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월 24일의 결선투표에서 퇴역대령 루시오 구티에레스(Lucio Gutierez)가 바나나 재벌 알바로 노보아(Alvaro Noboa)를 48% 대 40%로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이번 선거에는 지역주의가 크게 영향을 미쳤는데, 노보아 후보가 해안지방에서 우세한 반면, 구티에레스는 아마존 고지에서 압도적 지지를 받았다. 한편, 에쿠아도르에서 투표가 의무적임에도, 30%의 유권자가 기권했고, 12%의 투표가 백지이거나 무효일 정도로 기존 부르주아 선거정치에 대한 불신의 벽이 두터웠다.
구티에레스는 '1월21일 애국협회당/파차쿠티크' 동맹의 대통령 후보로 10월24일의 1차 선거에서 20%를 득표, 1위로 본선에 진출한 바 있다. 11명의 후보가 나선 1차 투표에서 전직 대통령 2명을 포함한 기존 정당의 후보들은 고배를 마셔야 했다.
내년 1월15일에 공식 취임할 구티에레스 당선자는 베네수엘라의 차베스와 유사하게 군 출신이다. 그는 2000년 1월21일, 하밀 마우아드 대통령의 달러화 정책에 반발한 원주민봉기에 가담하면서 대중적 지도자로 등장했다. 그는 에쿠아도르 원주민 총연맹(CONAIE)의 위원장 안토니오 바르가스와 함께 3인으로 구성된 "구국평의회"를 이끌었다. 따라서 이번 선거에서는 전투적 원주민운동의 강력한 지지와 지원 속에서 출마했다.
2000년 1월21일 봉기를 주도했던 CONAIE과 원주민 정당 파차쿠티크('개벽'당) 비록 원주민 인디오가 상당수 존재하지만 여전히 소수인종이며, 아직은 선거에 독자후보를 내세울 여건은 되지 않았다고 판단하였다. 그래서 출마를 고려했던 북부고지 코타카치의 시장 아우키 티투아나는 이 판단을 존중하여 불출마를 선언했다.
그러나 CONAIE 전위원장 안토니오 바르가스는 출마를 강행했는데, 이는 조직적인 결정이라기 보다는 개인의 정치적 야심에 근거한 것이었다. 그는 최초의 원
주민 후보가 되긴 했지만 1% 미만의 득표로 꼴찌에 머물렀다. 그리고 남미에서 가장 강력한 원주민운동의 대의에 결정적 손상을 끼치는 심각한 정치적 오류를 범하게 되었다.
한편 10월24일에는 100명의 국회의원과 5명의 안데스의회 선거도 동시에 진행되었다. 대선과는 달리 기독사회당(PSC, 25석), 에쿠아도르 롤도스당(PRE, 15석), 민주좌파당(ID, 14석) 등의 기존 정당들이 우세를 보였다. 따라서 구티에레스 당선자는 국회에서 야당의 저항에 직면해야 하는 정치적 어려움을 갖게 되었다.
한편 구티에레스는, 집권가능성이 높아지자 브라질의 룰라처럼, 국제금융기관들과 국제자본에 유화적 제스쳐를 취하고, 에쿠아도르에 총체적 위기와 원주민 봉기를 촉발한 달러화정책 유지, 미주자유무역협정(FTAA) 참가, 만토의 미군기지 허용 등 온건노선을 추구하고 있다. 따라서 기존 부르주아정치에 대한 대중적 불신으로 구티에레스가 집권할 수 있었지만, 그의 개인주의적 스타일과 좌
충우돌식 노선으로, 민중운동진영의 활동가들은 "비판적 지지"로 한정하고 있으며, 대중적으로도 그에 대한 의구심은 증폭되고 있다.
이번 에쿠아도르 대선에서 구티에레스의 승리는 지난 10월의 룰라당선에 이어, 라틴 아메리카에서 신자유주의가 가져온 총체적 위기 속에서 변화를 바라는 민중투쟁의 또하나의 성과이다. 그러나 선거정치에 착종된 모습을 보여주었던 구티에레스가 과연 민중의 희망이 될 수 있는지 여부는 아직 미지수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