쐐기벌레
아침보다 오후에 모기가 많다. 해 질 녘에는 득실거린다. 얼굴의 눈이 무서운지 부리부리한 눈빛을 겁내는 것 같다. 손등에 앉은 것을 보고 잡으려면 휙 도망간다. 눈독을 느꼈는가. 목덜미나 팔등을 잘 문다. 물리면 얼얼한 게 기분 나쁘게 가렵다. 그것도 모르고 반 팔 옷을 입고 다녔다. 실컷 물린 뒤 장화 신고 장갑을 끼며 목 덮는 모자도 썼다.
두꺼운 옷에다 소대까지 찼다. 완전무장을 했다. 땀이 줄줄 흘러 몇 번이나 젖었다 말랐다 한다. 처음은 견딜 수 없었지만 지나니 괜찮다. 그래도 살 닿은 허벅지나 팔을 물어뜯었다. 이것들이 두꺼운 옷을 파고 찔러댔다. 무슨 큰 농사라고 텃밭을 하면서 이리 수선을 피운다. ‘긁어 부스럼 낸다.’ 고 곳곳에 불뚝불뚝 일어나고 터진다.
겨우내 진물 나고 간지럽다. 병원 주사와 약을 먹어도 그때뿐 또 나타난다. 그러면 그만둬야지 하던 짓을 못 버리고 이끌려 또 밭으로 간다. 이번엔 그늘이 좋은 뽕나무에서 무엇이 줄줄 떨어진다. 낙하산처럼 뽀얀 것이 바람에 날려 주위에 내려앉는다. 찐득한 것이 바닥에 쌓여 걸을 때 쩍쩍 소리가 난다. 소사와 산딸기나무에도 옮아붙어 파먹는다.
잎을 도르르 말아 못살게 하는 것을 그냥 보고 있나. 진드기약을 흩뿌리고 긴 대나무 빗자루로 털어냈다. 오디가 붉고 검어야 하는데 허옇다. 즙을 빨아 먹어서이다. 옷에 내려앉은 실 같은 흰 줄을 자세히 보니 그 속에 연두색 진드기가 기어 나온다. 자그마한 귀엽게 생긴 것이 그리 나댄다. 살인진드기라던데 그리 만져도 되나. 분무기로 고목 뽕나무 위까지 뿌리고 훑어내며 한바탕 전쟁을 치렀다. 줄어들기 시작하며 고마운 그늘 뽕나무가 죽다가 겨우 살아난다.
따끔하다. 등허리에 무엇이 들어갔는가. 훌훌 털어내고 비벼낸 뒤 또 문질렀다. 저녁에 그 주위가 부어올라 벌겋다. 쑤시고 아려서 견딜 수 없다. 땅벌에 쏘인 것 같이 욱신거리고 번져나가는 듯 퉁퉁거려 온다. 목욕한다고 벗어보니 풀벌레다. 땅에 떨어져서 신발로 들어가고 앉았을 때 옷으로 기어올라 파고든 것이다.
고물고물 기어 다니면서 이 나무 저 나무에 올라 마구 잎을 파먹는다. 그물처럼 뿌연 잎이 흔적만 남게 된다. 배추나 무 벌레와 누에는 파랗고 흰 게 매끄러운데 이건 털이 숭숭 붙었다. 그 꺼칠꺼칠한 털에 닿으면 따갑고 쑤셔대다가 붓는다. 등줄기를 내려가면서 닿는 곳곳에 상처를 준 것이다.
개암을 따러 산기슭 풀밭에 가면 이 벌레가 있다. 손등에 쏘이면 흔들고 펄쩍펄쩍 뛰어야 한다. 막 소리치고 아프다 외친다. 한참 그리하면 좀 덜하다. 뽀얀 작은 알이 삐죽 나와 까서 깨물어 먹으면 꽤 고소하다. 쐐기벌레한테 쏘여가며 그것도 먹을 것이라 헤매고 다니던 어릴 때였다. 아픈 데 된장을 발라 두면 시나브로 사라진다. 오이 꼭지로 문지르고 비료를 물에 녹여 발랐다. 느끼한 외양간 소 오줌도 약이라 묻혀봤다.
그 송충이처럼 생긴 벌레가 꾸물꾸물 천지다. 어디서 나왔는지 산딸기나무가 죽어간다. 잎을 다 먹어 치워 앙상한 겨울나무와 같다. 황급히 살충약을 쳐대고 막대로 털어 벌레를 떨어뜨려 마구 짓밟아 없앴다. 해마다 마른장마였는데 유별나게 한 달 긴 장마로 억수 비가 내렸다.
그래선가 모기떼 등쌀로 참을 수 없었는데 어찌 올해는 없다. 그것도 모르고 덮어쓰고 땀을 뻘뻘 흘려댔다. 억울하다. 그런데 난데없이 봄날 진드기에 이어 한여름철 쐐기벌레가 나타났다. 땅바닥 구석구석 기어 다닌다. 그러다 모자나 옷에 올라붙어 몸속으로 들어가 괴롭힌다. 털이 살갗에 스치면 얼마나 아픈지 소스라친다. 장화에 들었다가 허벅지에 붙어 찔러대는 바람에 아랫도리를 벗어 털어야 했다.
온몸에 달라붙으니 도대체 이리 많은 게 다 어디서 기어 나왔나. 어디 개암이라도 있는가 웬 풀벌레가 활개를 치고 다니나. 뽕나무 밑에 앉거나 다니기 거북하다. 얼씬할 수 없다. 이들이 점령해서 밀어내고 있다. 작은 벌레를 못 당해 식겁을 먹고 쩔쩔맨다. 무심코 장화 신고 모자를 쓰며 장갑을 낄 때 그 언저리에 붙어 있다가 얼씨구 쏜다.
봄날 뽕나무가 죽다가 살아나는 그 법석을 떨었는데, 여름 긴 장마가 끝나고 보니 느닷없이 또 죽게 생겼다 허옇다. 갉아먹어 위쪽 뽕나무잎이 훤하다. 그늘이 없어지고 햇볕이 내리쬔다. 바닥에 작은 까만 것이 덕지덕지 다닥다닥하다. 먹고 내보낸 것이 쏟아져서 쌓였다. 왜 이런 게 자꾸 나타나나. 진드기를 겨우 없애니, 이번엔 벌레가 득실거려 나무가 죽지 못해 살아간다. 이래저래 골병이 들어 뽕과 소사, 산딸기나무가 비실비실 시들시들하다.
가지마다 텁수룩한 털 벌레가 오롱조롱 빌붙었다. 얼마나 많은지 자세히 봐야 한다. 가지에 죽 늘어앉았다. 마치 출퇴근 밀리는 차들이 줄을 선 것 같다. 막 올라오는 연한 잎을 먹다가 하도 식솔이 많으니 찬밥 따뜻한 밥 가릴 게 없다 연하건 딱딱한 것이건 잎이란 잎은 마구 뜯어 먹는다. 그러다 더 먹을 게 없으면 나무에서 떨어져 내린다.
뚝뚝 떨어져 바닥을 하얗게 기어 다니는 게 가관이다. 먹이를 찾아 다른 나뭇잎으로 대이동이 시작됐다. 막 밟고 작대기로 짓눌러도 가당찮다. 빗자루로 쓸어 바닷물에 넣으면 둥둥 떠내려가면서 꼼지락거린다. 다시 둑으로 기어오르면서 다른 나무에 오른다. 죽으라 밀어 넣었는데 헤엄도 잘 친다. 벌레한테 혼쭐이 났다. 불개미 떼나 벌떼처럼 많아서 감당이 안 된다.
전에 없이 요것들이 아파트 단지 내에도 단풍나무와 과실, 꽃나무를 닥치는 대로 뜯어 먹고 길바닥에 깔렸다. 문 열면 현관 입구까지 스멀스멀 수없이 기어 다닌다. 미워 밟아 죽이다가도 너무 한다 싶어 참았다. 버스 타는 정류소에도 기어 다녀 없는 곳이 없다. 아이들이 놀이터에서 달고 들어가 집마다 한바탕 벌레 소동이 벌어진다.
성경과 펄벅의 소설에 메뚜기가 구름떼처럼 날아다니며 초목의 잎과 줄기까지 먹어 치운다. ‘황충이 간 데는 가을도 봄’이라더니 이들 풀쐐기는 더해 닥치는 대로 찔러댄다.
첫댓글 저도 왜 뽕나무엔 하얀 거미줄같은게 달라붙어있는지 궁굼했었습니다.아주 나무를 옴싹달싹 못하게 진을 쳐 놨어요.그리고 버드나무아래 자그마한 쐐기무더기.ㅠ
그 열악한속에서 밭일하시다니..ㅠㅠ
풀쐐기 지역과 계절에 따라 발생하나 봐요
이곳에서는 그리 흔하게 보이지는 않아요
예전 어릴 때 풀 베러 다닐 때 파란 빛의 풀쐐기에 쏘이면
종일 따갑고 쓰렸던 기억이 납니다
때지어 먹어치우면 나무도 망칩니다
수고하셨습니다
아내가 밭 일을 좋아해서 같이 해야 합니다.
뱀도 있어서 앞장서 다니며 쫓아야 하고 힘든 일을 합니다.
전에 없던 풀쐐기가 많아 많아 쏘였습니다.
내일은 김장 배추 무를 심으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