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곶포구 부근의 늦가을 풍경으로 간 하루
우리말에 ‘개어귀’란 말이 있다. 강물이나 냇물이 호수나 바다로 들어가는 어귀를 뜻한다. 포구란 배가 드나드는 개어귀를 일컫는다. ‘포구’란 말은 참으로 따뜻한 느낌을 준다. 거친 바다를 항해하던 배가 드디어 고요하고 아늑한 포구(estuary)에 닻을 내려 안착했을 때 사람들은 얼마나 안도의 한숨을 쉴까? 영국의 플리머스항구를 떠나 신대륙의 케이프 코드에 정박한 필그림파더스의 심경이 그러하지 않았을까? 또한 ‘곶’이란 말도 정겨운 언어이다. 바다 쪽으로 길게 내민 땅을 일컫는데 영어로는 케이프(Cape)이다. 포르투갈의 가장 서쪽의 곶 이름이 ‘카보 다 로카’(Cabo Da Roca)로 ‘바위 곶’이란 뜻인데 그곳에는 ‘땅이 끝나는 곳은 곧 바다가 시작되는 곳이다.’라는 석비가 있다. 이 비문은 포르투갈이 처음으로 ‘대항해의 시대’를 전개한 개척자임을 알린다.
오늘 B가 초대한 곳이 ‘월곶’으로 달 모양의 곶이다. 1997년 매립신도시가 된 곳인데 해질 무렵 석양이 아름다워 젊은이들의 데이트 코스로도 유명하다고 한다. 올 들어 가장 춥다고 예보한 11월의 마지막 날, 7반 반창회 멤버 7명이 만났다. ‘인생의 연한이 70이요 강건 하면 80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날아서 가나이다.’라는 시편기자의 말과 같이, 지나고 보니 우리도 졸업 후 앞뒤 볼 여력도 없이 51년이란 세월을 날아서 달려왔다. 우리의 겉모양은 후패하여 비록 아침에는 고혈압 약을 먹고 자기 전에는 전립선약을 먹어야하는 그리 보기 좋은 모습이 아닐지라도, 나라를 걱정하는 우국충정과 건강한 환경을 후세에 물려주려는 일념과 공평한 사회와 정의를 세우려하는 생각만은 여느 젊은이에 못지않다. 그의 근무지인 오피스텔은 바로 바다가 펼쳐지는 양지바른 곳이다. 이 바다가 국가어항으로 지정되어 곧 공사가 시작될 것이라고 한다. 그나마 남아 있는 갯벌이 줄어들까 조금 걱정을 해보았다. ‘갯벌’을 ‘get pearl’이라고 한 말장난을 송도신도시의 어느 건물이름에서 볼 수 있듯이 생태계의 보고인 갯벌이 보호되었으면 좋겠다. 오피스텔에서 커피와 사과로 잠시 즐거운 환담을 나눈 다음 가을전어 구이를 즐기기 위해 ‘진애연’이란 곳으로 옮겨 회정식과 전어구이를 별미로 소주를 나누었다. 바다가 바로 앞에 보이고 다정한 친구들과 술 한 잔 함께하니 세상은 간곳없고 신선놀음만 전개되었다. 가히 오늘의 호스트가 준비한 樽中美酒 와 玉盤佳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인생은 항용 신선놀음으로 끝이 나지 않는다. 생로병사의 순환이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이 사장의 따뜻한 제안으로 그의 모친께서 입원해 계신 요양병원을 찾았다. 92세의 세월을 사신 깨끗한 모습의 어머님은 말이 없으셨다. 굳이 말이란 어느 때에는 부질없고 소용이 없다. 표정하나로도 소통이 되기 때문이다. ‘난 다 알아!’ 라고 말씀하시는 그런 느낌을 받았다. 요양병원이란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가 가야할 종착역인지도 모른다. 우리의 미래 모습을 훔쳐본 기분이다. 그래서 신은 인간의 미래를 미리 알려주지 않는 것인지도 모른다. 누가 보내 준 ‘뉴욕의 택시기사’라는 이야기가 생각났다. 그 택시 기사가 전화를 받고 아파트 벨을 눌렸으나 한참이 지난 후에도 인기척이 없었다. 보통의 경우 장난전화로 생각하여 곧 떠날 수도 있었으나, 기사는 인내심을 가지고 상당기간 기다렸더니 할머니 한분이 천천히 가방을 들고 나왔다. 그 할머니는 집안을 정리하고 마지막 여행을 떠나려던 참이었다. 이를 알아차린 그 기사는 근무교대시간도 놓친 채 할머니가 마지막 보고 싶은 뉴욕 시내를 2시간 섭렵하였고 그 할머니가 젊었을 때 근무한 호텔도 둘러보았다고 한다. 이제 더 이상 볼 것이 없는 할머니는 이제 되었으니 내 목적지인 요영병원으로 가자고 하였다. 그곳은 조그맣고 초라한 병원이었다고 한다. 할머니는 택시요금을 계산하려고 물었으나 택시기사는 받지 않으며 할머니의 마지막 여행에 아름다운 동행자가 되었다고 한다. 이처럼 우리도 나그네와 같은 이 땅의 마지막 여행에 아름다운 동행자가 있었으면 얼마나 좋을까?
병원을 나와 다음 행선지인 소래포구로 향했다. 저녁 약속이 있는 J와 D는 먼저 떠났다. 소래포구란(蘇萊浦口)어감에서 무엇이 떠오를까? 일제강점기의 수인선, 삶을 싣고 달리던 협궤열차, 젓갈시장? 어느 시인의 시집 ‘협궤열차가 지고 간 하루’가 생각났다. 그의 시 ‘협궤열차가 지고 간 하루’는 이러하다.
‘노을을 이고 여인은 걸었다.
끝이 없는 협궤 열차 길을
깊게 패어진 주름살만큼이나
지친 삶에 기댄 하루는
노을빛에 스며들어 바다에 누었다.
땔감을 인 헝클어진 머리카락 사이로
열차는 울부짖고
은빛 억새풀의 속삭임 속으로 가을은 사라졌다.
어둠은 기적소리를 잠들게 하고
여인은 발걸음을 재촉했다.
그날 협궤열차가 지고 간 하루는
무척이나 아름다웠다.‘
이 여인은 시인의 어머니일 것이다. 그렇다. 얼마 전 까지 우리의 삶이란 하루하루가 지친 삶이었다. 그 중에서 어머니의 삶이란 더욱 그러했다. 얼마 전 영양의 ‘산촌박물관’에서 산골 생활상을 재현시켜놓은 형상을 보았는데, 그 중에서 기가 막힌 것은 여인이 소가 되어 받줄을 몸에 두르고 앞에서 가고 남자는 그 줄에 메인 쟁기를 가는 모습이었다. 어찌 이렇게 여인을 혹사할 수가 있을까? 어떻든 협궤열차는 서민들의 고단한 삶을 싣고 달리던 열차였다.
월곶과 소래포구는 다리 하나로 연결되었다. 그러나 한쪽은 시흥이고 다른 쪽은 인천이다. 지방자치제의 이기주의가 이곳에서도 충돌하여 재판까지 있었다고 한다. 다리를 놓았더니 외부손님들이 소래포구 쪽으로 빠져나가고 쓰레기는 월곶 쪽으로 버린다니 뿔이 날 수 밖에 없었을 것이다. 이제 그 다리는 인천시에서 보강하여 놓았고 협궤열차가 다니던 레일만 남겨두었다. 다리란 원래 양쪽을 소통하라고 만든 것인데 지역이기주의 때문에 오히려 불편한 구조물이 된듯하여 착잡하다. 소래어시장의 화재는 또 하나의 갈등을 만들고 있다고 한다. 인천시에서는 이를 기화로 현대식으로 어시장을 재건하려고 하나 상인들은 그들의 몫이 줄어 들것이 걱정되어 반대한다고 한다. 그리하여 포장을 치고 영업을 하고 있는 모습도 보기가 불편했다.
그 다음 행선지는 오이도 해양단지를 경유하여 시화방조제 전망대였다. 전망대에서 바라본 바다는 서해의 파노라마를 펼쳐 보이는 듯하였다. 가까이에는 조그만 무인도가 떠 있고, 송도국제도시가 8킬로미터 멀리 웅장한 모습을 보이며, 영흥도화력발전소의 전력을 배송하는 하얀 송전탑들이 바다에 열병식을 벌리듯 끝없이 늘어져있고, 멀리 인천대교가 바다에 떠 있으며 막 착륙하려는 비행기들은 천천히 영종도를 향하여 낮게 선회하고 있었다, 가까이서 보니 여객기 동체가 마치 커다란 물고기처럼 보였다. 또한 공사 중인 인천 신항만 현장이 보이는가 하면 대부도로 쭉 뻗은 해안도로 등 조용한 바다풍경이 아니었다. 뭔가 부산하게 움직이는 역동성을 볼 수 있었다. 시화호방조제는 조력발전 중이다. 연간 50만 가구에 전력을 공급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가동 중이라고 한다. 20년 전 쯤 썩어가던 호수가 이제 청정 관광지로 탈바꿈 하였으니 인간의 의지가 선하게 작동하면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룬다는 말씀이 생각났다. 높이가 75미터나 되는 전망대에서 커피 한잔을 끝으로 오늘의 일정을 마감하였다. 이곳 월곶부근은 어디를 둘러보아도 공사 중이다. 시화호 흙으로 조성되는 공단, 배곶의 서울대 신축부지공사, 사방이 아파트만 보이는데도 계속 신축 중인 아파트 수요는 누가 창출하는지가 정말 미스터리이다.
이제 각자 돌아 갈 시간이다. H는 4호선 전철을 택하였고 S는 시내버스로, K와 나는 M광역버스를 선택하였다. 오늘 우리에게 좋은 경험을 하도록 기획하고 물질로 헌신한 호스트 B에게 다시 감사들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