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천 마을 유후인
전효택
에너지자원공학과 명예교수, 수필가
삼 년 만의 해외여행이었다. 그동안 코로나 팬데믹으로 해외여행은 완전 포기하고 있다가 얼마 전에 3박 4일간 일본 후쿠오카(福岡)-유후인(湯布院) 여행을 다녀왔다. 이동 중 식사 시간 이외에는 마스크를 써야 하는 불편은 있었으나 좋았다. 얼마나 오랜 기간 기다려 왔던가.
유후인 온천 마을은 일본에서 유명한 휴양지 중의 하나이다. 이 마을은 후쿠오카 동쪽으로 승용차로 두 시간 정도 거리이다. 평평한 고속도로를 지나다 오르막길로 도로 양쪽의 높은 나무숲을 지나자 멀리 전방에 두 개의 원추형 화산 봉우리(1,584m 높이)가 있는 유후다케(由布岳)산이 보였다. 이 산은 유후인 어디에서나 보인다.
고속도로에서 보이는 유후다케(由布岳)산과 유후인(湯布院) 마을
유후인 온천에서의 하룻밤 숙소는 무라타(無量塔) 산장이었다. 이름 그대로 측정하기에 너무 많다는 의미이며 손님의 행복을 위한다는 뜻이다. 무라타 산장은 1992년에 현재 위치에서 산장으로 출발했다 한다. 산장 뒤로는 유후다케 산봉우리가 보였고, 산장 주변에는 높은 키의 나무숲이고 비슷비슷한 일본 전통 가옥(별장)들이 여러 채 눈에 들어왔다. 경사가 완만한 2차선 너비의 포장도로와 곳곳의 주차 공간이 편리해 보였다. 나는 2월 하순의 무라타 산장을 방문했지만, 울창한 나무숲은 봄과 가을엔 얼마나 아름다울까 상상하기에 충분했다. 점심은 이 산장이 경영하는 소바(국수) 식당에서 간단히 했다. 식당 마당에서 곳곳에서 솟아오르는 흰 증기들을 보고 있으니 이곳이 온천 지역임이 실감났다.
무라타(無量塔) 산장. 유후다케(由布岳)산도 보인다.
무라타 산장 본관에는 로비 응접실과 식당이 있다. 식탁은 다다미방에 전통적인 나무 테이블로, 다리를 바닥에 내려놓는 일본식이다. 숙소는 이 산장이 소유한 몇 개의 가옥 중 하나인 쇼와(昭和) 별장이다. 본관에서 돌계단으로 내려와 연결되는데 다시 걷고 싶을 정도로 아담하다. 이 별장은 전통적인 다다미방의 목조 가옥이다. 나는 다다미방을 볼 때마다 젊은 시절 도쿄대학에서 연구 생활할 때가 떠오르곤 한다. 학교 부근에 다다미 네 장 크기의 좁은 자취방에서 지냈다. 이번 방문에 나를 초대해 준 사위의 말로는 이 산장에서의 숙박이 꽤 비싸다고 했다. 저녁과 아침 식사는 일본식 메뉴에 버틀러(Butler, 개인 집사라는 뜻) 서비스까지 꽤나 훌륭했다. 이 서비스는 특별한 고객이 숙박할 경우 식탁 테이블에 전담 직원이 배치되어 서비스함을 의미한다.
숙소는 넓은 온천욕 욕탕, 부엌 시설, 응접실의 소파와 책상, 서재가 완벽했다. 응접실에 걸어 놓은 유화 유후다케 산봉우리 두 개가 시선을 끌었다. 마치 프랑스 프로방스의 화가 세잔의 생트빅투아르(Sainte-Victoire)산을 연상케 했다. 응접실의 서재와 테이블은 고풍스런 목재로 만들어졌다. 일본식 다다미방에 고타쓰(炬燵, 탁상 난로 또는 이불 탁자= 테이블 아래 화로를 두는 난방 시설), 벽에 걸린 그림들 심지어 백제의 기와 그림도 있었다.
하룻밤을 묵고 난 다음 날 아침 비가 내렸다. 응접실 창문에서 보이는 잔디와 나무들과 푸른 이끼 풍경이 청초했다. 지붕에서 길게 내려 달린 물받이 철 초롱이 처음에는 무슨 용도인지 몰랐는데, 비가 오니 알게 되었다.
숙소인 쇼와(昭和) 별장과 실내의 유후다케(由布岳)산과 백제 기와 그림. 지붕에서 연결된 철초롱 물받이.
정동주(제일교포 2세) 화가이자 서예가의 작품 전시실과 작품들.
유후인은 예술가의 마을이다. 숙소를 출발하며 바로 아래 재일 교포 화가의 사무실 겸 전시실에 들렀다. 정동주 화가이자 서예가는 70대 중반의 재일교포 2세이며 이곳 출신이다. 그는 프랑스에서 작품 활동을 하고, 20여 년 전에 이곳 2층 가옥에 본인의 작품 전시실을 개설하고 상설 전시하고 있다. 회화 작품에 관심이 많은 내게는 그의 추상 유화 작품들이 강하게 다가왔다. 나무와 숲이 우거진 고향 마을에 작품 전시실이 있는 그가 매우 부러웠다. 사무실을 지키는 작가의 따님은 한국에서도 이 년간 공부한 재원이고 한국인과 결혼했다고 했다. 전시를 구경한 후 내가 출발하려 하자 비가 오는데도 주차장까지 배웅하는 친절에 감사했다. 내게는 아직 이런 숲속의 멋진 공간이 없지 않은가.
유후인(湯布院) 기차역과 유노츠보 거리. 인력거가 보인다.
유후인 기차역 부근은 전통 마을과 상점 거리이다. 기차역은 목조로 지은 건물이며 자연 친화적인 모습이다. 역에서 유노츠보 거리를 산책하며 마치 동화 속 마을처럼 아기자기한 가게를 둘러봤다. ‘구운 주먹밥’이나 ‘일본 식혜’ 같은 문구들이 한글로 씌어 있다. 한국인 관광객이 많은 모양이다. 유후인 마을은 자연환경이 아름다운 온천 휴양지이며 관광지이다. 걸어서 충분히 돌아볼 수 있으며, 자전거나 관광 마차 또는 인력거 등으로 이동한다. 오래전부터 자리 잡은 숙소 시설과 식당 찻집, 기념품 가게 등이 아담한 분위기를 보이며, 온천수가 만든 물안개 낀 긴린코(金隣湖) 호수도 답사에서 빼놓을 수 없다.
유후인에서 일박 이일의 짧은 일정이었으나 다시 와야지 하고 희망한다. 여행의 매력은 언제나 낙관적으로 생각하는 기대감과 성취감에 있으니까.
출처 : 서울공대 웹진 Vol.126 (인물/정보/컬럼 > 여행 컬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