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람이다.
사람이 어떻게 평온한 심리 상태에서 순식간에 살의(殺意)를 잔뜩 품은 포악한 심리 상태로
돌변할 수 있는지 도대체 알 수 없는 일이다. 나는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내가 포악함의 주체가 되어
딱 세 번 그런 경험을 하였다. 그 세 번의 기억을 떠 올리면 지금 생각해도 섬쩍지근한 느낌마저 든다.
정말 운이 좋았던 것 같다. 운이 좋아서 내가 이렇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지 그렇지 않았더라면
벌써 옛날에 수인(囚人)이 되어 감옥 신세를 졌을지도 모른다.
인생 삼 세 번하고도 관계있는 일로 치부하고 다시는 그런 일이 없도록 다짐하는 마음에서 이 글을
쓰고 있으며 그때를 후회하는 마음이 간절하다. 한 번은 서울시내에서 달리는 시내버스의 운전기사의
목을 졸랐던 일이고, 한 번은 퇴근 시간 지하철역 구내에서 나에게 시비를 거는 젊은 취객의 멱살과
목를 졸랐던 사건이었다. 그때 역구내에는 열차를 기다리던 수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한 번은 그저께 일어난 일이었다. 나의 고향 기차역 앞에서 노점상을 하는 중 늙은이 아주머니의 좌판을
뒤집어 엎어버리기 직전에 다행히 나의 가족들과 다른 행인들이 말리는 바람에 겨우 그만 둔 일이다.
나는 지금 내 나름대로 말하기 어려운 나의 치부를, 나의 잘못된 과거 행동에 대해 고백하고 있다.
나의 이런 일들이 나의 다른 가족이나 많은 수의 다른 사람들로부터 지탄의 대상이 되는 일이라는 것도
잘 알고 있다. 욕을 해도 좋다. 각오가 되어 있다. 끝까지 숨기려고 하다가 그저께 세 번째 일이 생기면서
많은 점을 반성하게 되었고 세상을 이렇게 살아서는 안 되겠다는 걸 깨달으면서 후회하고 늦게나마
각오하는 계기가 되어 스스로는 무척 다행하다는 생각이다. 세상 모든 일은 상대적이다. 나야 내가 먼저 가만히
있는 상대에게 집적거렸을 리는 만무하다고 말할 수 있겠지만, 나도 모르게 상대방에게 오해의 소지가 있는
행동을 했을 수 있었으리라는 생각은 든다. 주변 상황을 정확히 판단하지 않은 당시의 상대방들이 잘못했다고
볼 때, 세 건 모두 상대편이 먼저 시비를 걸어 온 경우들이었던 것은 분명하다.
달리는 시내버스 안 사건은 1990년 연말 결산 업무 때문에 12월 어느 일요일에 출근하는 날에 일어났다.
정말 나로서는 어처구니 없는 일을 당한 경우였다. 몇 정류장 전에 승차하여 벌써부터 버스 중간의 하차문
쪽에 점잖게 서 있는 나에게 지금 막 정차한 정류장에서 중간 하차용 문으로 승차하고 버스 카드를 안 찍었지
않느냐면서 기사가 카드를 새로 찍어라는 주문이었다. 기사의 어투가 불손하기 짝이 없었다. 그래도 감정을 참아
가면서 몇 차례나 내가 아니라고 설명하고 심지어 옆에 서 있던 다른 승객이 내가 아니라고 증언까지 해 주었는데도
막무가내로 반 욕설에 막말 다그침이 계속되어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일은 순식간에 일어났다.
그때는 지금처럼 버스기사 보호용 유리벽이 없었을 때였다. 말 그대로 총알같이 서 있는 다른 승객들 사이를
비집고 앞 쪽으로 뛰어가 운전 중인 기사의 등 뒤에서 내 두 손으로 그의 목을 졸라 흔들면서 나의 무임승차
아님을 강력히 행동으로 항변?했다. 버스가 비틀대기 시작하자 내 옆에 서 있던 남자 승객들이 나를 황급히 기사로부터
강제로 떼어 놓았다. 워낙 이상한 행동을 목격해서 그런지 시민들이 모두 어리둥절해 하는 모습들이었다.
그날 남자 승객들이 나를 강제로 떼어 놓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그 다음에 이어질 수 있었던 교통사고로 나는
범죄자가 되었을 것이다. 요즘같으면 턱도 없는 일이다. 당장 형사 현행범으로 현장 구속감이다.
두 번째 지하철 사건은 불과 2년 전 일이다. 은행 자점감사 일을 마치고 퇴근 무렵, 인근 전철역에서 이미 다른역에서
타고오는 어떤 사람을 같은 열차에서 만나 같이 가기로 약속해 놓고 인근역에 좀 일찍 나가서 기다리면서 일어난
일이었다. 승강장 맨 앞에 줄을 서 있다가 기다리는 사람이 차 안에 없으면 옆으로 한 발 비켜 서고 하면서 이미
서너 대의 열차를 보내고 맨 앞에 서 있는 나한테 느닷없이 줄 뒤쪽에서 꽥하고 고함을 질렀다. 나에게 줄을 서지
않고 왜 새치기를 하느냐는 항의였던 것이다. 처음에는 나도 조용조용 설명을 잘 했다. 그런게 아니고 누굴 기다리
는데 서너 대의 열차를 보내고 있다면서 맨 앞에 줄을 서 있는 상황을 알아듣기 쉽게 충분히 얘기를 했는데도 도무지
알아들으려고 하지 않았다. 여러사람 앞에서 나를 아주 쓸모 없는 파렴치한으로 몰아 부쳤다.
취기가 약간 있어 보였지만 혀가 꼬부라질 정도는 아니었다. 열차가 왔는데도 차 탈 생각은 않고 나에게 시비
거는 것이 재미있는 듯 물고 늘어지는 거였다. 더러운 내 성질이 어디 가랴. 갑자기 내 입에서 꽝하는 고성과 함께
쌍욕이 튀어 나왔다. 나도 놀랐다. 어찌 은행원 출신인 사람의 입에서 시정잡배나 깡패들이 하는 말이 줄줄 나왔는지
나도 많이 놀랐다. 꽉 들어찬 승강장 승객들이 모두 나를 쳐다 봤다. 부끄럽고 내가 못났다는 생각이 채 들기도 전에
그 친구의 목과 멱살을 내 양 손으로 겹쳐 잡고 이리저리 흔들었다. 왜 남의 말을 그렇게 믿지 않느냐고 말하면서.
쾍쾍대면서도 잘못했다는 소리를 끝내 하지 않았다. 에라, 모르겠다. 기다리던 사람은 오든 가든 내 팽개치고 그래, 좋다
어디 한번 해보자. 너 오늘 사람 한 번 잘못 만났다. 나보다 열 살은 젊어 보였지만 술이 조금 취한 남자 한 사람 정도는
맞상대를 해도 완력으로도 이길 자신이 있었다. 목을 조른 채 뒤쪽 의자로 밀고 가서 내가 파렴치한이 아님을 한참동안
설명하였더니 겁이 좀 났던지 아까와는 달리 조금 이해가 되는 듯한 눈치였다. 사실 나도 약간은 겁이 났다. 서로 사과하고
끝낸 일이지만, 앞의 두 건 모두 사람의 목을 조른다는 것이 잘못하면 큰일 날 일이다. 상대의 인격과 생명을 깡그리
무시하는 범죄행위가 될 수 있기 때문에 더욱 그렇다.
세 번째 그저께 일은 나의 고향에서 일어난 일이라 더욱 씁쓸하다. 나는 늘 고향을 그리워하고 고향 사람들이 좋은
줄로만 알고 있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나에게 고향 사람이 나와 나의 가족들의 인격을 통째 무시하는 말과 행동을
했을 때 느끼는 엄청난 배신감이나 적대감을 내가 직접 느낀 건 그저께 일이 처음이다. 나의 처가와 내 고향 집은 서로
지척에 있다. 지난 연말에 우리집에 와 계시던 장모님을 모시고 그저께 고향에 내려갔다. 서울은 갑갑해서 더 이상 못
있겠다고 하셔서 다시 모시고 갔던 것이다. 아내와 아들, 나 그리고 장모가 고향역 앞에 있는 속칭 유명 맛집에서
추어탕 한 그릇씩을 점심으로 맛있게 먹은 뒤 연세가 아흔인 장모를 힘겹게 부축하고 밖으로 나오는 길이었다. 식당 앞
쪽에서 이것저것 먹을 것등을 파는 노점상인 중(中) 늙은이 아주머니에게 장모가 고작 몇 마디 물어 본 게 전부였다.
찐쌀 한 공기에 얼마냐, 저 나물 한 묶음은 얼마요 하고 물은 것밖에 없다. 시골 노인네가 찐쌀이나 나물이 맛이 있어
보이니까 물어 볼 수 있는 일이 아니겠는가. 그런데 그 노점상 아줌마가 벌컥 화부터 냈다. 대뜸 귀찮으니까 그냥
지나가라는 말투였다. 사지도 않을거면서 쓸데없이 뭐하러 묻느냐면서 상인이 손님한테 되레 큰 소리를 쳤다. 눈까지
희번덕거리는 모양이 나의 기분을 몹씨 거슬리게 만들었다. 보통 시골 노인들이 물건은 잘 사지 않으면서 값만 묻고
지나가는 경우가 많겠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그렇지, 어떻든 물건을 팔려고 나온 사람이 값을 묻는 사람한테,
그것도 노인네한테 핀잔을 주고 인격을 무시하는 행동을 하는 것은 크게 잘못됐다는 생각이 들었다. 장모한테 한 소리여서
나도 처음에는 참으려고 했다. 장소가 고향이기도 하고해서. 저만치 지나갔는데도 노점상 아줌마가 계속 쫑알쫑알대면서
우리 일행을 노려보는 것이었다. 화가 슬슬 치밀어 올라왔다.노점상 아줌마에게 따지려고 다가가고 있는데도 그치지 않고
궁시렁대고 있었다. 내 생각에 날씨는 춥고 아직 마수걸이도 못 했던지 씩씩거리는 폼이 쉽게 가라앉을 것 같지 않아 보였다.
또 아줌마의 때가 묻어 새까만 목도리가 역겹고 불쌍하다는 생각까지 들어 점잖게 장사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한 마디만
할 작정이었다. 아까 시골 노인네한테 왜 그랬느냐고, 우리가 뭘 크게 잘못했느냐고 한 마디 했더니 들은 체도 않고 반말로
재수가 있느니 없느니 해대는 모습이 꼭 마음 변한 사람처럼 느껴졌다. 고향에서 느끼는 패배감, 당혹감같은 것이 한꺼번에
밀려오면서 나의 이성은 이미 저만치 밀쳐나고 있었다. 순간 나도 모르게 아줌마의 인도 쪽 좌판 한 개를 발로 걷어찼다.
사람들이 우루루 몰려 들었고 일어서려는 일흔은 되어 보이는 중 늙은이 아줌마를 밀쳐버릴 태세를 취하는 나를 옆에 있던
내 가족과 행인 몇 사람과 또 우리 가족이 식사를 한 추어탕집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나를 말렸다. 그 노점상 아줌마도 변해야
된다고 생각한다. 상인으로서의 서비스 정신이 전무한 경우로는 길거리에서도 물건을 팔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다. 모르면
자식들한테나 젊은 사람들로부터 배워야 한다고 충고해주고 싶었다.
내가 생각해도 내 성미가 정말 겁겁하고 못 된 것 같다. 참을성이 없는 것 같다. 욱하는 성격을 어떻게 통제할 줄을 모르겠다.
차를 타고 고향집에 가면서 많은 생각을 했다. 나는 왜 이 정도밖에 안 되는 사람일까, 많이 못 배워서 그런가, 천성이 그럴까,
왜 이렇게 대장부다운 기골이 부족한 걸까, 아니면 아예 없는 걸까, 왜 관용하는 사람이 못 될까, 최근에 고교생들이 집단으로
장난삼아 개를 연쇄 도살한 행위는 또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얘들도 포악한 사람들인가, 인간은 모두 악한 인성을 갖고 태어
나는 건가, 도대체 사람들의 악한 마음은 어디서 왜 생겨 나오는가, 저 북녘의 김씨 왕조 父子와 그 집단들의 잔악성은 또다른
성질의 포악인가 하는 생각 등등에까지 이어지자 가슴이 답답해지면서 머리가 아파왔다. 이 모든 것이 모두 나의 그 대단한?
자존심 때문이었다. 이상하게도 나는 병적일만큼 나의 자존심에 약간의 상처라도 받게되면 욱하는 성격이 발동한다. 내 성질이
이럴진대 감히 누굴 욕하고 탓하랴. 길고 너저분한 턱수염에 두루마기 입고 국회 안에서 공중부양하는 성질 괴퍅한 저질 국회
의원을 내가 감히 나무랄 수 있겠는가 말이다. 또 해머로 신성한 국회의사당 시설물을 때려부수는 깡패 새끼같은 국회의원들을
내가 어찌 나쁘다고 할 수 있단 말인가. 핑계같지만, 이 모든 것이 내 것, 네 것을 가르는데서 비롯되고 내 편, 네 편을 만들어
내 것, 내 편은 많이 사랑하고 챙기고 네 것, 네 편은 무시하고 업신여기는 나쁜 풍조에서 생겨나는 것 같다. 나의 자존심만 중요
하고 남의 인격이나 자존심은 안중에 없는 나의 현실이 너무 안타깝고 처량하여 지난 3일간 내내 마음 불편한 채로 끙끙대고
있었는데도 좀처럼 나아질 기미가 보이질 않는다. 어쨌든 나는 운이 엄청 좋은 사람이다. 좋은 운 때문에 범죄인이 아닌 일반인
으로 그럭저럭 살아가고 있음을 이번에 절실히 깨달았다. 이런 포악한 행동은 삼 세 번으로 끝내어야 한다는 결심을 했다. 끝으로
분명한 것은 잔악, 잔혹, 극악, 포악같은 단어와 이것들의 현상은 우리 인간 세상에서 영원히 추방되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나는 더 이상 욱해서는 안 된다. 딱 삼 세 번으로 족하다.
더 하면 나는 사람이 아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