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0년대 일본축구는 아시아에서도 3류에 가까운 팀이었다.
하지만 1968년 멕시코시티올림픽에서 동메달을 따내며 전세계를 놀라게 했으며
당시 일본의 어느 무명의 스트라이커는 무려 득점왕을 차지하며 세계적인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었다.
바로 "가마모토 구니시게"라는 스트라이커다.
1944년 2차대전이 한창이던 시절, 가마모토는 교토에서 태어났다.
소학교시절 그는 축구와 야구에 모두 재능을 보였으나 당시 축구부의 감독이었던 이케다 선생의
야구는 잘해봐야 미국으로 진출하는게 전부지만 축구는 세계로 진출할수 있다는 말에 감명받아
축구로 전향했다.
고등학교 2학년때 이미 청소년대표팀에 발탁되었던 가마모토는 축구 명문대학인 와세다대로 진학했고
그해 1964년 조국에서 열리는 도쿄올림픽 대표팀에도 선발된다.
당시 일본은 조별리그에서 아르헨티나를 3:2로 무너뜨리며 사상 최초로 8강진출을 달성했다.
가마모토는 6:1로 대패했던 유고슬라비아와의 순위 결정전에 출전해 한골을 터트리며 국제무대에 인상을 남겼다.
대학시절 와세다대학을 3차례 대학리그에서 우승시키고 7번의 득점왕을 차지한 가마모토는 1967년
와세다대 졸업이후 실업팀 얀마 디젤에 입사한다.
1967년 멕시코시티올림픽 아시아지역 예선이 열렸다. 당시 일본은 한국, 필리핀, 대만 ,레바논, 베트남과 풀리그를
치뤘고 여기서 단 한팀이 다음해 멕시코로 가는 티켓을 따낼수 있었다.
일본은 3차전에서 필리핀을 무려 15:0으로 대파해 한국보다 골득실에서 훨씬 앞서는 상황이었고 도쿄에서
운명의 4차전이 열렸다.
한국은 전반에만 일본의 와타나베와 가마모토에게 두골을 허용하며 패색이 짙었지만 후반전 이회택과 허윤정의 골로 동점을 만들었다.
하지만 가마모토는 김호의 악착같은 수비를 뚫고 역전골을 터트렸다. 한국은 다시 정병탁이 동점을 만들어내며
균형을 맞추었다. 하지만 지금도 올드축구팬들에게는 길이길이 회자되는 경기종료직전 김기복의 강슛이
일본 골키퍼 요코야마의 손을 스치며 일본의 크로스바를 때리고 나왔고 경기는 3:3으로 끝나며
일본은 한국을 제치고 멕시코행 티켓을 따냈다.
(1964년 도쿄올림픽에서 일본의 8강을 이끈 데트마르 크라머감독. 왼쪽의 선수는 스기야마 류이치 당시 주장이다.)
당시 일본축구를 이끌었던 감독은 서독출신의 "도르트문트의 나폴레옹" 데트마르 크라머였다.
그는 현대 일본축구의 아버지로 불리는 사람이며 훗날 바이에른 뮌헨과 유러피언컵에서 정상을 차지하는
명장이다.
크라머감독은 가마모토에 서독 축구 유학을 주선했고 1968년 가마모토는 서독의 살브뤼켄으로 3개월간의
축구 연수를 떠난다. 당시 가마모토를 가르친 지도자는 훗날 1982년 스페인월드컵에서 서독의 준우승을
이끈 푸트 데어발이었다.
데어발로부터 가마모토가 배운 것은 슛 자세, 슛을 때릴때의 마음 가짐등이 있다. 당시 크라머가 가마모토에
대해 평가한 점을 보면 "오른발은 인터내셔널 클래스, 왼발은 고등학생 수준"이라고 평가 했었다.
서독에서 선진축구를 연수한 가마모토는 1968년 멕시코시티 올림픽에서 그 진가를 유감없이 발휘했다.
1차전인 나이지리아전에서 헤트트릭을 기록했고 8강에서 만난 난적 프랑스를 상대로 2골을 터트렸으며
홈팀 멕시코와의 3~4위전에선 2골을 터트리며 총 7골로 대회 득점왕을 차지 한 것이다.
당시 한국언론에서조차 일본의 동메달과 가마모토의 활약에 놀란 나머지 "아시아의 자랑"이라는 표현을 썼다고 한다.
멕시코올림픽 이후 가마모토는 서독을 비롯해, 프랑스, 우루과이 세계 각국의 프로팀으로 부터
영입제의를 받았지만 크라머감독은 "프로선수가 되려면 무조건 1류클럽으로 가라"라는 조언과
프로선수로서 성공할 확신이 없었던 것인지 모두 거절했다.
(황제와의 친분)
(펠레는 1984년에 열린 가마모토의 은퇴경기에 참석할 정도로 둘의 친분은 두터웠다.
왼쪽은 서독의 볼프강 오베라트)
(1980년 도쿄에서 열렸던 일본과 네덜란드의 A매치 당시. 가마모토가 토털사커의 위대한 혁명가 크루이프와 함께 인터뷰 하고 있다.)
가마모토는 얀마 디젤에서 7번의 득점왕을 비롯해 7번의 리그 MVP, 14회의 시즌 베스트11,
202골 79어시스트를 기록했다.
또한 일본 대표팀에서도 76경기에 출장해 75골을 터트렸고 현재까지 일본대표팀 역사상 최다 득점으로
남아있다.
첫댓글 혹시 고대축구학이세요?
그 인간보다는 이분 글의 퀄리티가 비교불가급으로 훨씬 좋음.
@홍진호날두 꼬축학 무시하지 마세욧!
잘봤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