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제목은 '七克(칠극)'(김영사 펴냄)이다. 한자로 쓰였지만 저자는 중국인이 아니라 스페인 선교사 데 판토하였다. '칠극'은 일종의 수양서인데 인간이 저지르기 쉬운 7가지 죄를 극복하는 방법을 담은 책이다. 여기서 7가지 죄는 교만·질투·탐욕·분노·식탐·음란·나태다.
가톨릭 선교사인 판토하는 '성경'의 내용을 유가 사상을 빌려 설명한다. 그는 사단칠정론 같은 동양 윤리학의 기본 범주를 성경에 접목했다.
"사람들은 인색함이라는 수레를 타고 있다…사람들은 탐욕이 모는 수레를 몰고 어디로 갈까? 귀신의 땅으로 들어간다."
"사람의 마음은 땅과 같아서 오래도록 갈고 김매지 않으면 반드시 가시덤불이 생겨난다. '성경'에서 말했다. '내가 게으른 사람의 땅을 지나왔는데 가시덤불로 가득하였다.' 극기의 공부는 잠시라도 놓아두어서는 안 된다. 잠깐만 내버려 두면 삿된 생각과 더러운 욕망이 수많은 싹으로 돋아 덤불을 이룬다."
놀라운 건 이 책이 조선에 들어왔을 때 지식인들 반응이다.
남인을 이끌었던 대학자 성호 이익은 "유가의 克己復禮(극기복례)의 가르침과 다를 게 없고, 수양 공부에도 도움이 된다"며 이를 높이 평가했다. 다산 정약용도 '칠극'을 탐독했다. 다산이 남긴 글 중 '醉夢齋記(취몽재기)' '두 아들에게 써준 가계(示二子家誡)' 등 많은 글에서 칠극을 인용한 부분이 보인다.
흥미로운 건 정조의 아버지 사도세자도 '칠극'을 읽었다는 사실이다. 사도세자가 자신이 읽고 감명 받은 책 93종을 나열한 기록이 남아 있는데 그중에 '칠극'이 들어 있다.
연암 박지원을 비롯한 조선 후기 명문장가들 글에서도 '칠극'이 심심치 않게 거론된다.
'칠극'은 조선 지식인들이 서학이라는 거대한 물줄기를 접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고, 그 영향으로 상당수 지식인이 가톨릭 신앙을 받아들였다. 결과적으로 책 한 권이 격변의 서막을 연 셈이다.
'칠극'의 저자인 판토하는 1571년 마드리드에서 태어나 톨레도 예수회에 입회한 후 1596년 동방선교를 위해 인도·마카오를 거쳐 1601년 북경에 도착했다. 명나라 신종을 알현한 후 궁중 악사들에게 음악을 가르치며 선교를 시작했다. 탁월한 중국어 실력을 지녔던 판토하는 1614년 '칠극'을 완성하는 등 활발한 저술 활동을 했으나 1616년 천주교 박해가 일어나자 마카오로 피신했다가 사망한다.
'칠극'에는 굳이 동서양을 구분할 필요가 없는 중요한 가치가 가득 담겨 있다.
"지혜라는 것은 자기를 아는 데서 시작해 천주를 아는 데서 끝이 난다. 나와 나는 구분이 없다. 그래서 나와 가장 가깝다. 만약 내가 가장 가까운 나를 알지 못한다면, 어찌 가장 멀리 있는 천주를 알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