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가의 독서법] 제1차 세계대전 전야
크리스토퍼 클라크(Christopher Clark)
<몽유병자들: 1914년 유럽은 어떻게 전쟁에 이르게 되었는가(The Sleepwakers: How Europe Went to War in 1914)>
제차 세계대전은 2,000만 명의 군인과 민간인이 사망하고 2,100만 명이 부상하는 결과를 낳은 대재앙이었다. 러시아 혁명을 촉발하고, 나치즘의 출현과 제2차 세계대전의 발발에 밑거름이 되었으며, 오늘날 중동에서 일어나는 해결하기 힘든 많은 갈등의 씨앗을 심었다. 더욱이 폴 퍼셀이 1975년 출간한 놀라운 책 <제1차 세계대전과 현대의 기억(The Great War and Modern Memory)>에서 말했듯, 참호전의 잔학성은 유럽 문화 전반에 충격파를 주어 사실상 구질서를 파기하고 모더니즘과 그에 따른 불만을 낳았다.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나는 결코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작가 리베카 웨스트는 나중에 제1차 세계대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1914년 6월 28일 사라예보에서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추정 왕위 계승자인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과 아내 소피가 암살당한 사건이 어떻게 평화로운 유럽을 전쟁으로 몰아넣었을까? 그 전쟁이 어떻게 눈덩이처럼 커져 유럽 대륙을 집어삼키고 세상을 뒤바꿔놓을 대참화가 되었을까?
제1차 세계대전 이전 시대가 우리 시대와 많은 면에서 비슷하다는 점을 감안할 때, 이런 질문은 오늘날 특히 시의성을 갖는다. 당시도 세계화 그리고 전화 같은 새로운 기술이 격심한 변화를 불러일으키고 있었으며, 이런 변화가 차례로 포퓰리즘의 성장을 부채질하고 있었다. 우익 운동, 민족주의 운동이 증가하고 있었으며, 더 큰 지정학상의 변화가 세계 질서의 안정을 위협하고 있었다 .
“21세기 독자가 1914년 여름의 위기 과정을 따라가다 보면 그 조야한 현대성에 충격을 받을 것임에 틀림없다.” 역사학자 크리스토 클라크는 이 흥미진진한 책에서 이렇게 쓰고 있다. 클라크에 따르면 “희생, 죽음, 복수를 숭배하는 집단”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외국” 테러 조직이 페르디난트 대공의 암살 배후에 있었고, “쇠퇴하는 제국과 부상하는 세력”을 특정으로 하는 복잡한 지형, 다시 말해 오늘날 우리가 처한 것과 다르지 않은 지형의 역학관계가 부채질을 하면서 전쟁으로 이어지게 되었다.
클라크는 사려 깊은 권위를 보여주며 제1차 세계대전에 관한 방대한 양의 정보를 샅샅이 뒤져서 ‘왜’가 아니라 어떻게 결정들이 이뤄졌는지 그리고 어떻게 평화나 타협으로 가는 다양한 길이 차단되었는 지에 초점을 맞춰 쓰고 있다. 그는 누군가에게 전쟁의 책임을 지우려 하지 않으며,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설명해줄 수 있는 단 하나의 결정적 증거 같은 건 없다고 말한다. 그보다는 여러 나라들의 “정치 행위자들이 내린 일련의 결정들이 정점에 이르면서 전쟁이 발발했다”고 주장한다. 그 결정들은 흔히 오해, 단편적이거나 불완전한 정보, 이념과 파당에 따른 주요 정치 행위자들의 입장에 근거했다.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클라크는 익히 잘 아는 유럽 역사를 손쉽게 이용해서 독일, 오스트리아-헝가리, 프랑스, 영국, 세르비아 등 유럽이 전쟁으로 치닫게 하는 데 주요 역할을 한 각 국가들이 어떻게 경쟁국 및 동맹국에 대해, 역사와 문화 전통에 의해 형성된 오랜 편견과 의심을 갖고 있었는지 검토한다. 나아가, 이런 반사적인 태도가 어떻게 잘못된 의사결정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 그리고 각국 내 민족주의 압력단체의 로비 같은 파당적 국내 정치가 어떻게 때때로 한 국가의 외교 정책 기구의 서로 다른 파벌 사이에 충돌을 일으켰는지 분석한다.
클라크는 또 전운을 고조시키는 데 주요 역할을 한 개인들을 능숙하게 그려낸다. 영국 외무장관 에드워드 그레이 경은 영국의 정책이 “주로 ‘독일의 위협’에 중점을 두고 있”음을 확실히 하고, 이에 대해 비우호적인 시선을 가진 이들이 정책 결정 과정을 면밀히 들여다보지 못하도록 차단하려 했다. 그리고 변덕스런 독일 황제 빌헬름 2세는 자주 책임 있는 각료들을 건너뛰고, ‘총애하는 신하들’과 의논해서 내각 내 파벌 싸움을 부추기고 기존의 정책과 상충하는 견해를 보였다.
이 모든 요인이 클라크가 말한 “주변의 혼란”에 기여했다. 이런 혼란이 전쟁이 일어나기 직전 유럽 대륙 전역에 소용돌이쳤다. 클라크의 말에 따르면, 유럽 국가들은 “깨어 있지만 보지 못하는, 꿈에 사로잡혀 있으나 그들이 세상에 내놓으려는 끔찍한 현실에는 눈먼” 몽유병자처럼 전쟁에 휘말려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