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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2(금)-1일차
새벽 0시 여수행 고속버스를 탔다. 여수에서 거문도로 떠나는 배(여수항에서 7시 30분에 출항)를 타기 위해서는 막차인 0시 여수행 버스를 타야 한다. 장승호, 이춘수, 박정혁, 나 등 4명이 24*3=72시간 섬산행의 멤버들이다.
우리는 고대, 증권맨, 술꾼이라는 공통분모를 가지고 있다.
여수행 우등 고속버스를 탔다. 고속버스에 빈 자리가 있어 빈 자리에 배낭을 둘 수 있었다. 오기 전에 한잔했다는 춘수는 소주 냄새를 풍기면서 곧 잠이 들었고, 승호와 나란히 앉은 나는 잠시 이야기를 하다 잠을 청했다.
우등 고속버스가 주는 안락감이 잠으로 인도한다. 여행 떠나는 오늘 전철에서 서류 가방을 두고 내려 서류 가방을 다시 찾는데 애를 태워서인지 피곤했다.
고속버스는 중간에 한번 정차하여 15분간 쉬었으나 우리 일행은 아무도 내리지 않고 잠만 잤다. 서울을 떠난지 3시간 40분이 지난 새벽 3시 40분에 여수종합버스터미널에 도착하였다.
나만 빼고 3명은 산꾼들이어서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산행지를 벗어나 최근에는 섬산행을 주로 하였고, 금주회를 통해 이들의 즐거운 산행을 전해 듣기만 하였던 나는 이번 산행에 큰 마음 먹고 동참하였다. 이 들은 거의 무장공비 수준으로 강도 높은 산행을 하기 때문에 이 들과 같이 산행을 할 때마다 나는 긴장을 한다.
여수의 새벽 바람은 남쪽답게 훈훈하였다. 터미널에서 네 명이 단체로 볼 일을 본 후 택시를 탔다. 산행대장인 장승호가 택시기사에게 여수연안여객터미널과 가까운 곳에 아침 식사를 할 수 있는 곳 추천을 부탁하였다. 택시기사는 감자탕집 등을 추천했으나 승호는 여수에 대한 사전 공부가 잘 되었는지 교동시장 포장마차촌에 대해 물어 본다. 기사는 그 곳도 좋다면서 교동시장에 내려 주었다.
여수에는 여수엑스포의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었다. 우선 도시 정비가 잘 되어 있었다. 중앙분리대에는 키 큰 종려나무가 심겨져 있었고 도로, 인도가 깨끗하였다. 교동시장도 풍물거리라는 이름으로 지붕과 안내판이 잘 되어 있었다.
지방자치단체마다 대형 행사 유치에 목을 거는 이유가 이런 점에 있을 것이다. 대형 행사는 도시정비의 좋은 기회이다.
새벽 4시, 많은 포장마차들이 좌판을 접었고 남은 포장마차도 마지막 술꾼들만 있을 뿐이었다. 파장 무렵의 피곤함이 있을 포장마차 아줌마들의 피곤함을 더해 주고 싶지는 않아, 실내포차를 찾았다.
실내포차 23번 집이 불을 밝히고 있어 들어 갔다. 술 한잔을 하고 있는 한 팀이 있었고, 아침이 된다고 한다. 먼저 먹고 있는 한팀이 우리 일행을 보더니 삼합을 추천하였고, 삼합이 궁금한 우리도 여수식 삼합을 주문하였다.
여수식 삼합이 나왔다. 불판 위에 야채와 생삼겹살이 놓이고, 삼겹살이 익을 무렵 묵은 김치, 낙지, 키조개를 얹었다. 묵은 김치의 선명한 붉은 색과 해물과 삼겹살의 조합에서 나오는 향이 그 때까지 남아 있던 새벽 잠을 쫓아 낸다.
이렇게 좋은 안주에 한잔 안 할 수 있겠나? 소주 2병을 마셨다. 남도의 인심이 주문하지도 않은 갓김치와 키조개 관자가 서비스로 나온다. 우럭 지리탕을 주문하였고, 우럭 지리탕의 시원함이 몸을 정화하는 듯하다.
거문도행 연안여객터미널은 교동시장 인근에 있었다. 포장마차 아줌마의 친절한 길 안내를 머리 속에 넣고 실내포차를 나왔다.
도시도 잠에서 깨고 있었다. 금융회사의 지점들이 있고, 건물이 많은 것으로 보아 교동시장은 여수 중심지인 듯하였다. 걸어서 교동시장을 거쳐 연안여객터미널로 이동하였다.
건널목에서 교동시장에 좋은 목을 차지하려는 듯 허리가 굽은 할머니들이 대부분인 난장 상인들이 채소를 가득 담은 손카터를 끌면서 건널목 신호를 무시하고 빠른 걸음으로 건널목을 건넜다.
좌판을 깔기 위해 바삐 움직이는 할머니들을 통해 생동감을 느끼는 이색적인 광경이었다. 교동시장의 장날(?)인 듯 새벽임에도 상인과 물건을 사기 위한 고객이 많았다. 우리 일행도 시장에서 산행중에 먹을 귤을 샀다. 오늘 개시라는 할머니는 5,000원 짜리 돈에 침을 뱉고선 앞 전대에 돈을 넣는다. 그러면서, 덤으로 한주먹(4개정도) 귤을 더 준다.
연안여객선터미널에 도착하였다. 연안여객선터미널도 거의 김포공항 수준이었다. 승호가 거문도행 승선권을 티켓팅하였고, 7시 30분 출발이니 한시간 가량 시간이 있었다. 터미널 화장실에서 양치와 볼 일을 보았다.
터미널 대합실 벤치는 좌석 팔걸이가 있어 일자로 눕기가 어렵게 되어 있었다. 정혁이가 배낭에서 깔판을 꺼내 바닥에 눕는다. 여의도 신사 박정혁이 노숙자 모드로 바뀐다.
거문도행 쾌속선(공기부양선임)은 중간 기착지인 나로도(우주기지가 있는 섬), 손죽도, 초도를 거쳐 2시간 10분만에 거문도에 도착하였다.
거문도항에 입항하기 20분전부터 배 롤링이 심해 배멀미의 기운이 와 긴장하였다. 시속 43노트(80km/h)로 달리는 배이어서 달리는 중에는 갑판으로 나갈 수 없어 차창으로 다도해를 감상하였다. 초도까지는 양쪽에 섬이 보여 기차를 타는 듯한 느낌이었지만, 초도를 벗어난 시점부터는 섬이 보이지 않았다.
거문도에 내렸다. 19세기 말 서양 열강들이 아시아의 동쪽 끝으로 진출할 때 영국이 거문도 사건을 일으켜 2년간 강제 점령한 적이 있는 곳으로만 알고 있었던 거문도, 여수에서 뱃길로 110km이고 여수와 제주도의 중간 지점으로 보면 된다.
평일임에도 거문도에 내린 승객들은 많았다. 백도 관광을 하기 위해 유람선 티켓팅을 하였다.
백도 관광에 나섰다. 거문도에서 내린 승객 대부분이 백도 관광에 나선 듯하였다. 백도는 거문도에서 29km 동쪽에 있는 30여개의 섬으로 된 무인도인데 남해의 금강산이라 불리는 곳이다. 백도 관광을 나서기 전에 거문도에 올 때 마지막 배멀미가 생각나 슈퍼에서 배멀미 약을 한병 사 마셨다.
작은 유람선(100명 승선 가능)은 백도로 달렸다. 40분을 달리니 백도가 나온다. 선장이 무성영화시대의 변사처럼 백도의 유래와 백도 바위들에 얽힌 전설을 들려 준다. "저 바위 위에 있는 곰이 보입니까?" 하면서 손으로 방향을 가리켜 주었으나 선장이 말하는 바위형은 잘 찾기 어려웠다.
일일이 다 찾기는 어려웠으나 다람쥐, 비행기, 고릴라, 코끼리, 고래, 미스코리아, 진돗개 등의 모습을 한 바위들과 기암괴석으로 이루어진 아름다운 섬이었다. 하백도, 상백도를 반시간 유람하고선 거문도로 귀항하였다.
승호가 인터넷으로 검색한 식당인 산호식당을 찾아 갔으나 식당에는 주인이 없었다. 명함에 있는 식당 주인 핸드폰으로 수배를 하니 5분 뒤에 도착할 수 있다는 답을 들을 수 있었으나, 5분을 기다릴 여유가 없을 정도로 시장했다.
산호식당 입구에 있는 거문식당에서 생선구이, 갈치조림을 점심으로 먹었다. 반주로 막걸리 한잔을 하였다.
식당에서 나와 선착장 바로 앞에 있는 강동횟집으로 민박집을 정하였다. 배에서 내렸을 때 가마솥 뚜껑 크기의 광어(내 생애 가장 큰 광어를 보았다.)를 수족관에서 꺼내 조리 준비를 하였는데, 힘 좋게 보이는 남자가 뜰 채로 겨우 들었다. 13kg 짜리 광어라 하여 유심히 보았던 그 집이다.
2층에 짐을 풀고, 거문도 관광에 나섰다. 거문도는 세 섬으로 이루어져 있다. 서도와 동도가 자연 방파제처럼 고도를 감싸고 있는 모습이다. 고도에 주요 시설이 다 있다. 거문도의 고도와 서도를 이어주는 아치형 긴 다리를 건너 거문도 등대와 녹산 등대의 갈림길에 섰다.
거문도 등대까지는 3.5km, 녹산 등대까지는 7.3km였다. 우선, 거문도 등대를 갔다가 산으로 올라 불탄봉을 거쳐 해군기지로 내려 오기로 하였다. 그래도 시간이 나면 녹산 등대까지 가기로 했지만 녹산 등대는 내일 아침에 할 듯하다는 것이 장대장의 예상이었다.
걸음이 빠른 박정혁이 먼저 가고, 다음에 이춘수, 나, 장승호가 후미에 쳐져 가는 순이었다. 승호는 학번순으로 간다고 했지만, 이 들과 산행을 몇 번 한 적이 있는 나는 이 산행을 "따로 같이 산행"이라고 생각한다.
산행에 나서면 산행 속도가 개인별로 다르다. 빠른 사람이 늦은 사람의 보폭에 맞추어 산행하기는 어렵다. 각자의 속도로 걸어 먼저 도착해서 기다리는 것이 좋은 방법이다.
일박이일에도 방영되었다는 거문도 등대 코스는 시작은 시멘트 포장길이었으나 곧 포장길이 끝나고 난대림 숲이 이어졌다. 숲은 동백나무가 대부분이었다. 해풍이 강한 거문도 서도의 바다 쪽에는 키가 큰 나무는 자랄 수가 없을 것이고 바닷바람에 강한 동백나무가 적응한 듯하였다.
흰 나무 줄기 끝에 짙은 녹색으로 반짝이는 동백나무 잎들로 이루어진 숲을 걷는 느낌은 환상이었다. 동백나무 숲 틈으로 남해의 쪽빛 바다가 보인다.
거문도 등대로 가는 길은 중간에 약간의 경사지가 있으나, 70대 할머니들도 옆에서 걷고 있으니 힘든 길이라고는 할 수 없다.
거문도 안내서에 보면 "거문도에 가면 처음엔 자연에 취하고 다음엔 인물에 감동하고 나중엔 역사에 눈을 돌린다."고 되어 있다. 백도, 동백숲길에서 거문도의 자연에 충분히 취했다.
동백숲길이 끝나자 거문도 등대가 나온다. 등대의 끝 "觀白停"에 발빠른 춘수와 정혁이가 도착해 있었다. 멀리 백도가 보인다.
거문도 등대에 올랐다. 내부에 환형 계단으로 설치된 계단은 올라도 끝이 보이지 않았다. 높이 33미터, 10층 높이의 건물 계단을 계속 돌면서 올랐다. 등대 전망대에서 멀리 남해바다를 보았다. 남해바다는 은파로 반짝이고 있었다. 우리 4명은 조용히 등대지기 노래를 불렀다.
남해를 지키는 역사 있는 거문도 등대에서 부르는 등대지기 가사와 음률이 스며들었다.
거문도 등대를 떠나 365계단을 통해 거문도 서도 산행을 시작했다. 섬산행은 날씨가 중요하다. 운무가 짙으면 섬산행의 제1목적인 산행을 하면서 바다 풍경을 즐길 수 없기 때문이다.
거문도 등대에 올 때와 마찬가지로 동백나무 숲이 대부분이었다. 산길의 오른쪽은 까마득한 절벽이었고, 절벽 밑에는 파도의 포말이 조그맣게 보인다. 남도의 가을 햇살에 더해 남해바다에 반사된 햇살에 낯이 뜨껍고 눈이 부셨다.
바다가 보이다가 한 낮에도 껌껌한 동백숲 속으로 들어가기도 하였고, 억새군락지도 나타났다. 거문도 산능선길은 잠시도 같은 모습을 유지하고 않고 변화를 거듭하였다.
2시간을 걸어 불탄봉(195m)에 도착하였다. 불탄봉 정상에서 거문도 전체를 보았다. 천혜의 항구였다. 서도와 동도가 두 손을 감싼 듯한 중심에는 고도가 있었고 고도에 민가가 제일 많았다. 19세기말(1885년-1887년) 영국군이 거문도를 불법 점거한 이유를 불탄봉에 서니 알게 된다.
불탄봉에서 하산을 시작하였다. 하산길에 일본군이 거문도 사람을 동원하여 만들었다는 관측지와 지하 동굴을 볼 수 있었다. 일본군은 태평양 전쟁 말기 군사적 요충지인 거문도의 관측을 용이하게 하기 위해 주민들을 동원하여 동굴과 관측지 시설을 만들었다고 하는데 규모가 제법 컸다.
하산길에서 본 서해 낙조가 아름다워 춘수가 조금 더 머물면 일몰을 볼 듯하니 불탄봉 입구에서 기다리자고 했으나, 정혁이가 내려가면서 보자고 하여 하산을 계속하였다. 그러나, 아쉽게도 하산길엔 낙조를 볼 수 있는 장소가 없었다.
빠른 걸음으로 하산하여 거문도 숙소까지 오니 7시 반이 되어 있었다. 민박집은 방이 4개 있었으나 우리 일행 외에는 아무도 없어 다른 방 세면장을 이용하여 간단한 샤워를 빨리 마칠 수 있었다. 하루 먼저하는 산행의 잇점을 거문도에서도 누렸다.
민박집을 겸한 횟집 주인에게 승호는 삼치회를 주문해 두었다. 입심 좋은 횟집 아줌마가 나에게 오늘 횟값은 50만원으로 모시겠다고 하였다. 농담에 약한 나는 잠시 멀뚱했으나 단위가 하나 더 추가된 것으로 곧 이해하였다.
남도에서만 먹을 수 있는 회가 선어회(활어회와 달리 갓 죽은 생선으로 하는 생선회)이다. 큰 삼치의 절반이라며 옅은 분홍색의 삼치회가 상에 나왔다. 등푸른 생선회는 살이 무르다. 게다가 선어회이니 더 무를 수 밖에. 참치와 비슷한 방법으로 먹었으나, 다른 점은 소스가 양념 간장이라는 점이었다. 삼치회가 궁금했는데 궁금증이 풀렸다.
오늘 산행을 종합하면서 내일 일정에 대해 잠시 이야기 하였다. 마침 프로야구 준플레이오프전 4차전이 중계되고 있었고, 롯데가 1:3으로 지고 있어 2010년 두산과의 준플레이오프 전처럼 리버스 스윕이 걱정되었다.
게다가 오늘 새벽 0시부터 시작된 일정의 피로가 밀려 왔다. 소주 한병 정도만 마시고 2층 숙소로 올라와 잠을 청했다. 눕자마자 바로 잠들었다.
자는 중에 승호가 잠을 깨운다. 롯데가 이겼다는 것이다. 스마트폰으로 확인하니 4:3으로 역전승하여 플레이오프에 진출하였다는 기사를 확인할 수 있었다. 대어를 낚는 꿈을 꾸는 어부 노인처럼 기분좋게 다시 잠들었다.
-.10/13(토)-2일차
6시에 일어났다. 승호와 춘수는 녹산 등대 쪽으로 산행을 다녀 오겠다고 했으나, 나는 체력 비축을 위해 가지 않았다. 정혁이도 피곤하다며 가지 않아 둘이서 8시까지 잠을 잤다.
9시에 녹산 등대 산행을 마친 승호와 춘수가 왔다. 녹산 등대는 거문도 등대와는 다른 매력이 있었다고 한다.
거문도의 아침은 분주하였다. 배에서 내린 은갈치와 큰 삼치를 아낙네들이 다듬고 있었다. 횟집 아줌마가 갈치를 손질하였다. 막 잡아 온 갈치를 쇠수세미로 은빛 갈치비늘을 밀었다. 전통적인 방법은 잎이 거친 호박잎으로 갈치비늘을 밀었다고 한다.
은빛 비늘이 벗겨지면서 뽀얀 갈치 속살이 드러난다. 아줌마는 우리가 먹을 갈치회를 손질하고 있었다.
갈치회로 아침을 하였다. 좋은 안주에 소주가 빠질 수 있나. 맥주 잔에는 소주 반병이 들어 간다. 스케일 있게 맥주 잔에 소주를 부어 한잔씩 마셨다. 갈치회가 주이고 소주는 부가 되었다. 거문도 아침 갈치회 맛은 매력적이었다.
아침을 먹고 숙소로 가자 막 도착한 여수에서 온 배에서 내린 민박 이용객들이 우리 숙소로 왔다. 일행의 수로 보아 방 4개를 다 써도 모자랄 듯하였다. 주말에는 평일보다 2~3배 많은 관광객이 거문도를 찾는다고 한다.
10시 반 거문도 선착장에서 여수행 배를 탔다. 올 때 탔던 배와 같은 배였다. 한번 타 본 경험이 있어 자리 잡는데 망설임이 없었다. 경치가 보이는 창가보다 다리를 펼 수 있는 자리가 좋은 자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옆에 사람이 앉을 수 없는 자리를 택해 앉자마자 잠 들었다.
잠에서 깨니 나로도였고, 다시 잠 깨니 여수에 도착해 있었다. 올 때에는 선죽도와 초도에는 들르지 않아 20분 단축되었다.
다음 행선지인 금오도로 가기 위해 금오도행 배가 있는 신기행 버스를 탔다. 여수 돌산대교를 지나 돌산도 영일암 가는 길에 신기항이 있었다. 여수연안여객터미널에서도 금오도로 가는 배편이 있었으나, 이 배를 이용하면 시간이 많이 걸리고 배편도 자주 없어 신기항에서 배를 탄다고 한다.
신기항으로 가는 여수시내버스는 뽕짝 메들리를 크게 틀어 놓고 있었다. 관광버스 분위기여서 이상하게 생각되었다. 시내버스를 타고 가면서 여수 시내 구경을 잘 하였다.
신기항에서 문어와 막걸리로 점심을 하자는 춘수의 의견이 있었으나 신기항에 도착하자 바로 금오도로 가는 배편이 있어 회가 동하는 문어와 막걸리는 할 수 없었다.
신기항을 떠난 지 25분만에 금오도에 도착하였다. 금오도는 여수 앞 바다에 있는 섬이고(섬면적으로는 한반도 21위-장승호 해설), 제주도 올레길, 지리산 둘레길, 북한산 둘레길처럼 금오도 비렁(벼랑의 사투리)길이 개발되었고, 이명박 대통령이 비렁길에 찬사를 보내 더 유명해져, 이제는 섬산행 꾼들에게는 필수지가 되었다.
금오도 여천항에 있는 슈퍼 겸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백반인데 생선이 고등어 한마리 밖에 나오지 않아 승호가 한마리만 주면 4명이 어떻게 먹냐고 하자 주인 아저씨는 한술 더 떠 얼마 전까지는 한마리도 안 주었다고 냉냉하게 답한다. 비렁길이 관광지가 되었음이 이 아저씨의 말을 통해 느껴진다.
준비를 많이 한 승호가 여천에서 산을 넘어 대부산(382m)을 지나 함구미(비렁길 1코스가 시작되는 곳)로 가서 1코스, 2코스를 걷고 직포에서 민박을 하자고 한다.
산행이 시작되었다. 대부산이 382m인 만큼 처음에 가파르게 치고 오르는 코스로 되어 있었다. 0.8km를 이렇게 오르고 보니 능선이 나온다. 금오도 최고봉인 대부산으로 이어지는 능선길이다.
따로 같이 산행의 원칙에 따라 정혁, 춘수는 멀리 가버리고 승호와 나는 뒤에 쳐져 산행을 하였다. 대부산으로 가는 중간에 문바위가 있었다.
다도해의 섬들이 점점이 보이는 조망 좋은 문바위에서 정혁이가 커피를 끓이고 있었다. 커피를 끓여 놓고 도착하면 바로 드리려고 했는데 후미에 있는 우리(승호, 나)가 생각보다 빨리 왔다고 아쉬워 한다.
정혁이는 한잔의 커피를 위해 그 무거운 코펠과 버너를 가지고 온 것이다. 친절한 정혁씨!
한잔의 커피를 마시며 버지니아 울프의 시를 생각한 것이 아니라 다도해 섬을 보았다. 가을 햇살에 반짝이는 남해를 바탕으로 점처럼 찍혀 있는 이름 모를 섬들...
커피 한잔에 힘을 받아 최정상 대부산에 올랐다. 대부산 정상에는 정자가 있었고 정자 앞에는 다도해를 볼 수 있는 벤치가 있었다. 섬들 사이로 사라지는 석양을 보면서 하염없이 앉아 있고픈 벤치였다.
남해섬들은 식생대가 난대림 지역이어서 흔히 보는 참나무와 소나무가 적었다. 동백, 사철 등 잎이 두껍고 푸른 나무들이 대부분이었다.
남해를 보면서 경사 가파른 길로 하산하였다. 동백숲이 끝나자 억새와 강아지 풀이 많은 들판이 나온다. 인적이 없어서인지 웃자란 강아지 풀 이삭이 악수를 하자는 듯 손등을 친다. 강아지 풀의 감촉이 좋아 강아지 풀과 악수를 하였고 억새풀을 어루만져 주었다.
함구미에서 시작되는 비렁길을 만났다. 다시 함구미로 가 1코스를 퍼펙트하게 돌기에는 시간이 모자라 1코스 중간지역인 이 곳에서 비렁길을 걷기로 하였다. 6km의 매봉산(대부산) 산행을 마치고 비렁길을 걸었다.
금오도는 동쪽은 낮고 서쪽은 높은 섬의 형태였다. 동쪽에는 사람이 살 수 있으나, 서쪽은 절벽이어서 농사를 지을 수 없는 지형이었다. 비렁길은 서쪽 해안 절벽으로 연결되어 있다.
절벽 위로 난 길을 걸어 1시간을 가니 마을이 나왔다. 두포였다. 시간은 5시 반이었고 산행의 피로가 밀려와 쉬고 싶은 마음에 민박집을 찾았으나 다 예약이 되어 방이 없다고 한다.
주민인 할머니께 물으니 직포까지는 젊은 사람 걸음으로 가면 1시간이 걸리지 않는다고 하였다. 마을이 좀 더 큰 직포로 가면 민박이 있을 듯하여 직포를 향하여 걸었다.
금오도는 섬이 크고 산이 높아서인지 물이 많았다. 비렁길 중간 중간에 거북 약수터가 있어 한잔 물에 에너지를 보충 받았다.
두포에서 직포로 가는 2코스는 처음엔 포장길이어서 어둠이 내리기 시작한 저녁길을 걷기 좋았다. 그러나, 어둠이 짙어질 무렵부터 너덜길이 시작되었다. 헤드렌턴을 꺼냈으나 나는 랜턴을 가져오지 않았고, 정혁의 랜턴은 작동이 되지 않았다.
춘수가 봉사인 나를 위해 자신의 랜턴을 주었고, 내가 앞장서고 승호가 맨 뒤에 서서 비렁길을 걸었다. "낙하 주의" 표지판이 곳곳에 있었다. 우리의 오른쪽은 절벽이다. 보일 때는 아름다웠지만, 어둠이 내리자 길 자체가 위험이 되었다. 아름다움과 위험이 공존한다. 파므파탈인가?
어둠을 1시간 가량 헤치니 마을이 나온다. 직포이다. 2코스가 끝났다. 비렁길 7km를 걸었다. 어둠이 내린 남해 어촌의 작은 마을은 조용하고 황량하였다. 앞에 민박이라고 적힌 슈퍼가 있어 민박하려 하니 민박은 되지만 식사는 안 된다고 한다.
지난 여름 태풍으로 다 떠내려가 반찬이 없다는 것이 밥이 안 된다는 이유였다. 늦은 시간, 그냥 집에서 먹는 밥과 김치만 주면 된다고 하여 겨우 저녁을 먹을 수 있었다.
급하게 만든 밥이었지만, 시골 반찬은 특유의 향이 있어 잘 먹을 수 있었다. 밥이 나오기 전에 공복을 참지 못해 가져온 비상 식량 참치캔을 안주로 하여 슈퍼 냉장고에서 막걸리를 꺼내 한잔 하였다. 별미였다. 술을 맛있게 마시기 위해 늦은 밤까지 고생하였던가? 라고 생각들 정도였다.
밥을 먹고, 정혁이는 낚시에 나섰다. 정혁이는 릴 낚시 장비를 가져와 거문도에서도 낚시를 했으나 정어리 새끼 두마리만 잡았을 뿐이었기에 금오도에서는 만회할 생각이 있었다.
정리를 하고 정혁이를 찾으려 가니 방파제 중간에서 정혁이가 낚시를 하고 있었다. 내가 도착하자 한마리 잡았는데 작은 볼락류였다. 그냥 놓아주고 다시 찌를 보면서 기다렸다.
춘수, 승호도 합류하여 방파제에서 한잔을 하였다. 짭조름한 해풍을 안주로 한잔을 기울였다. 술꾼들이 너무 떠들어서인지 고기는 잡히지 않았다. 정혁이는 물 때가 좋지 않다며 낚시를 거두었고, 자리를 슈퍼 앞에 있는 정자로 옮겼다.
슈퍼(민박) 주인은 목수였다고 하는데, 2차례의 태풍에도 무사한 정자였으니 튼튼하였다. 바다 위에 떠있는 정자에 4인이 앉아 소줏잔을 기울이니 당나라 시인 소동파가 생각났다. 서호에 배를 띄워 음풍농월하였던 시선의 경지가 이런 게 아니겠는가.
정혁의 화력 좋은 버너을 이용하여 라면을 안주로 끓였다. 안주라면은 끼니라면과 달리 물을 조금 넣어야 한다는 정혁의 지론에 따라 제조된 라면을 처음에는 세개 이어서 두개를 더 먹었다.
12시가 지났다. 내일 일정을 협의하고 2일차 일정을 마쳤다. 2번째 민박집도 우리 밖에 없어 방 2개와 거실 하나를 다 활용할 수 있었다. 코골이가 심하다는 양,장에게 시드 배정을 한다며 각방을 주었으나 시드 배정자인 우리는 두 후배님이 좋은 방에서 곱게 자라며 각방을 주고 코골이 두 라이벌은 거실에서 오늘도 한 판 코골이 시합을 하기로 하였다.
코골이 시합은 먼저 자버리면 상대방이 코고는 것을 듣지 못하기 때문에 승자가 된다. 이 게임 2차전에서는 승패를 가리지 못했다.
눕자마자 바로 잠에 들어 상대방의 코고는 소리가 안면에 방해된다는 걸 느끼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10/14(일)-3일차
6시에 일어났다. 어제 6시 반에 아침 준비를 부탁한 민박집 아주머니는 아침 준비를 거의 마쳐가고 있었다.
민박집을 나와 마을을 산책하였다. 직포는 20-30호 되는 마을이었다. 30호라고 가정했을 때 한 호당 2명 혹은 1명으로 보면 40여명이 마을 주민일 듯하였다. 시골에 오면 젊은 사람, 아이들이 보이지 않는다. 이 곳도 그러하다. 비렁길이 생기지 전에는 조용했을 법한 마을이었다.
어제 물 때가 좋지 않아 고기가 잡히지 않았다는 정혁이 말처럼 어제 밤에는 물이 빠져 있었는데 밤새 물이 차 오르고 있었다. 낚시는 물이 빠져 나갈 때보다는 물이 들어 올 때가 잘 된다고 한다.
7시가 다 되어도 일어나지 않는 두 후배를 깨워 아침을 먹었다. 모두들 잘 먹는다. 체력은 식욕이 바탕이 된다.
민박집 부부에게 감사 인사를 하고, 아침 8시에 3코스 길을 떠났다.
본래 계획은 오늘 일찍 금오도를 떠나 진달래로 유명한 여수 영취산 산행을 하려 하였다. 그러나, 어제 저녁 만난 비렁길이 좋아 비렁길을 더 걷기로 계획을 변경하였다.
아침 햇살에 빛나는 3코스는 환상적이었다. 벼랑길 모음집 같은 비렁길 3코스였다.
암벽 끝에 낚시꾼들의 모습이 보였다. 최근 남해 가두리 양식장에서 기르던 고기들이 태풍으로 방류되어 큰 고기들이 더 잘 잡힌다는 게 낚시꾼 박정혁의 해설이다.
동백숲, 대나무숲, 절벽 끝에 난 벼랑길, 비렁길 3코스를 걸었다. 이틀간의 일정의 피로가 밀려와 너럭바위에서 반시간 정도 휴식을 취했다.
3코스를 마치자, 3일 연속 과음한 춘수가 "계속 가도 비슷한 길이니 이젠 그만 걷죠."라는 의견을 낸다. 나 역시 피곤하여 겨우 걷고 있는데.. 내가 할 말을 대신하는 춘수가 좋았다. 그러나, 장대장은 냉정하였다. 한 코스만 더 걷고 생각해 보자.
4코스를 걸었다. 4코스는 태풍 피해로 코스가 유실되어 잠시 폐쇄 후 며칠전에 복구되었다고 한다. 경치는 여전히 좋았다. 그러나, 절경도 체력이 있어야 볼 수 있는 듯하다. 4코스에서는 피로감이 밀려 왔다. 절경보다 피곤이 먼저였다.
4코스를 마쳤다. 3코스에서 약한 모습을 보이던 춘수가 "여기까지 왔으니 마지막 5코스를 걸어 비렁길을 완성해야지요." 하면서 나의 기대를 무산시킨다. 믿을 놈 없다.
5코스까지 완주하였다. 비렁길 18.5km를 다 걸었다. 우리는 함구미에서 시작되는 2km는 생략했고 대신 6km 매봉산(대부산) 등산로를 걸었으니 22.5km를 걸은 셈이 되었다.
5코스의 종착지 장지에서 콜밴을 불러 배편이 있는 여천창으로 회귀하였다. 금오도는 경치는 좋지만 부대시설 특히 먹거리가 약해 늦게 먹더라도 점심은 여수에서 먹기로 하였다.
금오도 여천항에서 신기항으로 가는 배편은 30분 간격으로 있었다. 신기항으로 가는 배를 타자마자 방 선실로 가 4명이 자릴 잡고 누웠다. 이젠 틈만 나면 눕는 노숙자 모드가 되었다.
신기항에서 의외의 일이 생겼다. 여수로 가는 시내버스가 거의 한 시간을 기다려 탈 수가 있었다. 올 때 쉽게 버스를 타고 와서 체크를 하지 않았는데, 1시간 간격으로 버스편이 있는 곳이었다.
산행대장인 승호는 퍼펙트 장이었는데 신기에서 한시간의 로스가 생겼다. 신기에서의 기다림은 힘들었다. 배고픔, 남도의 땡볕을 가려줄 차양도 없는 곳에서 한시간 가량 기다리기는 쉽지 않았다.
한시간을 기다려 여수행 시내버스를 탔으나 버스는 메들리 뽕짝의 높은 볼륨으로 난장판이었다. 그러나, 승객들 중 아무도 이에 대해 말하지 않았다. 나는 이어폰을 꺼내 멜론 음악을 신청하였다.
다시 여수 시내로 돌아 왔다. 여수수산시장을 찾아 생선회를 샀다. 생선회에 정통한 정혁이가 구이용으로 바다장어를 샀고, 생선회 선택을 망설이는 듯하여 참돔 한마리를 선정했더니 참돔은 양식이니 조피볼락(우럭)을 먹어야 한다는 걸 결정된 후에 주장을 한다.
자기 주장을 없는 막내 정혁이가 생선회에 대해서는 의견이 강하다. 문어 한마리를 더 사 이층으로 갔다. 시장에서 횟감을 사서 횟집에 주면 양념 값을 받고 조리해 주는 시스템이었다.
엑스포를 치룬 지역이어서인지 호객행위 등으로 눈살을 찌푸리게 하는 일이 없었다. 여수 회는 맛있었고, 특히 장어구이(장어가 컸다.)는 좋았다. 옆 자리에 횟감을 살 때 안면을 튼 아저씨가 오늘 잡은 학꽁치라며 학꽁치 한 접시를 우리에게 주어 잘 먹었다. 시골 인심은 어디에 가도 좋다.
매운탕이 나왔다. 별미였다. 갓 잡은 생선을 사용해서인가. 매운탕의 맛은 재료의 신선도에 달려 있다.
6시 반에 예약되어 있는 서울행 KTX를 타기 위해 엑스포역으로 갔다. 여수 엑스포가 열렸던 박람회장 바로 앞에 엑스포역이 있었다. 기존의 여수역을 옮겨 엑스포역으로 이름을 바꾸었다고 한다.
넓은 여수엑스포장은 일부 공사를 하고 있었으나, 사람이 없고 황랑한 모습이었다. 행사 후, 행사장의 활용 방법에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러나, 현재 박람회가 끝난 현재의 모습에서는 그런 고민의 흔적이 보이지 않았다. 일회성 행사에 대한 투자로 그치기에는 규모가 너무 컸다.
6시 반까지는 1시간 가량 남았으나 아쉽게도 엑스포역 앞에는 포장마차도, 한잔할 수 있는 스넥바도 없었다. 편의점에서 맥주 4캔을 사 한잔씩 하려 했으나 춘수, 정혁은 마시지 않았고, 승호와 나만 한캔씩 마셨다.
서울행 ktx를 탔다. 기차는 남원, 전주, 익산역을 지난다. 경부선에 익숙한 나로서는 전라선 역들이 신기하기만 하였다.
9시 50분 용산역에 도착하였다. 여수에서 서울 용산역까지 3시간 20분이 걸렸다.
한잔을 하면서 여행 뒤풀이를 할 만도 하건만 24*3을 풀로 뛴 여행이 피곤했는지 한잔하자는 꾼들은 아무도 없었다. 다음 여행을 기약하고 용산역에서 섬산행 4인은 해산하였다. 무사 산행, 즐거운 산행을 서로 축하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