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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렁다리와 심항산
육각정
경치가 멋있네요
스타를 형상화한 인공 수초섬
수안보 한화리조트 도착 하여 저녁 만찬 중
오리 로스와 주물럭으로 거하게 한잔하고 꿈나라라로 갑니다
둘째날:중원문화1,2구간 조도리선사 유적 박물관-충주 자연생태 체험관-탄금-충주세게 무술공원-중앙탑-고구려비
오늘의 지도
오늘의 기록
중앙문화길1구간:충주 탄금대(명승 42호)는 우륵이 가야금을 탄 곳이라고 한다. 남한강과 합류하는 달천을 구경하듯 삐죽이 고개를 내민 대문산 절벽 위에 탄금대가 자리 잡았다. 탄금정 아래 열두대에서 바라보는 용섬과 두물머리 풍경이 한강8경 중 하나라는 ‘탄금경’이다. 최근에 다시 지은 탄금정이야 우륵과 상관없겠지만, 절로 감탄사가 나오는 탄금경은 그 옛날 우륵도 보았으리라. 두물머리 너머로 아름답지만 쓸쓸히 지는 석양을 바라보며 사라진 조국과 갈 수 없는 고향을 그리지 않았을까? 탄금정 아래 가파른 절벽이 열두대인 것은 가야금이 열두 줄이기 때문이 아니다. 임진왜란 당시 이곳에 배수진을 친 신립장군이 병사들을 독려하기 위해 열두 번 오르내렸기에 붙은 이름이다. 달아오른 활시위를 식히기 위해 그랬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렇게 험한 절벽을 열두 번이나 오르내렸건만, 결국 패하고 만 신립 장군은 열두대에서 강물로 뛰어내렸다. 충주 풍경길의 중원문화길, 그중에서도 생태탐방길은 아름다운 자연과 슬픈 역사가 어우러진 탄금대에서 시작한다. 열두대에서 탄금대 동쪽 가파른 계단으로 내려오면 공중전화 부스를 닮은 ‘4대강 자전거길 충주 탄금대 인증센터’가 나온다. 탄금대는 국토종주자전거길 중 팔당댐에서 출발하는 남한강자전거길의 끝이자, 문경새재로 이어지는 새재자전거길의 시작이다. 탄금대 인증센터에 스탬프가 있으니, 자전거를 타지 않아도 찍어두면 기념이 될 듯.
지금 걷는 생태탐방길은 상당 부분 남한강자전거길과 겹치니 말이다. 인증센터에서 새재자전거길 방향으로 5분쯤 걸어가면 충주세계무술공원의 야외공연장이 보인다. 희고 거대한 돔이 멀리서도 눈에 띄니 헤맬 이유가 없다. 이 멋진 무대에서 2006년부터 유네스코가 공식 후원하는 충주세계무술축제가 열린다. 해마다 여름에 열리는 축제 일정에 맞추면 풍성한 볼거리를 즐길 수 있다. 축제가 아니라도 공원 안에 충주세계무술박물관, 축구장, 돌미로원 등 둘러 볼 곳이 많다. 충주세계무술공원을 충분히 즐겼다면 본격적으로 생태 탐방길을 걸어보자. 제법 큰 목행대교 옆에 자그마한 목행교를 지나 충주자연생태체험관에 닿을 때까지 2시간은 족히 걸어야 한다. 가는 내내 그림 같은 남한강의 풍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지루하지 않다. 다만 중간에 그늘이 거의 없으니 시원한 모자와 물을 준비하는 것이 좋다. 그림 같은 풍경도 살짝 지겹고 다리가 뻐근할 무렵, 충주자연생태체험관이 보인다. 통유리 너머 풍경이 시원한 1층 가족 쉼터에서 쉬거나, 지하 1층 야외 테라스에서 느긋하게 체력을 보충할 것. 충분히 쉬었다면 2층 작은 동물원에서 신기한 동물 친구들과 만나거나, 3층 하늘정원을 거닐며 또 다른 풍광을 즐겨보자. 아이와 함께 갔다면 생태 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해도 좋다.
체험관에서 나와 15분쯤 걸으면 중원문화길 생태탐방길의 마지막 코스인 조동리선사유적박물관에 닿는다. ‘충주에도 선사 유적이 있었나?’ 의문이 들 수도 있다. 충주의 선사시대 역사에 대해 알려진 내용이 적기 때문이다. 이곳은 2005년 개관했으나 충주박물관에 비해 잘 알려지지 않았다. 1996년부터 2000년까지 세 차례 발굴을 통해 출토 된 빗살무늬토기, 반달돌칼, 그물추 등 신석기에서 청동기에 이르는 다양한 유물을 전시한다. 탄금대에서 조동리선사유적박물관까지 이어지는 중원 문화길 생태탐방길은 9km 코스다. 부지런히 걸으면 3~4 시간, 쉬엄쉬엄 즐기다 보면 하루 종일 걸릴 수도 있다. 가능하면 후자를 추천한다.
충주 탄금대(명승 42호)는 우륵이 가야금을 탄 곳이라고 한다. 남한강과 합류하는 달천을 구경하듯 삐죽이 고개를 내민 대문산 절벽 위에 탄금대가 자리 잡았다. 탄금정 아래 열두대에서 바라보는 용섬과 두물머리 풍경이 한강8경 중 하나라는 ‘탄금경’이다. 최근에 다시 지은 탄금정이야 우륵과 상관없겠지만, 절로 감탄사가 나오는 탄금경은 그 옛날 우륵도 보았으리라. 두물머리 너머로 아름답지만 쓸쓸히 지는 석양을 바라보며 사라진 조국과 갈 수 없는 고향을 그리지 않았을까? 탄금정 아래 가파른 절벽이 열두대인 것은 가야금이 열두 줄이기 때문이 아니다. 임진왜란 당시 이곳에 배수진을 친 신립장군이 병사들을 독려하기 위해 열두 번 오르내렸기에 붙은 이름이다. 달아오른 활시위를 식히기 위해 그랬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렇게 험한 절벽을 열두 번이나 오르내렸건만, 결국 패하고 만 신립 장군은 열두대에서 강물로 뛰어내렸다. 충주 풍경길의 중원문화길, 그중에서도 생태탐방길은 아름다운 자연과 슬픈 역사가 어우러진 탄금대에서 시작한다. 열두대에서 탄금대 동쪽 가파른 계단으로 내려오면 공중전화 부스를 닮은 ‘4대강 자전거길 충주 탄금대 인증센터’가 나온다. 탄금대는 국토종주자전거길 중 팔당댐에서 출발하는 남한강자전거길의 끝이자, 문경새재로 이어지는 새재자전거길의 시작이다. 탄금대 인증센터에 스탬프가 있으니, 자전거를 타지 않아도 찍어두면 기념이 될 듯.
지금 걷는 생태탐방길은 상당 부분 남한강자전거길과 겹치니 말이다. 인증센터에서 새재자전거길 방향으로 5분쯤 걸어가면 충주세계무술공원의 야외공연장이 보인다. 희고 거대한 돔이 멀리서도 눈에 띄니 헤맬 이유가 없다. 이 멋진 무대에서 2006년부터 유네스코가 공식 후원하는 충주세계무술축제가 열린다. 해마다 여름에 열리는 축제 일정에 맞추면 풍성한 볼거리를 즐길 수 있다. 축제가 아니라도 공원 안에 충주세계무술박물관, 축구장, 돌미로원 등 둘러 볼 곳이 많다. 충주세계무술공원을 충분히 즐겼다면 본격적으로 생태 탐방길을 걸어보자. 제법 큰 목행대교 옆에 자그마한 목행교를 지나 충주자연생태체험관에 닿을 때까지 2시간은 족히 걸어야 한다. 가는 내내 그림 같은 남한강의 풍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지루하지 않다. 다만 중간에 그늘이 거의 없으니 시원한 모자와 물을 준비하는 것이 좋다. 그림 같은 풍경도 살짝 지겹고 다리가 뻐근할 무렵, 충주자연생태체험관이 보인다. 통유리 너머 풍경이 시원한 1층 가족 쉼터에서 쉬거나, 지하 1층 야외 테라스에서 느긋하게 체력을 보충할 것. 충분히 쉬었다면 2층 작은 동물원에서 신기한 동물 친구들과 만나거나, 3층 하늘정원을 거닐며 또 다른 풍광을 즐겨보자. 아이와 함께 갔다면 생태 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해도 좋다.
체험관에서 나와 15분쯤 걸으면 중원문화길 생태탐방길의 마지막 코스인 조동리선사유적박물관에 닿는다. ‘충주에도 선사 유적이 있었나?’ 의문이 들 수도 있다. 충주의 선사시대 역사에 대해 알려진 내용이 적기 때문이다. 이곳은 2005년 개관했으나 충주박물관에 비해 잘 알려지지 않았다. 1996년부터 2000년까지 세 차례 발굴을 통해 출토 된 빗살무늬토기, 반달돌칼, 그물추 등 신석기에서 청동기에 이르는 다양한 유물을 전시한다. 탄금대에서 조동리선사유적박물관까지 이어지는 중원 문화길 생태탐방길은 9km 코스다. 부지런히 걸으면 3~4 시간, 쉬엄쉬엄 즐기다 보면 하루 종일 걸릴 수도 있다. 가능하면 후자를 추천한다.
충주 탄금대(명승 42호)는 우륵이 가야금을 탄 곳이라고 한다. 남한강과 합류하는 달천을 구경하듯 삐죽이 고개를 내민 대문산 절벽 위에 탄금대가 자리 잡았다. 탄금정 아래 열두대에서 바라보는 용섬과 두물머리 풍경이 한강8경 중 하나라는 ‘탄금경’이다. 최근에 다시 지은 탄금정이야 우륵과 상관없겠지만, 절로 감탄사가 나오는 탄금경은 그 옛날 우륵도 보았으리라. 두물머리 너머로 아름답지만 쓸쓸히 지는 석양을 바라보며 사라진 조국과 갈 수 없는 고향을 그리지 않았을까? 탄금정 아래 가파른 절벽이 열두대인 것은 가야금이 열두 줄이기 때문이 아니다. 임진왜란 당시 이곳에 배수진을 친 신립장군이 병사들을 독려하기 위해 열두 번 오르내렸기에 붙은 이름이다. 달아오른 활시위를 식히기 위해 그랬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렇게 험한 절벽을 열두 번이나 오르내렸건만, 결국 패하고 만 신립 장군은 열두대에서 강물로 뛰어내렸다. 충주 풍경길의 중원문화길, 그중에서도 생태탐방길은 아름다운 자연과 슬픈 역사가 어우러진 탄금대에서 시작한다. 열두대에서 탄금대 동쪽 가파른 계단으로 내려오면 공중전화 부스를 닮은 ‘4대강 자전거길 충주 탄금대 인증센터’가 나온다. 탄금대는 국토종주자전거길 중 팔당댐에서 출발하는 남한강자전거길의 끝이자, 문경새재로 이어지는 새재자전거길의 시작이다. 탄금대 인증센터에 스탬프가 있으니, 자전거를 타지 않아도 찍어두면 기념이 될 듯.
지금 걷는 생태탐방길은 상당 부분 남한강자전거길과 겹치니 말이다. 인증센터에서 새재자전거길 방향으로 5분쯤 걸어가면 충주세계무술공원의 야외공연장이 보인다. 희고 거대한 돔이 멀리서도 눈에 띄니 헤맬 이유가 없다. 이 멋진 무대에서 2006년부터 유네스코가 공식 후원하는 충주세계무술축제가 열린다. 해마다 여름에 열리는 축제 일정에 맞추면 풍성한 볼거리를 즐길 수 있다. 축제가 아니라도 공원 안에 충주세계무술박물관, 축구장, 돌미로원 등 둘러 볼 곳이 많다. 충주세계무술공원을 충분히 즐겼다면 본격적으로 생태 탐방길을 걸어보자. 제법 큰 목행대교 옆에 자그마한 목행교를 지나 충주자연생태체험관에 닿을 때까지 2시간은 족히 걸어야 한다. 가는 내내 그림 같은 남한강의 풍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지루하지 않다. 다만 중간에 그늘이 거의 없으니 시원한 모자와 물을 준비하는 것이 좋다. 그림 같은 풍경도 살짝 지겹고 다리가 뻐근할 무렵, 충주자연생태체험관이 보인다. 통유리 너머 풍경이 시원한 1층 가족 쉼터에서 쉬거나, 지하 1층 야외 테라스에서 느긋하게 체력을 보충할 것. 충분히 쉬었다면 2층 작은 동물원에서 신기한 동물 친구들과 만나거나, 3층 하늘정원을 거닐며 또 다른 풍광을 즐겨보자. 아이와 함께 갔다면 생태 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해도 좋다.
체험관에서 나와 15분쯤 걸으면 중원문화길 생태탐방길의 마지막 코스인 조동리선사유적박물관에 닿는다. ‘충주에도 선사 유적이 있었나?’ 의문이 들 수도 있다. 충주의 선사시대 역사에 대해 알려진 내용이 적기 때문이다. 이곳은 2005년 개관했으나 충주박물관에 비해 잘 알려지지 않았다. 1996년부터 2000년까지 세 차례 발굴을 통해 출토 된 빗살무늬토기, 반달돌칼, 그물추 등 신석기에서 청동기에 이르는 다양한 유물을 전시한다. 탄금대에서 조동리선사유적박물관까지 이어지는 중원 문화길 생태탐방길은 9km 코스다. 부지런히 걸으면 3~4 시간, 쉬엄쉬엄 즐기다 보면 하루 종일 걸릴 수도 있다. 가능하면 후자를 추천한다.
충주 탄금대(명승 42호)는 우륵이 가야금을 탄 곳이라고 한다. 남한강과 합류하는 달천을 구경하듯 삐죽이 고개를 내민 대문산 절벽 위에 탄금대가 자리 잡았다. 탄금정 아래 열두대에서 바라보는 용섬과 두물머리 풍경이 한강8경 중 하나라는 ‘탄금경’이다. 최근에 다시 지은 탄금정이야 우륵과 상관없겠지만, 절로 감탄사가 나오는 탄금경은 그 옛날 우륵도 보았으리라. 두물머리 너머로 아름답지만 쓸쓸히 지는 석양을 바라보며 사라진 조국과 갈 수 없는 고향을 그리지 않았을까? 탄금정 아래 가파른 절벽이 열두대인 것은 가야금이 열두 줄이기 때문이 아니다. 임진왜란 당시 이곳에 배수진을 친 신립장군이 병사들을 독려하기 위해 열두 번 오르내렸기에 붙은 이름이다. 달아오른 활시위를 식히기 위해 그랬다는 이야기도 있다. 이렇게 험한 절벽을 열두 번이나 오르내렸건만, 결국 패하고 만 신립 장군은 열두대에서 강물로 뛰어내렸다. 충주 풍경길의 중원문화길, 그중에서도 생태탐방길은 아름다운 자연과 슬픈 역사가 어우러진 탄금대에서 시작한다. 열두대에서 탄금대 동쪽 가파른 계단으로 내려오면 공중전화 부스를 닮은 ‘4대강 자전거길 충주 탄금대 인증센터’가 나온다. 탄금대는 국토종주자전거길 중 팔당댐에서 출발하는 남한강자전거길의 끝이자, 문경새재로 이어지는 새재자전거길의 시작이다. 탄금대 인증센터에 스탬프가 있으니, 자전거를 타지 않아도 찍어두면 기념이 될 듯.
지금 걷는 생태탐방길은 상당 부분 남한강자전거길과 겹치니 말이다. 인증센터에서 새재자전거길 방향으로 5분쯤 걸어가면 충주세계무술공원의 야외공연장이 보인다. 희고 거대한 돔이 멀리서도 눈에 띄니 헤맬 이유가 없다. 이 멋진 무대에서 2006년부터 유네스코가 공식 후원하는 충주세계무술축제가 열린다. 해마다 여름에 열리는 축제 일정에 맞추면 풍성한 볼거리를 즐길 수 있다. 축제가 아니라도 공원 안에 충주세계무술박물관, 축구장, 돌미로원 등 둘러 볼 곳이 많다. 충주세계무술공원을 충분히 즐겼다면 본격적으로 생태 탐방길을 걸어보자. 제법 큰 목행대교 옆에 자그마한 목행교를 지나 충주자연생태체험관에 닿을 때까지 2시간은 족히 걸어야 한다. 가는 내내 그림 같은 남한강의 풍경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져 지루하지 않다. 다만 중간에 그늘이 거의 없으니 시원한 모자와 물을 준비하는 것이 좋다. 그림 같은 풍경도 살짝 지겹고 다리가 뻐근할 무렵, 충주자연생태체험관이 보인다. 통유리 너머 풍경이 시원한 1층 가족 쉼터에서 쉬거나, 지하 1층 야외 테라스에서 느긋하게 체력을 보충할 것. 충분히 쉬었다면 2층 작은 동물원에서 신기한 동물 친구들과 만나거나, 3층 하늘정원을 거닐며 또 다른 풍광을 즐겨보자. 아이와 함께 갔다면 생태 체험 프로그램에 참여해도 좋다.
체험관에서 나와 15분쯤 걸으면 중원문화길 생태탐방길의 마지막 코스인 조동리선사유적박물관에 닿는다. ‘충주에도 선사 유적이 있었나?’ 의문이 들 수도 있다. 충주의 선사시대 역사에 대해 알려진 내용이 적기 때문이다. 이곳은 2005년 개관했으나 충주박물관에 비해 잘 알려지지 않았다. 1996년부터 2000년까지 세 차례 발굴을 통해 출토 된 빗살무늬토기, 반달돌칼, 그물추 등 신석기에서 청동기에 이르는 다양한 유물을 전시한다. 탄금대에서 조동리선사유적박물관까지 이어지는 중원 문화길 생태탐방길은 9km 코스다. 부지런히 걸으면 3~4 시간, 쉬엄쉬엄 즐기다 보면 하루 종일 걸릴 수도 있다. 가능하면 후자를 추천한다.
조동리 선사유적 박물관앞에서 한장
우리가 하루 묵었던 수안보 한화리조트
선사유적 박물관
충북선 목행철교
자연생태 체험관 앞 조형물
남한강변 길
갈대와 어우러져 한폭의 그림이네요
갈대와 수양버들
목행교가 보이고
대교 공사중
탄금대:신라 진흥왕 때인 552년 악성(樂聖)으로 불린 우륵(于勒)은 가야국의 멸망을 예견하고 신라에 귀화했다. 진흥왕은 우륵을 반기며 국원(충주)에 거주하게 했다. 그리고 신라의 청년인 법지, 계곡, 만덕을 선발해 악(樂)을 배우게 하고 우륵을 보좌하도록 했다. 이런 연유로 우륵은 만년에 멸망한 가야국을 떠나 충주에 우거했다.
남한강과 달천이 합류하는 지점에 자리한 나지막한 산은 풍광이 매우 아름답다. 우륵은 이곳의 풍치를 탐미하여 산 정상에 있는 너럭바위에 앉아 가야금을 탔다. 이곳이 바로 우륵이 금(琴)을 탄 곳이라고 해서 붙여진 ‘탄금대(彈琴臺)’다. 우륵이 연주하는 가야금의 미묘한 소리는 사람들을 불러모으기 시작했고 곧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탄금대 주변에는 지금도 가야금과 관련된 지명이 남아 있다. 칠곡리(칠금동), 금뇌리(금능리), 청금리(청금정) 등의 마을 명칭은 모두 가야금과 관련된 것이다.
탄금대는 충주시 근처에 있는 대문산(108m)의 정상을 지칭한다. 산 아래로 남한강이 흐르는데 강변에 기암절벽이 형성되어 있고 울창한 숲으로 덮여 있어 경치가 매우 아름답다. 절벽을 따라 강물이 휘감아도는 탄금대는 남한강과 너른 들이 한눈에 보이는 곳에 자리하고 있다. 강줄기의 모습은 강물이 내려다보이는 벼랑에 위치한 열두대에서 가장 잘 보인다. 정상부에는 사방을 조망할 수 있는 탄금정이 있고, 동쪽으로는 계명산과 남산이 솟아 있으며 아래로는 충주 시가지와 넓은 평야지대가 펼쳐져 있다.
탄금대는 옛날부터 유명한 지명으로 지리지와 고지도 등 각종 문헌에 자주 등장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탄금대에 대해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탄금대는 견문산에 있다. 푸른 절벽은 낭떠러지로 높이가 20여 길이요, 절벽 위에는 소나무와 참나무가 울창하여 양진명소(楊津溟所)를 굽어 임하고 있는데 우륵이 거문고를 타던 곳이다. 후세 사람이 이곳을 탄금대라 이름하였다.” 또한 《동국여지지(東國輿地誌)》에는 “충주 서쪽으로 8리에 위치하며, 강 아래에 큰 내가 있는데 금휴포(琴休浦)라 한다”라고 하여 가야금을 타며 쉬던 곳이란 의미로 쓰였다. 이밖에도 《해동지도(海東地圖)》, 《구한말지형도》, 《조선지형도》 등 다수의 고지도에 탄금대 지명이 나타난다.
우륵은 가야국 가실왕(嘉悉王) 때의 사람으로 490년경 대가야의 직할 현인 성열현에서 태어났다. 우륵의 고향인 성열현은 현재 어느 곳인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정치적 · 문화적으로 발달된 지역이었던 곳으로 보인다. 《삼국사기(三國史記)》에는 “가야금은 가야국의 가실왕이 중국의 쟁(箏)을 본받아 만들었고, 우륵이 12곡을 지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이처럼 가야금은 중국의 악기를 바탕으로 하고 있지만 그것을 그대로 모방하지 않고 가야국의 혼이 담긴 새로운 악기로 만든 것이다.
가야금은 우리의 고유한 악기다. 본래 대가야연맹을 상징하며 가야인의 천문의식을 담고 있다. 가야금은 위가 둥글고 아래가 평평한데 이것은 천원지방의 천문관을 나타내며, 12개의 줄은 1년 12달을 상징한다. 가야금은 가야국이 예악(禮樂)을 중시한 문화국가임을 증명하는 것으로 악으로서 백성을 통치하고자 했던 가야의 높은 문화수준을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가야에서 만들어진 가야금은 고국을 떠나 충주에서 탄금대라는 장소와 결합하여 장소적 의미를 취하게 된다. 가야국보다는 오히려 충주가 가야금의 고을이 된 것이다.
탄금대는 임진왜란의 참혹한 역사를 보여주는 의미 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당시 도순변사였던 신립(申砬)은 8,000여 명의 군사와 함께 왜장 가토 기요마사(加藤淸正)와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가 이끄는 왜군에 맞서 탄금대에서 격전을 치렀다. 그는 배수진을 치고 물밀듯이 밀려오는 왜군에 대항해 싸웠으나 전세가 불리하여 결국 패하고 말았다. 신립은 이곳 탄금대에서 남한강에 투신하여 장렬하게 최후를 마쳤다.
탄금대 북쪽 절벽에는 열두대가 위치하고 있다. 열두대의 지명에 관한 유래는 확실하지 않다. 바위의 층계가 12개이기 때문에 열두대라 하기도 하고, 절벽 아래 물이 12번 돌기 때문이라는 설도 있다. 또한 임진왜란 당시 교전 중 달구어진 화살을 식히느라 12번을 오르내렸다는 데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다. 열두대 아래는 깊은 소가 있는데 이를 양진명소라 한다. 이곳에 뱃길을 관장하는 수신(水神)이 살고 있다고 믿었다. 그래서 어업에 종사하는 사람이나 선주, 선박 상인들은 양진명소에서 안전과 번영을 빌었다고 한다.
탄금대에는 전쟁과 관련된 또 다른 유적이 있다. 정상 주위에 남아 있는 오래된 토성이 바로 그것이다. 이 토성은 4세기 중후반에 탄금대를 중심으로 분포하고 있던 철을 생산하는 세력에 의해 축조된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백제와 관련된 유물만이 출토되어 고구려나 신라가 이 지역으로 진출하기 전에 백제에 의해 만들어진 것으로 보고 있다.
탄금대는 충주의 시내 가까운 곳에 위치하고 있는 명소로서 이미 오래전부터 일반인들의 탐방은 물론 도시공원으로도 이용되어 왔다. 그래서 탄금대에는 공원 시설이 다양하게 조성되어 있다. 또한 전쟁의 역사성과 관련된 궁도장을 비롯해 우륵의 가야금과 관련된 공원 시설, 충혼탑, 야외음악당, 특히 공원의 효과적인 활용을 위한 공원도로도 많이 개설되어 있다. 오랫동안 도시공원으로 이용되었던 탄금대는 뒤늦게 국가지정 명승으로 그 장소적 가치가 인정되었다. 명승으로서의 가치를 높이고 시민들의 공원으로서도 잘 활용될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해야 할 것이다.
충주시의 명소인 탄금대는 나라를 잃고 정복국의 신민이 되어 변방으로 올 수밖에 없었던 악성 우륵의 가야금 소리가 한의 울림으로 퍼지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곳이다. 또한 문경새재를 넘어온 왜군에 맞서 배수진을 치고 최후의 결전을 벌였던 장수 신립의 함성이 메아리쳐 우렁차게 들려오는 듯하다. 지난날 커다란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 자리했던 명승 탄금대는 국가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생각하게 하는 역사적인 경승지다.
주현미의 탄금대 사연 노래비
여기 탄금대는 아직 늦가을 이네요
4편에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