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 3. 11. 물날(수).
[기억에서 생명으로― 후쿠시마 15주기 추모와 관악산 골짜기 봄 생명 만나기]
아침마다 일찍 오는 승주와 햇빛샘 찻집 채비를 하는 일이 즐겁다. 승주 덕분이다. 따듯한 매실차와 보리차를 넣고, 새참도 채비했다. 날마다 바뀌는 새참을 먹는 어린이들은 많지만, 찻집은 시들하다. 슬슬 시원한 차로 바꾸어야 할 때다. 5학년 아침열기는 날마다 아침 수학 문제(오늘은 혼합계산 문장제), 리코더, 하루 흐름 나누기, 천자문, 영어로 이어진다. 책상 자리도 사다리타기로 바꾸었다. 영어를 많이 하는 날이라 영어책을 꺼내 익혔다. 곧 만날 베트남 선생님 Phung을 만날 채비도 했다. 베트남 친구 덕분에 영어 공부가 더 재미날 것 같다.
모둠마다 아침열기 공부를 마치고 1층 마루에 둘러앉았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 15주기를 기억하는 공부 때문이다. 후쿠시마 공부의 목적은 두려움을 만드는 데 있지 않다. 누군가를 비난하는 데도 있지 않다. 어린이들과 함께 묻고 싶은 것은 단 하나였다. 우리는 왜 어떤 날을 기억하는가. 잠시 눈을 감고 2분 동안 조용히 숨을 고른다. “우리는 왜 어떤 날을 기억할까?” “슬픈 일도 기억해야 할까?”
이끄미를 맡은지라 2011년 3월 11일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큰 지진이 일어나고, 이어 거대한 쓰나미가 밀려왔고, 원자력 발전소 사고가 일어났다는 이야기다. 어려운 과학 이야기가 아니라 발전소 원리, 재료, 전기와 사람의 삶, 신재생에너지 이야기로 풀어 설명했다. 사고 뒤 후쿠시마 바다와 숲에 생명들, 집을 떠난 사람들 이야기도 있다. 기억은 과거를 붙잡는 일이 아니라, 앞으로 어떻게 살지 묻는 일이다. 추모, 전기와 에너지, 방사능쓰레기의 위험, 지구 생명에게 이로운 신재생에너지 이야기를 마친 뒤 아이들은 세 모둠으로 나뉘어 학교 곳곳으로 흩어졌다.
첫 번째 모둠은 ‘기억의 나무’를 만들었다. 큰 종이에 나무를 그리고, 가지치기한 나뭇가지를 목공풀로 모두 붙여 나무를 완성한 다음 붙임종이 잎사귀를 붙였다. 추모와 앞으로의 실천을 담은 내용들이다. 추모는 슬픔으로 끝나는 일이 아니라 다짐으로 이어지는 일이라는 것을 아이들은 자연스럽게 배우고 있었다. 두 번째 모둠은 학교의 전기 사용을 살펴보는 활동을 했다. 교실마다 전등이 몇 개인지 세고, 학교의 전기 사용량을 자료로 살펴보고, 그래프로 만들어 보았다. “전기는 어디에서 올까?” 아이들은 전기를 ‘쓰는 것’에서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생각해 보고, 우리가 쓰는 전기의 양과 전기료를 꺾은선 그래프로 만들며 삶과 연결했다. 아껴 쓰기 위한 객관 자료를 잘 만들어 놓았다. 세 번째 모둠은 바람개비 만들기를 했다. 종이 바람개비를 만들어 바람에 돌려 보았다. 바람, 회전, 힘, 전기로 연결되는 이야기이지만 낮은 학년이라 재미나게 만들어보는 활동만으로도 신재생에너지 이야기를 기억할 수 있다. 아이들은 바람의 힘을 손으로 느끼며 재생에너지라는 생각을 자연스럽게 만났다.
사실 중요한 질문이 남았다. “새로운 에너지를 만드는 것과 전기를 덜 쓰는 것 중 무엇이 더 중요할까?” 활동 모둠마다 마지막 시간에는 글을 썼다. 활동 경험과 활동 뒤 배움이 글 속에 담겨 있다. 전기를 아껴 쓰고, 후쿠시마 원자력 발전소 같은 사고가 다시는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 참 고맙다. 전기가 없다면 엘리베이터도 멈추고 우리가 눈 똥과 오줌도 처리장으로 보낼 수 없고, 가스도 중단되어 음식을 해먹을 수도 없는게 도시 문명이다. 모든 활동을 마치고 모두 모여 모둠마다 활동을 발표했다. 생명, 바람, 조심, 지구, 전기, 약속, 책임과 같은 낱말이 남기를 바라는 마음이 선생의 바람이다. 활동하는 중간에 Phung이 와서 다 같이 인사를 나누고 환영했다. 지난해 해외에서 만난 친구 가운데 우리 학교로 자원봉사를 오는 귀한 인연이다, 반갑고 고맙다. 아이들의 반가운 환영과 친절에 무척 고마워했다.
점심을 같이 먹고 Phung이 지낼 집으로 같이 가서 난방과 여러 사용 방법을 안내하고 학교에 돌아왔다. 내일부터 함께 재미난 생활을 만들어갈 귀한 인연이기에, 저녁에 저녁을 같이 먹기로 했다.
낮에는 관악산 골짜기로 봄을 찾으러 갔다. 본디 맑은샘회의 위원회 활동 시간인데, 달날 다 함께 몸놀이를 두 주동안 못한 것과 위원회 활동 채비를 더 하기 위해 바꾼 흐름이다. 골짜기에는 얼음이 모두 녹아 물소리가 크게 들렸다. 중간쯤에는 아직도 남은 얼음도 보았다. 골짜기까지 한참을 걸어 올라간 뒤 드디어 우리가 늘 가던 곳에 닿아서 자유롭게 골짜기에서 도룡뇽알과 개구리알을 찾았다. 아이들이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개구리다!”,“도룡뇽이다!” 물가에는 개구리 알과 도룡뇽 알이 투명하게 붙어 있었다. 아이들은 숨을 죽이고 한참을 들여다보았고 살며시 만져보았다. 차가운 물 속이 집인지라 어린이들에게 얼른 보고 다시 넣어줘야 함을 알렸더니 손을 차갑게 하거나 찬 물을 부어가며 보다가 다시 물 속에 넣는 모습이 보기 좋다.생명이 조용히 시작되고 있었다. 개구리와 도룡뇽을 찾았는데 가재는 찾지 못했다.
골짜기 관찰을 마친 뒤 우리는 곳곳에 앉아 늘 하던 대로 눈을 감고 명상을 했다. 저마다 짧은 시를 썼다. 생명을 만나는 기쁨, 미안함, 물소리, 봄이 오는 소리, 많은 이야기가 시에 담겨있다.
후쿠시마를 기억하는 일, 전기를 생각하는 일, 지구를 걱정하는 일, 그리고 숲속 생명을 만나는 일. 이 모든 것은 끝내 같은 질문으로 이어진다.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 돌아오는 길, 아이들은 골짜기를 오르내리며 형과 동생이 짝이 되어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었다. 누군가는 나뭇가지를 들고 장난을 치고, 누군가는 물소리를 들으며 천천히 걸었다. 봄을 맞이하는 작은 학교 아이들의 얼굴은 밝았다. 재난을 기억하는 날이었지만 오늘 아이들은 생명을 더 깊이 만났다. 기억은 슬픔만 남기는 일이 아니다. 기억은 삶을 더 조심하고 더 사랑하게 만드는 일이다. 봄 숲 속에서 개구리와 도룡뇽이 새 생명을 준비하고 있었다. 그리고 작은 학교의 어린이들도 조금 더 책임 있는 사람으로 자라가고 있다.
Phung과 같이 저녁을 먹고 집에 데려다 주고, 이동희 선생과 학교로 돌아와 깊은누리 5학년 부모교사 모임을 채비했다. 함께 시를 읽고, 5학년 한 해 밑그림과 아이들 이야기를 하다보니 시간이 훌쩍 간다. 늘 선생들을 응원하고 격려하고 믿음을 안겨주시는 양육자들 덕분에 교육공동체학교에서 살아가는 기쁨을 맛본다. 교육을 인연으로 맺은 교육공동체살이를 위해 몸과 마음을 내는 아름다운 분들과 함께 살아 영광이다. 오늘도 가득찬 하루를 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