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수술이 과학적일 것이라는 환상을 버려라!”
현직 외과의사가 말하는 수술의 플라세보 효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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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원깨나 다녀본 사람들은 안다. 같은 증상을 두고 병원마다 혹은 의사마다 진단과 처방이 조금씩, 때로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병원 한 곳만 가지 말고 여러 군데를 다녀보라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의료 행위의 차이’로 설명되는 이러한 현상은 치료를 뒷받침하는 근거가 부족할수록, 치료 효과가 불분명할수록 뚜렷하게 나타난다. 최근 ‘나는 절대로 수술 받지 않는다’거나 ‘약 안 쓰고 아이 키우기’ 같은 종류의 책이 눈에 많이 띄는데, 이 역시 의학에 대한 사회적 불신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수술은 의학의 꽃이라 불리지만, 현직 외과의사이자 이 책의 저자인 이안 해리스는 수술 회의론자이다. 그렇다고 그가 모든 수술을 거부하고 병원 시스템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그는 오늘날 수술의 효과가 플라세보(속임약)처럼 환자의 심리 상태나 사회적 분위기에 힘입어 과대평가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가짜 수술』은 이러한 합리적인 의심을 담은 책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환자는 의사를 전적으로 믿고 의지하기 때문에 의사가 수술을 결정하면 대부분 따를 수밖에 없다. 그리고 설탕이 들어간 위약을 먹고 나았다고 믿는 플라세보처럼 수술 역시 그 효과가 과대평가되고 있는 게 사실이다. 수술의 유효성에 대해 의심을 품고, 불필요한 수술을 하지 않으려는 저자에게 환자들은 이렇게 되묻곤 한다. “수술하지 않고 어떻게 치유되나요?”
머리말
https://youtu.be/yH--T0ghHX0
1장 플라세보 효과: 플라세보 효과는 무엇이고 어떻게 작용하는가?
2장 의학의 과학성 또는 비과학성: 무엇이 좋은 근거인가?
편향을 최소화하는 최선책|재현성 부족|해결책|수술은 어떻게 환경에 적응할 수 있을까?
3장 완벽한 플라세보: 무엇이 좋은 플라세보인가?
많을수록 좋다|내리막 효과|절개 수술에서 더 커진 플라세보 효과|치료 환경
4장 플라세보 시험대에 오른 수술: 플라세보 수술을 이용한 연구 사례
50년대 스타일의 협심증 수술|파킨슨병 수술|메니에르병 수술|편두통 수술|관절염의 무릎 관절경 수술|손상된 반달연골의 무릎 관절경 수술|고주파열치료술|테니스엘보 수술|경피적 척추성형술|고혈압 수술
5장 폐품이 된 수술들: 유효성 결여로 자취를 감춘 수술들
사혈|근치적 유방절제술|전두엽 절제술|두개 외·내동맥 우회술|추벽 증후군
6장 플라세보 수술의 현주소: 효과가 의심스러운 수술들
척추유합술|다발성경화증 수술|자궁절제술|제왕절개술|무릎 관절경 수술|충수염|관상동맥 스텐트 시술|하대정맥 필터 삽입술|어깨충돌증후군을 위한 수술|부유 신장|건 파열|장 유착에 대한 복강경 수술|골절 수술|로봇의 침입|의료 행위의 차이
7장 여전히 수술을 하는 이유: 효과 없는 수술을 고집하는 까닭
인간의 본성|타성과 행동 강박|이름표의 필요성|경제적 이익|수술 치료에서 임상 시험을 망설이는 이유|수술 근거의 ‘불안정한 삼각대’|윤리적 이중 잣대|과학에서의 편향
8장 수술이 플라세보 효과라고 해서 달라지는 게 있을까?: 플라세보 효과 이용에 반대하는 사례
무엇이 문제인가?|우리가 잘 알지 못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9장 우리가 할 수 있는 일: 환자, 의사, 연구자, 후원자, 사회가 할 일
환자가 할 수 있는 일|의사가 할 수 있는 일|연구자가 할 수 있는 일|후원자가 할 수 있는 일|사회가 할 수 있는 일
감사의 말
참고문헌
]실제로 수맥탐사가들은 두 갈래로 된 수맥탐사봉이나 다른 장비를 이용해 그동안 꽤 성공적으로 수맥을 찾아냈다. 게다가 자신들이 당연하게 여기고 있는 사실, 즉 수맥탐사가 물을 찾는 효율적인 방법이라는 사실을 정당화하기 위해 전통과 관찰에 기대어왔다. 아무 곳에서나 깊게 파내려가기만 하면 물을 찾을 수 있다는 사실은 전혀 고려되지 않았다. 그들은 늘 해오던 대로 했을 뿐이다. 이런 방법은 효과가 있었고, 실제로 수맥을 찾아냈다. 나 역시 처음 의사가 되었을 때 수맥탐사가들과 다를 바 없었다. --- p.7
플라세보가 비활성이고, 기저질환에 대해 치료 효과가 없다면, 우리는 ‘플라세보 효과’를 어떻게 경험하는 걸까? 그 대답은 바로 ‘우리가 어떻게 느끼는가’에 달려 있다. 인간의 통증과 안락함, 건강, 행복에 관한 지각은 우리 몸의 객관적인 상태와 거의 관계없음이 실험과 관찰을 통해 증명되었다. 때때로 우리는 누군가 그저 안심시켜주고, 나를 위해 애쓰고 있다는 사실을 알기만 해도, 비록 처방된 약에 활성 성분이 없더라도 상태가 좋아지기도 한다. --- p.20
미국 식품의약국을 비롯해 전 세계 유사한 단체들은 수술에 관심이 없다. 수술을 하기 전에 실험 연구는 고사하고 수술을 무언가에 대조해 테스트할 필요는 없다고 보기 때문이다. 어느 단계에 이르면 수술은 유행처럼 퍼지고 주류가 되며, 대개 비윤리적이라는 이유로 환자들을 무작위 임상 시험에 참여시키는 것조차 어려워진다. 애초에 테스트되지 않은 수술이 도입된 사실 역시 윤리적이지 않은데도 말이다. --- p.53
플라세보 그 자체만으로는 최대 효과를 낼 수 없으며, 플라세보가 주어지는 환경, 치료 환경이 중요하다. 그 환경에 따라 환자들이 진짜 치료를 받고 있다고 믿도록 도울 수 있고, 치료가 효과적일 것이라는 기대를 키워준다. 어려워 보이는 용어들, 병원의 내부 공간, 흰 가운, 권위적인 모습, 열성적인 의료진은 모두 플라세보 효과에 도움이 된다. 또한 치료 환경에는 환자 대기실의 환경에서 벽에 걸려 있는 학위증서부터 치료에 대한 사회의 인식에 이르기까지 전부 포함된다. 무엇보다 호전을 기대하게 만드는 치료법과 치료에 적용된 과학 기술을 인식하게 하는 데 수술실보다 더 효율적인 공간은 없다. --- p.69
내가 몸담고 있는 정형외과에서는 수술로 생명을 구하는 일이 거의 없으며 암 수술조차 마찬가지다. 선택적 수술은 환자가 그 수술을 받기로 ‘선택한다’는 뜻이다. 즉 꼭 수술을 받을 필요는 없는 것이다. 나는 대개 환자들에게 수술이 필요하다고 하기보다 그것은 선택 사항이며, 여러 선택지를 두고 따져봐야 하는 위험과 이점이 있다고 설명한다. 의사들이 관련 분야에서 자질과 경험을 갖추긴 했지만, 그렇다고 의사들이 모든 결정을 내려야 하는 것은 아니다. --- p.95
진단의 타당성이나 치료법에 대한 비교 임상 시험이 없으면, 그 치료가 실제로 효과적인지는 고사하고 애초에 환자의 증상이 치료가 필요한 ‘진짜 질환’인지도 알 수 없다. 무엇보다 그러한 임상 시험을 해도 아무런 혜택이 없고, 의사들은 이를 계속 ‘진단’하면서 치료비를 청구하며, 환자 가운데 일부는 치료를 받은 뒤 호전되었다고 말하는 한, 그리고 대중이 이를 믿는 한 이러한 현상은 지속될 것이다. --- p.107
수술하지 않고도 치유가 가능하냐는 질문은 사실 사회가 수술에 지나치게 의존하는 선호도를 반영한 것이다. 우리는 정비공의 손길을 기다리는 자동차처럼 우리 몸을 바라본다. 우리 몸이 스스로 해결하도록 두지 않고, 효과가 없거나 덜 효과적이거나 상관없이 손상된 연골을 제거하고, 손상된 힘줄을 복구하고, 막힌 동백과 정맥을 뚫고 혈전을 망으로 거르며, 심장의 구멍에 막을 덧댐으로써 기계처럼 몸을 다루곤 한다. --- p.145
의사들이 애초에 잘 모르는 질환에 이름표를 다는 이유는 환자에게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통증을 일으키는 근본적인 신체적 원인을 찾을 수 없습니다. 해로울지도 모르는 심각한 기저질환의 가능성은 전혀 없으니 안심해도 됩니다. 아마 심리적·사회적 원인으로 생긴 증상일 것입니다. 그것을 살펴볼 수 있으면 좋겠지만, 환자분에게 더 많은 검사를 실시해서 계속 조사하거나, 다른 의사의 소견이나 치료를 위해 이관시키는 게 최선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환자들은 더 많은 검사를 계속 받고, 최악의 경우에는 치료까지 받는다. --- p.176
항생제 비용은 그보다 조금 더 높겠지만, 수술은 어떻게 따져봐도 그 이상의 큰 비용이 든다. 수술에는 대개 환자와 간병인, 사회(보험회사, 고용주, 정부)가 지불하는 모든 잠재적 비용이 포함된다. 진료비, 검사비, 병원비, 수술비, 이식 비용, 재활치료 등과 같은 후속 치료비, 결근으로 인한 개인적·조직적인 손해와 간병인비 같은 비용이 여기에 속한다. --- p.198
나는 환자들이 관련 정보를 많이 알수록 자신의 결정에 더 만족할 것이라고 믿는다. 마찬가지로 환자가 의사결정을 할 때 더 많은 조언을 얻을수록 치료 결과가 나쁘더라도 더 쉽게 받아들일 수 있다. 환자가 스스로 수술받기로 결정했다면 바람직하지 않은 결과에 대해 누군가를 비난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몇몇 연구에서 환자들이 더 많은 정보를 얻고 치료의 과정에 더 많이 개입할수록 자신의 결정에 만족할 뿐만 아니라 수술을 택할 가능성도 적다고 확인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