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VID LANZ - Firedance
그러니까 작년 3월 경 세이코 시계에 관한 글을 쓴 기억이 난다.
그리고 거의 다시 일 년이 다 되어서야 세이코 시계 2편을 쓰게 된다.
내 블로그를 검색해보니 9 월 경에 2편을 쓰려고 제목도 정하고 사진도 찍어놓고 전혀 글을 쓰지 못하고 거의 7 개월만에
다시 세이코 시계에 관한 글을 쓰려고 마음을 먹게 되었다.
반드시 갖고 싶었던 이 세이코 시계를 내 손목에 차게 된 것은
생일을 빙자하여 그녀로부터 반드시 선물을 받고 싶었기에 생일 두어 달 전부터 작전 상 압력을 행사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나 선물 세이코 시계 아니면 안받을 거야~ "
"세이코 시계 한 번 차보고 죽었으면..."
별의별 감언이설과 압력과 회유로 드디어 9월 초 내 생일에 선물을 받아내고 말았다.
그리 비싼 것이 아니기에 별다른 저항은 없었다. 그리고 요구하기에도 별로 부담이 되지 않는 가격대비 착한 물건에 속하는 것이었다.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선물을 받는다는 것
사랑하기에 상대로부터 선물을 받고 그 기념을 오래도록 간직하고 싶은 것은 누구에게나 공통된 심사일 것이다.
아마도 보기 싫어하는 사람이 선물을 주면 등한시하겠지만
이 선물을 받는 순간부터 지금까지 이 세이코 시계는 절대로 무덤까지도 가지고 가고픈 나의 보물 일호인 셈이다.
시계 자체도 소중하지만
선물이라는 의미, 그것도 사랑하는 사람이 선물한 물건을 어찌 소홀히 다룰 수 있으랴...
수천만원짜리 다이아 반지보다 기십만원짜리 이 시계가 나에게는 더 소중하다.
왜냐... 사랑하는 사람의 마음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선물, 그리도 소중한 선물에 문제가 생기게 되었다.
무덤까지 가지고 가겠다고 결심한 이 시계는 잠을 자면서도 차고 잤을 정도로 애지중지했다.
걸으면서도 잠자리에서도 시계를 드려다 보며 그녀의 얼굴을 떠올리며 흡족한 마음으로 잠을 청하곤 했는데...
문제는 바로 8월 초에 발견된 내 몸 속의 종양 때문에 생기게 된 문제였다.
80킬로그램에 육박하던 몸무게가 하루가 다르게 빠지기 시작했다.
병원을 입퇴원하면서 시계는 점점 더 호주머니 속에서 뒹구는 시간이 늘어났다.
11월이 되자 내 몸무게가 50킬로 그램이 채 안되는 상태로 접어들었고 수없이 찔러대는 바늘 때문에
아예 시계를 벗고 있어야 했다.
더더구나 체중이 줄고 뼈만 남자 시계를 찰 수 없을 정도로 무겁게 느껴졌다.
실제로 시계를 차고 손을 들어올릴 힘도 없어져 버린 것이다.
지금이야 이렇게 앉아서 글도 쓰고 음악도 듣지만 7월 발병 이후 12월까지는
하루 24 시간 가운데 몰핀으로 버티는 3-4시간 외에는 거의 죽음 같은 통증으로 신음하며 고통 받고 있었다.
걸을 수도 없어서 링거 수액을 매단 기둥을 잡고 이동했고
잠시 자유로울 땐 지팡이를 짚고 걸어야 했다.
다리에 힘이 없어서 걸음을 걷다가 자구 주저 앉아야 했기 때문에 지팡이 없이는 이동이 불가능했다.
그렇다고 휠체어에 오래 의지하고픈 마음은 없었다.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이 시계는
내 컴퓨터 책상 위에 곱게 모셔져 있었다.
흔들어주지 않으면 돌아가지 않는 시계... 죽어있을 수 밖에 없었다.
초침이 정지되어버린 시계를 보는 순간
죽음이 떠올랐다.
아니 정확하게는 숨이 멎어버려서 동작을 멈춘 동물이나 유기체를 보는 것처럼
가슴이 저려오고 답답해졌다.
틈만 나면 손목에 채워 자주 흔들어줘야 숨을 멈추지 않는데
아예 시계를 찰 수가 없으니 거의 모든 시간을 숨을 못쉬고 죽어지내게 된
내 세이코 시계
이런 무동력과 무생물의 차디 차가워진 시계를 볼 때마다 자꾸 죽음이 떠올랐고
숨이 막혀왔다.
그리고 시계와 연관되어 그녀와의 사랑이 혹시나 정지되어버릴 것 같은 불길한 예감 때문에 몹시 시달렸다.
시계를 찰 여력이 없어서 시계를 볼 때마다 흔들어주고는 있지만
거듭되는 통증과 약 복용 때문에 자주 시계를 잊어버리곤 했다.
그러면서도 시계를 이렇게 죽이고 소홀히 하면 그녀가 얼마나 서운해할까 싶은 마음도 들고 해서 틈만 나면 시계가 숨을 멎지 않았나 조바심을 내게 되었다.
병원에서 샤워를 하면서 재어본 체중 48킬로 그램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은 나도 믿을 수가 없었다.
언제 내 몸이 이렇게 뼈만 남았을까?
내가 봐도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었다. 아우슈비츠의 그 사람들과 전혀 다르지 않았다.
그래서 그 충격으로 식욕촉진제를 먹기 시작했다.
이제 더 이상 살이 빠지면 죽는다 생각하고 억지로 밥도 먹고 약도 먹고 어떻게든 강제로라도 살을 불려야지 하는 생각만이 나를 흔들었다.
드디어
엊그제
지팡이를 버렸다.
무릎이 자꾸 저절로 꺽이는 바람에 지팡이가 없으면 걷지 못했는데...
지렁이가 이동하는 것처럼
달팽이가 움직이는 것처럼
눈에 보이지 않게 하루 하루 걸음이 나아지고 수면이 나아지고 식욕이 나아지고
목소리도 나아졌다.
전화 통화를 할 수 없을 정도로 배에 힘이 없고 목소리가 안나왔는데 이제는 썽썽한 목소리가 나온다.
눕는 것도 왼쪽이 아니면 못누웠는데 이제는 오른쪽으로도 눕는다.
반듯이 오래 앉아 있지도 못했는데 엊그제는 성산대교까지 혼자서 드라이브를 다녀왔다.
다시
책상 위의 시계
...
죽어 있다.
열심히 흔들어준다. 열심히...
살아야지...
사랑도 이어져야지...
7개월 동안 죽어버린 사랑
버티기 힘들었던 모든 식구들...
사랑으로 메우리라 ...
그동안 쏟아붓지 못한 사랑 열정적으로 쏟아부으리라...
죽음에 도달한 생명을 사랑으로 부활시킨 내 사랑...
나머지 삶을 사랑으로 채우리라...
자기야 힘들었지?
이제 다시 힘차게 뛰는 시계처럼 열심히 사랑할께...
빨리 일어나서 씩씩하게 안아달라던
세이코 시계처럼 소중한 당신
사랑해...
사랑해...
세이코 시계 - 2
피안의 새
첫댓글 오~ 세이코...
축구 하다가 공이 유리창에 맞아 '유리가 먼저 깨졌나, 공이 먼저 유리를 깼느냐?'라는 재미있는 말처럼...
세이코 시계가 피안 형 투병중에 같이 있었네요.
고저 살아있음에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
오헨리의 소설 "마지막 잎새"에서 처럼 인간은 희망 하나로 살아가는 존재인 것 같아요...
내 시계도 세이코, 흔들면 자동으로 밥 주는 20세기 고물 시계..전지 안 갈아도 죽는 일 없어..
우리 인생도 이 세이코 시계같이 우리가 움직이는 한 영원히 돌아 가기를
은근히 신경을 많이 써줘야 하는 시계입니다. ㅎ
..... 그 정도이였군요.
이제 조금씩 조금씩 흔들어서 파동이 깊은 공명이 될 때 까지 깊은 사랑을 나누시기를 빕니다.
네, 감사합니다. 오래도록 그 사랑이 잘 유지되어야 할텐데... 우여곡절 풍파가 많군요. 감사합니다.
언제나 건강하세요~
오랜만에 아름다운 님의 글
한편의 드라마를 보는 듯 합니다
해피엔딩 드라마
봄 기운에 녹아 쓰러지는 눈처럼
님 주위의 어두운 그림자도 이 봄의 기운에 싸그리 물러갈 겁니다
오늘 택배가 온다고 문자가 왔는데 고로쇠인지 다른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몸이 않좋다 보니 택배를 자주 이용하는 편이 되어서 많은 물건들이 오네요...
남이 보면 제가 무슨 갑부라도 되는 줄 알겁니다. 소소한 약재에서부터 잡다한 일상품까지 택배를 이용하다보니
여간 편한게 아니군요. 믿을 만한 상거래라면 좋다고 여깁니다.
한번은 쇼핑을 하고 돈을 먼저 입금했는데 유령 사이트도 있더군요... 돈만 날리고 말았죠... ㅎㅎ
세이코 시계에게 배워야 할 것 같네요.
다 죽어 가다가도 조금만 자극을 주고, 용기를 북돋워 주면 다시 재기하는 끈질긴 생명력을...
님의 용기와 투지에 박수를 보냅니다.
인간은 미래라는 희망과 기다림이 없다면 살아가지 못할 존재인 것 같습니다.
아마도 그런 형이상학적인 가치가 존재하지 않는다면 인간은 하나의 단순한 유기체에 지나지 않겠지요...
산산산님의 여행기 잘 읽었습니다.
왜 이리 제 마음이 찡~ 한걸까요?
피안의 새님~~ 힘내실 줄 믿습니다~!!
동병상련이라 하지요. 샤론님도 힘내세요. 감사합니다.
처음 인사드립니다. 전 니카라과에살고있습니다. 지면을 통해서 가끔뵜는데.,, 이렇게라도 인사라도 드려야
되겠기에.,, 나중에 또 뵙지요. 안녕이계씹시요.
네... 반갑습니다. 다빈님~ 자주 들르세요~
피안의 새님 !!!!!!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