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은 참으로 우연히 이루어지는 일들이 많다. 음악 감상을 하다가 지인에게 음악을 좀 더 깊게 이해하기 위한 책을 소개해 달라고 부탁했다. 여러 책을 소개받았다. 그중에서 <나머지는 소음>이라는 책이 유명하다고 한다. 책을 좋아하고 책상에 앉아서 독서하는 것이 좋은 나로서는 당연히 그 책을 구입하려고 하였다. 교보문고에 검색해 보니 그 책은 품절이었다. 중고 서점에서는 10만 원 가까운 가격에 판매가 되고 있었다. 영등포 구립도서관을 검색해 봐도 그 책은 없었다. 국회도서관에는 있었다. 국회도서관은 집에서 걸어서 30분이면 도착할 수 있기에 국회도서관을 방문했다. 국회에서 근무하고 있는 친구가 있어서 십여 년 전에 국회를 방문해 본 적은 있었지만, 국회도서관은 처음이었다. 일요일인데도 관람실에 사람들이 많았다. 1층 로비에도 책들이 진열되어 있었고, 그 주변으로 편안한 의자가 마련되어 있었다. 읽어볼 만한 책들이 눈에 많이 띄었다. 그 모든 것들이 우연히 이루어졌다.
<나머지는 소음이다>라는 책은 700페이지나 되는 두꺼운 책이다. 그래서 앞부분만 읽다가 관심 있는 다른 부분은 프린트하기로 하였다. 직원의 안내를 받고 1층 복사실로 내려갔다. 책 전체를 복사할 수는 없고, 책의 1/3은 복사할 수 있다고 한다. 약간의 돈도 필요했다. 필요한 페이지만 지정하여 복사를 신청하고 난 후에 1층 로비에 진열된 책들을 구경하였다. 구입하고 싶었지만 구입하지 못한 책들도 많이 진열되어 있었다. 그러는 중에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라는 책이 눈에 들어왔다. 예전부터 관심이 있었던 책이었다. 망설일 필요가 없이, 자리를 잡고 책을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참으로 놀라웠다. “내 생각과 어쩌면 이렇게 유사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에 그 책의 절반을 순식간에 읽었다. 내가 미처 몰랐던 내용도 있었다.
기억에 남는 책의 내용은 이러했다. '집단적 포기'라는 부분이 기억에 남는다. 집단적 포기란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잠재적 독재자에게 권력을 넘기는 것을 의미한다. 집단적 포기의 원인을 이 책에서는 두 가지로 설명하고 있다. 첫째는 잠재적 독재자를 통제하거나 길들일 수 있다는 착각과 두 번째는 이념적 공모가 이루어진다는 것이었다. 이론적 공모는 주류 정치인들의 이해관계가 잠재적 독재자의 이해관계와 맞아떨어진 경우이다. 아마도 현 정권의 수장이 민주주의를 위협하는 잠재적 독재자라면, 정치권들의 이념적 공모가 이루어졌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물론 이 책은 트럼프 행정부에 대한 비판이라고 보인다. 하지만 이 책은 우리의 현실에도 타산지석으로 삼을 만하다.
놀라운 것은 이 책에서 잠재적 독재자를 가리키는 네 가지 지표를 제시하고 있는데, 우리의 현실과도 너무나 유사하다는 것이다. 첫째가 민주주의 규범에 대한 거부, 혹은 규범 준수에 대한 의지 부족이다. 그들은 기본적인 시민권 및 정치 권리를 제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두 번째가 정치 경쟁자에 대한 부정이다. 상대 정당을 근거 없이 범죄 집단으로 몰아세우면서, 법률 위반을 문제 삼아 그들을 정치 무대에서 끌어내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세 번째가 폭력에 대한 조장이나 묵인이다. 그리고 마지막이 언론 및 정치 경쟁자의 기본권을 억압하려는 성향이 있다는 것이다. 노조를 폭력단체로 몰고 가고, 야당의 대표를 사법처리하려고 하고, 시민 언론을 탄압하는 현 정부와 매우 유사하다. 이 책을 쓴 저자의 기준으로는 현 정부는 잠재적 독재자의 정권이다.
만약 축구경기를 하는데 심판이 매수당하고, 상대편 주전 선수를 경기에 참가하지 못하게 압력을 가하고, 자신들에게 유리한 쪽으로 경기 룰을 바꾸면, 그 경기는 공평한 경기가 될 수 없다. 그곳에서 민주주의는 무너진다. 법관을 자기편으로 앉혀서 법 집행을 무력화시키고, 자신을 반대하는 모든 사람을 법의 이름으로 단죄하려고 하고, 법을 자신들에게 유리하도록 바꾸어 버리는 순간, 민주주의는 무너진다. 잠재적 독재자는 법의 이름으로 자신의 야심 찬 계획을 진행시킨다. 총이 아니라 법의 이름으로 자신의 계획을 진행시키기에 깨어 있지 않은 국민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 민주주의가 무너지고 난 후에야 비로소 뒤늦게 그 속셈을 알아차린다.
저자는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해 상호 관용과 제도적 자제가 중요하다고 보았다. 정치 상대를 정당한 경쟁자로 인정하라는 것이다. 이는 새로운 이야기가 아니다. 최근에 읽었던 바로는 일찍이 니체가 이야기했다. 악셀 호네트도 인정투쟁에서 언급한 이야기이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이미 있었던 것을 현실에 맞게끔 새롭게 잘 조합하면, 우리는 현재의 역경을 잘 헤쳐나갈 수 있다고 믿는다. 니체가 이야기했든, 이 책의 저자가 이야기했든 중요한 것이 아니다. 다만 민주주의의 중요한 가치인 자유와 평등의 조화를 위해서는 상호 인정과 제도적 자제라는 절차적 기반이 필요하다. 그것이 없다면 민주주의는 작동을 멈출 것이다. 민주주의는 우리 모두가 공유하는 시스템이다. 그러므로 그 운명은 우리 모두의 손, 시민의 손에 달려 있다. 깨어있는 시민들이 힘을 모아야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사회이다. 우연히 국회도서관에 가지 않았다면, 이런 글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수많은 우연을 만들기 위해서라도 더 많이 사회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얼마나 많은 희생을 치러야 죽음을 알 수 있을까?” 밥 딜런의 노래 가사가 새롭게 기억난다.
첫댓글 진심으로 바랍니다.
정치 상대를 정당한 경쟁자로
인정하기를,
처단해야할 범죄집단이 아니라..! !
깨어 있는 시민들이 힘을 모아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