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로크 시대에는 시각을 통한 정서의 폭발을 유도하는 미술이 유행했던 만큼 공포스럽고 때로는 잔혹하고 끔찍하여 눈을 가리고 싶은 장면도 여과 없이 그리곤 했다.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들고 있는 유디트와 하녀〉 속 결의에 가득 찬 두 여자의 서슬 푸른 표정, 이곳저곳 낭자한 핏자국, 역시 붉은 피가 끈적끈적하게 묻은 뾰족한 칼날, 무엇보다 혈색이 완전히 사라진 한 남자의 잘린 목은 순식간에 보는 이를 얼음처럼 굳게 만든다.
피사에서 태어난 오라치오 젠틸레스키(Orazio Gentileschi, 1563~1639)는 로마로 건너온 초기 시절 성공을 위해 몰려든 수많은 화가 중 하나에 불과했지만, 우연히 카라바조와 친분을 맺으면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했다. 짙은 어둠, 그리고 등장인물들에게 집중되는 강렬한 빛, 이 둘의 대비는 마치 연극 무대의 조명 장치와도 같다.
그림은 구약의 외경 《유디트서》의 내용을 담고 있다. 외경은 가톨릭에서는 성서 정경으로 치지만 개신교에서는 인정하지 않는 경전을 의미한다. 유디트는 이스라엘 베투리아 마을의 젊은 과부로, 아시리아 군이 공격하자 적장 홀로페르네스의 침소에 들어가 그를 유혹해 술에 취하게 한 뒤 그 목을 잘라 돌아옴으로써 유대인의 사기를 드높였다. 많은 예술가들이 성서의 이 여성 영웅을 형상화하곤 했는데, 카라바조도 이미 십수 년 전에 이와 관련한 그림을 남겼다.
카라바조의 그림은 목을 베고 있는 유디트를 겁에 질린 소녀 같은 모습으로 담아냈다. 한편 카라바조의 그림은 오라치오 젠틸레스키의 딸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Artemisia Gentileschi, 1593~1653)가 그린 그림과도 종종 비교된다. 아르테미시아의 그림에서 유디트는 올바른 일을 행함에 있어 한 치의 흔들림도 없는 강한 의지가 돋보이며, 옆에 선 하녀 역시 적극적으로 이 일에 동참하는 것으로 표현됐다. 아르테미시아는 아버지의 동료 화가에게 그림 수업을 받던 중 성폭행을 당해 법정 공방을 벌이다가 오히려 피해자가 더 비참해져버린 경험이 있다. 많은 이들이 딸의 그림에서 보이는 이 냉정함이 가해자인 남성에 대한 여성으로서의 분노를 표현하고 있다고 보기도 한다.
오라치오 젠틸레스키는 사건이 종료된 시점의 장면을 그렸다. 그가 그린 여인들의 모습은 카라바조보다 딸이 그린 인물상에 가깝다. 두 여인은 이 무시무시한 일을 할 수밖에 없었던 단호한 명분을 결의에 찬 당당한 표정을 통해 확실히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