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3. 2. 주일 큐티
에스라 8:1 ~ 20
에스라가 지체하면서 찾은 사람들
관찰 :
1) 에스라와 함께 돌아온 백성들
- 1절. “아닥사스다 왕이 왕위에 있을 때에 나와 함께 바벨론에서 올라온 족장들과 그들의 계보는 이러하니라” => 에스라는 자신과 함께 2차 포로 귀환자들의 명단을 정리하고 있습니다. 족보의 대가인 에스라는 2차 포로 귀환자들의 명단을 정리하는 것을 통해서 이 사건의 의미를 되새기고 있습니다.
2 비느하스 자손 중에서는 게르솜이요 이다말 자손 중에서는 다니엘이요 다윗 자손 중에서는 핫두스요
3 스가냐 자손 곧 바로스 자손 중에서는 스가랴니 그와 함께 족보에 기록된 남자가 백오십 명이요
4 바핫모압 자손 중에서는 스라히야의 아들 엘여호에내니 그와 함께 있는 남자가 이백 명이요
5 스가냐 자손 중에서는 야하시엘의 아들이니 그와 함께 있는 남자가 삼백 명이요
6 아딘 자손 중에서는 요나단의 아들 에벳이니 그와 함께 있는 남자가 오십 명이요
7 엘람 자손 중에서는 아달리야의 아들 여사야니 그와 함께 있는 남자가 칠십 명이요
8 스바댜 자손 중에서는 미가엘의 아들 스바댜니 그와 함께 있는 남자가 팔십 명이요
9 요압 자손 중에서는 여히엘의 아들 오바댜니 그와 함께 있는 남자가 이백십팔 명이요
10 슬로밋 자손 중에서는 요시뱌의 아들이니 그와 함께 있는 남자가 백육십 명이요
11 베배 자손 중에서는 베배의 아들 스가랴니 그와 함께 있는 남자가 이십팔 명이요
12 아스갓 자손 중에서는 학가단의 아들 요하난이니 그와 함께 있는 남자가 백십 명이요
13 아도니감 자손 중에 나중된 자의 이름은 엘리벨렛과 여우엘과 스마야니 그와 함께 있는 남자가 육십 명이요
14 비그왜 자손 중에서는 우대와 사붓이니 그와 함께 있는 남자가 칠십 명이었느니라
- 약 1500km 가량 떨어진 거리를 이들과 함께 많은 보물을 가지고 이동하느라 4개월의 시간이 걸렸습니다. 이 일에 함께 한 자들의 신상을 학사 에스라는 꼼꼼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2) 에스라가 레위 사람과 느디님 사람들을 찾다
- 15절. “내가 무리를 아하와로 흐르는 강 가에 모으고 거기서 삼 일 동안 장막에 머물며 백성과 제사장들을 살핀즉 그 중에 레위 자손이 한 사람도 없는지라” => “아하와로 흐르는 강 가”는 동쪽으로 흘러와서 유프라테스 강으로 들어가던 지류입니다. 이 지류가 유프라테스 강과 만나는 곳에 ‘아하와’라는 마을이 있었습니다. 현재는 ‘아하와’ 강이 ‘이스’ 강으로 불리웁니다. 이 아하와가 유대인들이 밀집하여 살던 ‘닙불’과 가까이 있었습니다. 에스라는 이곳에서 예루살렘까지의 여행을 위하여 꼼꼼하게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준비하는 과정을 챙기며 사흘이라는 시간 동안 정신없이 지내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미 1차 포로 귀환 때에 레위 자손들이 대거 예루살렘으로 갔기 때문에 2차 귀환에 레위 자손들이 빠진다 할들 특별한 문제가 될 것은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에스라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예루살렘의 형편을 이미 잘 전달해 들은 에스라는 여호와의 율법에 바르게 준비된 레위인들이 다시 세워져야 할 필요를 절감했던 것입니다. 바벨론에 정착하여 140여년의 시간이 흘렀습니다. 잘 살고 있는 자들을 데리고 번성하여 살아가던 유대인들을 퇴락한 예루살렘으로 데려가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에스라는 다시 레위인을 모으고자 합니다. 2차 포로 귀환하는 목적은 성전 예배를 다시금 바르게 드리고자 함이기 때문에 거기에 레위인들이 빠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 16절 ~ 17절. “이에 모든 족장 곧 엘리에셀과 아리엘과 스마야와 엘라단과 야립과 엘라단과 나단과 스가랴와 므술람을 부르고 또 명철한 사람 요야립과 엘라단을 불러 가시뱌 지방으로 보내어 그 곳 족장 잇도에게 나아가게 하고 잇도와 그의 형제 곧 가시뱌 지방에 사는 느디님 사람들에게 할 말을 일러 주고 우리 하나님의 성전을 위하여 섬길 자를 데리고 오라 하였더니” => 에스라는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하나님께 제사드리는 일에 집중하고 있습니다. 그 일을 해야 하는 레위인들이 2차 포로 귀환자들의 명단에 빠진 것을 확인한 뒤에 일사분란하게 레위인들을 모으고자 합니다. 이미 다른 이들이 아하와에서 모여 지체하고 있었지만 그들을 먼저 떠나보내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아무리 시간이 걸려도 레위인들을 모아야 함을 우선으로 여기고 있었던 것입니다. 거기에는 레위인들의 족장 “잇도”와 그들과 형제와 같이 지내고 있던 가시뱌 지방의 느디님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 18절. “우리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을 입고 그들이 이스라엘의 손자 레위의 아들 말리의 자손 중에서 한 명철한 사람을 데려오고 또 세레뱌와 그의 아들들과 형제 십팔 명과” => 에스라는 레위인들이 움직인 것, 그리고 느디님 사람들이 함께 이 여정에 동참하게 된 것을 “우리 하나님의 선한 손의 도우심”이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보낸 사자들에게 할 말을 일러주어 보냈지만 그것 때문에 그들이 움직인 것이 아니라고 여기고 있는 것입니다. 에스라는 하나님과 동행하는 사람으로서 하나님이 명하신 대로의 일거수일투족을 순종하는 사람이었던 것입니다.
- 19절 ~ 20절. “하사뱌와 므라리 자손 중 여사야와 그의 형제와 그의 아들들 이십 명을 데려오고 다윗과 방백들이 레위 사람들을 섬기라고 준 느디님 사람 중 성전 일꾼은 이백이십 명이었는데 그들은 모두 지명 받은 이들이었더라” => 이 본문을 통하여 알게 되는 것은 성전 봉사를 감당하는 레위인들에게 부과되는 노역이 힘든 것을 돕기 위해 레위인들의 반차에 따라 다윗이 느디님 사람들을 일꾼으로 부여해 주었다는 것입니다. 또한 아직 예루살렘으로 가지 않은 유력한 레위인들이 자신들이 예루살렘으로 가서 성전 제사를 수종드는 것에 대해서는 감당할 수 있지만 그곳에서의 노역에 대해 꺼리는 마음으로 예루살렘으로 가지 않았던 것이라 추측하게 됩니다. 그러한 상황에서 느디님 사람들이 220명이 가게 되자 레위인들이 움직이게 된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에스라는 아닥사스다가 자신에게 준 권세를 남용하지 않고, 사람들을 설복하여 이 일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는 과정을 통하여 에스라는 2차 포로 귀환자들의 명단을 마무리 하게 되었습니다.
중요한 가르침 :
1) 에스라는 족보를 다시 정리하고 있습니다. 아닥사스다 왕의 조서로 에스라와 함께 예루살렘으로 올라온 족장들과 그들의 계보입니다. 1절의 “올라온”이라는 표현을 통해서 에스라가 페르시아의 수산궁보다 예루살렘을 더 중요시 하고 있음을 봅니다. 에스라는 족보에 대해서 이스라엘의 역사 가운데 가장 탁월했던 전문가입니다. 내가 어려서 아버님으로부터 김해 김씨 족보를 보는 법을 배웠던 일을 기억합니다. 그 족보에는 김수로왕으로부터 몇 대손인지, 그리고 그 분이 이룬 업적에 대한 간략한 소개. 그리고 특별한 사항(예를 들면 언제 어디로 낙향했는지 등)이 필요한 경우들이 기록이 되어있었습니다. 그것은 일반 문서들과 달라서 읽는 법을 배우지 못하면 읽거나 해석할 수 없고, 복잡했습니다. 우리 나라의 족보가 많이 발달되었고, 사료로서의 가치가 있으나 자료가 많지 않고, 읽기도 어려워서 지금은 전문가가 아니면 볼 수도 없는 상황입니다. 지금도 그럴 정도인데, 종이 자체가 양피지를 사용하던 2,500여년 전의 상황은 더 말할 것도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에스라는 그러한 자료들을 세심하고 꼼꼼히 챙겨서 모아놓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조선조 한국의 족보이상으로 자세하고 세밀하게 기록을 남기고 있습니다. 이러한 에스라의 태도는 나중에 이방 여인들과 잡혼을 한 지도자들에 대한 기록을 남기는 것을 통해서 더욱 살필 수 있게 됩니다. 에스라는 이렇듯 기록으로 남겨지는 역사에 대해서, 그리고 누가 누구를 낳고 어떻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중요하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또한 하나님의 관점이 에스라에게 이어지는 것이라고 볼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성경에서 중요한 주제의 전환이 일어날 때마다 이스라엘 혹은 다른 이들의 족보를 정리하게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에게 있어서의 역사라는 것은, 누가 누구를 낳고, 누가 누구의 아들이라는 것은 그렇게 중요하게 다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마태복음은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를 통하여 시작하는 것입니다. 나는 하나님을 모르던 아버지로부터 났습니다. 그러나 거슬러 올라가면 그렇지 않습니다. 조상 중에 누군가가 기독교에 대해서 들어온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통일신라시대 때 들어온 기독교 사상에 대해서 당시 왕족 취급을 받던 귀족 김해 김씨가 아마도 모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혹은 김수로왕의 아내 허왕후가 인도에서 도마에 의해 복음을 받아들인 족속의 왕녀였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더 위로 올라가면 결국은 노아의 후손, 셈의 후손인 것이고, 결국은 아담의 후손이 되는 것입니다. 위로는 그렇다면, 아래로는 어찌될까요? 딸 김민영, 김찬영, 그리고 아들 김병조가 어떤 예수 믿는 사람이 되어서 어떤 또 다른 자녀를 낳게 될까요? 영적 자녀인 전병률, 박두진, 양성욱, 김석희, 윤성희, 정근명, 정근혁, 한산하, 난다윈 등은 어떤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고 있고, 어떤 영적 자녀를 낳게 될까요?
2) 다시 등장하는 느디님사람들. 느디님사람들이라는 용어는 성경에 총 19번 사용되고 16번 등장합니다(대상 9:2;스 2:43, 58, 70; 8:17, 20; 느 3:26, 31; 7:24, 46, 60, 72; 10:29; 11:3, 21). 이들은 ‘허락된 자’라는 의미를 가지는 자들로서 레위인과 제사장들에게 할당된 성전 노예들이었습니다. 이들이 하는 역할은 성전에서의 봉사를 위한 것이었습니다. 노예에 불과한 이들이 성경에서는 어찌 이렇게 여러 번 언급이 될까요? 이들의 역할이 중요했기 때문입니다. 에스라는 아하와로 흐르는 강 가에 무리를 모아둔 상황에서 사흘을 머물면서 사람들을 점검했습니다. 거기에는 레위인이 없었습니다. 그리고 느디님 사람들도 없었습니다. 그것을 파악한 에스라는 레위인과 느디님 사람들을 찾아서 모아서 데려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스라의 족보에 느디님 사람들은 복수로서 “느디님 사람들”이라는 표현만 등장하지 그들의 이름이 언급이 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이 느디님 사람들로부터 그리스도의 종이 되는 servant-ship을 배워야 할 것입니다. 그들은 에스라가 기억하고, 주님이 기억하는 착하고 충성되이 성전 예배를 수종들었던 이름 없는 종들이었던 것입니다. 이들이 예루살렘으로 가서 노역을 감당하고자 하지 않았다면 레위인들도 움직이지 않았을 것입니다.
3) 에스라가 지체하며 찾은 레위인과 느디님 사람들은 성전 예배를 회복하기 위해 꼭 필요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이미 1차 포로 귀환 때 그런 사람들이 돌아갔지만, 새로운 영적 부흥을 위해서 에스라는 이미 돌아가서 영적 회복의 에너지가 고갈된 사람들 보다는 디아스포라 상황에서 하나님을 예배함에 목마른 사람들로 다시 모아서 돌아가고자 한 것입니다. 결국 에스라는 이들로 인해서 예루살렘에서 새로운 부흥을 주도하게 됩니다.
적용 :
1) 내가 이루는 영적인 가문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고, 민영, 찬영, 병조와 더불어 주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의 가문을 이루어 나가길 소원하고 간구합니다. 천국에 간 아내 역시 그것을 위해서 중보하고 있을 것을 믿습니다.
2) 내가 중보해야 할 영적 자손들을 기억하고 중보하겠습니다.
3) 느디님 사람들. 정말 깊이 기억해야 할 사람들입니다. 나의 모습이 이들과 같이 되기를 소원합니자. 성경에 자꾸 등장하는데도 이름이 없는 너무나도 귀한 무리들입니다.
4) 영적 갈망을 유지하겠습니다. 나는 결국 천국에 돌아가기까지 어디에 거하든 안주할 수 없는 “하나님 나라의 디아스포라”임을 잊지 않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