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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의 축복(창 35:1-15)
할렐루야! 2017년 새해 첫 주일입니다.
500년 전, 1517년, 종교개혁의 불을 밝혔던 마틴 루터는 신부였습니다. 그는 면죄부를 판매하는 로마 교황청의 부패를 보고, 비텐베르크 대학 교회 문 앞에, 이를 반박하는 “95개조 반박문”을 붙여, 로마 교황청에 정면으로 대응했습니다. 그 결과 그는 교황으로부터 파문을 당하고, 사형의 위기에 처했으나, 그의 지지자들로 인해, 가까스로 사면을 받고, 이후 숨어 지내면서, 라틴어로 된 신약성경을 최초로 독일어로 번역했습니다. 그 당시, 성경을 라틴어가 아닌 다른 나라 언어로 번역한다는 것, 그 자체가 사형감이었습니다. 독일어로 성경을 번역했다는 것은, 로마 가톨릭의 신부들 손에만 주어져 있던 성경을 일반 성도들이 읽을 수 있게 했다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때 당시, 일반 성도들은 라틴어로 된 성경을 소지할 수도 없었고, 그 성경을 읽을 수도 없었습니다. 오직 신부들이 이야기해 주는 성경의 이야기만을 알 뿐이었습니다. 성경의 내용이 옳고 그른지를 알 수가 없었습니다. 신부가 성경을 가르쳐 주는 대로 믿고 따를 뿐이었습니다. 신부들이 그들에게 잘못된 것을 가르쳐도 잘못된 것인지를 알 길이 없었습니다.
지금 우리가 우리 스스로 성경을 소지할 수 있고, 우리 나라 말로, 성경을 직접 읽을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큰 축복인지 모릅니다. 이 놀라운 축복을 더욱더 마음껏 누릴 수 있는 뜻깊은 한 해가 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마틴 루터의 “95개조 반박문”으로, 종교개혁의 불씨가 활활 타올랐던 1517년, 그후 500년의 세월이 흐른 2017년은,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념하는 아주 뜻깊은 해입니다.
“너는 담장 너머로 뻗은 나무 가지에 푸른 열매처럼 하나님의 귀한 축복이 삶에 가득히 넘쳐날거야. 너는 어떤 시련이 와도 능히 이겨낼 강한 팔이 있어.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너와 언제나 함께하시니. 너는 하나님의 사랑 아름다운 하나님의 사람, 나는 널 위해 기도하며 네 길을 축복할거야. 너는 하나님의 선물 사랑스런 하나님의 열매, 주의 품에 꽃피운 나무가 되어줘”
이 곡은 “야곱의 축복”이라는 제목의 복음성가입니다.
많은 성도들이 아주 좋아하는 노래입니다. 참으로 은혜로운 아름다운 노래입니다.
성경 속에는 많은 하나님의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그리고 그들을 수식하는 단어들이 있습니다.
“눈물의 선지자 이사야, 불의 선지자 엘리야,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 지혜의 왕 솔로몬, 야베스의 기도, 정의의 선지자 아모스”
위의 노래 제목이 “야곱의 축복”입니다. 야곱은 축복을 너무나도 사모했습니다. 그 사모함이 너무나 간절했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형 에서의 장자권을 팥죽 한 그릇으로 빼앗고, 아버지 이삭으로부터 형 에서가 받아야 할 축복을, 눈먼 아버지를 속여, 에서인 것처럼, 받아냈습니다. 그러나 그의 삶은 평탄하지가 않았습니다. 장자권과 축복권을 빼앗았으면, 축복된 형통의 삶을 살아야 하는데, 그는 도망자의 신세가 되었습니다. 아버지 이삭이 돌아가시면, 동생 야곱을 죽이겠다고 하는 형 에서로부터, 목숨을 구하기 위하여, 다급하게 아버지 집을 떠나야 했습니다. 집을 도망치듯 떠나고 난 후, 20년 동안, 그는 고달픈 타향살이를 해야 했습니다. 그동안 결혼도 하고, 자녀들도 많이 낳았습니다. 다시 가나안 땅에 돌아왔지만, 그는 세겜에서 뜻하지 않는 큰 불행을 경험했습니다. 마지막 노년에는, 또다시 가나안 땅의 기근을 피하여, 요셉이 있는 애굽으로 내려갔습니다.
야곱이 애굽에 내려가, 바로 앞에 섰을 때, 바로가 야곱에게 “네 나이가 얼마냐”라고 물었습니다. 그때 그는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백삼십 년이니이다 내 나이가 얼마 못 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연조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창 47:9)라고 대답했습니다.
야곱은 자신의 표현대로, “참으로 험악한 나그네 세월”을 살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147년 동안, 참으로 버겁게, 힘들게, 숨차게, 살아왔습니다.
“야곱”과 “축복”은 잘 맞는 것 같으면서도, 그의 “험악한 나그네 세월”에 비추어보면, 잘 맞지 않는 것 같기도 합니다.
“야곱의 축복”, 이 곡을 들으며, “성경에 기록된 야곱의 삶, 그리고 야곱의 축복이 무엇일까?”를 곰곰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여러분! 야곱이 하나님께 받은 가장 큰 복은 무엇일까요?
아마도, 야곱이 아브라함과 이삭의 자손이라는 것이, 가장 큰 축복일 것입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할아버지가 아브라함이고, 아버지가 이삭입니다. 얼마나 대단한 믿음의 가문의 자손입니까? 한 마디로, 야곱은 “믿음의 황금수저”를 입에 물고 태어났습니다.
또한, 야곱은 그의 열두 아들을 통해,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이루었습니다. 이것도, 그에게 엄청나게 큰 축복일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위로는 아브라함과 이삭이 있고, 아래로는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이루었으니, 야곱은 하나님으로부터 엄청난 축복을 받은 사람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의 후손들이 그의 이름을 따서, 그들 나라의 첫 이름을, “이스라엘”이라고 불렀으니, 말로 다할 수 없는 놀라운 축복을 받은 사람임이 분명합니다.
“야곱의 축복”이라는 말이 맞습니다.
여러분! 야곱의 할아버지, 아브라함을 모르는 분은 없을 것입니다. 누구나 다 아는 유명한 분입니다.
아브라함은 갈대아 우르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가나안 땅에 도착하여 살게 되었습니다. 원래 그의 이름은 “아브람”인데, 하나님께서, “모든 민족의 아버지”라는 뜻인 “아브라함”으로, 하나님께서 그의 이름을 바꾸어 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은 백세에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의 아들 이름은 “이삭”입니다. “이삭”이라는 뜻은 “웃음”입니다.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가 아이를 낳을 수 없을 만큼, 나이가 많았는데, 천사가 그녀의 형편을 전혀 모르는 것처럼, “사라가 아이를 낳을 것이다”라고 말하자, 장막 뒤쪽에서 듣고 있던 사라가, 정말 어이가 없어서 웃어 버렸습니다. 또한 1년 후에는 사라가 아들 이삭을 낳아 품에 안고는 정말로 기뻐서 웃었습니다. 하나님은 그의 아들을 “이삭”이라고 직접 지어 주셨습니다.
“이삭”이라는 이름은 “네가 웃었다”라는 의미입니다.
“네가 웃었어, 그래 그럼, 네 아들 이름은 이삭이야”
얼마나 유머가 넘치시는 하나님이십니까?
여러분! 이삭과 리브가가, 그의 아들 이름을 “야곱”이라고 지은 이유는, 리브가가 쌍둥이를 출산할 때에, 야곱이 형 에서의 발꿈치를 잡고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야곱은 태어날 때, 쌍둥이 형의 발꿈치를 잡고 태어났습니다. 그래서 그는 “발꿈치를 잡았다”라는 “야곱”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다”라는 뜻의 “이스라엘”이라는 놀라운 새 이름을 야곱에게 주셨습니다. “이스라엘”, 그 이름은 세상에서 가장 멋진, 그리고 가장 아름다운 이름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사람 야곱이 등장하는 책은 성경 66권 가운데 첫 번째 책인 창세기입니다.
창세기에는 아담과 하와, 가인과 아벨, 노아와 홍수심판, 그리고 방주, 바벨탑 이야기들이 있고,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이야기는, 성경 속 모든 이야기들 가운데, 어린 아이에서부터 어른에 이르기까지, 누구나, 쉽게 이해하고, 아주 재미있어 하는 이야기입니다.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하여, 야곱의 열두 아들에 이르는 이야기, 그리고 애굽에 노예로 팔려가는 요셉, 그리고 마침내 애굽의 국무총리가 된 요셉 이야기는 정말 재미있습니다. 지루하지가 않습니다. 흥미가 있습니다. 누구나 쉽게 그 내용들을 이해할 수 있어서, 더욱더 재미가 있습니다.
“야곱의 축복”이라는 제목으로, 새해 첫 주일, 하나님의 말씀을 전할 때, 큰 은혜 받을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올 한 해 동안, 하나님만 바라봄으로, “야곱의 축복”을 받을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첫째, 하나님이 야곱을 이스라엘이라고 부르시겠다고 하십니다.
창세기 35:9-10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야곱이 밧단아람에서 돌아오매 하나님이 다시 야곱에게 나타나사 그에게 복을 주시고 하나님이 그에게 이르시되 네 이름이 야곱이지마는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르지 않겠고 이스라엘이 네 이름이 되리라 하시고 그가 그의 이름을 이스라엘이라 부르시고” 아멘.
야곱은 아버지 이삭을 속여, 형 에서가 받아야 할 축복을 대신 받은 후에, 가나안 땅을 떠나, 외삼촌 라반이 살고 있는 밧단아람으로 도망쳤습니다.
야곱은 그곳 밧단아람에서, 20년의 세월을 보냅니다. 힘들고 고달팠던 타향살이, 처가살이 20년을 뒤로 하고, 야곱이 밧단아람에서 벧엘로 다시 돌아왔을 때,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복을 주시고, 야곱의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르지 않고, 이스라엘이라 부르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야곱이 밧단아람에서 가나안으로 돌아올 때, 그는 형 에서를 몹시 두려워했습니다. 형 에서가 400명을 이끌고 온다는 말을 들었을 때, 그는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그래서 그는 홀로 얍복 나루터에 남았습니다. 야곱이 홀로 남았을 때, 어떤 사람과 날이 새도록 씨름을 하게 됩니다. 씨름할 때에, 허벅지 관절이 어긋났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당신이 내게 축복하지 아니하면 가게 하지 아니하겠나이다”라고, 끝까지 그 사람을 놓지 않았습니다. 붙잡았습니다.
그 사람이 야곱에게 “네 이름이 무엇이냐”고 물었을 때, 그는 “야곱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 사람이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를 것이 아니요 이스라엘이라 부를 것이니 이는 네가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이니라”(창 32:28)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은, 야곱이 그의 형 에서를 만나기 전, 얍복 나루에서 하나님의 천사와 밤새 씨름한 후, 이기고 나서, 얻게 된 야곱의 새 이름이었습니다. 그때도 하나님께서는 야곱에게 다시는 야곱의 이름을 야곱이라 부르지 않고, 이스라엘이라 부르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야곱은 그의 이름이 이스라엘로 바뀌고 난 후에, 형 에서와의 화해 사건, 세겜에서, 딸 디나에게 일어났던 불행한 사건, 그리고 야곱의 두 아들 시므온과 레위가 세겜 사람들을 몰살시키고, 야곱의 다른 아들들은, 세겜의 모든 재물을 빼앗으며, 그들의 자녀와 그들의 아내들을 사로잡고, 물건을 다 노략한 사건 등을 겪었습니다. 야곱은 정신을 차릴 틈이 없었습니다. 야곱은 아들들에게, “너희가 내게 화를 끼쳐 나로 하여금 이 땅의 주민 곧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에게 악취를 내게 하였도다 나는 수가 적은즉 그들이 모여 나를 치고 나를 죽이리니 그러면 나와 내 집이 멸망하리라”(창 34:30)고 말했습니다.
야곱은 더 이상 세겜에 머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세겜땅을 도망쳐야만 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야곱을 부르셨습니다.
“하나님이 야곱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서 거기 거주하며 네가 네 형 에서의 낯을 피하여 도망하던 때에 네게 나타났던 하나님께 거기서 제단을 쌓으라 하신지라”(창 35:1)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야곱은, 자기 집 사람과 자기와 함께 한 모든 자들에게, 이방 신상을 버리고, 자기 자신을 정결하게 하며, 의복을 바꾸어 입으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야곱이 그의 결단을 밝혔습니다.
“우리가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 내 환난 날에 내게 응답하시며 내가 가는 길에서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께 내가 거기서 제단을 쌓으려 하노라 하매”(창 35:3)
야곱과 함께 한 모든 사람들이 야곱의 말에 따랐으며, 그들이 그동안 가지고 다녔던 이방 신상들과 귀고리들을 야곱에게 주어, 세겜 근처 상수리나무 아래에 묻게 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야곱 일행이 벧엘에 도착했습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나타나셔서, 그에게 복을 주시고, 이스라엘로 바뀐 야곱의 새 이름을 상기시켜 주셨던 것입니다.
“너는 이제 야곱이 아니다. 너는 이스라엘이다”
“너는 거짓말쟁이, 욕심쟁이가 아니다. 너는 하나님과 겨루어 승리한 사람이다.”
“너는 사람들과 겨루어 이긴 사람, 세상을 이긴 사람이다”
“너는 더 이상 옛습관에 젖어 있는 옛사람이 아니다. 너는 이제부터 새사람이다”
여러분! 2017년, 한 해 동안, 우리에게 주어진 삶을 살아가면서, 다른 사람들을 속이고, 빼앗고, 아등바등하며 살아갈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만 바라봄으로, 하나님을 붙들고 씨름하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므로, 승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축복의 말씀을 주십니다.
창세기 35:11-12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하나님이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생육하며 번성하라 한 백성과 백성들의 총회가 네게서 나오고 왕들이 네 허리에서 나오리라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준 땅을 네게 주고 내가 네 후손에게도 그 땅을 주리라 하시고” 아멘.
하나님께서는 야곱의 이름을 이스라엘로 확실하게 고쳐 주시고, 이스라엘이 된 야곱에게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고 자신을 계시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자손의 축복과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준 땅을 네게 주고 내가 네 후손에게도 그 땅을 주리라”는 땅의 약속을 함께 주셨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여러분의 이름을 좋아하십니까?
야곱은 아마 어렸을 때부터, 야곱이라는 자신의 이름을 썩 좋아하지 않았을 것 같습니다. 그의 이름 안에, 그가 누군가의 발꿈치를 잡았다는 사실이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의 험악한 나그네 세월이, 자신의 이름에 대한 작은 불만을 생각할 겨를조차 주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그의 이름이, “이스라엘”이라는 그토록 명예롭게 바뀌었음에도, 바뀐 이름을 생각할 겨를도 없이, 또 습관대로, 치열한 하루하루의 삶을 살아갔을 것입니다.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은, “야곱”이라는 이름과 하늘과 땅만큼 큰 차이가 나는 새 사람의 이름입니다. 어떻게 사람이 감히 “하나님과 및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다”는 이름을 가질 수 있겠습니까?
만약 그 이름을 사람들이 지었다면, 불경해도 너무나 불경한 이름일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직접 야곱에게 지어 주신 이름이 “이스라엘”이었습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께서 야곱을 통해, 아브라함 후손들의 나라 이름을, 직접 정해 주신 것이었습니다.
여러분! 이후에, 야곱과 야곱의 가족 70명은 애굽으로 내려가 살게 됩니다. 그리고 야곱의 후손들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그곳에서 430년을 살게 됩니다. 처음에, 그들은 국무총리인 요셉의 가족으로서, 애굽인들에게 특별한 대접을 받으며 살았습니다. 그런데 차츰 시간이 지나면서, 애굽 정세의 변화에 따라, 요셉을 모르는 새로운 왕조가 들어섰고, 야곱의 후손들은 자유인에서 노예로 전락되어, 힘들고 고달픈 생활을 하게 됩니다.
그런데 그때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늘의 별처럼, 바다의 모래처럼” 숫자가 많아졌습니다. 애굽 사람들은 그들을 “히브리 민족”이라 불렀습니다. 히브리 민족이 더욱더 생육하고 번성하자, 애굽 사람들이 이를 크게 두려워하게 됩니다. 결국 애굽은 그들의 국가정책으로, 히브리 가정에 사내아이가 태어나면, 나일강에 던져 악어의 밥이 되게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히브리 민족은 애굽에 저항하지 못했습니다. 그 숫자가 많아져, 민족을 이룰 정도가 되었음에도, 나라를 가지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나라라는 것이, 그렇게 중요한 것입니다. 그런데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 즉 이스라엘 후손들이, 마침내 출애굽하여, 가나안 땅에 정착하고, 훗날 나라를 세우고, 나라 이름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들의 나라 이름은 다름 아닌 야곱의 새 이름 “이스라엘”이 되었습니다.
오늘은 2017년의 첫 주일이자, 동시에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념하는 해의 첫 주일입니다. 그래서 각오도 새롭고, 하나님의 기쁨이 되고 싶은 소망도, 그 어느 때보다 더 강합니다.
“너는 하나님만 바라라”는 2017년 우리 교회 표어처럼,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고자 하는 마음이 강하게 일어나는 첫 날입니다.
여러분! 500년 전 우리 믿음의 선배들은, 목숨을 걸고, 잘못된 것에 저항했습니다. 그 저항이 프로테스탄트입니다. 우리 기독교를 “프로테스탄트”라고 부릅니다. “개혁교회”라고 부릅니다. 그러므로 기독교라고 부르기 보다는, “개혁교회”라고 불러야 마땅합니다.
믿음이 선배들의 목숨 건 저항과 개혁 덕분에, 우리는 우리 손에 우리나라 말로 된 성경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 전에는 오직 신부들만이 성경을 가질 수 있었고, 그들만이 성경을 읽을 수 있었습니다. 모든 성경은 라티어로 되어 있었습니다. 성경이 있어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라틴어를 모르기 때문에, 읽을 수가 없었습니다.
오늘 우리 손에, 우리말로 된, 살아 계신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인 성경이 들려졌다는 것은, 세상에 다시 없는 개혁 그 자체인 것입니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념하는 해인 2017년 새해에, 우리는 무엇에 저항하고, 무엇을 해야 하며, 무엇을 우리 후손들에게 남겨야 할까요?
21세기에 들어 세상 사람들은 “혁신”(Innovation)을 말합니다. 이제까지 이루어지지 않았던 새로운 방법들을 도입해, 관습, 조직, 방법 등을 완전히 바꿔 새롭게 하자는 것입니다. 혁신이야말로, 경제발전의 가장 주도적인 요인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역사적이고 세계적인 혁신은, 공식적으로, 500년 전, 1517년에 종교개혁이라는 이름으로 이미 우리 믿음의 선배들이 시작하였습니다.
“오직 성경”
그것이 진정한 혁신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해 아래에는 새 것이 없습니다. 오직 계시의 책이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만이, 늘 새롭고 또 새롭습니다.
세상을 변화시키는 혁신의 첫걸음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주야로 읽고, 듣고, 묵상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말씀대로 지키고 행하는 것입니다.
하나님만이 야곱을 이스라엘이 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만이 우리를 새롭게 하실 수 있습니다.
죄 가운데 있었던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눈보다 더 희게 하시는 분이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야곱을 이스라엘이 되게 하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새 이름을 주셨습니다. 그리스도인이 세상을 이기는 힘은 살아 계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입니다. 주 예수를 믿는 믿음이 온 세상을 이깁니다.
요한일서 5:4절을 보면,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야곱은 가나안 땅에서 밧단아람으로 도망쳤습니다. 도망치다가 꿈에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하늘에 사닥다리가 닿았는데, 하나님의 사자들이 오르락내리락했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네가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 네가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나갈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창 28:13-15)
야곱이 잠이 깨어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고 고백합니다. 그는 “이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집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라고 외쳤습니다. 야곱은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베개로 삼았던 돌을 가져다가 기둥으로 세우고, 그 위에 기름을 붓고, 그 곳 이름을 벧엘이라 불렀습니다. 그리고 야곱은 하나님께 서원했습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계셔서 내가 가는 이 길에서 나를 지키시고 먹을 떡과 입을 옷을 주시어 내가 평안히 아버지 집으로 돌아가게 하시오면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집이 될 것이요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모든 것에서 십분의 일을 내가 반드시 하나님께 드리겠나이다”(창 28:20-22)
20년 후, 야곱은 밧단아람에서 가나안 땅으로 돌아왔지만, 벧엘을 잊어버렸습니다. 하나님께 했던 서원을 잊어버렸습니다. 그는 가나안 땅에 돌아와서도, 벧엘을 찾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아주 편하게 세겜에 머물렀습니다. 세겜에서 자녀들과 함께 집을 짓고, 가축 축사를 만들고, 오래 오래 살려고 했습니다. 그러다가 그의 가정에 불행한 일이 터졌습니다.
야곱은 세겜에서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향기가 아닌, 피 냄새가 진동하게 했습니다. 그런 야곱을 하나님께서 다시 벧엘로 부르셨습니다. 20년 전 형 에서를 피해 외삼촌 라반의 집으로 도망하던 중, 하나님께 제단을 쌓았던 그곳을, 하나님께서는 잊지 않으셨던 것입니다.
야곱은 그의 말대로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20년 동안 “눈 붙일 겨를도 없이” 정말 바쁘게, 그리고 치열하게 살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야곱과의 약속을 잊지 않고 기다리셨는데, 야곱은 도망치느라 바빴고, 사랑에 빠져 바빴고, 재물을 모으느라 바빴고, 다시 돌아오느라 정말 바빴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그러한 야곱을 다시 벧엘로 부르신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야곱의 할아버지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하나님께서 그에게 보여줄 땅으로 가라고 하시면서,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내가 저주하리니 땅의 모든 족속이 너로 말미암아 복을 얻을 것이라”(창 12:2)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창세기 15:5절을 보면,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창세기 22:2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일러 준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아들 이삭을 바쳤을 때,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네 독자도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가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성문을 차지하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창 22:16-18)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신 후, 아브라함과 그의 아들 이삭과 야곱과 요셉으로 이어지는 그들 자손들의 삶과 그들의 가정을 새롭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로 하여금, 모든 민족을 위한 민족을 이루게 하시고, 나라를 세우게 하시며, 계속해서 그들을 새롭게 하셨습니다. 이 이야기가, 바로 성경 66권을 이끄는 큰 지붕과 같은, 모든 민족을 위한 하나님의 역사하심입니다.
2017년 새해 첫 주일, 종교개혁 500주년을 기념하는 해의 첫 주일 아침에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다시 하나님 앞에 부르셨습니다.
세상 속에 푹 빠져 힘들게 살아가고 있는 야곱을 벧엘로 다시 부르신 것처럼, 그에게 그가 잊고 있었던 “이스라엘”이라는 새 이름을 다시 불러 주신 것처럼, 하나님께서, 오늘 우리들에게, 새로운 한 해를 허락하여 주셨고, 주의 은혜와 축복의 장소로 다시 불러주셨고, 다시 말씀하여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너는 그리스도인”이라고, 다시 불러 주셨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날마다 새로워져야 합니다.
날마다 새로워질 수 있는 방법은 성경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처음 사랑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믿음의 개혁은 “성경” 안에 해답이 들어 있습니다.
“너는 하나님만 바라라”는 말씀을 깊이 묵상하면서, 하루하루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야곱의 축복”이라는 이 단어를 깊이 되새기면서, 참된 축복이 무엇인가를 깊이 생각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기도합니다.
우리를 생명의 길로 불러주신 아버지 하나님!
날마다 주님의 부르심에 합당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은혜를 베풀어 주옵소서.
주의 사랑과 주의 축복이 없이는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하늘 문을 활짝 열어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을 공급하여 주옵소서.
날마다 새롭게 하여 주옵소서.
세상에서 승리할 수 있도록
힘과 지식과 지혜와 능력을 덧입혀 주옵소서.
하나님만 바라봄으로, 축복된 한 해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