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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발전소 행복발전소
문수선원에는 법공양 선물이 많았다.
동출스님이 가져오신 <부처님 생애>라고 하는 만화책도 있었고, BBS 불교방송 국장님이 가져오신 샤프펜슬은 일부러 그런 것도 아닌데 큰스님께서 몇 십년을 쓰시던 샤프펜슬과 색깔도 똑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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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학인들 질문지 가져왔어요.” 하고 운문사 스님께서 설레임이 가득한 얼굴로 편지지에 또박또박 쓰여진 젊은 스님들의 질문지를 가져오셨다.
“운문사는 들썩거리네, 질문지부터 보내고 하는 걸 보니까. 내가 오랜만에 운문사 법회 초청을 받았는데 모처럼 가면서 교재가지고 하는 것도 그렇고. 평소 궁금했던 걸 질문받아서 이야기 하는 게 좋겠다 해가지고”
하고 큰스님께서 주변에 계신 분들에게 설명하셨다.
“스님들은 이걸 복사해서 가지고 있겠지? 그것 가지고 현장에서 질문하는 형식으로 해야지”
“나는 사전에 좀 보고” 라고 덧붙이시면서 좀 게면쩍게 웃으셨다. 그 웃음을 받아서 주변분들이 유쾌하게 웃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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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무거사님은 요즘 여러 큰스님들의 씨디들을 많이 만드시고 ‘선물로 대상포진에 걸렸다’고 하셨다. “참 아프다는데” 하고 큰스님이 걱정하시자 “그래도 나았어요.” 하고 소년처럼 웃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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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암사 스님이 대교반에서 같이 공부하는 비구니 스님과 함께 오셨다.
“아 그래? 잘 데려왔어. 학인들 다 데려와야 돼. 보기좋다. 예쁘다. 공부 잘 해가지고 아주 선암사를 대표하는 대강사가 되어야 해.”
하시면서 갑자기 “선암사 아나? 우리나라에서 제일 아름다운 절. 고찰 그대로.” 하고 물으셨다. 선암사는 아주 오래 전 답사책을 들고서 갔다 왔었다.
차가왔던 공기, 얼었던 계곡물은 기억나는데, 갑자기 기억이 급조되면서 눈앞의 빨갛게 상기된 스님들 볼처럼 그 선암사에 “보기좋고 예쁜” 행복해 보이는 빨간 까치밥 홍시나무가 서있을 것만 같았다.
“부족함이 없는가 잘 챙겨주고” 하고 큰스님이 먼저오신 지원스님에게 당부하셨다.
“예 스님. 저희 선암사 총무보살님께서 스님 책 보고나서 너무 감사하다고 조그마하게 법보시 올렸습니다.” 하고 스님들이 봉투를 올리셨다.
“여기 법공양실에서 필요한 것 많이 좀 가져가. 책 쌓아놓고 신도들에게 주고. 신도들한테 기와나 팔고 빈손으로 돌려 보내서는 안돼.” 하고 큰스님께서 다정하게 일러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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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번에 법명을 받지 못했던 구지 법화사에서 오신 거사님이 법호를 받으셨다.
“이리 와 봐요. 스님 여기 와서 증명해.” 하고 큰스님이 법화사 주지스님을 부르셨다.
“법명은 무진거사입니다. 새로 지었어요. 불법승 삼보에 귀의 잘하시고 보호 잘하시고 열심히 신심내서 불법수호에 애쓰시기 바랍니다.”
하고 큰스님은 거사님께 간곡히 말씀하셨다. 법화사에는 특별히 거사님들이 많다고 지난 번에 신도분들이 하신 말씀을 염두에 두셨던 모양이었다.
이윽고 상강례
법회의 시작
大方廣佛華嚴經 卷第二十四
十廻向品 第二十五之三
四,十廻向
오늘도 대방광불화엄경 강설 제32권이 우리 손에 들어왔다. 화엄경 본 강의에 들어가기 전에 이 책에 생명을 불어넣기 위해서 서문을 천천히 큰소리로 같이 읽는 것으로써 점안의식을 간단히 거행하겠다.
서문
선근 회향을 얼마나 해야 대자대비한 보살의 서원을 가득 채울 수 있겠습니까. 무한한 공간과 무한한 시간을 다 채워도 대자대비한 보살의 이 선근 회향은 다 채우지 못할 것입니다.
어떤 보살은 “허공은 다함이 있을지언정 나의 서원은 다함이 없다[虛空有盡 我願無窮].”라고 하였습니다. 그 서원이 무엇이겠습니까. 과거 현재 미래의 모든 사람 모든 생명에게 자신이 닦은 선근을 널리 널리 회향하는 일입니다.
열 가지 회향 중에서 마지막 열 번째 회향입니다. 그 이름은 등법계무량회향(等法界無量廻向)입니다. 무한한 우주법계와 동등하게 한량없이 회향한다는 뜻입니다. 우주법계가 그 양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얼마나 되기에 우주법계와 동등하게 한량없이 회향한다는 것입니까.
부처님의 마음[佛心]은 실로 이와 같습니다. 보살의 서원은 실로 이와 같이 무진(無盡) 무진 무진하며 중중(重重) 중중 중중합니다.
아무리 보잘것없는 작은 선근이라도 회향합시다. 선근 회향이 불법입니다. 선근 회향이 부처님 마음이며 보살의 마음이며 조사와 선지식의 마음입니다. 선근 회향이 불교의 모든 것입니다.
회향할 선근이 없다 하지 말고 부드러운 미소 한 번으로 회향합시다. 겸손한 합장 한 번으로 회향합시다. 친절한 말 한마디로 회향합시다. 진실과 정성이 담긴 태도로 회향합시다.
2015년 9월 1일
신라 화엄종찰 금정산 범어사
如天 無比
회향의 뜻을 잘 표현했다. 오늘은 여기에 평소에 중앙에서 애쓰시는 동출스님께서 오셨다. 스님은 평생 어린 새싹들에게 불교를 이해시키려는 원력을 가지고 아동들을 위한 출판사를 경영하고 있는데 이렇게 우리에게 좋은 불교 만화책을 회향했다. 그런데 만화라고 해서 어린 아이들만 읽는 책이 아니다. 뜻이 깊은 불교 문화와 불교 상식, 부처님의 생애에 대한 이야기니까 스님들이 읽어도 좋을 책이다. 이렇게 법으로써 회향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또 오늘 BBS 국장님께서 샤프펜을 스님들께 선근회향 했다. 이것은 내가 주문해서 들어온 공양이다. 먹을 걸 사오겠다고 하는 것을 ‘여기는 먹는 것 일체를 안하기로 했으니까 내가 평생 애용하는 0.9mm짜리 샤프펜을 사오라’ 고 해서 선근회향을 하게 되었다.
이 또한 회향의 중요한 실천이 아닐까 생각한다.
이렇게 법공양을 올려주시고 공부하는데 좋은 펜을 회향주셔서 고맙다.
7, 第五無盡功德藏廻向
오늘은 176페이지(화엄경 제2권 민족사 刊) 상단 다섯 째 줄부터 할 차례다. 우리가 하고 있는 공부는 십회향품 중에 제5 무진공덕장 회향의 중간이다. 오늘 받은 화엄경 강설 책도 십회향품이지만 벌써 우리가 공부하는 진도를 따라잡았다.
(3) 過去佛의 世界莊嚴
如過去世無邊際劫에 一切世界가 一切如來의 所行之處니 所謂無量無數佛世界種의 佛智所知와 菩薩所識과 大心所受인 莊嚴佛刹이 淸淨業行의 所流所引이며 應衆生起며 如來神力之所示現이며 諸佛出世한 淨業所成이며 普賢菩薩의 妙行所興이니 一切諸佛이 於中成道하사 示現種種自在神力하시며
"지난 세상의 끝없는 겁에 모든 세계가 일체 여래의 행하시던 곳인 것과 같나니, 이른바 한량없고 수가 없는 부처님의 세계종(世界種)이 부처님의 지혜로 아시는 바이며, 보살의 아는 바이며, 큰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으로 장엄한 부처님 세계니라,
청정한 업(業)과 행(行)으로 흘러나오고 이끌어온 것이며, 중생에 응하여 일어난 것이며, 여래의 신력으로 나타낸 것이며, 부처님들의 출세간하신 깨끗한 업으로 이룬 것이며, 보현보살의 묘한 행으로 일으킨 것이니, 모든 부처님이 이 가운데서 성도하시고 갖가지 자재한 신력을 나타내시었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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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거불(過去佛)의 세계장엄(世界莊嚴):과거세의 부처님이 장엄한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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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과거세무변제겁(如過去世無邊際劫)에: 아주 오랜 과거 끝없는 세월에.
정확하게 맞다고는 할 수 없지만 우주 과학을 하는 분들은 대개 우주의 역사가 138억년, 지구의 역사는 45억년 내지 50억년 정도로 잡는다.
화엄경에서 과거 과거 하는 것, 미래 미래 하는 것은 과학적으로 증명되는 것만 가지고 이야기 하지 않는다. 물론 그것도 다 포함되지만 과학으로 아직 밝혀내지 못한 무한 과거와 무한 미래가 다 이 화엄경에서 이야기 되고 있다.
우리가 늘 외우는 화엄경 이치를 요약한 법성게에는 ‘일념즉시무량겁(一念卽是無量劫)’이라고 하였다.
한순간이 한량없는 겁이다. 불교를 조금 아는 사람의 관점에서 보면 과거가 됐든 현재나 미래가 됐든 시간을 뭐라고 한 두 마디로 단정 지어서 이야기 할 수가 없다. 과거 무변겁의
일체세계(一切世界)가: 모든 세계가
일체여래(一切如來)의: 모든 여래의
소행지처(所行之處)니: 행한 바 곳이다. 전부 여래가 살아가는 곳이고 여래가 행주좌와(行住坐臥) 어묵동정(語默動靜) 하는 곳이다.
화엄경 안목에서 보면 일체가 여래의 소행지처다. 여래가 없는 곳이 없다. 화엄경의 안목이 그렇게 근사하다.
불교하면 깨달음의 가르침이다. 부처 불(佛)자도 깨달음이라고 하는 뜻이다. 부처님 하면 깨달은 분이라는 뜻이고, 불교하면 깨달음의 가르침, 깨닫게 하는 가르침, 깨달음의 내용을 가르치는 내용이다 라는 뜻이다.
그런데 내가 견문이 좁아서 그런지 화엄경 같이 그 깨달음의 내용을 확실하게 짚어준 경전을 못보았다.
화엄경은 첫머리에 ‘시성정각(始成正覺) 하시니’ 처음에 정각을 이루시니 ‘그 땅은 견고(堅固 )하야 금강소성(金剛所成)이더라’라고 되어 있다. ‘전부 다이아몬드로 되어 있더라’ 이것이 부처님 깨달음의 내용이고 화엄경 전체를 푸는 열쇠다.
흔히 다른 경전에서는 부처님의 깨달음을 ‘연기(緣起)다, 한마음의 도리다’라고 표현한다. 부처님이 연기의 이치를 깨달았다는 것은 물론 일부 맞다. 부처님의 깨달음은 한 마음의 이치를 깨달았다는 것, 부처님이 마음을 깨달았다고 하는 것도 일부 맞다. 그렇지만 전체적인 뜻은 아니다.
화엄경은 분명히 밝히기를 ‘이 세상은 전부 다이아몬드로 되어 있더라’ 라고 하였다. 이것이 화엄경에서 보는 부처님 깨달음의 내용이다. 전부가 다이아몬드로 되어 있다. 그리고 여기에도 나왔듯이 일체가 여래의 소행지처다. 전부 여래가 꿈틀대고 여래가 행주좌와하고 어묵동정하는 곳이다.
우리의 눈이 언제 그 안목에 이를지는 알 수 없어도, 저렇게 산천초목 산하대지를 펼쳐보이는 것이 화엄경의 안목이고 여래의 깨달음이다.
소동파 같은 거사는 폭포소리를 듣고 한 순간에 ‘계성변시광장설(溪聲便是廣長舌) 산색기비청정신(山色豈非淸淨身)가, 시냇물소리가 그대로 부처님의 광장설법인데 산천초목인들 어찌 비로자나불이 아니겠는가’라고 읊었다.
한순간에 바로 그 안목에 오른 사람이다.
또 화엄경의 여래출현품에 들어가면 ‘모든 사람이 전부 여래의 지혜와 덕상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다. 다만 자기에게 그러한 것이 있다고 하는 사실을 모를 뿐이다’라고 표현했다. 이렇게 화엄경은 부처님의 깨달음을 명확하게 밝히고 있다. 사람은 뭐냐? 전부 여래의 지혜와 덕상을 고스란히 가지고 있는 존재다. 그대로 사람은 부처님이다. 산천초목 산하대지는 그대로가 다이아몬드이고 황금세상이다.
그래서 나는 이 화엄경을 보고 한마디로 결론짓기를 ‘아름다워라 세상이여, 환희로와라 인생이여’라고 하였다. ‘아름다워라 세상이여’ 하는 것은 ‘시성정각하시니 그 땅은 견고하야 금강소성이더라 다이아몬드로 이루어졌더라’라는 것을 요즘말로 표현한 것이다.
‘환희로워라 인생이여’ 라고 하는 것은 여래출현품에서 ‘깨닫고 보니 모든 사람들이 그대로 한량없는 지혜와 덕상을 간직한 부처님이더라’ 라고 한 그 내용을 표현한 것이다.
우리가 늘 법회 전에 점안하는 대방광불화엄경 강설 제1권부터 10권까지 책의 뒷표지에 ‘아름다워라, 세상이여! 환희로워라, 인생이여!’라고 하는 그 문구가 들어있다.
일체여래의 소행지처다. 과거뿐만 아니라 현재도 미래도 모든 세계가 여래가 행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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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무량무수불세계종(所謂無量無數佛世界種)의: 이른 바 무량무수 불세계종의
불지소지(佛智所知)와: 부처님 지혜로 아는 바와
보살소식(菩薩所識)과: 보살로 아는 바와. 부처니 보살이니 했지만 크게 차별이 없다.
일반적으로는 수행의 지위 단계를 성문(聲聞) 연각(緣覺) 보살(菩薩) 불(佛)의 순서로 보는데 그 위에 또 보살이 있다. 부처 위에 있는 보살이 바로 보살마하살이다.
화엄경에서 그런 순서를 꼭 짚어서 말하지는 않았지만 내용인즉슨 부처가 되어서 다시 보살로서 보살행을 하는 것을 최종 목적으로 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보살마하살이다’라고 되어 있다. 여기 불지소지, 보살소식이라고 했는데 같은 뜻이다. 바로 우리를 말한다.
대심소수(大心所受)인 : 대심범부(大心凡夫), 내가 늘 말하기를 화엄경은 대심범부가 공부하는 교재라고 한다. 화엄경을 공부하는 사람은 다 대심범부다.
여기 불지(佛智) 보살(菩薩) 대심(大心)은 표현이 달라서 그렇지 다 같은 뜻이다. 근본적으로 화엄경에서는 ‘심불급중생시삼무차별(心佛及衆生是三無差別)’이라고 결정짓고 있기 때문이다. 대심소수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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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엄불찰(莊嚴佛刹)이: 장엄된 불찰
청정업행(淸淨業行)의: 그리고 청정한 업행의 이것은 사람을 말하는 것이고
소류소인(所流所引)이며 :그들의 흐르는 바이고 이끄는 바이며. 이 한문구절들을 다시 풀면 바로 ‘환희로워라 인생이여 아름다워라 세상이여’ 라는 뜻이 된다.
응중생기(應衆生起)며: 중생에 맞춰서 일어난다. 전부 중생의 적당한 바에 따라서 일어난 바이며
여래신력지소시현(如來神力之所示現)이며: 여래 신력의 나타난 바다. 하나도 고치거나 바꾸지 않는다. 그대로 두고 하는 말이다. 바꾸면 안된다. 바꾼들 얼마를 바꾸겠는가? 그대로 두고 우리의 안목만을 바꿀 뿐이다.
부처님은 한 순간에 안목이 달라졌으니까 ‘시성정각하니 그 땅은 견고하야 금강소성이더라’ 라고 화엄경 서두에 딱 못을 박고 출발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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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불출세(諸佛出世)한 : 제불이 세상에 나와서
정업소성(淨業所成)이며: 청정한 업으로 이루는 바이며
보현보살(普賢菩薩)의: 보현보살의
묘행소흥(妙行所興)이니 : 미묘한 행으로 있는 바이니, 미묘한 행은 보살행이다.
일체제불(一切諸佛)이: 일체 모든 부처님이
어중성도(於中成道)하사: 그 가운데서 성도해서, 여기도 성도가 나온다.
시현종종자재신력(示現種種自在神力)하시며: 가지가지 자유자재한 신력을 나타내 보이시니라.
(4) 未來佛의 世界莊嚴
盡未來際의 所有如來應正等覺이 遍法界住하사 當成佛道하고 當得一切淸淨莊嚴功德佛土하사대 盡法界虛空界에 無邊無際하며 無斷無盡하니 皆從如來智慧所生이며 無量妙寶之所莊嚴이니 所謂一切香莊嚴과 一切華莊嚴과 一切衣莊嚴과 一切功德藏莊嚴과 一切諸佛力莊嚴과 一切佛國土莊嚴이라 如來所都며 不可思議同行宿緣諸淸淨衆이 於中止住하야 未來世中에 當成正覺하리니 一切諸佛之所成就라 非世所睹요 菩薩淨眼이라야 乃能照見이니라 此諸菩薩이 具大威德하야 宿植善根일새 知一切法이 如幻如化하며 普行菩薩諸淸淨業하며 入不思議自在三昧하며 善巧方便으로 能作佛事하며 放佛光明하야 普照世間을 無有限極하며
"오는 세월이 끝날 때까지 여래(如來). 응공(應供). 정등각(正等覺)께서 법계에 가득하게 머무시면서 장차 부처님이 되실 것이며, 마땅히 일체 청정하게 장엄한 공덕불토를 얻을 것이니, 온 법계 허공계에 두루하여, 끝없고 경계가 없고 끊이지 않고 다함이 없을 것이며, 다 여래의 지혜로 생기고 한량없는 묘한 보배로 장엄하는 것이니, 이른바 온갖 향으로 장엄하고 온갖 꽃으로 장엄하고 온갖 옷으로 장엄하고 온갖 공덕장(功德藏)으로 장엄하고 온갖 부처님의 힘으로 장엄하고 온갖 부처님의 국토로 장엄하는 것이며, 여래의 도읍하신 바요, 지난 세상에 함께 수행하던 부사의한 청정대중이 그 가운데 있으며, 오는 세상에 정각을 이루실 모든 부처님의 성취하시는 바이니, 세상 사람으로는 볼 수 없고 보살의 깨끗한 눈으로만 능히 보는 것이니라. 이 보살들이 큰 위덕을 갖추고 미리부터 선근을 심었으매 온갖 법이 요술과 같고 변화와 같음을 알려 보살의 청정한 업을 널리 행하며, 부사의하게 자재한 삼매에 들어가 공교한 방편으로 불사(佛事)를 지으며, 부처님이 광명을 놓아 세간을 널리 비추되 한정된 끝이 없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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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불(未來佛)의 세계장엄(世界莊嚴): 미래세의 부처님이 장엄한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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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미래제(盡未來際)의
소유여래응정등각(所有如來應正等覺)이
변법계주(遍法界住)하사: 법계에 두루 머무사
당성불도(當成佛道)하고: 마땅히 불도를 이루고, 미래부처님도 마찬가지다. 법계에 가득히 불도를 이루고
당득일체청정장엄공덕불토(當得一切淸淨莊嚴功德佛土)하사대: 일체 청정한 아주 아름답게 장엄된 공덕 불토를 얻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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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법계허공계(盡法界虛空界)에: 온 법계와 허공계에
무변무제(無邊無際)하며: 무변무제하며
무단무진(無斷無盡)하니 : 끊어짐도 없고 다함도 없으니
개종여래지혜소생(皆從如來智慧所生)이며: 다 여래의 지혜로부터 난 바다. 여래의 지혜로부터 나면, 현재 이 자리에서 한 걸음도 옮기지 아니하고 ‘시성정각하니 그 땅은 견고하야 금강소성이더라’ 라고 보는 것이다. 달리 다른 것이 아니다. 지금 이 자리에서 그대로 그렇게 보인다.
내가 조금 어깃장을 놓느라고 부처님이 성도하신 부다가야 성지에 직접 가서 우정 그 자리를 돌아다니면서 주변에 다이아몬드가 있는가 다이아몬드를 좀 주워오려고 했다고 하는 이야기를 법문중에 가끔 한다.
우리나라는 그래도 수목이라도 아름답지 부다가야 땅은 전부 모래자갈 뿐이고 숲이 있다고 해봐야 가시넝쿨 뿐인 척박한 땅이다. 그런데 부처님은 그 땅이 모두 ‘금강소성이더라. 다이아몬드로 이루어졌더라’ 라고 하였다.
그런데 그 말은 절대 거짓말이 아니다. 진실이다.
사실은 아닐지 몰라도 진실이다. 우리가 ‘사실’이라고 하는 것도 사실은 그것을 증명할 길이 없다. 무엇으로 증명하겠는가? 우리가 아는 상식으로 증명한다면 그것은 우리 수준의 사실일 뿐이다. 그래서 백보 양보해서 사실은 아니지만 진실이다, 결코 거짓말은 아니다 라고 표현한다.
무량묘보지소장엄(無量妙寶之所莊嚴)이니: 한량없는 아름다운 보배로 장엄한 바다.
화엄경 첫 서두에 나온 이야기 그대로다.
화엄경의 서두에 보면 기껏해야 차디찬 바위에 풀 좀 뜯어서 앉았던 그 자리를 사자좌라고 해서 사자좌의 장엄을 얼마나 장황하게 늘어놓았는지 모른다. 보리수는 인도의 흔하고 흔한 평범한 나무일 뿐인데도 부처님이 그 아래 앉아서 성도하셨다고 해서 또 얼마나 장황하게 보리수의 장엄을 늘어놓았는가? 그 보리수가 전부 다이아몬드로 되었고, 마니주로 되었고 이 세상에 보물이라고 하는 보물은 전부 그 나무를 장엄했고 사자좌를 장엄했고 그 땅을 장엄했다는 식으로 표현했다.
여기도 무량묘보지소장엄(無量妙寶之所莊嚴)이라고 하였다. 여래의 지혜의 소생으로 장엄하였다. 다 여래의 지혜로부터 생긴 것이다. 결코 세상을 탓하고 세상에 불만을 갖거나 바꾸려고 할 일이 아니다. 불교는 언제나 내 안목이 문제이다. 내가 중심이고, 내 안목을 어떻게 바꿀 것인가에 달려 있다. 세상 돌아가는 것도 그렇고 사람도 마찬가지다. 어떤 사람이 아무리 봐도 칭찬할 게 없다면 그것은 본 사람이 그렇게 보았을 뿐이다. 내 안목을 바꾸면 그렇지 않다.
여기서 그러한 장엄을 죽 나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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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위일체향장엄(所謂一切香莊嚴)과
일체화장엄(一切華莊嚴)과: 일체 꽃 장엄과
일체의장엄(一切衣莊嚴)과: 일체 옷 장엄과
일체공덕장장엄(一切功德藏莊嚴)과: 일체 공덕장 장엄과
일체제불력장엄( 一切諸佛力莊嚴)과: 일체 부처님 힘 장엄과
일체불국토장엄(一切佛國土莊嚴)이라: 일체 불국토 장엄이라. 그런 것들이 전부 아름다운 보배로 장엄되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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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래소도(如來所都)며: 여래의 도읍지, 여래가 사시는 도시다. 처처가 다 여래가 사는 도읍지다. 지금 여기도 우리가 안목만 바꾸면 전신만신 여래다. 전신만신 보살마하살이고 여래소도다.
불가사의동행숙연제청정중(不可思議同行宿緣諸淸淨衆)이: 불가사의한 그리고 동행숙연 우리 함께 공부하고 함께 호흡하고 하는 숙세의 인연이라고 하였다.
지금 여기 문수선원은 환경이 이렇게 교실 하나 뿐이기 때문에 어디 편안하게 앉아서 차 한잔 마시며 “스님 어느 절에서 오셨습니까?” 하는 인사를 나눌 시간과 공간도 별로 없다. 그렇지만 알고 보면 우리 역시 무수한 과거에 동문수학하고 동수정업을 한 숙세 인연들이다. 동행숙연이라고 딱 해 놨다. 불가사의한 동행 숙연인 제청정중, 모든 청정한 무리들 대중들, 이 역시 우리를 두고 하는 소리다. 화엄경 공부하는 사람보다 더 청정한 대중이 어디 있는가? 비록 이 공부가 끝나고 각자 시간으로 돌아가면 또 무슨 일이 있을지는 차치하더라도, 지금 이 순간 화엄경을 공부하는 시간이라도 우리 모두가 청정대중이다.
스님들은 한달내 이 순간을 기다린다. ‘예습을 좀 하고 가? 말아야 돼?’ 경전을 쳐다보고 고민이라도 하고 경전을 한 번 뒤적거리기라도 하는 그런 순간들이 얼마나 훌륭한 시간인가? 사실 솔직하게 승려라 하더라도 그런 생각을 하는 사람들이 몇 이나 있는가? 그래서 정말 화엄경을 공부하는 우리 스님들은 청정대중이다. 그런 긍지와 자부심을 가져야 된다.
내가 오늘 BBS 국장님을 오시라고 한 것은 우리가 공부하는 법회를 BBS에서 계속 찍어가는데 일주일에 한 서너 번 나오면 잘 나온다. 그걸 계속 매일 좀 나오도록 해달라고 부탁하기 위해서 부른 것이다.
무슨 방법을 강구하더라도 매일 나오게 해달라.
여기서 이렇게 공부한다고 스님들에게 자격증이나 고과 점수가 나오지 않는다. 아무것도 없다. 그런데도 자발적으로 서울에서 가야산에서 전라도에서 심지어 순천 선암사에서 그 먼데서 스님들이 오시는데 어디서 오시는지 내가 다 외우지를 못한다.
각 지방에서 다 이렇게 오셔서 매달 화엄경 공부를 한다. 이들이 청정대중이다. 이런 모습을 전국의 많은 스님들이 보고 경각심도 일깨우도록 하자고 해서 BBS 국장님을 초청한 김에 오늘 스님들이 이런 펜도 하나씩 얻게 되었다.
아마 그 일은 반드시 성사가 될 것이다.
불가사의한 동행숙연제청정중이니 오늘 모처럼 오신 동출스님도 모두가 숙세 동행한 정업을 한 동수정업제자들이다. 청정대중이
어중지주(於中止住)하야: 그 가운데서 머물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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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세중(未來世中)에: 미래세중에
당성정각(當成正覺)하리니: 당성정각하리니.
공부한 우리가 결국 어디에 가겠는가? 결론은 당성정각이다. 당연히 정각을 이루는 일 밖에 없다. 어느 날 소동파처럼 눈을 딱 뜨는 날이 온다.
소동파는 ‘도대체 유정설법은 많이 들어서 참 세상에 똑똑한 거사인데 무정설법(無情說法) 소리를 왜 듣지 못하냐?’라는 소리를 선사에게 한마디 듣고 ‘무정설법 무정설법 무정설법’ 이것이 화두가 되어 꽉 막힌 멍청이가 되어 버린 채 산사를 내려온다. 폭포수가 떨어지는 소리도 안들렸다.
그런데 눈앞에서 딱 폭포를 보니 그 때 비로소 폭포 소리가 들렸다. 산이 떠나가라고 물소리를 내며 폭포가 떨어지는데도 안들릴 정도로 소동파는 ‘무정설법’이라는 화두에 무심삼매로 들어갔던 것이다. 화두를 들려면 그 쯤은 들어야 한다.
‘무슨 포크레인 소리 난다. 저것 좀 멈춰라’ 어린이들이 여름 수련대회를 하면 ‘애들 시끄럽다 저것 좀 딴 데 가서 하라’ 이런 식으로 선방에 앉아서 불평불만 하고 있을 일이 아니다.
지축을 뒤흔드는 굉음소리도 귀에 들리지 않고 ‘무정설법 무정설법’에만 골몰하다가 폭포를 보는 순간 비로소 귀가 열리고 폭포소리가 귀에 들리기 시작하자 ‘이 산천초목 전체가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이다’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지축을 뒤흔드는 폭포소리가 그대로 부처님의 광장설법이다’라는 사실을 소동파는 알게 되었다.
눈을 뜨면 그렇다.
미래세 중에 당성정각하리니 우리는 모두 동수정업해서 미래세중에 당성정각한다. 마땅히 정각을 이루게 되어 있다. 이것은 따논 당상이다. 지은 업이 어디가겠는가.
‘만반장불거(萬般將不去)요 유유업수신(唯有業隨身)이라’ 죽을 때는 아무 것도 못 가져간다. 어떤 통장도 못가져 가고 금은보화도 못 담아간다. 수의(壽衣)에는 아예 주머니가 없다. 그런데 오직 업만 따라간다. 우리가 이렇게 화엄경을 공부하는 이 청정선업만 따라간다. 그러니까 결국 종착지는 정각을 이루는 당성정각 하는 그 자리다. 그것이
일체제불지소성취(一切諸佛之所成就)라: 일체 모든 부처님이 성취한 바다. 부처님이 무엇을 꿈꾸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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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세소도(非世所睹)요: 세상 안목으로 볼 바가 아니고
보살정안(菩薩淨眼)이라야: 보살의 청정한 안목이라야
내능조견(乃能照見)이니라: 이에 능히 환히 비춰볼 수 있다. 보살정안인 수준이 높은 사람들은 다 알아듣는다. 세속적인 속된 생각에 꽉 쩔어 있는 사람은 도저히 귀에 안들어 온다. 보이지도 않고 귀에도 안들어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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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제보살(此諸菩薩)이: 이 모든 보살들이
구대위덕(具大威德)하야 : 대 위덕을 갖추어서
숙식선근(宿植善根)일새: 숙세에 선근을 심었을새
지일체법(知一切法)이: 모든 법이
여환여화(如幻如化)하며 : 환과 같고 변화, 화와 같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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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행보살제청정엄(普行菩薩諸淸淨業)하며 : 보살의 모든 청정한 업을 널리 행하며
입불사의자재삼매(入不思議自在三昧)하며: 불가사의 자재 삼매에 들어가며
선교방편(善巧方便)으로: 아주 뛰어난 방편으로, 이 선교방편이 중요하다. 화엄경에 선교방편이 얼마나 자주 나오는가?
우리가 무슨 의사전달을 한다, 자기 표현을 한다, 뭘 요구를 한다 하는 것도 타이밍을 잘 맞춰야 된다. 분위기를 잘 맞추고 타이밍을 잘 맞추면 열 배 효과가 있는데 제대로 못 맞추면 마이너스가 된다.
집에서 용돈을 좀 더 올려달라고 할 때도 부모 마음 상태같은 것을 잘 살펴봐서 ‘ 한달에 만원만 올려주십시오’ 라고하면 ‘만원 갖고 안돼. 이만원 올려줄게’ 라고 나올 수도 있다. 부모기분이 나쁘고 상황이 안좋을 때 ‘딱 만원 올려달라’고 하면 ‘니 다음달부터는 용돈없다’ 이렇게 나올 수도 있다.
선교방편이라는 것이 그런 것이다. 이런 예는 자질구레한 세속적인 예이니까 문제도 아니다. 그러나 진정으로 중생을 교화하고 사람들에게 신심을 내게 하려면 중생을 교화하는 데는 선교방편이 중요하다.
잘 살펴서 해야지 그저 어떤 사람이 오면 ‘큰 게 하나 물렸다’ 하고 참지 못하고 자기 마음속에 있는 욕심부터 표현하면 도로 띠어 버린다.
놓친 고기가 크다고 그렇게 되는 것이다. 선교방편이 참 다양하게 쓰인다. 방편으로는
능작불사(能作佛事)하며: 능히 불사를 지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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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불광명(放佛光明)하야: 부처님의 광명을 놓아서 부처님의 광명이 바로 법이다. 진리의 가르침이 부처님의 광명이다. 지금 형광등 좋고 낮에는 햇빛이 좋은데 무슨 광명이 필요한가? ‘어디에 방광했다’ 대심범부 화엄행자는 그런 데 놀아나면 안된다. 이 진리의 가르침보다 더 큰 방광이 어디 있는가? 방불광명하야
보조세간(普照世間)을: 세상을 환하게 비추는 것을
무유한극(無有限極)하며: 한극이 없게 한다. 한이 없다, 끝이 없다.
불법 가운데 특히 화엄경을 공부하다보면 너무 좋은 가르침이 많고 이치가 많고 좋은 사상도 많은데 늘 내가 집중적으로 이야기 하는 것은 인과의 법칙, 연기의 도리다. 이 현상을 이해하고 현상의 모든 문제를 푸는 데는 인과의 법칙 연기의 도리보다 더 좋은 열쇠는 없다. 그거 하나 제대로 체득하면 그만 번뇌가 다 사라져 버린다.
그래서 요즘에 내가 <환생,카르마(業), 죽음 이후의 삶>이라고 하는 책을 많이 보급하고 있다. 이것은 순전히 인과법칙에 관한 이야기다. 인과법칙은 불교의 전매특허인데 서양사람이 얼마나 정교한 논리로 설명 해놓았는지 내가 그걸 읽고 그만 감동을 받아서 책으로 만들어서 요즘 잘 나가고 있다.
잘 나간다니까 잘 팔리는 거로 알면, 뭐 그렇게 알면 된다.(무상으로 보시하고 있다)
보조세간을 불법가지고 뭘 세간을 밝게 비출 것인가? 우리는 아주 강력한 무기를 하나 가지고 있어야 된다. 그 강력한 무기는 인과의 법칙이다. 인과의 도리다. 인과법칙을 가지고 세간을 환하게 가르쳐야 된다.
(5) 現在佛의 世界莊嚴
現在一切諸佛世尊도 悉亦如是莊嚴世界하사대 無量形相과 無量光色이 悉是功德之所成就며 無量香과 無量寶와 無量樹와 無數莊嚴과 無數宮殿과 無數音聲이며 隨順宿緣諸善知識하야 示現一切功德莊嚴호대 無有窮盡하니 所謂一切香莊嚴과 一切鬘莊嚴과 一切末香莊嚴과 一切寶莊嚴과 一切旛莊嚴과 一切寶繒綵莊嚴과 一切寶欄楯莊嚴과 阿僧祗金網莊嚴과 阿僧祗河莊嚴과 阿僧祗雲雨莊嚴과 阿僧祗音樂이 奏微妙音하는
"현재에 계신 모든 부처님 세존도 모두 이와 같이 세계를 장엄하시니, 한량없는 형상과 한량없는 광명이 모두 공덕으로 이루어진 것이며, 한량없는 향, 한량없는 보배, 한량없는 나무, 수없는 장엄, 수없는 궁전, 수없는 음성은 지난 세상의 인연을 따르는 선지식들이 온갖 공덕의 장엄을 그지없이 나타낸 것이니, 이른바 온갖 향장엄, 온갖 깃발장엄, 온갖 보배채단장엄(綵緞莊嚴), 온갖 보배난간장엄이며, 아승지 황금그물로 장엄하고, 아승지 강으로 장엄하고, 아승지 구름과 비로 장엄하고, 아승지 음악으로 미묘한 소리를 연주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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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불(現在佛)의 세계장엄(世界莊嚴):현재세의 부처님이 장엄한 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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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일체제불세존(現在一切諸佛世尊)도 : 현재 일체 제불 세존도
실역여시장엄세계(悉亦如是莊嚴世界)하사대: 또한 앞에 설명한 바와 같이 세계를 장엄하는데
무량형상(無量形相)과: 한량없는 형상과
무량광색(無量光色)이: 한량없는 광색이
실시공덕지소성취(悉是功德之所成就)며 : 모두가 공덕으로 성취한 바다. 알고보면 불법이라는 게 얼마나 빛나는가. 우리가 심혈을 기울여서 제대로 공부하면 이보다 더 빛나고 공덕이 되는 것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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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량향(無量香)과
무량보(無量寶)와
무량수(無量樹)와: 무량 나무와
무수장엄(無數莊嚴)과: 무수한 장엄과
무수궁전(無數宮殿)과: 무수한 궁전과
무수음성(無數音聲)이며: 무수한 음성이며
수순숙연제선지식(隨順宿緣諸善知識)하야: 또 숙연 과거생의 인연 맺은 모든 선지식을 수순한다. 우리는 무수한 생을 거듭하면서 수많은 선지식과 인연을 맺었다. 서로 스승이 되고 제자가 되고 아버지가 되고 자식이 되고 인연을 그렇게 서로 바꿔가면서 맺어 오면서 살았다.
유교에는 ‘도오선자시오적(道吾善者是吾賊)이요 도오악자시오사(道吾惡者是吾師)’라는 말이 있다. 내 성미에 맞게 잘 하는 사람은 사실은 나에게 적이고, 나를 부정하고 나를 경책하고 나에게 안좋은 점, 잘못된 점을 지적해주는 사람은 진짜 나의 스승이라는 뜻이다. 숙세에 인연 맺은 모든 선지식을 수순해서 모두가 알고 보면 다 스승이고 선지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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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현일체공덕장엄(示現一切功德莊嚴)호대: 일체 공덕장엄을 시현하되
무유궁진(無有窮盡)하니: 다함이 없으니
소위일체향장엄(所謂一切香莊嚴)과: 소위 일체 향장엄과
일체만장엄(一切鬘莊嚴)과: 꽃다발 장엄과
일체말향장엄(一切末香莊嚴)과: 일체 가루향 장엄과
일체보장엄(一切寶莊嚴)과: 일체 보배 장엄과
일체번장엄(一切旛莊嚴)과: 일체 번장엄과, 사찰에서 큰 행사를 할 때 번을 단다.
일체보증채장엄(一切寶繒綵莊嚴)과: 일체 증체 장엄. 비단으로 수를 놓아서 장엄한다. 요즘도 사회에서 행사를 하면 깃발부터 단다. 운동 경기가 펼쳐져도 깃발부터 나부끼는데 요즘 인쇄술이 좀 좋고 물질은 좀 풍부한가? 그 깃발마다 잔뜩 인쇄를 해서 나부낀다. 그런 것이 증체 장엄이다. 보증체, 보물 비단 이러한 장엄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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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체보란순장엄(一切寶欄楯莊嚴)과: 일체 난간 보배로 만든 난간 장엄과
아승지금망장엄(阿僧祗金網莊嚴)과: 무수히 헤아릴 수 없이 많고 많은 금실로 짠 그물 장엄과
아승지하장엄(阿僧祗河莊嚴)과: 또 물이 없을 수 없다. 물이 곳곳에 흐르도록 하천을 만든 장엄과
아승지운우장엄(阿僧祗雲雨莊嚴)과: 하늘에서 비가 내리고 분수도 만들어서 분수쇼도 보여주는 등등 장엄과.
요즘 분수는 얼마나 멋지게 만들었는가?
이 책이 부처님 열반하시고 한 오 육 백년 경에 결집됐다고 하더라도 지금으로부터 2000년 전이다. 이천 년 전에 도 이런 표현을 했다. 어떤 안목으로써 이렇게 표현할 수 있었겠는가? 깨달음의 안목이라고 하는 것은 정말 위대하다.
(6) 世界中의 佛國土
如是等無量無數莊嚴之具로 莊嚴一切盡法界虛空界에 十方無量種種業起한 佛所了知와 佛所宣說인 一切世界하니 其中所有一切佛土가 所謂莊嚴佛土와 淸淨佛土와 平等佛土와 妙好佛土와 威德佛土와 廣大佛土와 安樂佛土와 不可壞佛土와 無盡佛土와 無量佛土와 無動佛土와 無畏佛土와 光明佛土와 無違逆佛土와 可愛樂佛土와 普照明佛土와 嚴好佛土와 精麗佛土와 妙巧佛土와 第一佛土와 勝佛土와 殊勝佛土와 最勝佛土와 極勝佛土와 上佛土와 無上佛土와 無等佛土와 無比佛土와 無譬喩佛土라
"이와 같이 한량없고 수없는 장엄거리로 온 법계, 허공세계에 가득한 온갖 세계를 장엄하였으니, 시방의 한량없는 갖가지 업으로 일어났으며, 부처님의 아시는 바이며 부처님이 말씀하시는 세계들이었고, 그 가운데 있는 모든 부처님 국토들은 이른바 장엄한 부처님 국토,
청정한 부처님 국토, 평등한 부처님 국토, 아름다운 부처님 국토, 위덕있는 부처님 국토, 광대한 부처님 국토, 안락한 부처님 국토, 깨뜨릴 수 없는 부처님 국토, 다함이 없는 부처님 국토, 한량이 없는 부처님 국토, 동하지 않는 부처님 국토, 두려움 없는 부처님 국토, 광명한 부처님 국토, 어기지 않는 부처님 국토, 사랑스러운 부처님 국토, 널리 비치는 부처님 국토, 훌륭한 부처님 국토, 화려한 부처님 국토, 교묘한 부처님 국토, 제일가는 부처님 국토, 수승한 부처님 국토, 썩 나은 부처님 국토, 가장 나은 부처님 국토, 끝가지 나은 부처님 국토, 상품(上品)인 부처님 국토, 위없는 부처님 국토, 짝할 이 없는 부처님 국토, 비길 데 없는 부처님 국토, 비유할 수 없는 부처님 국토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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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중(世界中)의 불국토(佛國土): 세계 속에 있는 부처님의 국토
*
아승지음악(阿僧祗音樂)이
주미묘음(奏微妙音)하는: 아주 아름다운 소리를 연주하는
여시등무량무수장엄지구(如是等無量無數莊嚴之具)로: 이와 같은 등 한량없고 수가 없는 장엄의 도구로써
장엄일체진법계허공계(莊嚴一切盡法界虛空界)에: 일체 진법계 허공계에
시방무량종종업기(十方無量種種業起)한: 한량없는 업으로 일어나는
불소요지(佛所了知)와: 부처님이 환하게 잘 아시는 바와
*
불소선설(佛所宣說)인: 부처님이 설명하신
일체세계(一切世界)하니: 일체 세계를 장엄하니 장엄을 여기에 새긴다.
기중소유일체불토(其中所有一切佛土)가: 그 가운데 있는 바 일체 불토가
*
소위장엄불토(所謂莊嚴佛土)와 :소위 장엄불토와
청정불토(淸淨佛土)와
평등불토(平等佛土)와
묘호불토(妙好佛土)와
위덕불토(威德佛土)와
광대불토(廣大佛土)와
안락불토(安樂佛土)와
*
불가괴불토(不可壞佛土)와 : 깨뜨릴 수 없는 불토와
무진불토(無盡佛土)와: 다함이 없는 불토와
무량불토(無量佛土)와
무동불토(無動佛土)와
무외불토(無畏佛土)와 : 두려움이 없는 불토와 위험한 게 아무것도 없는 불토와
광명불토(光明佛土)와
무위역불토(無違逆佛土)와 : 어디에 가면 마음에 안들고 거슬리는 장소도 있다.전혀 그런 것이 없는 무위역불토와
가애락불토(可愛樂佛土)와: 아주 아름답게 생기고 거기가면 살고 싶고 한 그런 곳과
보조명불토(普照明佛土)와: 널리 환하게 비추는 불토와
엄호불토(嚴好佛土)와: 장엄이 아름답게 되어 있는 불토와
정려불토(精麗佛土)와: 정밀하게 화려하게 되어 있는 불토와
묘교불토(妙巧佛土)와 : 미묘하게 어떤 기술을 가미한 불토와
*
제일불토(第一佛土)와: 제일 가는 불토와
승불토(勝佛土)와: 승불토와
수승불토(殊勝佛土)와: 승이 있고 또 수승이 있고 그렇다.
최승불토(最勝佛土)와: 가장 수승한 불토와
극승불토(極勝佛土)와: 극승불토와 표현 할 수 있는 건 다 표현했다. 화엄경을 공부하면서 자꾸 소리내서 읽으면 언변도 느는데 이토록 풍부한 표현을 한 경전이 없다. 화엄경은 한 번 예를 들었다 하면 비슷비슷한 말이 최하 열 번은 반복되어 나간다. 그러니까 어휘가 풍부해지는 것이다. 여기만 보더라도 승불토와 수승불토 최승불토와 극승불토 승(勝)자를 네 번이나 썼다.
*
상불토(上佛土)와 : 가장 높은 불토와
무상불토(無上佛土)와: 더 이상 높은 것이 없는 무상불토와 상(上)자도 두 번이나 썼다.
무등불토(無等佛土)와: 같은 이 없는 불토와
무비불토(無比佛土)와: 왜 안나오나 했다. 무비불토와
무비유불토(無譬喩佛土)라 : 비유할 수 없는 불토니라.
내가 화엄경 공부를 하면서 이 대목도 수십 번 봤는데, 화엄경이 뭔지도 모를 때 불명을 받은 나는 천생 화엄경 공부를 하게 되어 있는 운명인 것 같다.
나의 불명을 지어준 우리 노스님은 이름을 짓느라 일부러 고심하고 하는 것을 싫어하셔서 아무 책이나 넘겨서 거기 있는 구절을 하나 얼른 갖다 붙여서 이름을 짓곤 했다. 금강경오가해(金剛經五家解) 함허득통서(序)에 ‘탕탕호기무비(蕩蕩乎其無比)요 외외호기무륜(巍巍乎其無倫)이로다’ 하면서 무륜(無倫)과 무비(無比)가 나온다. 짝 륜(倫)자와 비는 비교할 비(比)자다.
그때는 받을 사람만 있다면 계를 수시로 주었다. 아침에 주었는데 저녁에도 주고 그 다음날 받을 사람이 있으면 또 주고 해서 하루만에 계 받는 사람도 있고 일주일 만에 받는 사람, 심지어 십 년 만에 받는 사람도 있고 그 계받는 것이 들쑥날쑥 한 시절이었다.
보지는 못했지만 혹 기차를 타고 가다가 그 자리에서 계를 주는 경우도 있었다고 들었다. 어린 시절에 ‘저사람은 기차간에서 계받은 사람이야’라고 하는 소리를 들었다.
그런 시절에 내가 계를 받을 때 두 사람이 계를 받았다.
한 사람은 무륜(無倫)이 되고 나는 무비(無比)가 되었다.
그런 식으로 아무렇게나 그냥 얻은 불명인데도 아마 가만히 생각해 보면 아마 숙세의 인연으로 화엄경 공부를 많이 하라고 받은 불명 같다.
비유할 수 없는 불토라고 하는 것은 우리가 사는 곳이다.
그 모든 불토 장엄해 놓았는데 이렇게 여러 가지 이름으로 표현했다. 화엄경 서두에는 ‘금강소성이다. 다이아몬드로 이루어졌더라’ 라고 표현했고 여기는 한 수 더 떠서 우리가 사는 수많은 불토이름을 나열했다.
소위 장엄불토와 청정불토와 평등불토와 묘호불토와 위덕불토와 광대불토와 안락불토 등등 전부 끝까지 좋은 내용으로 표현되었는데 이런 불토가 어디 멀리 있는 곳이 아니고 우리가 사는 바로 지금 이 자리를 두고 하는 소리다.
결코 다른 곳에서 찾으려고 해서는 안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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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_()()()_
아이구! 대하소설 작품... 大作이네요! 수고하셨어요!
‘아름다워라, 세상이여! 환희로워라, 인생이여!...고맙습니다 _()()()_
아름다원라, 세상이여!
환희로워라. 인생이여!
아~ 이대로가 화장장엄 세계요.
아~ 이대로가 청정법신 비로자나불인 것을!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 나무대방광불화엄경_()()()_
사람으로 태어난 보람을 누리고 있는 이 순간... 부러울 것이 없습니다. 고맙습니다.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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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 대방광불화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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