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세상 물정을 모르는 (쑥맥/숙맥)이다.”의 괄호 안에 들어갈 말은? 답은 ‘숙맥’이다. 이 말의 원어가 ‘菽麥’이니 그 음을 따라 ‘숙맥’을 표준어로 한 것이다. 그런데도 ‘쑥맥’이란 말이 여전히 자연스러운 건 원어에 대한 의식이 희미해졌기 때문이다.
‘숙맥(菽麥)’의 원뜻은 ‘콩과 보리’이지만, 위 문장에서 ‘숙맥’은 ‘사리 분별을 못 하고 세상 물정을 잘 모르는 사람’을 뜻한다. ‘콩과 보리’가 비유적으로 쓰인 것이다. 그러나 사실 ‘사리 분별을 못 하고 세상 물정을 잘 모르는 사람’과 ‘콩과 보리’를 비유적으로 연결 지을 고리를 찾기는 어렵다. ‘숙맥’의 비유적 뜻은 ‘콩과 보리’가 아닌 ‘숙맥불변(菽麥不辨)’ 즉 ‘콩과 보리를 구별하지 못함’에서 나왔기 때문이다. 사자성어 ‘숙맥불변’을 모르는 한 ‘숙맥’의 비유적 쓰임 또한 이해할 수 없는 것이다.
이광수의 소설 ‘마의태자’(1926)에 나온 “숙맥불변하는 유렴이 시중이 되어 예겸이 국정을 농락하게 되니...”와 “유렴이라는 숙맥으로 시중을 삼았다.”라는 표현은 당시만 해도 ‘숙맥불변’과 ‘숙맥’을 관련 짓는 의식이 뚜렷했음을 말해준다. 그러나 ‘숙맥’의 쓰임이 압도적으로 늘면서, ‘숙맥불변’을 의식하지 않고 ‘숙맥’을 쓰는 일이 잦아지게 되었다.
‘숙맥불변’과 비슷한 말로 ‘오곡을 구별하지 못한다’는 ‘오곡불분(五穀不分)’이 있다. 그런데 ‘오곡불분’보다 ‘숙맥불변’에 주목하고 여기서 ‘숙맥’을 분리해 쓴 걸 보면, ‘숙맥’은 어감상 ‘어리숙한 사람’을 표현하기에 딱 맞았던 듯하다. ‘숙맥’이란 말을 원뜻으로 쓸 일도 거의 없었으니 원어 의식은 더 희미해졌을 것이고. 이쯤 되면 ‘쑥맥’을 표준어로 삼아도 놀랄 일은 아니다.
최경봉 원광대 국어국문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