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韓, 총선앞 정면충돌… 與 “이러다 공멸”
“尹, 金여사 문제 전혀 양보 못해… 아끼던 사람에 뒤통수 맞아” 언급
韓 “金여사 관련 입장 변한적 없어… 내 임기는 총선 이후까지 계속” 강경
與핵심 “두사람 다 양보할 기미 없어”
총선을 79일 앞두고 윤석열 대통령과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 사이에 윤 대통령의 부인 김건희 여사의 디올 백 수수 논란을 둘러싼 정면충돌이 이어지면서 여권 내에서 공멸에 대한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왼쪽 사진은 16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국무회의 참석 당시 윤 대통령의 모습. 오른쪽은 한 위원장이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국민의힘 최고위원회의에 참석해 자리로 향하는 모습. 최혁중 ·박형기 기자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이 22일 “제 임기는 총선 이후까지 이어지는 것으로 안다”며 대통령실의 사퇴 요구를 일축했다. 한 위원장은 이날 윤석열 대통령 배우자 김건희 여사의 명품 디올 백 수수 논란 대응 문제에 대해 “제 입장은 처음부터 한 번도 변한 적이 없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도 “김 여사 관련 문제에 대해선 단 한 치도 움직일 수 없다”는 생각인 것으로 알려졌다. 2003년경부터 20여 년간 인연을 맺어온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 간에 김 여사 문제를 둘러싸고 초유의 정면충돌 양상이 이어지면서 4월 총선을 79일 앞두고 “공멸할 수 있다”는 위기감도 여권 내에서 커지고 있다.
한 위원장은 이날 오전 출근길에 기자들과 만나 ‘대통령실의 과도한 당무 개입’이란 질문에 “평가는 내가 하지 않겠다. 내가 사퇴 요구를 거절했기 때문에 구체적인 내용을 말하지 않겠다”며 대통령실의 사퇴 압박 사실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한 위원장은 이어 “제 모든 것을 아낌없이 쏟아붓겠다는 각오로 이 자리를 받아들였다. 선민후사(先民後事)하겠다”고도 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참모들에게 김 여사 문제에서 전혀 양보할 수 없다는 입장이라며 한 위원장을 비판한 것으로 알려졌다. 윤 대통령은 참모들에게 “가장 아끼던 사람에게서 뒤통수를 맞느냐는 소리까지 들었다”며 “사람을 너무 의심하지 않고 썼던 나의 잘못인가 싶은 생각마저 든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날 앞서 윤 대통령은 감기 몸살을 이유로 오전 10시에 열릴 예정이던 5번째 민생토론회에 30분 전 불참을 통보했다.
윤 대통령은 한 위원장이 김경율 비대위원의 서울 마포을 출마를 밝힌 데 대해서도 ‘한동훈 사당화’를 우려하며 “낙찰자를 정해 놓고 입찰하는 게 부정 입찰 아니냐”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해 여당 핵심 관계자는 “한 위원장이 김 비대위원의 마포을 출마를 알린 건 당 간부들과 상의해 진행한 일”이라며 “원희룡 전 장관을 추천한 것도 ‘사천’이냐”고 반박했다.
김 여사는 디올 백 수수 논란에 대해 사과하면 민주당 공격으로 총선이 불리해질 수 있다는 취지의 텔레그램 메시지를 지인들에게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윤 대통령이 김 여사 논란에 대해 완강한 것도 이러한 요인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보인다.
여권 관계자는 “친윤계 사이에선 ‘한 위원장을 사천 논란을 이유로 국민의힘 윤리위원회에 제소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논의되고 있다”고 전했다.
여권 핵심 관계자는 “여러 사람이 봉합으로 가야 한다는 문제의식으로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 사이에서 중재하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두 사람 모두 이 문제에 관해 어느 한쪽도 양보할 기미가 없어서 봉합이 쉽지 않다”고 전했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한 위원장을 향해 “임기 3년이 더 남은 대통령을 당이 더 뒷받침해 줘야 한다”고 말했다.
신나리 기자, 장관석 기자
與 “당대표 자꾸 없애면 총선 망해” 위기감… 경북의원 모임 취소
[尹-한동훈 정면충돌]
중진 의원 “韓 중심으로” 수습 강조
연판장 때와 달리 사퇴 압박 없어
“김경율 출마 언급은 ‘오버’” 지적도
뉴스1
“모래성을 쌓고 무너뜨리는 것도 아니고 자꾸 당 대표를 세우고 없애면 총선에서 망하라는 소리나 다름없다.”(국민의힘 수도권의 한 의원)
국민의힘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에 대한 대통령실의 사퇴 요구가 알려진 22일 국민의힘 내부에서는 “총선이 채 80일도 안 남은 상황에서 지도부가 흔들리면 선거에 악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목소리가 이어졌다. 김기현 전 대표가 취임 9개월 만에 물러나고, 한 위원장이 취임한 지 26일 만에 또다시 사퇴 요구가 나오면서 총선 판도에 악재가 될 수 있다는 우려다. 당초 이날 오후 긴급회의를 열려던 경북 지역 의원들은 한 위원장 사퇴를 주도하는 일부 친윤(친윤석열)계 의원과 연관된 것 아니냐는 추측이 나오자 “오해가 너무 많다”며 모임을 취소했다.
한 친윤계 중진 의원은 이날 통화에서 “한 위원장 중심으로 총선을 치러야 한다”며 “이번 사태가 잘 수습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자중자애(自重自愛·말이나 행동을 삼가 신중하게 함)할 때”라며 “지금은 숨고르기를 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다른 중진 의원도 통화에서 “선거가 아슬아슬한 상황에서 일을 벌여선 안 된다”며 “속된 말로 ‘개판’이 될 텐데 뭣들 하는지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더불어민주당의 반사이익을 경계하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국민의힘 태영호 의원은 이날 통화에서 “김기현 전 대표가 사퇴한 지 얼마 안 됐는데, 한두 번 실수가 있다고 해서 지도체제를 허물면 총선을 치르기 어렵다”고 말했다. 한 수도권 지역 의원은 “이러다 강남 3구에서만 당선자가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일부 친윤계 의원이 한 위원장의 사퇴 분위기를 주도하고 있지만 현역 의원의 호응이 없다는 점에서 과거 ‘연판장’ 사태와 다르다는 분석도 나온다. 지난해 3·8 전당대회에선 50여 명의 초선 의원이 당 대표 후보였던 나경원 전 의원의 사퇴를 요구해 결국 물러나게 했다.
다만 한 위원장이 김경율 비대위원의 서울 마포을 출마 언급이 무리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영환 공천관리위원장은 이날 출근길에 “마치 공천이 다 된 것처럼 얘기해서는 안 된다”며 “좋은 인재가 좋은 곳에 배치돼야 한다는 점에서는 좋지만 절차적으로 ‘오버’한 면이 있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어 정 위원장은 “인재 영입을 많이 하고 배치하는 건 좋지만 형식 부분에 관해 공관위 업무까지 이렇게 (침해)되는 것으로 오해하면 ‘사천(私薦)’이란 이야기가 나온다”고 덧붙였다.
최혜령 기자, 권구용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