남의 대표적인 채소
시그렛밧 모놀로그
안녕 난 시그렛 밧*이야
이종격투기 선수의 이름 같다고?
천만에,
나는 지금 연기사막과 이별하는 중이야
밤새 한숨도 못자고 한숨을 삼켰어
너를 피우다 내 숨을 비우다
재떨이에 버려졌던 반쪽짜리 사체마저 다 태우면
모래바람을 뒤져서라도 누구의 발바닥으로 쓸고 간
누구인지 모르는 너를 간절히 기도한 적 있어
무수히 많은 네가
길거리 보도블록 위에서 송충이처럼 꿈틀거리지
그러다 잠시 한 눈을 팔면
누군가 집게로 너를 들어 올려 종량제 공동묘지로 던져 넣지
타인의 삶과 죽음 따윈 관심 없어
마지막으로 태워져 허공으로 흩어진 연기들
어쩌면 너의 진정한 실체일지 몰라
너를 사랑한 만큼 나는
손가락 달달 떨며 우리의 호흡을 추억하겠지
암병동을 유령처럼 떠다니는 완치의 미담보다
사막 어디쯤에서 유행하는 화장의 예법과 크리스탈 유골함이
먼저 아파올 지 몰라
그래봐야 조심은 잠시
병원 문을 나서자마자 관성은 다시 너를 빨고 있잖아
“대학병원 앞 금연구역 경범죄로 10만원 내셔야 합니다”
나에게 벌금 스티커가 발부되면
넌 웃음을 터트릴 거야.
깔- 깔-
*시그렛 밧: 담배꽁초
세대 공감
삑~ 삐이익 취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취사가 완료되었습니다. 전기밥솥에서 밥이 다 되었다고 알리는 친절한 소리가 정겹다. 밥솥의 구령을 집어삼킨 부엌은 이내 바빠진다. 요즘은 신세대 남편들이 직접 요리하는 가정이 부쩍 늘었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밥 짓는 건 물론이거니와 요리와 청소, 빨래까지 능수능란해야 훌륭한 신랑감이라는 이야기가 정설이다. 우리 집만 보더라도 그러하지 않은가. 중년의 남자인 나조차도 웬만큼 부엌을 점령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시대는 가스 테이블이나 전기 레인지 그리고 전자레인지가 있어 요리가 수월하고도 빠르게 할 수 있다. 그러나 나 어릴 적에는 대부분의 가정이 연탄을 통해 난방을 하고 요리 불도 겸했다. 이때 연탄불이 그저 쉽게 음식을 데울 수가 있는 것이 아니어서 번거로움이 수반된다. 밥을 안치기 위해서는 중불 이상의 화력을 낼 수 있도록 미리 연탄의 불꽃을 피워 놓아야 한다. 연탄불의 화력이 약하면 밥 짓는 시간도 오래 걸리거니와 설익기 일쑤다. 반대로 연탄의 화력이 너무 세면 밥을 태우기 십상이다. 어머니는 그 오랜 시절 동안 매일 그렇게 불을 꺼트리지 않으려고 새벽잠을 설치곤 하셨다. 지금은 우습게 들리지만, 그 시절에는 공기에 밥을 푸는 것에도 순서가 있었다. 당시 가부장의 권력은 절대적이었다. 맨 위의 소복한 쌀밥만 걷어서 할아버지의 밥공기에 담는다. 그러고는 아버지, 숙부 등의 순서였다. 그러고 나면 ‘이제는 내 차례겠지’ 학수고대하지만 언감생심. 어머니는 커다란 밥주걱을 이용해 솥 전체를 휘저었다. 바닥에 깔린 보리와 상층의 쌀이 섞이고 쌀 반 보리 반인 밥을 큰아들부터 시작하여 막내아들까지 나누어 준다. 그다음에야 딸들 순서가 된다. 지금 시대에서 보면 어처구니없는 이야기로 들리겠지만 그 시절의 남존여비와 장유유서 사상이란 것이 무작정 내려온 전통이었고 어쩌면 전통의 겉옷을 입은 인습의 속살이었다. 아이들 밥을 다 푸고 나면 솥 맨바닥에는 보리만 남게 되는데 그 보리를 박박 긁은 것이 어머니 몫이었다. 요즘 말하는 건강식 보리밥은 언제나 어머니 차지였던 것이다. 많은 시간과 세월이 흘렀다. 지금은 가장 좋고 맛난 것은 ‘어린 자식들 먼저’라는 세상이 되었다.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내리사랑의 결과인지도 모른다. 어떻게 보면 우리네 조부모들은 무쇠보다 더 강하고 모진 정신력을 가졌으리라. 사랑스런 손자들에게 보리밥을 주고서도 보란 듯이 혼자만 쌀밥에 생선 살을 발라 먹을 수 있었던 그 용기와 강심장에 경하를 드린다. 그렇게나 강심장이셨던 할아버지도 돌아가시고 안 계신다. 중간 세대에 끼여 자식들에게까지 인내만 요구하던 아버지도 세상을 버리신 지 오래다. 그나마 시부모와 시누, 시숙 챙기느라 등골이 빠진 우리 어머니는 아직도 살아서 자식들의 전화를 기다리신다. 영겁의 시간을 잘도 버틴 지구는 여전히 자전과 공전을 반복한다. 겉으로는 아무것도 변한 것 같지 않은데 엄청난 문화의 변곡이 살아나고 소멸되기를 반복한다. 우리 부모님은 어쩌면 낀 세대의 효시일지 모른다. 세대의 무게 중심이 부모에서 자식으로 바뀐 이처럼 불완전하면서도 완전해 보이는 세대교체가 불과 몇십 년 내에서 완성되어 가는 현실에 오히려 숙연해진다. 며칠 전부터 찰랑이는 바람이 제법 촘촘하게 싸늘해졌다. 다시 찾아오는 또 한 번의 엄숙한 겨울의 문턱에서 오늘도 저 먼 하늘에서 사랑하는 아이들의 안위를 걱정하고 계실 아버지가 그리운 계절이다. 이번 주말에는 당신이 좋아하는 몇 가지 반찬거릴 준비해서 시골에 계신 어머니를 찾아봬야겠다. 아직도 당신의 눈에 어리고 철이 없어 보이기만 하는 중년의 아들이 직접 밥을 지어 따뜻한 진지 한 그릇을 올려야겠다. 갑자기 이번 주말이 부산해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