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행 34 < 지리산 노고단 – 더케이 지리산 가족호텔 온천>
장마 중이다. 날씨 예보를 민감하게 체크하면서도 비가 오더라도 결코 다녀오리라는 마음으로 기다렸다. 말간 날씨에 떠나면 더없이 좋을 지리산 노고단을 택한 것이다. 혼자라도 좋고 비가와도 좋겠다는 계획이었는데 아들아이가 동행을 하겠단다. 사실 아들아이는 산 오르기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은 편임에도 불구하고 온전히 엄마를 위하여 동행해 주는 것을 뻔히 알지만 그동안 함께 했던 트레킹 보다는 노고단 정상을 찍어 추억하나 만들고 싶은 내 나름대로의 욕심도 있었다. 노고단 정상 탐방은 인터넷 사전예약제를 시행하고 있다. 금요일 쯤 이미 탐방 인원 2명을 사전 예약하여 바코드를 받아 놓고서 함께 동행 할 수 있도록 유도한 끝에 출발하게 된 것이다. 지리산은 1967년 12월 29일 우리나라 최초의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경상남도, 전라북도, 전라남도의 3개도의 행정구역에 속해 있을뿐더러 국립공원 중 가장 넓은 면적의 산악형 국립공원이다. 우리는 망설임 없이 성삼재 휴게소로 갔다. 노고단을 가는 코스는 지리산에서 가장 손쉽게 정상에 오를 수 있는 경로 중 하나로 성삼재 주차장에서 출발하여 노고단고개까지는 약 4.7km이며 보통 1시간 정도 소요되는 코스이다. 이 경로는 지리산의 3대 주봉 중 하나로 노고단의 아름다움을 가까이에서 체험할 수 있는 곳이다. 산행 난이도 또한 비교적 쉬운 편이라서 거창한 노고단 정상의 이름에 걸맞게 용감하게 출발하였다. 성삼재 휴게소 주차장에 도착해보니 구름처럼 몰려다니는 안개는 비처럼 내리고 가시거리는 감지할 수 없을 만큼 온통 하얗다. 차라리 운무를 즐기는 추억의 산행이라 해야겠다. 풍경을 즐기며 운동하는 목적도 있지만 오늘 같은 안개 속 산행은 처음일뿐더러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쨍 하니 뜨거운 것 보다는 시원하여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싸목 싸목 오르기에 좋았다. 그렇다. 인생은 이런 것이었다. 아무리 절경이라도 한 치 앞을 내다 볼 수 없는 것이 오늘 노고단을 오르는 산행 같은 것 아니던가? 멀리 보자니 볼 수도 없으며 온통 하얀 안개 속을 오직 바닥만을 내려 보며 한 걸음 한 걸음 줄어가는 길은 내가 멈추어 있어도 세월은 가 듯 걷는 만큼 노고단은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러니 보이지 않는 미래에 아등바등 집착하지 않는 요즘 젊은이들의 사고는 오히려 살아보니 알 것 같은 우리들보다 훨씬 현명할지도 모르겠다. 다만 현재 즉 오늘에 충실하며 잘 살아가는 것이 더없는 행복이라는 것도 살아보니 알겠더라는 것이다. 항상 함께 있는 듯 가까이에서 근황은 물론이며 일상 또한 잘 알고 있는 아들과 산 오름을 통한 교류는 참으로 소중하고 소소하면서도 깊은 가슴을 맞대는 시간이다. 그렇게 노고단을 향해 가는 길은 삼성재 돌계단 길과 편안한 길의 갈림 이정목이 있다. 우측으로 가면 경사가 완만한 편안한 길이고 좌측으로 가면 경사가 급한 돌계단길이다. 우리는 경사가 완만한 편안한 길을 선택하여 여유롭게 올랐다. 그렇게 오르다 보면 노고단 대피소 입구에서 돌길과 편안한 길은 서로 만난다. 오늘의 일기예보는 분명 비는 없었기에 시원한 날씨라서 안개로 인한 조망은 영 아니지만 안개 낀 등정은 또 다른 정취를 느낀다. 조망 없는 등정에 땅만 내려다보며 걷는 오늘의 등정이 안개로 운치를 더해주고 있었다. 노고단 고개 도착하니 노고단탐방지원센터에서 탐방예약을 확인하고 있었다. 그곳에서 정상까지는 약 500m쯤 남은 지점이다. 바코드를 찍고 들어 선 순간부터 바람이 달랐다. 연기처럼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멋진 풍경 속에 노고단 정상(1,507m) 지점은 하얀 백지 속에 갇힌 듯 황홀하기까지 했다. 세상사는 이야기가 각각 다르듯이 안개 없이 이리저리 겹쳐진 멋진 능선과 계곡을 만났더라도 분명 황홀하다 하였을 것이다. 그러니 지척의 안개로 내려 볼 수도, 멀리 볼 수도 없는 노고단 정상에서 어느 누가 인생을 가타부타 논할 수 있겠던가? 오늘의 안개 낀 산행은 결혼을 앞둔 아들아이에게 간절하게 전달하고 싶은 내 안의 메시지 같았다. 너무 깊지 않게 단순하게 살며 현실에 충실하면서 즐기는 인생이기를 바라는 어미 마음을 꺼내 놓은 하얀 풍경이었다. 아직도 노고단 고개의 안개는 여전하다 산자락의 이리저리 겹쳐진 멋진 능선과 계곡을 포기하고 약 2시간 30분을 소요하여 성삼재 주차장으로 원점회귀 하였다. 아침식사도 부실했었는데 늦은 점심이다. 내려오는 길에 산채정식으로 식사를 마치고 교직원공제회에서 운영하는 더케이 지리산 가족호텔로 향했다. 더케이 지리산 가족호텔은 한때는 온천과 관광지의 성지였던 곳에 위치해 있지만 주변 관광온천호텔이 운영하지는 않은 듯하고 그나마 굳건히 자리를 지키며 활발히 운영되고 있었다. 물론 관광단지라서 찾아가는 길이랄지 시설 또한 깨끗하고 좋았다. 어느 때부터 여행이 끝나는 지점에 그곳의 온천욕을 즐기는 것에 만족함을 느끼게 되었다. 이번 기회도 아들과의 산행 그리고 온천욕으로 마무리하고 둥지를 찾는 오늘도 나와 아들아이에게 소중한 추억의 자서전 한 페이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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