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제 생활 어떻게?'(마태 23,23-26)
조재형 신부
알래스카 앵커리지 여행을 잘 다녀왔습니다. 그곳에는 후배 신부님이 선교사로 사목하고 있습니다. 신부님은 교구장님의 부탁으로 다섯 개의 성당을 맡아 돌보고 있었습니다. 저는 일주일 동안 신부님과 함께 지내면서 그 다섯 성당을 모두 다녀왔습니다. 후배 신부님은 8년 넘게 알래스카 현지인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습니다. 가까이에서 지켜보니 여러 가지 능력이 있었습니다. 영어는 물론이고 스페인어도 자유롭게 구사했습니다. 저를 위해 매일 맛있는 음식을 만들어 주었고, 성당의 시설에 문제가 생기면 웬만한 것은 직접 수리했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제게 깊은 감동을 준 것은 신부님의 따뜻한 마음이었습니다. 성당에 청소하러 오는 한 형제님이 억울한 누명을 쓰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 소식을 들은 신부님은 그냥 지나치지 않았습니다. 교우들에게 연락하여 탄원서를 준비하고, 마치 자기의 일처럼 그 형제님을 도와주었습니다.
언어를 잘하고, 음식을 잘하고, 손재주가 좋은 것도 훌륭한 능력입니다. 그러나 사제에게 가장 필요한 능력은 어쩌면 고통받는 사람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는 따뜻한 마음일 것입니다.
신학교에서는 사제의 직무를 세 가지로 배웠습니다. 교직, 제사직, 예언직입니다. 첫째는 교직입니다. 사제는 복음을 선포하고 교리를 가르쳐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하느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강론을 성실히 준비해야 합니다. 교회의 가르침을 올바로 알고, 신자들에게 충실히 전해야 합니다. 그러나 돌아보면 부끄러운 마음이 듭니다. 제가 선포하고 가르친 말씀을 정작 제 삶으로 실천하지 못할 때가 많았기 때문입니다. 사랑을 말하면서 사랑하지 못했고, 용서를 말하면서 용서하지 못했으며, 겸손을 말하면서 제 생각을 앞세울 때가 있었습니다. 둘째는 제사직입니다. 사제는 성사를 통해 보이지 않는 하느님의 은총을 드러냅니다. 첫 미사를 봉헌하던 그 마음으로 정성껏 미사를 봉헌해야 합니다. 고백성사와 병자성사도 온 마음을 다해 집전해야 합니다. 그러나 익숙함은 때로 정성을 빼앗아 갑니다. 돌아보면 형식적으로 미사를 봉헌하고, 습관적으로 성사를 집전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입으로는 기도하면서 마음은 다른 곳에 있었던 때도 있었습니다. 셋째는 예언직입니다. 사제는 시대의 징표를 읽고, 동시대 사람들이 무엇 때문에 고민하고 아파하는지 살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사람들의 말을 겸손하게 들어야 합니다. 세상의 변화에도 관심을 가지고, 책도 가까이해야 합니다. 그러나 생각해 보니 저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만나기보다 제가 필요해서 사람들을 만날 때가 더 많았습니다. 외로운 사람, 가난한 사람, 억울한 사람의 이야기를 충분히 들어 주지 못했습니다.
지난 35년의 사제 생활을 돌아보며, 앞으로 남은 사제 생활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생각해 보았습니다. 그러면서 신학교 시절 읽었던 ‘신자들이 바라는 사제’라는 글을 다시 떠올렸습니다. “침묵 속에 그리스도의 향기가 나는 사제, 기도하는 사제, 힘없고 약한 사람을 돌보며 그들의 고통을 나누는 사제, 겸손하게 다른 사람의 말에 귀를 기울이는 사제, 강론을 성실히 준비하는 사제, 성사를 경건하고 정성스럽게 집전하는 사제, 죽기까지 사제직에 충실한 사제”입니다. 이 글을 읽으면 제가 잘한 것보다 부족했던 것이 더 많이 떠오릅니다. 그러나 부족함을 깨닫는 것은 절망하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다시 시작하기 위해서입니다.
출처:조재형 신부님 복음강론중 발췌/2026년 8월 25일
그리스도인의 삼중 직무
예언직:가르치는 직무/사제직(성화직무)/왕직(봉사하는 직무)
첫댓글 교회 대형화 조직화 체계화와 사제 수도자의 세속화앞에서, 다시 기본과 원천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