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백산맥의 허리 황악산
(경북 김천시 대항면, 충북 영동군 매곡면, 상촌면의 경계)
다음 불 로그:- kims1102@
재작년 이맘 때 황악산을 가겠다고 출발했던 산행버스가 세찬 비바람에
발길을 돌려 전북 변산(邊山)을 다녀온 기억이 아직도 남아있다.
어제 기상청예보로는,
제주에서 시작된 비가 확대되면서 오늘은 전국적으로 비가 내릴 것이라고
했지만 산행하겠다는 우리의 의지를 꺽 지는 못했다.
아침부터 잔뜩 찌 뿌린 하늘은 금세라도 비를 쏟아 내릴 것 같았지만
겁만 주고 있다.
하지만 “가을비는 내복 한 벌”이라는 말도 있다.
비 내린 뒤 찬 대륙성고기압의 영향으로 추위가 찾아오는 경우가 많아서다.
“아직은”이라지만 준비는 단단히 해야겠기에 겨울옷으로 갈아입었다.
찬 북서풍의 영향이 잦아지는 계절이다.
겨울 북서풍은 한라산 뒤에 소용돌이 구름행렬을 만들곤 하는데,
소용돌이들은 번갈아가며 반대방향으로 회전한다.
물에 막대기를 세워도 볼 수 있는 현상인데 한라산이 그런 막대기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이른바 “카르만”소용돌이라고 말하는데 찬바람이 “쌩쌩” 불고,
입김 “호호” 불 날도 멀지 않았다는 얘기다.
늦가을의 정취가 물씬 난다는 백두대간의 허리 황악산을 찾았다.
황악산(黃嶽山)은
경북 김천시 대항면과 충북 영동군 매곡면, 상촌면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최고봉은 비로봉(1,111m)이다.
예로부터 학이 많이 찾아와 황학산(黃鶴山)으로 불렀다고 하며
지도상에도 흔히 그렇게 표기되어 있으나,
산자락에 자리 잡은 동국제일가람 직지사(直指寺)의 현판 및 (택리지)에는
황악산으로 되어 있다.
서남쪽에 연봉을 이룬 삼도峰(1,176m), 민주지산(1,242m)과 함께
소백산맥의 허리부분에 솟아있다.
주봉인 비로봉과 함께 백운峰(770m), 신선봉(944m), 운수峰(740m)이
불쑥 치솟아 있다.
오늘 날씨만큼이나 산행버스안의 분위기도 갈아 앉아있었다.
약속이나 하듯 회원들이 대거불참을 했고
경북 김천은 장거리산행인지라 산행버스임대료도 많이 주어야한다.
지금껏 이런 일이 없었는데 문제가 발생했다.
우여곡절 끝에 겨우 20여명이 조금 넘는 회원으로 출발을 했다.
그런데 갑자기 지난주에 우천으로 취소된 해남 두륜산으로 가자는
회장님의 산행地 변경제기에 회원들이 거센 항의를 하였고,
결국은 황악산 산행이 강행된 것이다.
최악의 88고속도로는 공사구간이 많아 차가 속도를 낼 수도 없었고
지방도로 들어선 산행버스는 휴게소도 없는 산길을 이리저리 돌고 있다.
하늘은 비가 내렸다, 해가 나왔다, 구름이 잔뜩 끼어 제멋대로였다.
08시에 출발한 산행버스는 11시 30분에야 직지寺주차장에 도착했다.
황악산자락에 자리 잡은 동국제일가람 직지사는
국내최대규모의 연수시설을 갖춘 사찰로 현대식 시설과
전통적인 수행방식 그리고 종교적인 의미가 강하지 않아
누구나 산사체험을 할 수 있는 제8교구 본사인 대가람이었다.
오늘산행은 직지사 주차장에서 출발:-
운수암 -백운峰 -황악산 -형제봉 -신선봉 -망월峰 밑 좌측 길 -직지사
-주차장으로 내려오는 5시간 30분이 소요된 강행군이었다.
모처럼만에 생태연구회 솔바람님이 참여해줘 오늘 산행을 선도해 주었다.
산세는 평평하고 완만한 편이어서 암봉이나 절벽 등은 없었고 산 전체가
참나무 숲이었다.
초겨울의 숲은 잎이 죄다 떨어진 앙상한 나무들로 볼품이 없었지만
낙엽이 온산을 뒤 덥고 있어 누런 황금의 산이었다.
산행 길에도 낙엽이 수북하게 쌓여있어 밟는 기분이 좋았고,
누렇게 마른 억새와 진달래 잔가지들이 산행 길을 만들어 주고 있었다.
산행 내내 하늘은 어둡고 비가 내렸다 그쳤다 반복하고 있었지만
그 양은 많지 않았다.
“가을비는 빗자루로도 피한다.”는 옛말도 있지 않는가.
강수량이 적어서 하는 말이리라.
한랭전선과 온난전선이 세력을 다투며 오랜 기간 많은 비를 뿌리는
여름 장맛비와는 사뭇 다르다.
“장인 구레나룻 밑에서도 피한다.”는 말도 같은 내용의 다른 표현이다.
운수암, 백련암 등 먼 거리인데도 아스팔트포장이 되어 있고,
작은 암자가 있는 곳이면 어디고 차가 다닐 수 있는 포장도로였다.
동국제일가람 직지사(直指寺)는
경북 김천시 대항면 황악산에 있는 사찰로 대한불교 조계종파이다.
고구려 승려 아도화상이 신라 땅에 불법을 전수하고자 선산에 숨어
살다가 신라 성국공주의 병을 고쳐준 인연으로 불교가 허용되어
도리寺와 함께 418년 절을 지어 직지사라 하였다 한다.
절의 이름은 “직지인심견성성불”이라는 선종의 가르침에서 땄다고도 하고,
도리寺를 창건한 아도화상이 손가락으로 황악산을 가리키며 명당 터를
일러주었다 하여
곧을 직(直), 손가락 지(指), 자를 따서 직지사라 했다고도 한다.
그 후 645년(신라 선덕여왕: 14년)에 자장(慈藏)이,
930년(신라 경순왕: 4년)에는 천묵대사가 중수하였다.
927년 대구 공산전투에서 패해 위기에 처한 왕건을 도와 견훤을
물리치게 한 공으로 고려왕실의 지원을 받아 크게 융성하였으며
936년(태조: 19년)에 능여가 고려 태조의 도움을 받아 중건하였는데,
임진왜란 때 불에 거의 타버려,
1610년(조선 광해군: 2년)에 복구에 들어가 60여 년 후 작업을 끝맺었다.
조선시대에는 숭유억불정책으로 불교가 극도로 탄압받았으나
조선 2대 임금 정종의 어태(御胎)가 직지사 대웅전 뒤 북峰에 안치되자
선종대가람으로 인정받게 되고 조선왕조로부터 보호를 받았다.
경내에는 석조약사여래좌상(보물: 319호),
대웅전 앞 3층 석탑(보물: 606호),
비로전 앞 3층 석탑(보물: 607호),
대웅전 삼존불 탱화 3폭(보물: 670호),
청풍료앞 3층 석탑(보물: 1186호) 등의 문화재가 있다.
처음에는 3시간 30분 정도 소요되는 산행일정을 잡았는데,
백운峰에서 황악, 형제, 신선, 망월峰으로 이어지는 능선에서 직지사로
바로 내려가는 하산 로가 모두 출입통제가 되어 버렸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온 산을 일주하는 강행군을 할 수밖에 없었다.
직지사와 운수암을 거쳐 주능선에 도달하는 계곡 길은 가파르고 힘이
들었지만 능선 길은 경사가 완만한 편이었다.
정상에서는 서쪽으로 민주지산, 남쪽으로 수도산과 가야산,
동쪽으로 금오산, 북쪽으로 포성峰이 보인다고 했지만 산자락에 깔린
운무 때문에 모든 산이 고독한 섬처럼 보였다.
5시간 30분의 강행군과 발에 맞지 않는 새 신발 때문에
왼쪽 발톱 두 개가 까맣게 멍이 들어 빠질 것 같다.
아내한테서 전화가 왔다.
광주는 비가 종일 내리고 있는데 여기 사정은 어떠냐는 것이다.
주차장에 도착하니 땅거미가 내려앉기 시작한다.
지리산휴게소까지는 비가 오지 않았는데 광주근교로 들어서자
자동차 윈도브러시가 정신없이 움직인다.
회원들은 배낭에 커버를 씌우고 우산을 준비하느라 바쁘다.
(2011년 11월 18일)
오늘은 하산 주로 단감과 라면파티를 했는데 이 모든 경비를 안전운전에
최선을 다 하고 있는 최 기사님이 제공했다.
첫댓글 바보, 바보 Y 2011.11.28 12:12수정 | 답글 | 삭제 | 신고 Daum Blog.
오랫만에 불로그에 들렸는데 산행기는 여전하네요.감쇠, 감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