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매일매일 주어지는 복음을 읽으면서 놀랍기도 하고, 참 대단하다고 느낍니다. 이런 말씀들이 2천 년 전에 예수님 입에서 나온 말씀이고, 이런 게 2천 년 전에 기록된 것이 맞나, 싶은 생각이 들기 때문입니다.
가령 우리나라 고려시대나 조선시대에 기록된 여러 문서들도 번역이 되고 쉬운 말로 해독된 내용을 우리도 가끔 접하기는 하지만, 이 복음서 내용만큼, 이렇게 현대적 감각에 맞고, 지금 우리 현실에도 고대로 적용될 수 있는 내용이 또 있을까? 하는 놀라운 생각을 감출 수가 없습니다. 이를테면 예수님 당시 인간 취급도 못 받던 여성이나 어린이, 이방인을 귀하게 여기고 포용하는 말씀들도 그렇고, 또 당시엔 혐오와 차별이 당연시 되었던 자캐오나 막달레나와 같은 죄인들, 요즘 말로 하면 소외된 사회적 약자를 전혀 배제시키지 않고 거리낌 없이 환대하는 모습이라던가, 그 외에도 ‘권세 있는 자는 자리에서 내치시고, 가난한 자를 들어 높이시는’ 당시로서는 도저히 용납되기 힘든 혁명적 이야기까지... 어떤 때는 섬찟할 정도로 혁신적인 이런 말씀들이 2천 년 전 말씀이라니...하고 정말 놀랍니다.
오늘 복음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인간 이하의 말종인 세리(마태오)를 부르시는 내용입니다. 주변 사람들에게 그 후폭풍, 저항은 대단했을 것입니다. “아니, 하고많은 사람 중에 왜, 하필 저런 죄인을? 제정신이야?” 하면서. 이에 대해 예수님은 그 유명한 말씀 “건강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다” 하시면서 그와 함께 식사까지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면 (맨날 똑같은 얘깁니다만), 지금의 우리는, 지금의 교회는 어떤가 하는 것입니다. 그것도 그냥 우리가 아니고, 그냥 교회가 아닌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고백한 우리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예수님이 보여주신 길을 제대로 따라 걷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니편 내편 갈라치기까지는 아닐지라도, 말이 잘 통하는 사람들만 받아들여 환대하고, 반면 먼발치에서 눈치만 살피는 사회적 약자에 대해서는 “엣다, 주는 떡이나 받아 먹어라. 자 그럼 됐지?”라는 식으로 인심쓰듯 시혜를 베풀면 할 일 다 한 것처럼 여기면서, 힘 있고 권세 있는 자들하고만 친하게 지내며 밀실에서 속닥속닥 거리는, 예수님하고는 정반대의 모습을 보이는 건 아닌지... 또 한 번 반성할 문제가 아닐까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