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다이즘(Dadaism)
미래주의에서 나타났던 과학과 과학기술에 대한 긍정적 태도와는 정반대의 부정적 입장을 위했으며, 이성과 합리에 대한 외의, 부정, 파괴, 즉 '반예술'의 태도로 우연에 의거한 제작 태도를 견지하였다. 특유의 유머가 있고 오브제를 사용하여 기성관념을 부정함으로써 현대미술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다다는 어린아이의 장난감 목마를 뜻하는 프랑스어로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뜻으로 붙여진 것이다.
반전통. 반예술. 반체제적이었던 이 운동은 우스꽝스러움을 강조함으로써 대중의 생각에 충격을 주려는 의도를 갖고 있다.
제 1차 세계 대전 중, 스위스에 망명 온 작가들이 일으킨 반 문명, 반 합리주의 예술 운동으로, 전쟁의 살육과 파괴에 대한 증오와 냉소를 기본 정신으로 하여, 모든 문화적 가치, 전통적 가치, 이성에 대한 신뢰를 부정하며 예술 형식의 파괴와 부정을 주장했다. 1차대전을 치른 서구 유럽 사회는 가공스러운 살육과 파괴를 자행한 전쟁의
근본토대를 과학기술의 남용과 자본주의 사회체제로 보았다. 이제 유럽인들은 그 전까지 찬양해 마지않았던 과학과 경제의 발전이 결국 자신들의 세계를 파괴하는 데 쓰였다는 사실을 깨닫고 기존 문화, 문명에 대한 신랄한 비판과 반성을 가하기 시작했다.
미술계에서도 그 이전의 전위 미술- 표현주의까지도-전쟁을 일으키는데 일조를한 운동이라고 생각하고 이 모든 과거의 미술들은 전복되어야 할 대상으로 간주 했다.
다다운동은 스위스, 미국, 독일, 프랑스 등지에서 일어났고 행위들은 공연이나 행사 자체가 미술이 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방법상의 다양성을 특징으로 그 영역을 빠르게 확산시켰다. 다다 미술가들의 공통점은 모더니즘의 전통을 이어받아 새롭고도 도전적인자세를 취하며, 미술이란 어떤 것이어야 한다는 기존관념에 도전하고자 하는 의지를 가졌다는 데서 찾을 수 있다.
이 시기에 나타난 '다다이즘'은 양식이라기 보다도 일종의 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즉 미술 한 부분에 국한 된 것이 아니라 문학과 음악 등의 다른 예술 분야 에서도 동시에 시작되며, 모든 예술장르를 통해 그들이 가지고 있었던 생각을 표현하는데 수단으로 삼았다.
이로서 다다는 총체적 예술 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다다이스트들의 목적은 단 하나, 기존 문화에 대한 철저한 부정, 더 나아가 파괴였는데, 합리주의적이고 이성적인 아카데미 미술에 대한 거부로 이들은 '우연의 원리'를
선택했다. 소음주의 음악, 아프리카 부족의 토속어로 지어진 시, 언어가 아닌 음성으로만 만들어진 음성시, 여러 사람이 한꺼번에 읊어 대는 동시시 등이 만들어지게 되고,아무런 뜻도 알 수 없는 연극과 퍼포먼스가 상연되기도 했다.
뒤샹, 아르프, 피카비아, 슈비터스 등이 조형예술 분야의 주요 작가이며, 그들의 작품은 환상적, 상징적, 풍자적이어서 무정형 또는 기계 형태적인 구성을 취하였다.
차바퀴, 돌, 구두, 차표 등을 본래의 일상적인 용도에서 떼내어 보는 사람으로하여금 잠재한 환상이나 욕망를 불러 일으키게 하는 상징적 기능를 마르셀 뒤샹의 작품 "자전거 바퀴"에서 볼 수 있다. 이렇듯 오브제등의 자유로운 표현 형식을 창안하여 종종
무의미속의 해방감을 맛보았던 것이다.
다다이즘이 공통적으로 추구했던 '우연의 원리'는 예술의 합리성과 논리성은 삶
자체가 가지고 있는 우연성을 표현해 내지 못하며, 따라서 예술과 삶의 경계를 허물기
위해서는 예술이 '우연의원리'에 따라야 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또한 '우연의 원리'에 의한 행위 예술은 기존 체제를 벗어나는 수단이 되었을 뿐만 아니라, 예술이란
품위가 있어야 한다거나 실제적인 의미가 있어야 한다는 규정을 벗어난 것이기도 했다.
다다운동의 시초인 쮜리히 다다는 유럽전역에서 부터 전쟁을 피해 중립국 스위스로 온 작가들에서부터 시작되었다.
시인과 음악가, 화가들이 모여 시 낭송 모임, 연주회, 전람회, 평론발표 등을 통해 서구
문화 전통을 신랄히 비판했다. 전쟁으로 인해 상처를 입은 이들은 매우 염세적이면서
부정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었다.
쮜리히 다다의 세 가지 특징적 요소는 소음과 동시성, 그리고 우연성이었다. 음악에서의 소음, 문학에서의 동시성, 그리고 미술에서의 우연성은 각각 그분야의 성질에 맞게
각색된 새로운 시도였다.
전쟁이 종반에 들어서면서 쮜리히 다다는 종말을 고하게 되고 마르셀 뒤샹과 피카비아가 뉴욕으로 이주하면서 뉴욕 다다시대가 본격적으로 열리게 된다.
뉴욕 다다는 쮜리히 다다와 거의 같은 시기에 출연한 운동이지만 뒤샹의 활약으로
독특한 특성을 갖게 된다.
'ready made'나 반 미학사상이 그의 중요 특성이 되고 이런 활동은 뉴욕다다에 이어
나타난 미국 현대미술에 큰 영향을 끼치게 된다.
독일 다다는 베를린을 중심으로 정치적 견해를 표명하기 위한 수단으로 좌익의성향을 노골적으로 표방하는 정치선진의 활동과 결부하게 된다. 미술의정치도구화가 여기서 발견된다. 독일 다다의 기법적특징으로 콜라주 사진기법이 있는데, 이것은 명확한사실성을 가진 요소들로 인하여 메시지를 선명하게 전달하려는 데 의도가있었다. 이것은 입체파의 파피에 꼴레에서 영향받은 것으로 photo -montage라고 불리우게 된다.
다다운동의 마지막 정착지는 파리였는데, 파리 다다의 특징은 문학적인 데가 있다. 잡지를 만드는 것에서부터 시작된 이들의 운동은 선언문, 정기 간행물,사건등으로
수입된 다다양식이 아닌 프랑스 문학을 토대로 일구어 낸 특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문학성이 강했던 이들의 운동은 오래가지 못하고 결국 1924년경 '초현실주의'라는
이름 아래 대단원의 막을 내리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