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트>
『전통 제례의 계승』
손병흥
마을 어귀의 느티나무는, 수백 해를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굽은 줄기와 넓은 그늘 아래로, 계절마다 사람들의 사연이 모였다.
봄이면 제삿날을 의논하는 종친들이 모였고, 여름이면 아이들이 뛰놀았으며, 가을이면 햇곡식과 햇과일을 앞에 두고, 오래전의 조상 이야기가 오갔다.
겨울이면 바람에 흔들리는 가지 끝에서, 오래된 시간의 숨결이 들리는 듯했다.
그 느티나무 아래에는 오래된 종가가 있었다.
기와지붕은 세월의 무게를 이고 있었고, 대청마루의 나무결마다 사람들의 손때와, 숨결이 오래도록 스며 있었다.
집안 어른들은 이 집을, ‘뿌리의 자리’라고 불렀다.
해마다 음력 시월이 되면 종중 사람들은 이곳에 모여, 선산의 벌초와 시제 날짜를 정하고, 제수 비용과 문중 살림을 의논했다.
그날도 종중 회의가 열렸다.
안채 부엌에서는 며느리들이 국을 끓이고 전을 부쳤고, 사랑채 마루에는 종친들이 둘러앉아, 두런두런 이야기들을 나누고 있었다.
연장자인 노인들은 예전 법도를 이야기했고, 젊은 사람들은 달라진 세상 형편을 조심스럽게 입에 올렸다.
“예부터 내려온 법도는, 함부로 바꾸는 게 아니네.”
종중의 최고 연장자인 만식 어른이, 묵직한 목소리로 말했다.
흰 수염을 쓸어내리는 그의 손끝에는, 오래된 권위가 묻어 있었다.
“조상님께 올리는 제사는 정성이 우선이지, 형식이 우선은 아니네. 허나 형식 또한 쉽게 버릴 수는 없는 법이야.”
그 말에 몇몇 노인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나 마루 한쪽에 앉아 있던 종손 준호는, 더 쉽게 입을 열지 못했다.
그는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다가 퇴직하여, 몇 해 전부터 고향으로 내려와서 종가를 지키고 있었다.
종손이라는 이름은 무거웠고, 늘 그 자리는 생각보다도, 너무나 외롭고 힘이 버거웠다.
종가를 지킨다는 것은, 단지 집을 지키는 일이 아니었다.
집안의 체면과 제례, 선산과 족보, 어른들의 기대와 젊은 세대의 불만까지도, 모두 떠안는 일이었다.
준호는 마침내 천천히 입을 열었다.
“어르신들 말씀처럼 제사는 정성으로 모셔야 합니다. 저도 그 뜻은 다르지 않습니다. 다만 예전과 같은 방식만이 정성의 전부는 아니지 않겠습니까.”
마루의 시선이 일제히 그에게로 쏠렸다.
“지금은 종중 사람들 절반이 타지에 삽니다. 예전처럼 사흘 전부터 모여 장만하고, 밤새 준비할 형편이 아닙니다. 제사 한 번 지내려면 누군가는 생업을 접어야 하고, 누군가는 먼 길을 마다해야 합니다. 조상을 기리는 마음은 같되, 방식은 시대에 맞게끔, 조금은 간소해져야 오래 이어질 수 있습니다.”
잠시 정적이 흘렀다.
부엌에서 전 부치는 소리만이 잔잔히 들려왔다.
그때 막내 종친인 창수가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그녀는 도시에서 문화재와 관련된 일을 하다가, 이번 회의에 처음으로 참석한 젊은 세대였다.
“어르신들, 전통은 지키는 것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도 줄곧 이어가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형식과 절차가 너무 무겁고 번거로우면, 결국 다음 세대는 전통을, 단지 그저 짐으로 여길 수밖에 없습니다. 이를 잘 지켜나가기 위해서는, 오히려 덜어낼 줄도 알아야만 합니다.”
그말에 몇몇 어른들의 눈빛이 달라졌다.
낯선 말이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함부로 흘려들을 수 없는 진심이 담겨져 있었다.
“제사의 음식 수를 줄이고, 꼭 필요한 예만 남기면 어떻겠습니까. 상차림은 간소하게 하되 정성은 다하고, 종손 혼자 짐을 지지 않도록, 종중이 함께 역할을 나누는 겁니다. 형식은 덜어도 마음은 덜어지지 않습니다.”
마루 끝에 앉아 있던 노인 하나가 헛기침을 했다.
“허면 너무 간략해져, 조상님 보시기에 성의가 없다고 여기지 않겠나.”
창수가 차분히 답했다.
“조상님께서 바라시는 것도, 결국 자손들이 화목하게 모여, 진심 어린 마음을 잇는 일일 겁니다. 상 위의 음식이 많다고 해서, 효성이 더 깊어지는 것은 아니지 않겠습니까. 마음은 남기고 허례는 덜어내야만 오래 갑니다.”
그날 회의는 해가 기울도록 이어졌다.
제수는 꼭 필요한 음식만 올리기로 했고, 보여주기식 격식은 과감히 줄이기로 했다.
종손 혼자 맡던 제례 준비는, 이제부터 각 가구가 나누어서 맡기로 했고, 제례 절차 또한 꼭 필요한 순서만 남겨, 아주 간결하게 정리를 했다.
족보 정리는 젊은 세대가 맡아 디지털로 보관하기로 했고, 선산 돌봄도 분기마다 돌아가며 책임지기로 했다.
처음엔 어색하리라고 여겼던 결정들이, 점차 하나둘씩 그 자리를 잡아갔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날 처음으로 종중의 의사결정이, ‘무엇을 얼마나 더할 것인가’가 아니라, ‘무엇을 덜어야 오래 이어질 것인가’를 중심에 두고, 이루어졌다고 하는 점이었다.
몇 달 뒤 시제 날, 종가의 마당에는 예년보다도 훨씬 단출한 상이 차려졌다.
과일 몇 가지와 정갈한 나물, 국 한 그릇과 밥, 그리고 조촐한 술잔이 전부였다.
그러나 마당에는 예전보다 더 많은 웃음이 모였다.
부엌은 덜 분주했고, 사람들은 덜 지쳤으며, 아이들은 마루 끝에 앉아, 절하는 법을 배우며 웃었다.
누구도 제례를 짐이라 말하지 않았고, 누구도 얼굴을 찌푸리지 않았다.
준호는 향을 올리며 문득 생각했다.
비워낸 자리에 비로소 마음이 들어앉는다는 것을 느꼈다.
제례가 끝난 뒤 만식 어른은, 한참 동안 말이 없었다.
그러다 느릿하게 마당을 둘러보며 입을 열었다.
“많이 차리는 것이 정성인 줄 알았더니, 오래 이어가는 것이, 더 큰 정성이었구먼.”
그 한마디에 마당의 공기가 조용히 풀어졌다.
느티나무 아래로 저녁 햇살이 길게 누웠다.
바람이 지나가며 잎사귀를 흔들었다.
이처럼 오래된 것은, 그냥 그대로 사라지지가 않았다.
다만 덜어내야 할 것을 덜어내며, 더 오래 살아남을 뿐이었다.
전통은 무거운 짐이 되어서는 오래갈 수 없다.
다음 세대가 기꺼이 손에 쥘 수 있을 만큼 가벼워져야 하고, 삶 속에서 자연스레 이어갈 수 있을 만큼 간소해져야만 한다.
제례 또한 이와 마찬가지다.
조상을 기리는 마음은 남기되, 허례와 과장은 덜어내고, 그 형식은 줄이되, 뜻은 더욱 또렷하게 해야 한다.
그래야 전통은 박제가 아니라, 살아 있는 삶의 문화로 이어져, 다음 세대에 건너갈 수 있다.
우리들의 전통과 제례 의식은, 그렇게 이어져야 한다.
지킬 것은 지키되, 덜어낼 것은 덜어내며, 복잡한 형식보다 진심 어린 마음을 앞세우는 일이다.
전통은 고스란히 보존하는 데에만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니라, 시대에 맞게 간소화하고 다듬어, 오래도록 이어가는 데 더 큰 뜻이 있다.
결국 전통은 무겁게 짊어지는 유산이 아니라, 함께 나누어 가볍게 이어갈 때 비로소 살아남는다.
느티나무는 여전히 항상 그 자리에 서 있었다.
뿌리는 깊고, 가지는 한결 가벼워, 바람을 더 멀리 품고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