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랑비에 옷이 젖어야… 고물가 시대 레스토랑&바의 생존법
[푸드 NOW]
저렴한 메뉴 앞세워 접근성 높여… 메인 요리 힘 빼고 구성은 다양하게
잔술 즐기는 ‘플라이트 메뉴’ 인기… 가성비 넘은 ‘갓성비’ 메뉴로 승부
언젠가부터 삼겹살 1인분을 2만 원 넘는 가격으로 판매하는 식당들이 많아졌다. 둘이 가서 삼겹살 2인분에 볶음밥, 찌개에 소주 한 병까지 곁들이면 5만∼6만 원은 훌쩍 넘는다. 대표적인 서민 음식으로 불리던 삼겹살이 거리감 있게 느껴지는 요즘이다.
물론 단순히 돼지고기 값만 올라서 초래된 현상은 아니다. 계속해서 오르고 있는 인건비와 임차료, 재료비 등을 메뉴 가격에 반영할 수밖에 없어서 그렇다. 일부 식당에서는 기존에 삼겹살 1인분에 200g이었던 것을 150g으로 줄이고 가격은 그대로 유지하는 경우도 많은데 중량을 줄여 판매하려는 꼼수보다는 손님들의 심리적인 가격 방어선에 맞추기 위한 궁여지책인 경우도 있다.
삼겹살 시장만 해도 이러한데 소고기나 양고기 전문점, 이탈리아 레스토랑, 호텔 레스토랑, 술집 등은 어떻게 살아남고 있을까? 대표적인 전략은 가랑비에 옷 젖기 전략이다. 처음에 주문하는 금액을 부담스럽지 않게 설정하거나 일부 판매 중인 메뉴 중 몇 가지를 1만 원이 안 되는 가격으로 설정해 접근성을 높이는 방식이다.
이자카야 ‘생마차’는 닭날개튀김 900원, 생맥주 1900원을 아예 매장 간판에 큼지막하게 적어놓고 다양한 구이요리를 판매하고 있다. 오후 4시부터 영업을 시작하는 이곳엔 새벽까지 20, 30대 젊은 소비자들로 북적거린다. 편의점 음식보다 싼 가격이기에 부담 없이 들어갔다가 이것저것 주문하다 보면 3만∼4만 원은 훌쩍 넘는 게 포인트다. 맥주는 500cc가 아닌 300cc여서 재주문율이 높고, 바삭한 닭날개튀김 때문에 식욕이 자극되어 다른 메뉴를 더 주문하게 된다. 추가 주문을 많이 하지 않고 나가더라도 대기 중인 새로운 손님으로 바로 교체되기 때문에 업장 입장에서 괜찮은 전략이다.
서울 여의도 ‘르뵈프’의 2만 원짜리 스테이크(위 사진)와 발베니의 ‘플라이트 메뉴’도 인기를 끌고 있다. 김유경 푸드디렉터 제공두 번째 전략은 구성은 다양하게 하되 메인 요리의 포션을 줄이는 방법이다. 서울 여의도에 있는 아메리칸 스테이크 하우스 ‘르뵈프’는 점심엔 인당 2만 원에 스테이크 플래터를, 저녁엔 인당 3만3000원에 아메리칸 스테이크가 포함된 6코스 요리를 즐길 수 있다. 서울에서, 그것도 여의도 한복판에서 경험하기 어려운 가격이기에 손님들이 줄이어 찾고 있다. 런치 플래터에는 매장에서 갓 구운 브리오슈부터 스테이크와 곁들여 먹으면 맛있는 브레이즈드 적채, 크림 스피니치, 파스타, 스테이크가 나온다. ‘부첼라’ 출신의 수석 셰프가 요리하는 공간인 만큼 맛도 훌륭하고 계산서를 보면 기분이 더 좋아지는 식당이다. 디너에는 주류 주문이 필수이지만 애피타이저에 샐러드, 라구소스 라자냐, 레미마르탱 VSOP 코냑이 들어간 아이스크림까지 함께 나오기 때문에 심리적인 만족감이 큰 편이다. 소비자들은 이런 곳을 ‘갓성비’(신이 내린 가성비) 레스토랑이라고 부른다. 물론 스테이크의 두께나 양이 타 스테이크 하우스와 비교하면 적은 편이긴 하지만 함께 나오는 요리들이 다양하고 맛도 괜찮아서 고객들의 반응이 좋다.
고물가 시대에 ‘가성비’를 앞세운 대표 메뉴로 꾸준히 소비자들의 발길을 잡는 레스토랑들이 주목받고 있다. 서울 서초구 ‘양반등심’에서는 인당 2만9000원에 투플러스 한우 등심과 12첩 반상을 맛볼 수 있다. 김유경 푸드디렉터 제공서울 서초구 양재동 말죽거리 부근의 ‘양반등심’은 12첩 반상에 투플러스 한우 등심을 인당 2만9000원에 먹을 수 있는 곳이다. 가게 이름 그대로 양반댁에서 식사를 하는 것처럼 푸른 단청 아래 고급 한정식 가게에서나 볼 수 있는 묵직한 유기그릇을 사용한다. 냉채, 산적, 잡채, 양념게장, 문어숙회, 새우찜 등 12가지 반찬이 담겨 상다리가 휘어지는 비주얼에 쫀득한 떡심이 있는 투플러스 한우 소고기를 함께 즐길 수 있다. 등심 1인분 분량은 120g이며, 살치살이나 제비토시, 생갈비 등은 등심만큼 저렴하진 않지만 한우 전문점 중에서 진입장벽이 낮은 편이어서 방문객들이 꾸준하다.
그 외에 와인이나 위스키, 테킬라, 바이주를 병째 주문하지 않고 여러 가지 잔술로 즐길 수 있는 ‘플라이트 메뉴(Flight Menu)’도 요즘 자주 등장하고 있다. 평소에 경험하기 어려운 고급 위스키나 코냑을 활용한 하이볼 판매, 코키지 프리 정책 등 음식 외적인 영역에 대한 호기심과 접근성을 높여 어느 때보다 흥미진진한 레스토랑 & 바 신(Scean)이 펼쳐지고 있다.
아무리 좋은 음식이어도 가격이 비싸면 소비자들의 발걸음이 주춤해질 수밖에 없기에 가랑비에 옷 젖는 전략으로 마음을 사로잡아야 살아남을 수 있는 요즘이다. 외식업 시장이 힘들지만 다양한 콘셉트를 앞세워 노력하는 곳들은 새로운 그림을 그려 나가고 있다.
#플라이트 메뉴#갓성비#레스토랑&바
김유경 푸드디렉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