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가을 브런치 클래식 LOVE IN CLASSIC 하반기 공연이 시작되었다. 첫 시간은 <IV. 불멸의 사랑>이다. 타이틀답게 한 곡 말고는 루트비히 판 베토벤(독일어:Ludwig van Beethoven,1770~ 1827년)곡으로 선택되었다. 악성 베토벤에게는 불멸의 여인들이 많았던 것으로 알려진다. 불멸이었던, 베토벤이 불멸이라고 생각했건 사랑했던 여성이 많았고 그 여성들에게 헌정한 곡들 또한 많다. 사진을 보는데 하나 같이 미인들이다. 가정을 꾸리지 않은 베토벤이지만 많은 여성들과의 사랑의 감정이 반짝이는 곡들을 쓰게 했을 것이다. “가장 뛰어난 사람은 고뇌를 통하여 환희를 차지한다.”는 어록처럼 고뇌하고 사랑하고 작곡한 음악에 취하기도 하며 행복했으리라. 어렸을 때부터 인정받은 음악의 신동이었고 모짜르트가 그의 천재성에 감탄하고 격려했다고 하니 예술가로서 최고의 기쁨이 아니겠는가. 오른쩍 사이드에 앉아서인지 아쉽게도 김이곤 명 해설가의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아 안타까웠다. 베토벤은 귀가 들리지 않아 못 들었지만 귀가 정상인 나는 왜 듣지 못해야 하는지- 그의 명 해설을 놓치다니...
첫 곡은 “피아노 소나타 제14번 올림 다단조 작품 27-2 ‘월광’”. ‘환상곡풍으로’라는 부제가 붙은 작품으로 줄리에타 귀차르티에게 헌정한 곡이다. 1악장이 “달빛이 비친 루체른 호수 위의 조각배 같다.” 고도 한다. 3악장에서 쇼팽이 영감을 받아 즉흥 환상곡을 작곡했다고 한다. 피아니스트의 손가락이 움직일 때마다 달이 고향 바다 위로 떠오르며 달밤에 바닷가 긴 둑길을 산책했던 어린 시절이 그려졌다. 그리고, 비록 짝사랑이었으나 첫사랑의 설레임이 아득히 밀려와 영원히 깨이고 싶지 않은 나릿한 행복에 젖어드는 사춘기 시절 마음의 만족이 재생되었다. 지금은 어디서 무엇을 하며 어떻게 사는지 알 순 없지만- 달빛이 주는 호젓한 감정은 잠자던 사랑도 깨어나게 하는 것 같다. 마법처럼.
두 번째 곡은 낭만주의 작곡가 프란츠 리스트(1811~1886)의 “사랑의 꿈 제3번 S.541” 리스트의 가장 아름다운 소곡이다. 이예솔 피아니스트의 연주가 이어진다. 흔들리는 사랑의 복합적인 감정이 선율에 실린다. 어떤 확신 같은 느낌을 주는 마디도 느껴지고, 어떤 종류의 사랑이든 그 순간만은 진실이고 지고지순한 사랑이라고 느낄 수 있는 것이다. 피아노의 지존이라던 위대한 피아니스겸 작곡가인 리스트는 남성적인 매력보다는 여리한 여성적인 매력의 외모 같기도 하다. 6살 연상의 백작부인에게 과감하게 사랑을 고백했던 리스크, 왜 ‘트’를 ‘크’로? 리스트의 사랑이 리스크였다고? 손끝이 감지한 백작부인과의 위험한 사랑이라니- 남편을 버리고 리스트를 선택한 여성들이 몇 명이지? 결국은 파탄이었지만. 그러게 가정은 지키는 것인데. 이 곡은 리스트가 작곡한 가곡 ‘사랑할 수 있는 한 사랑하라’ 는 곡을 피아노로 편곡했듯이 리스트는 끊임없이 사랑하고 헤어지고 또 사랑하는 과정에서 아름다운 곡들을 탄생시켰다. 어린 시절 베토벤 앞에서 피아노를 쳤다는 리스트, 리스트의 연주에 감동한 베토벤이 리스트를 끌어안은 사진이 헝가리 부다페스트 국립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는데. 이 곡의 모티프가 된 독일 시인 프라일리 그라티의 시를 읽는다. 시가 리스트에게 끼친 의미를 생각하며-
사랑할 수 있는 한 사랑하라 / 프라일리 그라트
오! 사랑하라, 사랑할 수 있는 한.
오! 사랑하라.
사랑할 힘이 남아 있을 때까지.
시간이 오리라.
시간이 오리라.
그대가 무덤 옆에서 슬퍼할 시간이 오리라.
세 번째 곡은 너무나 익숙한 “엘리제를 위하여” 이 곡을 들으면 싱그러운 넝쿨 장미가 드리워진 오월의 어느 날, 담장이 높은 집 앞을 지나는 착각에 빠져들곤 한다. 그 집에서 들려오는 멜로디처럼. 어떤 정서가 마음에 자리하기에 이런 이미지를 떠올리는 것인가. 베토벤의 사후 40년 후 스케치만 남겨진 곡으로 베리 쿠퍼가 복원해서 지금의 우리가 듣는 곡으로 연주되었다고 한다. 베토벤은 이 곡을 테레제 말파티에게 청혼을 했다가 거절당한 후 이별의 의미로 건넸다는데 그래서일까. 사랑의 멜로디가 가슴을 적신다. 사랑을 이루지 못한 아쉬움이 담긴 아련한 선율이 떠나고 싶지 않은 미련을 이야기하는 듯하다.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은 아프고 슬프지만 아름다운 것이다.
네 번째 베토벤의 ‘그대를 사랑해’ 와 다섯 번째 ‘아델라이데’는 현 단국대학교 문화예술대학원 원장이기도 한 테너 이영화 님께서 원곡으로 불러주었다. 절제된 멋진 목소리, 외모에서 외국 사람인 줄 알았다. 그대를 사랑해 가사는 독일의 성직자이자 작가인 칼 프리드리히 빌헬름 헤로세의 "Zärtliche Liebe"(부드러운 사랑)이 배경이 되었다. 단순하지만 서정성이 느껴지고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온갖 즐거움을 누리며 살아왔다는 고백이 은혜롭다. 사랑하는 사람까지도-
사랑이여 우리들은 아침에도 저녁에도 서로서로 근심 걱정 나누며 살아왔네
근심걱정 나눌진대 그 무엇이 두려워 나의 걱정을 그대가 그대가 근심하면 내 사랑 그대여
하느님의 크신 은총 그대에게 내리시라 그대는 나의 생명 나의 온갖 즐거움 그대는 나의 생명 나의 온갖 즐거움 그대는 나의 생명 영원한 내사랑
이어지는 아델라이데, 시인 마티손의 시에 붙인 곡으로 마티손에게 헌정했다. 목가적인 풍경과 자연 예찬의 시 내용도 무척 아름답고 감동적이다. 테너 이영화 님의 목소리의 매력이 한껏 드러나는 곡이다. 아델라이데는 고귀한, 귀족의, 의미를 지닌 고대 독일어권의 이름인 아달하이디스의 변형으로 여자 이름으로 사용되기도 하고, 봄이면 알프스 산록에서 피는 키 작은 보랏빛 야생화로 깨끗하고 귀여운 이미지의 여자 이름으로도 쓰인다. 베토벤은 아마 사랑하는 여인에게서 이 꽃과 같은 매력을 발견했을 것이다. 이 곡은 베토벤이 가장 좋아하는 곡 중 하나이며 그가 임종하는 자리에서 들었던 곡이라고 전해진다. 마지막 순간까지 기억하고 싶었던 여인은 누구였을까? 누군가 내게 아델라이데 라고 불러줄 이는 없지만 올가을 자주 듣게 될 것 같다.
아델라이데
프리드리히 폰 마티손
외로이 거닌다 당신의 친구가 봄의 정원에서 온화하고 사랑스러운 마법의 빛에 둘러싸여 빛은 흔들리는 꽃핀 나뭇가지를 관통하여 전율한다 아델라이데!
거울처럼 빛나는 큰물결 안에서 알프스의 눈속에서 침몰하는 낮의 황금빛 구름들 안에서 별들의 광야 안에서 반짝인다 당신의 이미지가 아델라이데!
저녁바람이 살랑대는 나무그늘 속에서 속삭인다 오월의 은방울들이 잔디에서 바스락거린다 파도가 포효하고 밤꾀꼬리는 노래한다: 아델라이데!
언젠가, 오 기적이여! 꽃 필 것이다 나의 무덤에 꽃 한송이가 내 심장이 타고난 재에서; 선명하게 번쩍일 것이다 모든 보라색 잎들 위에서 아델라이데!
마지막 두 곡도 베토벤의 ‘로망스 제1번 사장조 작품40’, 과 ‘교향곡 제8번 바장조 작품93 이다. ‘로망스 제1번 사장조 작품40’은 바이올리스트 김영기 님의 연주로 감상했다. 바이올린을 위한 최초의 작품50과 자매 같은 패키지 고전적인 정신을 구현하는 작품으로 같이 들으면 더 풍성한 감동을 받게 된다. 이 곡을 쓸 당시에 베토벤은 청각이 점점 안 좋아지면서 절망에 빠져있던 시기라고 한다. 예술은 절망을 희망으로 끌어올려 읽고 듣고 보는 이들에게 힘을 주는 것이 아니던가. 제목처럼 잔잔히 감미롭고 낭만적인 선율이 마음을 터치한다.
마지막 곡은 ‘교향곡 제8번 바장조 작품 93’이다. 곡도 물론 좋지만, 내 눈은 온전히 온몸으로 곡을 해석해 내는 지휘자에게 꽂혔다. 매순간 섬세하게 표현하는 지휘는 앞에서 보지 않아도 뒷모습으로도 다 전달이 된다. 이 곡은 다른 교향곡에서 볼 수 있는 웅장함이나 박진감이 없는 대신 편안한 선율로 고전적인 하이든 풍의 멜로디를 구사하기도 했다. 현재 작품은 다음 작품을 암시하기도 한다. 전혀 다른 스타일의 구상이나 새로운 음악세계로 진입하는데 마중물 역할을 하기도 한다. 베토벤의 여러 아름다운 곡이 탄생하는데 영향을 미쳤을 곡이다. 군포 프라임필하모니 오케스트라는 기량과 열정과 정확한 하모니 등 더욱 성숙한 음악적 완성도를 구현하고 있다. 문화예술의 갈증이 더 짙은 가을 여심에 秋의 색채가 훅 디밀고 들어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