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푸라기의 노래
김 학
21세기 들어 지푸라기는 실업자가 되었다. 슬픈 일이다. 하릴없는 호호 백발 할아버지처럼 무료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옛날의 영화를 되새기면서 긴긴 겨울을 쓸쓸히 연명해야 한다. 어쩌다 지푸라기의 신세가 이렇게 처량하게 되고 말았는가?
농경사회 시절에 지푸라기는 잘나가는 선망의 재료였다. 나막신이나 고무신, 구두가 나오기 전에는 지푸라기로 삼은 짚신이 신발의 대명사였다. 과거보러 가는 시골 선비도 괴나리봇짐에 짚신 몇 켤레쯤 은 당연히 매달고 한양 천리 길을 터벅터벅 걸어가야 했으니까. 지푸라기로 이엉을 만들어 지붕을 덮어야 겨울의 눈이나 여름의 비를 피할 수도 있었고, 농부들이 여름에 비를 맞으며 논밭에 나가 일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지푸라기로 만든 우장이 있었던 까닭에 가능했었다.
농한기라던 겨울철 그 긴긴 밤이면 농가의 사랑방에서는 머슴들이 새끼를 꼬거나 가마니를 짜기도 하고, 쓰임새가 많은 멍석을 만들기도 하면서 손을 놀리지 않았던 것도 지푸라기 때문이었다.
가마니에는 쌀이나 보리 등의 곡식을 담아 시장에 내다 팔기도 했고, 머슴의 새경을 정하거나, 논밭과 집을 사고팔 때 돈 대신 사용되기도 했었다. 멍석은 곡식을 널어 햇볕에 말리는 데 사용되는 것이 주임무였지만 잘못을 저지른 사람을 멍석말이할 때 쓰이기도 했었다. 아이를 출산할 때도 방에는 지푸라기를 깔아야 했다.
농가에서는 가을철 추수가 끝나고 나면 벼를 떨어버린 볏짚을 논이나 마당에 노적가리처럼 쌓아 놓기도 하고, 헛간에 차곡차곡 쟁여 두기도 했었다. 지푸라기는 소의 겨울철 주식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지푸라기를 작두로 싹둑싹둑 잘라서 쇠죽을 끓여야 했다. 쇠죽이 끓을 때의 그 구수한 냄새가 떠오른다. 명절 무렵이면 그 쇠죽솥에 물을 데워 목욕을 했던 추억이 새롭고, 아궁이에 고구마나 알밤을 구워 먹던 어린 시절의 기억이 풋풋하다.
지그시 눈을 감고 지난날을 돌이켜 보면 지푸라기에 얽힌 온갖 추억들이 더 그리울 수밖에 없다. 세월이 바뀌면서 지푸라기는 옛날의 총애를 다 잃고 말았다. 우리 조상들은 지푸라기로 온갖 생활 도구를 다 만들어 써 왔다. 지푸라기로 만들어 쓰던 생활 도구가 무려 180여 가지나 된다고 들었다. 조상들의 생활의 지혜가 지푸라기의 활용법을 연구하는 일이 아니었나 싶을 정도다.
아들을 낳은 집의 대문에는 지푸라기로 꼰 새끼줄에 빨간 고추가 꽂힌 금줄이 치렁치렁 가로질러 처져 있었고, 상두꾼들이 메던 상여에도 지푸라기로 꼬아 만든 새끼줄은 있기 마련이었다. 지푸라기로 만든 계란 집에 열개씩 차곡차곡 담은 계란 몇 꾸러미를 머리에 이고 조심조심 장에 나가 팔아서 연필이나 학습장을 사다 주시던 어머니의 정성도 새록새록 생각난다. 이처럼 쓰임새가 다양했던 지푸라기가 이제 와서는 쓸모없는 실업자 신세로 전락하고 말았다.
지푸라기는 생활 도구뿐 아니라 놀이 기구에도 빠질 수 없는 존재였다. 시골의 농민들이 즐겼던 줄다리기나 그네 타기도 지푸라기로 튼튼하게 꼰 새끼줄이 아니면 불가능했으며, 차전놀이 등에도 지푸라기는 빠질 수 없었다. 옛날 사람들은 태어나면서부터 무덤으로 돌아갈 때까지 지푸라기를 사용해야 했던 것이다. 얼마나 끈질긴 인연이며, 밀접한 관계였던가?
요즘 들녘엔 지푸라기가 많이 쌓여 있다. 사 가는 사람도 없고, 쓸 곳도 없기 때문이다. 그도 그럴 것이 초가지붕은 기와나 슬라브가 지푸라기를 대신하게 되었고, 가마니나 새끼줄, 멍석은 마대나 비닐이 그 임무를 대행하고 있으며, 짚신은 고무신이나 운동화, 구두가 그 임무를 맡기에 이르렀다.
쇠죽의 원료로 쓰이던 지푸라기의 역할마저 공장에서 대량 생산 되는 사료에게 빼앗기게 되었다. 지푸라기는 결국 논에서 태워 지거나 스스로 썩어서 거름으로 쓰일 수밖에 없는 신세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요새 지푸라기를 이용한 설치 미술이란 것이 고개를 뾰족 내밀고 있다고는 하나 새 발의 피가 아닐 수 없다.
지푸라기는 슬프다. 농경 사회의 유물인 지푸라기의 운명이 너무나 가엾다. 구조 조정으로 퇴출 당한 실직자처럼 너무너무 안쓰럽다. 서글픈 지푸라기의 노래가 자꾸만 귀를 파고든다. 볍씨를 파종한 뒤 여든여덟 번의 손을 거쳐 고개 숙인 나락이 되고, 알곡을 사람에게 돌려준 다음 볏짚이 되는 지푸라기의 일생을 모르는 오늘의 도시인들이 어찌 서글픈 지푸라기의 노래를 알 것인가?
첫댓글 지은이 김학 : 수필가, 전 방송프로듀서 출생 전북 임실 (1943년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