웰 스파고(Wells Fargo)는 지난 10년간 연평균 13%의 수익 증가율을 기록한 미국 4위 은행(2009년 총자산 기준)이다. 최근 금융 위기 여파로 7개 금융회사가 사라지는 등 미국 금융회사들이 큰 지각변동을 겪는 동안에도 웰스파고는 높은 실적을 기반으로 위기 이전보다 자산 규모가 증가하였고, 이에 따라 미국 은행 산업의 새로운 강자로 부상하고 있다.
웰스파고의 성장과정
1852년 설립된 웰스파고는 노웨스트(Norwest) 은행과의 합병작업을 성공적으로 완수하면서 본격적으로 성장하기 시작했다. 다른 미국 은행들이 몸집 부풀리기에 힘쓸 때, 당시 CEO였던 코바세비치(Kovacevich)는 ‘클수록 좋은 것이 아니라 좋을수록 커진다’라는 신념하에 ‘웰스파고 웨이’를 고집하며 소매금융을 중심으로 한 미국 일류은행을 목표로 핵심역량 개발에 힘썼다. 최근에는 탄탄한 지역 내 상업은행 업무를 기반으로 투자은행 업무로의 확장을 도모하고 있다.
1852년 설립 후 M&A 통해 성장
1852년 미국 골드러시 붐과 함께 헨리 웰스(Henry Wells)와 윌리엄 조지 파고(William G. Fargo)가 캘리포니아 지역에서의 수송과 금융업무를 담당하는 Wells, Fargo & Company를 설립한 것이 웰스파고의 시작이었다.
1905년 웰스파고는 은행과 운송 사업을 분리하면서 순수한 은행으로 전환되었으며, 이후 Hellman (1907년), Union Trust Company(1924) 등과, 1960년 캘리포니아 내 대형 소매은행인 American Trust Company와 합병하면서 미국 내 11위 금융기관으로 발돋움하게 된다. 당시 웰스파고는 미국 은행 최초로 온라인 서비스를 제공했고, 1995년에는 인터넷뱅킹 서비스를 개설하고 지점 영업 대신 보다 비용 효율적인 슈퍼마켓 내 소규모 지점을 운영하는 등 혁신적 사업전략을 추진하며, 하이테크뱅킹(high-tech banking)의 선두주자로 나서기 시작했다.
노웨스트 은행과 합병으로 새로운 도약
웰스파고는 1996년 로스앤젤레스에 기반을 둔 ‘퍼스트 인터스테이트(First Interstate)’ 은행을 인수하면서 자산규모 1160억 달러의 미국 내 9위 은행으로 성장한다. 하지만 이 인수는 성공적이지 못했던 것으로 판가름됐다. 문화적 이질성을 고려하지 않은 무리한 통합과정 및 조직문화 충돌이 그 원인이었다.
인수 실패와 고객을 외면한 지나친 하이테크(high-tech) 전략으로 웰스파고는 한동안 침체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며, 결국 1998년 미네소타에 기반을 두고 있는 노웨스트 은행에 흡수 합병된다. 이 합병은 공식적으로는 대등한 관계의 합병으로 알려졌지만, 합병 후 은행의 CEO는 당시 노웨스트 은행장이었던 코바세비치로 결정되었고, 웰스파고라는 은행명은 합병 후 은행에 그대로 승계됐다. 이 합병을 계기로 웰스파고는 성장의 기반을 마련하게 되었고, 자산규모 1960억달러의 미국 내 7위 은행으로 도약할 수 있었다.
지역 내 기반 구축 후 점진적 확장
노웨스트 은행과의 합병 이후, 웰스파고는 노웨스트 은행의 선택적 인수 전략에 따라 50여 건의 추가 합병을 성공시켰으며, 2000년 퍼스트 시큐리티(First Security)를 인수하면서 자산규모 2630억달러의 은행으로 성장하였다. 당시 웰스파고는 미국 서부 지역 상업은행 업무에 치중하고 있었고, 이에 대다수 사람들은 웰스파고의 다음 행보로 동부 은행 또는 전국적 기반을 가진 소매은행에 대한 합병과 글로벌 은행 또는 대형 투자은행과의 합병을 예상했다. 하지만 예상과 달리, 웰스파고는 미국 서부 지역에서의 은행 업무 집중을 통한 지역 기반 구축에 힘썼으며, 무리한 확장을 도모하지 않았다.
지역 내 거점에서의 기반 구축이 어느 정도 이루어지자 웰스파고는 소규모 M&A를 통해 새로운 영역과 지역으로의 영향력을 점진적으로 확대해 나가기 시작했다. 그 결과 2007년 웰스파고는 양호한 실적과 높은 성장성을 기반으로, S&P로부터 AAA 신용등급을 받은 미국 내 유일한 은행으로 부상하게 된다. 또한 Fitch 및 S&P의 장기 외환 신용등급과 Moody’s Investor Service가 발표하는 장기 은행예금 랭킹에 기초하여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은행’으로 불리게 되었다.
금융 위기 기회 삼아 또 다른 변화 모색
2007년 이후, 글로벌 금융 위기로 미국의 금융회사들이 잇달아 쓰러지면서 그간 투자은행 중심의 세력구도가 상업은행 중심으로 빠르게 재편되고 있으며, 살아남은 은행들은 탄탄한 수익구조를 기반으로 M&A를 통한 대형화에 나서고 있다. 웰스파고도 예외는 아니다. 2008년 당시 부도 위험에 직면했던 와코비아(Wachovia)를 인수했다. 원래 시티그룹에 은행 영업부문을 22억달러에 매각하려던 와코비아는 그룹 전체를 151억달러에 인수하겠다는 웰스파고의 제안을 수락했고, 이에 따라 웰스파고는 자산규모 1조4000억달러 규모의 대형 은행으로 거듭나게 됐다.
와코비아 인수에 따른 규모 확장과 함께 기존의 보수적 경영 노선의 탈피를 선언했던 웰스파고가 최근 증권사업 확장에 본격적으로 나서면서 변화를 모색하고 있다. 웰스파고는 그동안 대다수 금융회사와 달리 투자은행이나 증권업 분야에 깊이 관여하지 않았으며 전통적인 상업은행 업무에 집중해 왔다. 하지만 지난해 와코비아 인수에 따른 고객망 확보, 최근의 금융시장 안정 및 투자은행 업무 수익률 향상 등에 따라 와코비아로부터 이어받은 증권 업무를 확장하고, 이에 대한 투자도 확대할 계획이다. 실제 웰스파고는 와코비아 인수 당시 은행 부문뿐만 아니라 계열 증권사인 A.G. 에드워즈와 뮤추얼펀드 자회사인 에버그린까지 인수해 새로운 사업 포트폴리오를 구축한 바 있다.
웰스파고의 성공비결
금융 위기 여파로 다수의 금융회사가 무너지고 있는 동안에도 웰스파고는 굳건한 성장세를 지속하고 있으며, 오히려 위기를 기회로 삼아 더 큰 도약을 도모하고 있다. 웰스파고의 이와 같은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일까?
실패 교훈 삼은 성공적 M&A
1996년 퍼스트 인터스테이트 인수 당시, 웰스파고는 운영의 효율성을 중시하는 하이테크뱅킹의 선두주자였다. 반면 퍼스트 인터스테이트는 고객과의 관계를 중시하는 조직문화를 보유하고 있어서 퍼스트 인터스테이트의 고객들은 기계가 아닌 사람을 상대하는 것에 익숙해져 있었다.
하지만 웰스파고는 이러한 은행 간 문화적 이질성을 무시한 채, 합병 후 18개월 이내에 연간 8억달러의 운영비용 절감 및 16%의 인력 감축 등 충분한 준비 없는 무리한 통합과정을 진행했다. 그 결과 IT 시스템 통합 실패, 우수인력 이탈, 고객 불만 증가 및 고객 이탈 등의 문제에 직면했다. 결국 웰스파고의 퍼스트 인터스테이트 은행 인수는 M&A 이후 대출금 9% 감소, 예금 12% 감소, 주가 15% 하락을 기록하며 실패한 M&A의 사례가 되고 말았다.
웰스파고는 이전의 실패를 교훈 삼아 노웨스트 은행과의 합병 시에는 철저한 사전준비를 했고, 장기간에 걸쳐 유연한 조직간 통합을 추진해 두 조직의 문화적 이질감 및 강점을 잘 조화시킨 핵심역량 구축에 성공했다. 무엇보다 성공적이었던 것은 합병 이전 웰스파고와 노웨스트 은행이 가지고 있던 강점인 하이테크뱅킹과 교차판매를 잘 조화시켜 조직 내 핵심역량으로 구축한 것이었다.
이를 위해 웰스파고는 2000년 이후 각 분야의 인적자원과 재무부서를 분리·유지하고 있으며, 합병 이후 대대적 인력 감축보다는 조직 내 남아있기를 희망하는 인력을 그대로 유지하고자 노력하였다. 이로써 웰스파고와 노웨스트 은행 간 합병은 미국 대형 은행 합병 중 가장 성공적인 합병 사례 중 하나로 자리매김하게 되었으며, 이후 웰스파고는 탄탄한 성장을 지속할 수 있었다.
소매금융 집중으로 교차판매 강화
웰스파고의 진정한 경쟁력은 외형 확장보다는 ‘기본에 충실’한 영업전략에 있다. 실제 웰스파고는 해외 영업의 비중이 2%에 불과하며 모기지론 등 예금, 대출 업무, 신용카드, 인터넷뱅킹 등 기본적인 상업은행 업무에 중점을 두고 있다. 웰스파고는 규모의 확장을 통한 성장보다는 내적 역량 강화 및 고객과의 밀접한 관계 구축을 통해 지역 내 기반을 확충하는 데 주력해 왔으며, 이에 따라 세계적으로 잘 알려지지는 않았으나 미국 내에서는 확고한 기반을 갖춘 역량 있는 은행으로 성장할 수 있었다.
웰스파고의 기본 영업전략은 ‘고객과 함께 성장한다’는 것이다. 금융의 기본이란 고객의 니즈 파악과 이를 만족시키기 위한 최선의 노력을 통해 고객 충성도를 확보하고 이들과의 지속적 거래관계를 유지해 나가는 것이다. 웰스파고는 이러한 기본에 충실하여 고객 지향적 마인드를 통해 기존 고객 서비스를 강화하는 지역 밀착 영업에 힘써 왔다. 그 결과 수익의 80%는 기존 고객에게서 나온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미국 은행들 중 교차판매율이 높은 은행으로 유명해질 수 있었다.
교차판매란 한 명의 고객에게 다양한 상품을 반복적으로 판매하는 것을 말한다. 실제 2009년 웰스파고의 소매금융 부문 가계당 교차판매 실적은 5.95개로, 미국 은행 평균의 약 두 배에 이른다. 이처럼 우수한 교차판매 실적을 기반으로 웰스파고는 49%(2009년 기준)라는 높은 비이자수익 비중을 기록할 수 있었으며, 이를 통해 금융 위기로 상당수 금융회사들이 손실로 고통을 받고 있는 상황에서도 지속적인 수익을 창출하는 쾌거를 이뤄낼 수 있었다.
교차판매 강화를 위해 웰스파고가 취한 전략은 고객 요구에 맞는 다양한 상품 및 서비스 개발과 적극적인 고객 정보 분석이었다. 웰스파고는 고객의 라이프 사이클 및 특성을 고려한 다양한 상품을 개발하는 한편, 고객의 시간과 비용 절약을 위한 패키지 상품도 함께 출시하였다. 특히, 패키지 상품의 경우 한 번에 패키지로 다양한 상품을 구매하도록 고객을 유인할 수 있다는 점에서 교차판매의 효과적 수단으로 자리 잡았다. 또한 적극적인 고객 정보 수집 및 분석을 통한 고객 그룹별 차별화된 가격 및 서비스 정책을 통해 고객의 교차판매율 증대에 힘썼다.
엄격한 리스크 관리 능력
웰스파고는 미국 내 모기지 분야 1위 금융회사이면서도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 당시 지속적인 흑자를 이어가는 저력을 보여줬다. 이는 웰스파고의 고객에 대한 엄격한 리스크 관리 능력에 기인한다.
미국의 대표적 모기지 신용등급 평가 회사인 피코(FICO)에 따르면 금융 위기 발생 당시 웰스파고의 주택담보대출 고객의 평균 신용점수는 725점으로 프라임급 이상인 것으로 나타났다. 660점 이하부터 서브프라임 고객으로 분류된다는 점을 감안할 경우, 매우 높은 고객 신용도를 나타내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웰스파고의 리스크 관리 문화는 신용카드 영업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기본적으로 신용점수 720점 이상 고객에 한해서만 신용카드 발급이 가능하며, 웰스파고 직원이라도 신용기록이 충분하지 않은 신입사원에게는 카드를 발급해 주지 않고 있다. 실제 과거 웰스파고가 미국 최고 신용등급인 AAA를 받을 수 있었던 배경에는 웰스파고의 이러한 리스크 관리 능력이 크게 기여하였다. 이러한 높은 고객 신용도 및 리스크 관리 능력에 기반을 두어 웰스파고는 서브프라임발 금융 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해 나갈 수 있었다.
국내에 주는 시사점
웰스파고의 성공 사례는 우리에게 몇 가지 시사점을 주고 있다. 최근 상당수의 금융기관들이 국내 시장에서의 성장에 한계를 느끼고 지속적인 성장을 도모하기 위해 M&A를 통한 사업 다각화 및 해외 시장 개척 등에 눈을 돌리고 있다. 웰스파고의 사례는 이와 같은 규모 확대를 통한 성장전략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뛰어난 내적 역량 및 안정적 고객 기반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점을 보여주고 있다.
웰스파고의 교차판매 능력 또한 국내 금융기관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동일 상품을 기존 고객에게 판매하는 비용은 신규 고객에게 판매하는 비용의 10%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예대마진에 대한 의존도가 큰 국내 은행에게 순이자마진율이 지속적으로 하락하고 있는 상황에서, 교차판매 강화는 비이자수익 증대를 통한 수익원 확보라는 측면에서 큰 의미를 지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