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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두이노의 悲歌 원문보기 글쓴이: 한가을
② [인터뷰] “명박시대 남은 1년, 명랑하게 버티는 법?”
많이 노니까 잘 사느냐? 잘 사니까 많이 노냐?
“자기계발서가 보통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진다’고 하잖아요. 뭐가 이루어져요?(웃음) 경제학은 평균적인 사고를 요해요. 국민소득도 평균을 내는 작업이거든요. 백만장자가 있지만, 그건 평균적으로 이상한 케이스에 속하는 거잖아요. 평균 위에 있는 사람만큼 평균 아래 사람들이 있는 거고요. 뭐가 된다, 되자는 얘기 말고 다른 얘기를 하고 싶었어요.”
[집중탐구] - 겉과 속이 같은 따뜻한 경제학자 우석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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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셜] 우석훈을 탐구하다 - 김미화가 본 우석훈 |
[기획기사] 우석훈 박사의 도서들 |
[인터뷰] “명박시대 남은 1년, 명랑하게 버티는 법?” | ||
이번 에세이집의 모티브는 ‘마흔’입니다. 지난 시간을 복기한 작업이었네요.
“일찍부터 마흔 살에는 모든 걸 내려놓고 살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막상 마흔이 되니까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더라고요. 누구나 마흔은 처음이겠지만, 이때를 기록해 두고 싶었어요. 제가 살아온 삶이 어떻게 보면 되게 평범하고, 어떻게 보면 쉽게 경험 못할 이상한 삶이거든요. 보편적인 것과 특수한 것을 동시에 놓고, 마흔 살에는 사람이 어떻게 될까? 라는 모티브의 글을 모은 셈이죠. 차분하게 쓰려고 했어요. 아저씨들은 금방 우울해지고 센티해지니까, 코믹한 느낌을 잃지 않고 밝고 경쾌하게 쓰려고 했어요.”
‘아플 수도 없는 마흔’이라고, 요즘 부쩍 마흔의 위기에 관한 이야기가 많은데요. 20대, 그리고 40대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라고 하셨어요.
“그 또래들이 경제적으로는 안정적일 것 같은데 ‘하우스푸어’에 딱 걸린 사람들이 많아요. 40대는 안정적이지 않아요. 그런 측면에서 20대와 40대가 같이 나눌 수 있는 고민의 접점을 찾아보고 싶었어요. 제일 피하고 싶은 건, ‘나처럼 해봐라’ 식의 글이었어요. 있는 그대로 보여주면서, 20대에게는 당신들 부모나 윗사람이라고 해도 일상은 다 너저분하다는 보편적 얘기를 하고 싶었어요.”
‘나처럼 해보라’고 해도 따라 하기 어려운 삶입니다.(웃음)
“자기계발서가 보통 ‘간절히 바라면 이루어진다’고 하잖아요. 뭐가 이루어져요?(웃음) 경제학은 평균적인 사고를 요해요. 국민소득도 평균을 내는 작업이거든요. 백만장자가 있지만, 그건 평균적으로 이상한 케이스에 속하는 거잖아요. 평균 위에 있는 사람만큼 평균 아래 사람들이 있는 거고요. 뭐가 된다, 되자는 얘기 말고 다른 얘기를 하고 싶었어요.”
‘꿈을 가지라’는 사회적 요구에 ‘재수없다’고 일갈하셨던 인터뷰 기사가 떠오릅니다.(웃음)
“독수리 오형제가 된다든지, 우주평화라든지 지구를 지키는 일. 이런 건 꿈 같거든요. 삼성 직원? 이런 건 꿈이 아니죠. 공무원이 어떻게 꿈이 돼요? 수단인 거죠. 정 안되면 한반도 생태계를 복원하겠다. 이런 게 꿈이지. 사람들이 꿈이 아닌 현실을 꿈이라고 얘기하더라고요. 조작된 마케팅 같아요. 중고등학생 진로지도하는 시간에 가고 싶은 회사를 적어내라고 한데요. 문제죠.”
누가 우리의 꿈을 마케팅 했다고 보시나요?
“전교조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을 자기네 편으로 끌어들이려고, 조선일보 등 우파가 10년 전부터 시작한 일이에요. 그때 이데올로기로 썼던 게, 초중고 경제교육이었거든요. 그게 지금까지 이어져 진로교육 형태로 바뀐 거고요. 한쪽에서는 교육 마피아가 전경련 식의 이데올로기를 사용해 기업에 우호적이게 만들었어요.
기업을 숭배하게 하는 건 결국 우리 모두를 바보로 만드는 거예요. 가끔 좌파 쪽에서 어린이를 위한 경제학책을 써달라고 하는데, 소주병으로 한 대 때려주고 싶어요. 어린이 때는 재미있는 꿈, 희망, 잔인한 상상, 곤충, 이런 생각을 채워 넣어야 나중에 지식을 흡수할 수 있는데, 벌써 친기업적인 경제교육을? 심지어 캠프도 보낸대요.”
그런 맥락에서 20대가 좀 더 게을러 져야 한다고 말씀하셨어요. 이번 책에서도, 당장 즐겁게 살아야 한다고 강조하셨고요. 마음의 여유와 경제적 여유가 있어야 가능할 것 같은데, 지금의 20대에게는 좀 어려운 일이 아닌가 싶어요.
“그런 여유가 있는 20대는 거의 없죠. 그럴 수 있는 경제 시스템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해요. 비틀즈를 탄생시킨 게 영국의 문화정책일까요? 경제정책일까요? 그때 영국의 노동당이 강했거든요. 실업수당을 도입하니까, 어떤 바(bar)에 있던 밴드들도 실업수당 받으면서 먹고 살 수 있게 된 거죠. 엄청난 돈은 아니지만 상대적 풍요를 준 거거든요. 그게 비틀즈를 만들었어요. 문화정책이라는 게, 세끼 밥걱정하지 않게 하는 게 최대의 정책일 거예요.
20대들이 너무 열심히 하잖아요. 정부는 ‘쟤네는 알아서 자구책을 구한다’고 보겠죠. 만약 20대가 다 놀면, 그때 정치인들이 큰일 났다고 생각할 거 아녜요. 걱정하지 않고 맘 편하게 상상을 많이 한 사람들에게서 진짜 창의성이 나와요. 제가 좋아하는 말이 그거에요. 노는 놈의 창의성을 ‘나인 투 파이브(직장인)’이 따라갈 길이 없다.(웃음)”
그러면, 사표를 품고 공직 생활을 했던 박사님처럼 당장 즐거움을 찾아 나와야 할까요?(웃음)
“지금 당장 어떻게 할지는 개인의 선택인데, 노동 시간을 3분의 1 정도 줄이는 방법을 함께 생각해봤으면 좋겠어요. 수요일에는 학생도 직장인도 놀았으면 좋겠어요. 놀게 되면, 그 시간을 문화, 사회활동으로 채우게 될 거고, 그 과정에서 새로운 일자리가 생길 거거든요. 간접 생산영역이 늘어나는 거예요. 우리나라가 최대 노동시간을 자랑해요. 국민소득 6만불 이상인 유럽도 우리보다 두 달은 더 놀거든요.
논리 문제에요. 많이 노니까 잘 사느냐? 잘 사니까 많이 노냐? 제가 수년간 지켜보니까, 많이 노는 나라가 잘 살아요. 편의점 보면 알 수 있어요. 편의점 있는 나라는 못사는 나라에요. OECD 국가 중에서 24시간 편의점 운영하는 한국, 일본이 대표적으로 힘들고 인생 고달픈 삶을 사는 나라죠. 스위스나 노르웨이, 스웨덴에는 편의점이 없고 가게도 6시면 닫아요. 우리가 다음 단계로 나아갈 때, 더 많이 놀고 더 여유가 많은 삶이에요. 거기서 자연스럽게 경제적인 활동이 유발되어야 해요. 죽으라고 1시간씩 더 일하는 삶은 70년대 얘기고 이제 안 통한다니까요.”
죽음을 향해 가는 삶이라고도 말씀하셨죠. 다 힘들다고 하지만, 결국 불철주야 야근하는 게 현실인 것 같습니다. 결국, 시스템 속에서 방향을 잡아가되 선택은 개인의 몫이라는 거죠.
“두 가지 다 필요해요. 종신고용이 무너지는 과정에서 먼저 나오는 사람들을 ‘드롭아웃’이라고 말하는데 일본에서 유행한 개념이에요. 저도 ‘드롭아웃’을 했던 경우고요. 버리고 나오는 건 개인의 해결책이고, 궁극적으로는 휴일을 늘리고, 노동시간을 줄여가는 과정에서 일자리가 나뉠 거예요.
예전에 『마시멜로 이야기』가 200만 부 팔렸나요? 한국을 망친 책을 꼽자면 맨 앞에서 이야기 돼야 할 책이에요. 힘들면 힘들다고 말을 해야지, ‘힘들어도 참고 기다리면 마시멜로가 많아질 거야’라는 얘기를 사람들이 받아들였는데, 그만큼 영혼이 가난해진 거죠. 시스템이 움직이려면 사람들의 무엇보다 사람들 마음에 여유가 있어야 할 것 같아요.”
선생님의 20대는 어떤 기억으로 남아 있나요?
“궁상맞고, ‘찌질’했고, 우울했어요. 술을 안 마실 땐, ‘내가 왜 살지?’하던 학생(웃음)”
그때는 지금의 20대와 또 다른 문제로 그런 거죠?
“그때는 전두환 시대였어요. 학교에 가면, 책가방 열어서 금서가 없다는 걸 보여주고 들어갔어요. 그게 진짜 기분이 나빴어요. 내 생각은...? 언제나 텅 비어있는 듯한(웃음) 전두환 시대라 힘들었죠.”
박사님 삶에서 인생에서 가장 큰 변화의 시기라면 언제였나요?
“결혼했을 때요. 그전까지는 술을 먹지 않으면 혁명을 얘기할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결혼하고 나니까 혁명을 꾸밀 때는 차를 마셔야지, 술 먹고 무슨 혁명을 한다는 거야. 싶더라고요.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잖아요. 여기(영화사) 있는 아저씨들이 그래요. 저녁에 술 마시면서 시나리오 다 써놨다고. 다음날 기억하는 사람이 없어요.(웃음) 술 먹고는 중요한 결정이 내려질 수가 없어요.
술 먹고…… 의절할 수는 있겠죠. 너 이 새끼, 다신 안 봐.(웃음) 차 마시면서 인생을 논할 수 없는 사람은, 밀실로 들어가는 거예요. 새누리당도, 민주통합당도 밀실에서 다 결정하잖아요. 아무도 모르고 누가 진짜 의사결정을 했는지 모르게 되어 있잖아요. 술집이 대표적인 밀실이죠.”
낮은 곳으로, 낯선 곳으로 가겠다는 기조는 여전히 변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영화사 ‘타이거 픽쳐스’나 <나는 꼽사리다> 마이크를 쥐신 걸 보면 말이에요.
“이준익 감독이 낮은 곳은 아니지만, 여기가 지금 힘든 때에요. 동고동락이라는 말이 있는데, 제 생각엔 즐거움은 나뉘지 않아요. 즐거움을 나누면 타락이거든요. 그래서 고통만을 같이 나누고 살려는 거죠. 명박시대에 여기 있는 것도, 이 시대에 즐거움이 없어서예요. 그래도 고통은 같이 해야겠다. 고통은 나누는 게 아니고 같이 고통스러워 하는 거죠.”
『아픈 아이들의 세대』를 보면, ‘서울을 탈출해야 한다’는 말이 나와요.(웃음) 여전히 서울에서, 이제 곧 새로 태어날 아이와 함께 살게 될 텐데요. 이번 정권을 버티는 것, 박사님께는 어떤 의미인가요?
“학자로서 저는 운이 좋았던 편이에요. 통장에 10만 원이 있던 때가 제일 어려운 시기였는데, 그때도 빚은 없고 집은 있었거든요. 세끼 밥은 먹고 살았어요. 명박시대 들어오면서, 학자들이 외국에 가 있겠다며, 저에게도 가라고 권유했어요. 이번 정권이 참 힘들 거로 생각했고, 사람들하고 같이 하고 싶었어요. 방사능비 내리면 같이 맞고, 광우병 소 돌면 같이 먹고.(웃음) 하여간 마음을 같이 하고 싶었어요. 어딘가에서 상상해서 아는 것과 부딪치면서 생각하는 거랑 좀 다를 것 같아요. 그런 의미에서 <나는 꼽사리다>도 하는 거죠.”
<나는 꼽사리다>의 진행을 ‘큰 마이크를 쥐었다’고 표현하셨어요. 큰 마이크를 쥐고, 어려운 점이 있다면요?
“사람들 재우는 게 참 가슴 아파요.(웃음) 저나 선대인이나 그런 방송이 익숙지 않아서. 맞춰나가는 중이에요. 저는 <나는 꼽사리다> 진행자를 뽑을 때 여성이 꼭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어요. 그게 제일 큰 논란이었어요. 남성들끼리, 동질성만 강한 집단보다는 이질적인 집단이 되길 바랐어요. 그래서 김미화 선배가 오게 된 거죠.
김미화 선배는 존경스러울 만큼 사려 깊어요. 가운데서 균형을 잘 맞춰주고요. 그러다 보니 우리는 성적인 발언에 문제가 없어요. 룸살롱 경제학이나 민감한 주제를 잡을 때도 편하고, 농담할 때도 적정선을 생각하거든요. 그게 일상적 삶이죠. 여중생이 들을 수도 있고, 할머니가 들을 수도 있는 거니까. 그건 잘 해결되었는데, 사람들을 재우는 건… 저도 아주 괴로워 죽겠어요.”
선대인 선생님과 경제적 입장은 비슷한가요?
“싱크로율로 치면 90퍼센트에요. 선대인은 ‘지금 이건 아니다’는 얘기를 하는 거고, 저는 그 뒤에 문화 경제학, 생태경제학으로 하고 싶은 얘기가 더 있는 거고요. 이제 <나는 꼽사리다>에서 정치나 재벌 얘기 말고, 생활에 있는 경제학, 농업 이야기를 늘이려고요. 고발 프로를 하나 더 만들려던 건 아니었거든요. 문화경제는 쉬운 얘기는 아니지만, 영화 같은 이야기는 누구나 관련된 얘기잖아요. 대중교통이나 과일 문제 등 시민 경제 얘기를 조금 더 할 생각입니다.”
<나는 꼽사리다>를 처음 맡을 때부터, 그런 시민 경제 이야기를 하고 싶은 생각이 있었던 거죠?
“장하준 선생과는 조금 다른 결론을 내릴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거든요. 장하준은 케인스 시대가 돌아올 수 있다고 하는데, 저는 그 시대는 못 가고, 제3의 시대로 갈 거라고 봐요. 시민의 정부를 만들고, 거기에 적합한 시민의 경제가 오는 게 맞는데 그렇다면 시민의 경제는 뭐냐는 거죠. 시민이라는 주체는 이미 생겼다고 생각해요. 촛불집회 등 일련의 경험을 통해서, 국민이 아니라 나는 시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늘어났거든요.
그 사람들이 어떻게 주체가 되어 시민의 경제를 만들 수 있느냐가 제가 던지는 질문이고요. 기술적인 해법이 아니라, 해법을 찾아 나가는 합의 과정이 중요해요. 아직 그런 경험을 우리가 해본 적이 없거든요. 대부분 중요한 결정은 기업이나 당에서, 정부 차원에서 결정되었잖아요. 이를테면, 4대강을 안 하고, 대신 그 돈으로 등록금도 내주고, 사람들 밥도 먹였으면 좋겠다, 이런 결정은 10분 만에 내릴 수 있어요. 중요한 건 이 결정을 내리기까지 좋은 과정이 필요한 거죠. 이런 과정이 존재하는 게 시민 경제의 실체가 될 겁니다.”
선생님을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키워드가 명랑인데요. 최근에 쓴 글을 보면, 한계라는 말도 많이 보이고 힘이 좀 빠지신 게 아닌가 걱정이 됩니다.
“가늠을 해보는 거에요. 문제를 알면 해법은 뜻밖에 쉽게 나올 수 있죠. 누가 잘못한 거고, 어디가 틀린 지 알면, 해결할 수 있는데, 문제가 생각보다 심각해요. 최근에 무대가 생겨서 한명숙이 무대로 나갔는데, 한명숙이 우리에게 최선을 주지 않을 거거든요. 하려고 하는 게 없는 데 벌어질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죠. 총선이 반전의 계기가 되었으면 했는데 이번 총선은 잘 모르겠어요. 이제 변화를 일으킬 수 있는 다른 수단을 취해봐야죠. 저는 안 져요. 절대. 다음 정부가 잘 되었으면 하고 바라는데, 지금 상황 같아선 나빠질 확률이 높아요. 다시 소수파가 됐죠, 전.”
소수파가 됐다. 어떤 점에서 그렇게 보세요?
“총선 끝나면, 총선에 이긴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는 게 다수파인데. 니네들도 아니야! 하면 소수파가 되는 거죠. 맨날 그러고 살아서. 3%, 2%의 입장에 서는 것. 자연스러워요. 황우석 때 한번 경험했는데, Daum에서 토론을 붙였는데, 당시 피디수첩을 혼내주자는 사람들이 98%, 안 된다는 사람이 2%였어요. 지금 한미 FTA 폐기를 주장하는 사람도 3% 정도고요.”
왜 박사님이 3%가 되는 걸까요?
“전 최소한 배신을 안 했거든요. 여러 가지 선택 중에 사람들은 보통 쉬운 선택을 하는데. 제가 굉장히 원칙론적인 거죠.”
그런데도 지지 않는다는 자신감의 근거는 뭔가요?(웃음)
“결국은 이겼으니까요. 황우석 때도 우린 이겼어요. FTA도. 노무현 때 딱 끝난 얘기 아녜요. 그게 다음 정권 끝까지 왔잖아요. 그 힘으로 더 밀어붙여서 폐기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반전의 순간은 늘 와요. 권투 선수가 그렇잖아요. 맞을 때도 눈을 뜨고 맞아야 해요. 때린다고 눈 감으면 맞아 죽어요. 눈을 뜨고 있어야 카운터 펀치도 날릴 기회가 생겨요. 학자는 그래야 할 것 같아요. 눈을 감으면, 맞아 죽는다니까요. 뚫고 나가야죠.”
‘편안하게 해주는 언어를 갖고 싶다’고 하셨어요. <나는 꼽사리다>에서도 그렇고, 어떻게 전달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깊은 것 같아요.
“아저씨들 보면, 아무도 안 듣는데 소주 놓고 장광설을 하잖아요. 소고기 좋은 거 시켜놓고 십 년 전 영웅담을…. 미치죠. 얘기가 재미있어야죠. 서로 즐거워야 하는데 진짜 힘들고 어려운 얘기를 그 위에 얹을 수 있잖아요. 대화 자체가 힘들면 힘든 사람 얘기를 할 수가 없거든요. 재미있고 유쾌하고 그래야, ‘근데, 우리 굽는 사람도 좀 생각해볼까요.’ 말을 꺼내지, 힘들고, 죽고, 누군 암이고 그러는데, ‘참, 우리 집에 가면 누가 또 아파요.’ 그러면? ‘됐네!’하고 넘어갈 거예요.(웃음)”
그런 맥락에서 선대인 선생님과 다르게, 청취자들을 재우지 않는 비법이 있다면요?
“다 아는 얘기를 꺼내는 거죠. 심청전, 춘향이, 로미오와 줄리엣, 이준익. 류승완 감독. 이 정도는 우리가 알잖아요. 그렇게 출발을 하면, 일단 출발이 편해요. 그런데 점점 다 함께 공유하는 것들이 점점 없어져요. 김미화 선배가 대단하다고 생각하는 게, 일단 다 알아요. 선대인에게는 얘기를 좀 잘라서 해봐라. 대화법을 써봐라. 하면 그때는 다 알아듣는데, 다음 번에는 “근데~~#$%$%”(웃음)”
협업이 중요하다고 했는데, 지금 하시는 영화 작업이야말로 협업하는 일이잖아요. 협업할 때 가장 중요한 점은 무엇이라고 보시나요?
“사람을 아프지 않게 하는 거요. 시나리오가 테이블에 올라오면 진짜 아픈 이야기 하거든요. 네 것은 뭐가 문제라고, 아무리 미사어구를 둘러도 결론은 그거거든요. 말을 안 하면 되는데, 말을 안 하면 일이 안 되고, 말을 하면 안 볼 각오를 해야 하는 거고. 그게 제일 어려운 것 같아요.”
커뮤니케이션의 문제일까요?
“말로 생기는 해를 줄이는 것. 어려워요. 저도 모르겠어요. 사람은 말로 받는 상처가 생각보다 커요. 성경에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로 시작하잖아요. 모든 얘기가 그렇게 시작하거든요. 말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생각을 까먹고 사는 것 같더라고요. 협업이라는 게 돈이 있고 잘 분배가 되고, 성과가 좋으면 괜찮다고 말하는 게 경제학적 시각인데, 인간이 하는 일은 그렇지 않은 것 같아요. 말이라는 상징으로 상당히 많은 것이 결정되는 것 같아요.”
어떤 50대를 꿈꾸시나요?
“이번 정권 끝나면 많이 접으려고 해요. 50대 뭐할지 전혀 생각이 없는데, 자연인으로 살고 싶고, 지금보다 배가 덜 나온 사람이 되고 싶어요.(웃음) 강연이나 대학 수업도 정리했고, 이제 공적인 학자로 살았던 삶은 정리 하려고 해요. 주변 식구들한테도 못할 일이에요. 식구들이 저의 아내나 사적인 삶이 별로 없어요.”
마지막으로 독자들에게 한 말씀 해주세요.
“저는 한국이 좋은 나라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남재희 장관 같은 우파들도 그래요. “얘가 진짜 애국자야. 나라 걱정은 쟤가 제일 많이 해”(웃음) 보수라는 사람들은 자식들 어떻게 미국 보낼까. 생각만 하는데 진짜 나라 걱정 하는 사람은 저밖에 없다고요. 그때는 기분 좋아요. 제가 진짜 애국자예요.(웃음)
나라 걱정 많이 해요. 국가라는 이름이 아니라 우리가 사는 이곳이 자식한테 물려줄 수 있는 사회면 좋겠어요. 돈 있으면 이민 가겠다고 하잖아요. 그런 집단적인 판단을 내리는데, 그 힘을 모아서 여기를 그렇게 만들자는 거죠. 그게 이 책에서 하고 싶었던 얘기에요. 그걸 좀 인상 쓰고 하지 말고 웃기게 하고 싶은데... 웃기는 건 왜 이렇게 힘든가요. 제가 명랑한 건 잘할 수 있는데, 다른 사람까지 명랑하게 하는 거. 아, 힘드네.(웃음)”
▶ 일시 : 2012년 5월 3일 목요일 (저녁 7시) ▶ 장소 : 서강대학교 다산관 101호 ▶ 초대 인원 : 150명 ▶ 응모 기간 : 2012년 4월 30일까지 ▶ 발표 : 2012년 5월 1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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