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기념일
아루바 국기의 날, 멕
시코 석유산업 국유화 기념일(Anniversary of the Oil Expropriation 1938년 라자로 카르데나스 대통령의 에너지 산업 국유화를 기념하는 날)
2. 역사와 사건
37년 - 로마 상원은 티베리우스의 유언을 회피하고 칼리귤라 (Caligula) 황제를 선포한다.
1068년 - 레반트와 아라비아 반도 지진으로 20,000 명 사망.
1229년 - 6차 십자군: 신성 로마 제국의 프리드리히 2세 예루살렘 왕임을 선언.
투그룰 시대에 시작된 셀주크의 비잔틴 공격과 다양한 투르크족들의 아나톨리아로의 유입은 알프 아르슬란 시대에 더욱 확산되었다. 당시 투르크족의 서진을 용이하게 했던 상황은 우선 비잔틴 자체가 오랜 내분과 변방 지역에 대한 가혹한 수탈로 정치적 혼란에 휩싸여 있었고, 발칸 반도에서 남하하는 페체네크, 우즈, 킵차크족들이 비잔틴을 위협함으로써 동부 아나톨리아에 대한 비잔틴의 통제가 불가능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평원 전투에 익숙한 셀주크군이 동부 아나톨리아 고원의 험준한 성채들의 대규모 공략에는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다. 오히려 셀주크 치하의 투르크 복속민이나 반(反)셀주크 세력들의 소규모의 지속적인 아나톨리아 유입이 두드러졌다. 이리하여 동부 아나톨리아 지역에서의 투르크 세력화는 점차적으로 진행되어 갔다. 특히, 투그룰 베이의 잔존 세력 중 아프신 베이의 아나톨리아 공략이 중요한데, 그는 아나톨리아 남부의 안타키아(Antakya)를 중심으로 세력을 떨쳤다.
1066년에는 말라티아 지역이 또 다른 투르크 그룹에 의해 점령되고, 다음 해에는 카이세리(Kayseri) 지역마저 투르크족의 수중에 들었다. 이에 위협을 느낀 콘스탄티노플의 비잔틴 제국은 새로 등극한 로마노스 디오게네스(Diogenes) 황제가 직접 아나톨리아 원정을 시도하여 군소 투르크족들을 소탕하고 알레포까지 진격하였다. 그러나 디오게네스가 기근과 아프신 베이의 기습 공격으로 철수하자, 이 일대에는 투르크족들의 세력이 할거하였다. 나아가서 1069년에는 아나톨리아 중부의 곡창인 코냐(Konya)까지 투르족에 의해 점령당했다.
이에 비잔틴도 콤네노스를 사령관으로 하는 군대를 시바스(Sivas)로, 아르메니아인 필라레토스를 말라티아(Malatya)로 파견해 투르크족들의 세력 확장을 제어했다. 아나톨리아에서 비잔틴과 투르크족들 간에 잠입과 평정이 반복되고 있을 때, 시리아와 이집트에서도 혼란이 가중되고 있었다. 이집트의 쉬아파 파티마조가 약화되자, 순니파 반대 세력이 알프 아르슬란에게 개입을 요청하였다. 동부 아나톨리아 지역이 투르크족의 거주지로 확고한 기틀이 마련되지 못한 상태에서, 시리아와 이집트의 곡창 지대는 셀주크조의 관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알프 아르슬란은 1070년에 친정(親征)을 감행해 말라즈기르트(Malazgirt)를 거쳐 우르파를 복속하고, 다음 해, 유프라테스 강을 건너 알레포를 점령하였다. 다시 다마스커스로 진군할 때, 비잔틴 사절이 말라즈기르트, 아흐라트 등 동부 아나톨리아 지역의 반환을 요구하였고, 비잔틴 황제 디오게네스의 주력 부대가 에르주룸(Erzurum)으로 향하고 있다는 소식에 접하고, 알프 아르슬란은 이집트 공략을 포기하고 즉각 동부 아나톨리아 전선으로 회군(回軍)하였다.
이제 양국 군대가 말라즈기르트에서 숙명적 격돌 채비를 차리고 있을 때, 알프 아르슬란은 비잔틴 황제에게 사절을 보내 평화 협상을 제의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협상이 결렬되자 전쟁은 피할 수 없게 되었다. 200,000의 비잔틴 군대에는 프랑크, 노르만의 용병과 발칸 반도에서 남하한 일부 페체네크, 우즈 투르크족들도 포진하고 있었다. 셀주크군은 50,000에 불과했지만, 1071년 8월 26일 말라즈기르트에서의 대회전(大會戰)은 순식간에 매복과 기습 작전을 구사한 셀주크군의 일방적 승리로 끝이 났고, 비잔틴 황제 디오게네스와 많은 사령관들이 생포되었다.
알프 아르슬란은 비잔틴 황제를 처형하는 대신 강화 조약을 체결하고, 그를 콘스탄티노플로 돌려 보냈다. 강화 조약의 내용은 비잔틴의 연공 지급, 크즐 으르막(Kizil Irmak)과 타르수스(Tarsus) 동부 지역을 셀주크에 양도할 것, 전쟁 포로의 석방 등이었다. 그러나 디오게네스가 콘스탄티노플로 귀환하기도 전에 비잔틴의 황제가 새로 등극되었기 때문에 말라즈기르트 강화 조약은 지켜지지 않았다. 셀주크의 말라즈기르트 전투의 승리가 주는 의미는 투르크 민족사에서 매우 중요하다.
우선 투르크사가 아나톨리아에서 새롭게 시작되어 오늘날 터키 공화국의 기틀이 마련되었고, 비잔틴의 핵심 지역이 이슬람 문화권에 속하게 됨으로써, 십자군 전쟁에서 보여 주듯이, 향후 역사 전개에서 이슬람 세력의 방어와 발전의 계기가 되었다는 점이다. 아나톨리아 진격에 이어, 방향을 투르키스탄으로 돌린 알프 아르슬란은 카라한조 공략에 나섰다. 당시 카라한조 통치자 나스르와 하레즘과 토하리스탄 지역의 셀주크조 영주들 사이에 전개된 격돌 때문이었다. 200,000의 대군으로 카라한조 공격을 계속한 셀주크조는 부하라 근교까지 진군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
1241년 - 몽고 1차 폴란드침략: 몽골은 Chmielnik 전투에서 크라쿠프의 폴란드 군대를 압도하고 도시를 약탈했다.
1277년 - 캔터베리 대주교 로버트 킬워드비가 30개의 철학 및 신학적 명제들을 옥스퍼드 대학교에서 가르치는 것을 금지하다.
1314년 - 템플 기사단의 23번째이며 마지막 기사단장 자크 드 몰레 (Jacques de Molay) 화형당하다.
1118년에 프랑스의 기사 위그 드파양(Hugues de Payens)이 성지 순례자들을 보호하기 위하여 결성한 종교 기사단. 십자군의 주력 부대로 활약하였으나 1314년에 해산하였다. |
1438년 - 합스부르크의 알버트 2세(Albert II) 신성로마제국 황제가 되다.
독일의 오토 1세부터 프란츠 2세가 제위에서 물러날 때까지의 독일 제국의 정식 명칭. 962년부터 1806년까지의 시기를 이른다.
먼저 다룰 서양의 역사 중 하나는 신성로마제국입니다. 왜냐하면 신성로마의 건국으로 교황과 황제라는 유럽의 두 라이벌이 생깁니다. 하지만 교황이 우세할 수 밖에 없었죠. 왜냐면 "파문!"이라는 무서운 무기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레고리우스 7세가 하인리히 4세(숫자를 모르겠습니다.ㅈㅅ)에게 강제 폐위당한 후 교황의 힘이 약해지고 결국 나태해진 교회에 대항해 마르틴 루터가 나오게 되죠.( 신성로마의 의의와는 관계없습니다.ㅋ) 어쨌든 가톨릭인 구교와 루터보다 더 엄격한 종교혁명으로 탄생한 신교의 싸움으로 30년 전쟁이 일어나게 됩니다. 구교는 신성로마, 스페인, 오스트리아. 신교는 스위스, 네덜란드, 프랑스, 영국, 독일의 신교파로 나뉘어졌습니다. 이 전쟁은 무승부로 끝났지만, 거의 신교가 우세했기 때문에 조약도 신교파에 유리한 쪽으로 체결됬습니다. 이 일로 독일은 신교 국가들과 구교 국가들의 분열로 신성 로마 제국은 거의 해체되다시피하고 300개가 넘는 나라가 생겼습니다, 지도를 한번 보죠. 걸레아닙니다. 오해하지 마시길. 여기서 영토를 넓힌 국가는 프로이센입니다. 이때 알자스와 로렌도 프랑스로 들어가고요.. 간신히 명맥만 이어오던 신성로마는 이 결과로 오스트리아에게 왕위를 넘겨주고 3류 거지국가로 살다가 1800년대 나폴레옹에게 GG치고 승화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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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08년 - Susenyos 에티오피아의 황제로 즉위
1871년 - 파리 코뮌 선언
1890년 - 독일의 빌헬름 2세, 오토 폰 비스마르크를 수상 직에 해임.
1913년 - 그리스 조지1세 데살로니키 도시에서 암살 당하다.
1921년 - 폴란드와 소련 사이에 리가의 두 번째 평화 조약 서명
1922년 - 시민 불복종을 이유로 마하트마 간디가 6년형을 선고받다.
1937년 - 스페인 남북 전쟁: 스페인 공화당 과달라하라 전투에서 이탈리아를 패배 시키다.
1963년 - 최영오 일병 사건의 당사자 최영오에 대한 사형이 집행됨.
1965년 - 소비에트 연방의 보스토크 2호에 탑승한 알렉세이 레오노프가 처음으로 우주 유영을 하다.
1975년 - 동아투위 결성됐다.
1982년 - 오후 2시 경 부산에서 반미주의 방화사건인 미문화원 방화사건이 최인순, 김은숙, 문부식, 김현장 등 부산 지역 대학생들에 의해 발생하였다.
1990 - 보스턴의 이사벨라 스튜어트 가드너 박물관 (Isabella Stewart Gardner Museum)에서 12억 달러 상당의 그림 12 점 도난당하다. 미국 역사상 가장 큰 미술품 도둑사건
1997년 - 삼미그룹 계열사 법정관리 신청.
2000년 - 중화민국 총통 선거에서 민진당의 후보 천수이볜이 최초의 야당 출신 총통으로 당선되었다.
2009년 - 예멘, 테러사건 대응팀에 자폭테러.
3. 태어난 사람
1634년 - 프랑스의 작가 마리 마들렌 드 라파예트.
1813년 - 독일의 극작가 크리스티안 프리드리히 헤벨.
1837년 - 미국의 제 22, 24대 대통령 그로버 클리블랜드.
1844년 - 러시아의 작곡가 니콜라이 림스키코르사코프.
1886년 - 독일의 심리학자 쿠르트 코프카.
1908년 - 대한민국의 문학평론가 백철.
1934년 - 대한민국의 비전향장기수 김영달.
1944년 - 대한민국의 경제학자 정운영.
1948년 - 대한민국의 정치인, 전 국영기업인 이철.
1956년 - 대한민국의 개그맨, 목사 서세원.
1959년 - 대한민국의 축구 해설자 강신우.
1961년 - 대한민국의 전 축구 선수, 감독 조긍연.
1964년 - 일본의 성우 카나이 미카.
1971년 - 대한민국의 개그맨 정준하.
1977년 - 프랑스의 전 축구 선수 윌리 사뇰. 일본의 게임 제작자 오타 준야.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박승민.
1978년 - 대한민국의 농구 선수 이승준.
1979년 - 대한민국의 아나운서 박사임. 미국의 가수, 마룬 5 멤버 애덤 리바인.
1980년 - 대한민국의 개그맨 송준근.
1981년 - 대한민국의 가수, 배우 장나라. 대한민국의 가수 이소민.
1987년 - 대한민국의 기상 캐스터 이세라.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 신광훈 (포항 스틸러스). 아르헨티나의 축구 선수 마우로 사라테.
1988년 - 대한민국의 야구 선수 손아섭.
1989년 - 일본의 가수 니시노 카나. 영국, 미국의 배우 릴리 콜린스.
1992년 - 일본의 가수. 크로스진의 멤버 테라다 타쿠야.
1996년 - 대한민국의 음악그룹 스피넬의 멤버 이엘
4. 사망
1584년 - 러시아의 이반 4세, 짜르(tsar)라는 명칭을 최초로 사용한 러시아 황제.
1781년 - 프랑스의 정치가, 경제학자 안 로베르 자크 튀르고.
1939년 - 대한민국의 독립운동가 신홍식.
1982년 - 바실리 추이코프, 소련의 군인.
1983년 - 움베르토 2세, 이탈리아 왕국의 마지막 국왕.
2008년 - 영국의 영화감독 앤서니 밍겔라.
2010년 - 대한민국의 핸드볼 선수 남광현.
2010년 - 대한민국의 역도 선수 겸 정치인 황호동
2011년 - 미국의 정치가, 63대 국무장관 워런 크리스토퍼.
2016년 - 독일의 정치인 기도 베스터벨레
출처: https://oldconan.tistory.com/37669?category=558354 [올드코난 (Old Conan) 세상사는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