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5년 인생중 33년 감옥에서···4번째 구속 장영자 징역 4년
전두환 정권 당시 '어음 사기 사건'으로 구속됐던 장영자 씨가 사기혐의로 네번째로 구속돼 지난 1월 8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뉴스1]
‘큰손’ 장영자(75)는 결국 법정에 나타나지 않았다. 그는 지난 2일 열린 선고 공판에 불출석했다. 재판부가 4일로 다시 선고 기일을 잡았지만 장씨는 서울구치소를 통해 출석 거부서를 내고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서울중앙지법 형사9단독(장두봉 판사)는 장씨의 사기 혐의를 모두 유죄로 인정하고 누범 기간 중 범행한 점 등을 고려해 징역 4년을 선고했다.
앞서 서울중앙지검 중요경제범죄수사단은 장씨가 2015년 7월~2017년 5월 세 차례에 걸쳐 지인들에게 모두 6억2000여만원을 가로챘다며 그를 재판에 넘겼다. 검찰에 따르면 장씨는 “남편(고 이철희 전 중앙정보부 차장) 명의의 주식을 현금화해 재단을 설립하려는데 상속 절차에 현금이 필요하다”는 등의 이유를 대며 지인들을 속였다. 액면금액 154억2000만원짜리 자기앞수표가 위조된 것을 알면서도 현금으로 바꿔 달라고 교부한 혐의도 받았다. 검찰은 “피해 변제도 없이 증인들에게 욕설하는 등 태도가 불량하다”며 징역 5년을 구형했다. 재판부는 이보다 1년 적은 4년을 선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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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5년 생애 중 이미 29년 복역…1심 4년 더하면 33년
1944년생으로 올해 75세인 장씨에게 4년은 짧지만은 않은 기간이다. 장씨는 1982년 이른바 ‘장영자ㆍ이철희 부부 어음 사기’ 사건으로 처음 구속됐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부인인 이순자씨와 인척이었던 그는 중앙정보부에 재직 중이던 남편과 정관계 고위급 인사들과의 관계를 앞세워 세간의 믿음을 샀다. 자금난에 시달리던 기업에 자금을 지원하고 몇 배에 달하는 어음을 할인해 유통하며 이득을 챙겼다. 그 규모만 7111억원으로 ‘단군이래 최대 어음 사기’라는 말도 나왔다. 어음은 부도를 냈고 당시 중견기업이던 공영토건과 일신제강이 무너졌다. 이 일로 처음 구속된 뒤 15년형을 선고받았고 1992년 10년 만에 가석방됐다.
하지만 감옥 밖 생활은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1994년 사기로 또 구속됐고 1998년 8ㆍ15특사 때 형집행정지로 풀려났다. 2000년 200억대 구권화폐 사기 사건으로 쇠고랑을 차자 1992년 가석방이 취소돼 남은 4년 8월을 복역하고 새로 받은 10년형을 더해 15년을 교도소에 있었다. 2015년 만기출소 때까지 이미 복역한 기간만 29년이다. 이번에 4년이 또 추가됐으니 일생의 절반에 가까운 33년 동안 사기 혐의로 수감 생활을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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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들 기사 제대로 쓰라” 호통친 장씨…75번 반성문 제출
지난 1월부터 시작된 재판에서 장씨는 지금까지 75차례 반성문과 탄원서를 제출했다. 재판 기간이 6개월 남짓이었던 것을 고려하면 한 달에 12차례, 3일에 한 번꼴로 반성문을 냈다. 장씨의 변호를 맡았던 국선변호인은 “장씨가 낸 것은 반성문이라기보다는 자신의 입장에서 자신의 행동이 사기가 아니었다는 점을 재판부에 상세히 설명한 것”이라며 “장씨는 말을 잘하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글도 잘 쓴다”고 전했다. 지난 1월 재판에서 장씨는 “제가 변호사에게 골동품을 팔아달라고 했다거나 돈이 없어 국선 변호사를 선임했다고 하는데 그러면 안 된다”며 기자들에게 불쾌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이날 장씨의 변호인은 “본인은 억울한 부분이 많다고 생각하고 있어 아마 항소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수정 기자 lee.sujeong1@joongang.co.kr
[출처: 중앙일보] 75년 인생중 33년 감옥에서···4번째 구속 장영자 징역 4년
정태수와 장영자[횡설수설/송평인]
사망자 츠카이 콘스탄틴, 사망장소 에콰도르 ○○병원, 사망일시 2018년 12월 1일, 특이사항 연고자 없음…. 카자흐스탄에서 만든 가짜 신분이었기에 공식적으로는 연고자는 없었다. 하나 실제로는 아들 정한근 씨가 임종을 지켰다. 한근 씨는 입관 당시 아버지 정태수 전 한보그룹 회장의 모습을 찍은 사진을 검찰에 제출했다. 시신의 얼굴이 신문에 실리는 일은 드물지만 그 사진은 그의 죽음을 애도가 아니라 증명하기 위해서 신문에 실려야 했다.
▷정 씨는 에콰도르에서 1997년 한보 사태 당시 이미 도피한 아들 한근 씨와 함께 유전사업을 벌이고 생일파티 사진까지 남기는 등 꽤 안락한 생활을 한 것으로 보인다. 도피 생활을 하면서도 95세의 장수를 누렸다니 그가 특별히 건강한 것인지, 검찰이 쫓는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인지 모르겠다. 다만 한때 재계 서열 14위 그룹을 이끌었던 사람이 84세의 나이에 해외로 도피해 언제 붙잡혀 송환될지 모른다는 불안 속에 보낸 11년은 그 자체로 창살 없는 감옥이었을 것이다.
▷정 씨의 입관 당시 모습이 신문에 실린 날 1980년대 2000억 원대 어음 사기 사건에 연루됐던 장영자 씨가 다시 징역 4년을 선고받았다는 기사도 실렸다. 장 씨는 1982년부터 1993년까지 11년, 1994년에서 1998년까지 4년, 2001년에서 2015년까지 14년 등 29년을 사기죄로 감옥에서 보냈다. 지난해 다시 사기 혐의로 구속됐고 징역 4년이 확정된다면 2022년까지 총 33년간 옥살이를 하게 된다.
▷숙대 메이퀸을 지낼 정도로 미모를 자랑했고 중앙정보부 차장을 지낸 남편 이철희 씨와 함께 사채시장의 ‘큰손’으로 행세했던 장 씨가 처음 옥살이를 할 때의 나이가 38세였다. 어느덧 75세가 됐다. 한때 ‘대도(大盜)’로 불렸던 조세형이 늙어서도 좀도둑질을 계속하며 도둑질의 굴레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듯이 장 씨 역시 나이가 들어서도 사기의 굴레에서 빠져나오지 못하는 것이 그녀의 진짜 불행인 듯하다.
▷정 씨의 뇌물은 통이 컸다. 뇌물을 받은 사람은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동그라미 하나가 더 붙은 것에 놀랐다고 한다. 불법으로 쌓아올린 한보그룹이란 성은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위기로 향하는 과정에서 무너지고 말았다. 장 씨가 ‘큰손’ 역할을 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집안이 전두환 전 대통령 부인 이순자 씨의 사돈 집안이라는 배경도 있었다. 돈으로 나라를 뒤흔들었던 두 사람의 노년이 한마디로 탐욕무상(貪慾無常)이다.
송평인 논설위원 pisong@donga.com
가져온 글 https://m.blog.naver.com/ynk53/2215782152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