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성중학교에서 근무할 때였다. 교장을 연임하고도 임기가 남은 어떤 교장이 로비를 했는지 석성중학교가 다음 해에 교장공모지정 학교가 되었다. 그래서 교장 공모를 할 것인지 말 것인지를 결정하는 학교운영위원회가 열렸다. 운영위원이 총 9명인데 8명이 참석해서 투표를 했는데 공교롭게도 4:4가 되었다. 그래서 운영위는 결론을 못내고 교육청의 지시를 기다리는 것으로 했다. 다음날 공람으로 학운위 회의록이 올라와서 내가 읽어보니 이번 학운위가 회의의 기본 원칙을 위배한 결정을 내렸다고 생각해서 교무부장에게 이야기했다. "과반수로 안건을 결정하라는 것은 과반수가 되지 않으면 부결된다는 뜻이다. 따라서 이번 교장 공모제 안건은 부결된 것이다. 무슨 교육청의 지시를 받냐?"고 하니 학교가 난리가 났다. 학교운영위원회의 회의진행에 관한 책자를 찾아보고 여러곳에 문의하더니 결국 교장공모제는 부결된 것으로 다시 회의록을 작성해서 보고했다.
석성중 학운위의 학교장 공모제 안건에서는 투표인수가 짝수여서 문제가 된 것이다. 만약에 8명 중에 한명이 투표용지에 두 안건 모두에 기표하여 무효표를 만들었고, 4명은 찬성하고 3명은 반대했다면 이 안건은 통과된 걸까? 부결된 걸까? 회의의 일반원칙은 부결된 것으로 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 보통 회의의 원칙상 따로 규정이 있다면 몰라도 유효투표의 과반수가 아니라 투표인의 과반수로 안건이 채택되는 것이 일반적인 원칙이다. 무효표를 만든 사람도 기권한 것이 아니라 투표에 참여한 사람이기 때문에 어떤 안건의 과반수 획득은 투표에 참여한 사람(투표인)의 과반수를 얻는 것이 법적 정당성을 얻게된다. 나는 30년 동안 전교조 대의원을 몇해 빼고 거의 했고 대의원 회의에도 빠진 적이 거의 없었는데, 대의원 회의에서도 이런 경우가 여러번 있었지만 유효투표의 과반수로 안건이 채택된 적은 없었다. 언제나 투표인수의 과반수가 되어야 안건이 결정되었다. 전교조 위원장 결선투표도 이런 경우가 한 번 있었다. 유효투표만 따지면 과반수 였지만 투표인수의 과반수가 되지 않아 위원장 결선투표를 실시 했었다.
이번 민주당 대통령 경선에서 결선 투표 규정이 문제가 있어서 경선 불복 사태가 벌어질지 모르는 사태가 발생했다. 후보 결정을 위한 득표율의 과반수를 정하는데 투표인수의 과반수가 아닌 유효투표수의 과반수로 후보를 정하게 해서 문제가 발생했다. 민주당 선거 규정이 원래 그랬다고 해도 선거의 일반원칙을 위배했다는 비판을 받을 소지가 있다. 또 경선 후보가 사퇴하면 그 후보가 얻은 표는 무효로 한다는 규정이 있다고 해도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앞으로 얻을 표를 무효로 해야지 이미 투표가 끝난 정당하게 얻은 표를 무효로 할 수 있는 것인지 이해할 수 없다. 만약에 그렇다면 이상한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 홍준표 의원의 말대로 후보간의 담합사태를 막을 수 없다. 예컨대 이재명이 45%를 얻고 있고, 추미애가 15% 이낙연이 40%를 얻고 있다고 가정해보자. 이대로라면 결선투표를 해야할 것이다. 그런데 이재명과 추미애가 몰래 담합하여 추미애가 후보를 사퇴하면 결선 투표없이 이재명이 후보로 결정될 것이다. 이렇게 된다면 납득할 수 있는가? 이런 어처구니 없는 사태를 허용하는 것이 민주당 경선 규정이고 이미 그런 사태를 우리는 보고 있는 셈이다. 민주당은 이재명이 민주당 대통령 후보로 확정되었다고 발표했지만 이렇게 해서는 본선에서 이길 수 없다. 답답할 뿐이다.
2000년 엘 고어와 아들 조지 부시가 붙은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두 후보가 얻은 선거인단 수가 비슷해서 마지막 플로리다 선거인단이 대통령을 결정하게 되었다. 플로리다의 개표에 여러가지 문제가 드러났고, 표 차이도 얼마 나지않아 재검표가 이뤄졌다. 재검표 중간 발표에서 엘 고어의 표가 더 많이 나왔지만 보수성향 대법원 판사가 더 많았던 미국 연방대법원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다면서 재검표를 중단시키고 부시의 당선을 발표했다. 억울했지만 엘 고어는 어쩔 수 없이 승복할 수 밖에 없었다. 연방대법원이라는 최종 심판기관의 결정에 불복하면 해결방법은 내전밖에 없었다.
이번 민주당 대통령 후보 경선에서도 이재명 후보의 확정이 취소될 가능성은 별로 없다. 민주당선거관리위원회에서 공식적으로 발표한 후보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 그래서? 그러면 다 끝인가? 이낙연 후보 측은 결선에 가면 역전이 가능한데 엉터리 당규때문에 결선도 오르지 못했다고 생각할 것이다. 민주당 당규에서 사퇴한 후보의 표는 무효표로 한다는 규정이 있다고 해도 사퇴 전에 이미 한 투표는 유효표가 되야한다는 것은 우리나라 공직선거법에 의해서도 옳은 것이다. 이낙연 후보 측에서 정세균 후보 사퇴 후에 계속해서 이의제기를 했지만 후보들까지 모여서 확실하게 승복할 수 있게 결정짓지 않고 어정쩡하게 나둬서 이 사태가 발생했다. 원래 어느 당의 후보가 결정되면 이른바 컨벤션 효과를 누리기 마련이다. 그러나 이렇게 찜찜하게 후보가 되면 이재명 후보의 지지율이 오르겠는가? 노무현 대통령도 말도 안되는 후단협의 억지 주장까지 수용해 정몽준과의 단일화를 수용하여 극적으로 승리했다. 정치는 국민들에게 빚을 지우는 행위이다. 자신에게 일시적으로 불리하게 보여도 국민을 믿고 자신을 희생하는 자가 결국 승리했다.
내년 3월 9일에 치뤄지는 20대 대통령 선거의 유권자 수는 대략 4500만명 쯤 될 것 같다. 만약에 투표율이 70%라면 3150만명이 투표를 하게 될 것이다. 3150만명의 1%는 31만 5천명이 된다. 내년 대선도 여야의 득표율이 51대 49가 될 가능성이 높다. 이렇게 숫자를 자세히 나열하는 것은 자기가 좋아하는 후보가 당선되기를 원한다면 자기 후보를 찍을 가능성이 있는 유권자에게 함부로 욕하고 인신공격하면 안된다는 것을 말하고 싶기 때문이다. 뉴스의 댓글마다 이재명 지지자와 이낙연 지지자들간에 욕설과 두 후보에 대한 인신공격으로 상대 지지자들의 마음을 상하게 하고 있다. 이 얼마나 어리석은가? 비판을 해도 사실관계를 가지고 논리적으로 해야하고 설득하는 자세로 해야한다. 마음 상하게 하는 말들은 자제해야 한다. 특히 이재명 후보 지지자들은 더욱 조심해야 한다. 민주당 지지자들의 마음도 얻지 못하면 어떻게 선거에서 이길 수 있겠는가? 2012년 대선에서 문재인과 안철수는 단일화했지만, 서로간에 앙금이 남아서 화합하지 못했고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는 패배했다. 안철수가 단일화를 위한 여론조사를 포기하고 대선 출마를 포기했을 때 이미 선거는 패배한 것이다. 그때 문재인 진영에서 안철수가 원하는 대로 여론조사 문항을 만들고 단일화 여론조사를 했으면 문재인이 단일화 여론조사에서 이기고 대선에서도 박근혜를 이겼을 것으로 생각한다. 이번에도 제일 좋은 것은 이재명과 이낙연의 결선투표를 이재명의 결단으로 치르는 것이다. 그러면 이재명은 결선 투표에서 이기고 대선에서도 이길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설령 결선투표에서 이낙연에게 진다고 해도 대통령을 5년 늦게하는 것 뿐이다. 국민들은 자신이 빚진 것을 잊지 않는다. 결선투표가 어렵다면 가장 낮은 자리에서 겸손하게 이낙연과 그 지지자들에게 호소하고 설득해야 한다. 그렇게 해도 어려운 선거가 될 것이다.
김어준씨가 또 이상한 소리를 합니다. 민주당의 마지막 경선 투표인 3차 국민경선투표에서 이낙연 후보가 62%를 얻고 이재명 후보 28%를 얻은 것은 대장동 민심이 반영된 것이라는 해석에 대해서 자기는 믿지 않는다면서 통계학적 인구분포를 벗어났다는 둥 꽤 과학적인 이야기를 하는 것 처럼 하지만 결국 사이비 유사과학일 뿐입니다. 김어준씨가 진짜 하고 싶은 말은 국민의 힘 지지자들이 역선택을 하기 위해 민주당 경선에 참여했다는 음모론을 말하고 싶은 것입니다. 그는 항상 이런 식입니다. 확인되지 않는 음모론을 과학적 외피를 씌워 유포합니다. 18대 대선때의 개표 부정 음모론이나 세월호 고의 침몰 음모론이 사실이 아닌 것으로 판명이 되었지만 사과하지 않았습니다. 오컴의 면도날은 어떤 현상에 대한 가장 간단한 설명이 진실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원칙입니다. 민주당 3차 국민경선투표의 결과를 최근의 민심의 반영이라고 해석하는 것이 가장 단순하고 정확한 설명입니다.
이번 민주당 결선투표가 후보들이 당규를 인정하고 경선한 것이고, 이미 두번이나 이 당규를 적용해서 사퇴한 후보의 표는 모두 무효표로 했다는 말도 사실이 아닌 것 같습니다. 2002년 경선때는 결선투표제가 아닌 선호투표제였고(선호투표제는 후보 모두에게 순위를 정해 투표하는 투표 방식입니다), 2012년 18대 대선 경선 때는 사퇴한 후보가 없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사퇴한 후보가 이미 얻은 표를 유효표로 할 것인지 무효표로 할 것인지가 문제가 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는 뜻입니다. 따라서 당규의 문제가 아니라 당규 해석의 문제라는 뜻입니다. 공직선거법에 의거해도 사퇴한 후보의 표는 사퇴한 이후의 표만 무효로 하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이낙연 후보 측의 이의제기가 억지가 아니라 정당한 이의제기라는 것입니다. 당규의 해석을 처음으로 한다면 상식에 맞고 공직선거법에 맞춰 해석해야 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이낙연 후보의 이의제기가 억지가 아니라는 것을 인정해야 합니다. 민주당 당규의 해석이 너무나 엉터리라는 것은 누구나 인정할 것입니다. 예를 들어 모든 경선 투표가 끝나고 투표 결과 발표 10분 전에 어떤 후보가 사퇴한다고 선언하면 그 후보가 지금까지 얻은 모든 표가 무효가 된다는 뜻이니 이런 엉터리 당규 해석이 어디 있습니까? 그 59조의 '사퇴한 후보의 표는 무효표로 한다'는 규정은 사퇴 이후의 표가 무효표가 된다는 것으로 해석해야 상식적으로도 법률적으로도 올바른 해석입니다. 김두관 후보가 사퇴한 이후에도 김두관의 이름이 지워지지 않은 제주도 경선에서 김두관 후보가 200여표를 얻었다고 합니다. 이런 경우에 무효표로 하라는 규정으로 해석하는 것이 타당합니다. 사퇴하기 이전에 얻은 표는 사퇴한 후보의 표가 아니라 경선에 참여 중인 후보의 표이기 때문입니다. 중간에 이의제기 할 때 이낙연 후보가 사퇴했어야 했다는 주장도 사리에 맞지 않습니다. 당규의 해석을 바꿔야지 왜 후보를 사퇴합니까? "규정의 부당함이 있었다면 경선 전에 이의를 제기해야지 경선이 시작되고 나서 이의를 제기하면 안된다"는 말도 규정이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라 해석이 잘못 되었다는 것이므로 성립되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과거에 규정을 불합리하게 해석한 사례가 있다는 이유로 현재에도 그 해석을 그대로 적용해야 한다는 것은 법률 위반이 된다>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