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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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십(영어: Worship music), 또는 경배와 찬양은 찬양, 즉 개신교 음악의 한 분류로서, 이 분류에 속하는 노래들은 하나님을 직접적으로 경배하는 내용을 주로 담고 있으며, 부르기 쉽고, 반복적이며, 비교적 짧은 편이다. 교회나 예배 모임들에서 자주 불려지기도 하지만, 개신교인의 일반적인 삶에서도 - 집에서나 일할 때나 대화할 때 - 많이 듣거나 부르기도 한다.
[편집] 설명과 현황
워십 음악의 목적은 사람들과 온 교회가 개인의 경배 경험과 하나님과의 친밀감을 더욱 깊게 느끼는 데에 있다. 기독교인이 하나님과의 관계를 굳게 세우고, 창조주에게 올리는 찬양과 경배를 도우며, 또 하나님께서 그에게 무엇을 행하셨는지 감사하도록 돕는 것이 워십 음악의 초점이다.
워십 음악은 때로 경배와 찬양이라고 불리며, 이 두 낱말이 오늘날 함께 쓰이고 있다. 이 중에서, '찬양'은 빠르며, 못 갖춘 마디로 시작되는 종류의 노래를 뜻하며, '경배'는 느리며 조금 더 가슴에서 느껴지는 하나님에 대한 경배를 뜻한다. 그러나, 현재에 이르러 이러한 경계가 거의 사라졌다.
워십은 현재 새로운 두 가지 스타일로 잘 알려져 있는데, 그 한 부분은 조용한 워십을 뜻하는 인티메이트 워십, 또 다른 한 부분은 전자 악기 없이 기타 종류의 악기 중심으로 불려지는 찬송인 어쿠스틱 워십이 있다.
현재의 ‘워십’이라 할 수 있는 스타일은 2000년 이후로 거대한 선호도를 가지게 되었다. 그 뒤로 많은 워십 앨범들이 메이저 기독교 음반사, 개인 음반 모두 많이 출반되었다. 이러한 ‘기독교 음악 시장의 폭발’은 워십 음반들이 시장의 중심이 되게 했으며, 더 이상 워십 곡들이 예배 안에서만 불리지 않게 되었다.
대한민국에서 워십은 합창 중심의 포맷으로 된 워십 음악을 그대로 하스데반이 이끄는 올네이션스 경배와 찬양이 받아들이면서 시작되었다. 또 그 시점에, 예수전도단에서도 비슷한 스타일의 찬양들을 부르기 시작했다. 그 뒤, 1990년대 말 CCM의 발전과 함께 워십도 발전하기 시작했으며, 최근 스캇 브래너가 이끄는 다윗의 장막과 천관웅이 이끄는 디사이플스, 또 예수전도단 화요모임이나 캠퍼스 워십, 이 세 그룹이 워십계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또한, 워십 음반 발매뿐 아니라 대한민국에서 발표되지 않은 워십 음악으로 워십 콘퍼런스도 개최하는데, 대한민국의 대표 워십 음악 콘퍼런스로는 다리놓는사람들에서 '다리놓는사람들 예배인도자 콘퍼런스'를 해마다 개최하고 있으며 다리놓는사람들에서 워십 사역을 위해 독립한 어노인팅과 협력하여 새로운 워십 음악 보급에 힘쓰고 있다.
가스펠 음악 (음악) [― 音樂, gospel music]
교회의 예배의식,
영가(spiritual), 블루스 노래에서 유래한 미국 흑인음악의 한 형태.
1930년대 대공황시대부터 노래집 출판, 연주회 음반, 라디오·텔레비전의 예배방송을 통해 널리 보급되었다.
19세기말 오순절교회의 발전은 가스펠 음악이 나오게 된 직접적인 계기가 되었다. 오순절교회 예배는 방언(성령을 받은 신자가 황홀한 상태에서 말하는 내용이 불분명한 말)과 아프리카 흑인의 원무(圓舞)와 관련이 있다. 1920년대 오순절교회 목사들의 설교 테이프는 미국 흑인들 사이에서 엄청난 인기가 있었는데 여기에 합창·악기반주와 더불어 청중들의 참여상황도 함께 녹음한 음반들이 계속 나왔으므로 가스펠 음악은 백인들에게도 알려지게 되었다. 흑인 가스펠 전도사와 흑인 음악가들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았다. "숨쉬는 모든 것들아, 야훼를 찬미하여라"(시편 150:6)라는 성서의 구절에 따라 오순절교회는 탬버린·피아노·오르간·밴조·기타·현악기·금관악기 등을 예배에서 사용했다. 목사가 설교하는 동안에 종종 높은 음역의 소프라노 코러스가 배경음으로 깔리기도 한다. 즉흥적인 낭독 악구, 멜리스마(한 음에 여러 개의 음절을 붙여 노래부르는 방식) 노래, 과장된 표현 등이 가스펠 음악의 특징이다.
가스펠 음악에는 거리에서 전도하는 순회 설교사들의 노래와 통기타 연주, 때로는 악대에 맞춰 노래하는 일반 연주자들의 음악, 남성4중창단도 포함된다. 남성4중창단은 화려한 무대의상을 입고 광란하듯 춤을 추며 풍부한 감정으로 반주없이 노래하는 것이 특징이다.
토머스 도시(1899 출생)의 작품 중에서 〈소중한 주님 Precious Lord〉이 가장 유명하다.
틴들리 목사(1851~1933)는 〈나는 승리하리라 I'll Overcome〉라는 노래를 작곡했는데, 이 노래는 미국 민권운동의 운동가인 〈우리 승리하리라 We Shall Overcome〉로 변형되어 널리 불렸다. 디트로이트의 목사 프랭클린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자신의 설교와 성가대의 합창을 담은 음반을 70개가 넘게 발표했다. 장님 목사 게리 데이비스(1896~1972)는 방랑하는 순회 설교자 겸 기타 연주자였다. 수녀 로제타 서프의 기타 연주와 노래는 1930년대에 나이트 클럽과 극장에까지 복음을 끌어들였다. 로버타 마틴은 시카고에 있는 성가대와 가스펠학교에서 활동했으며 마할리아 잭슨(1911~72)은 전세계를 순회공연했고, 텔레비전과 라디오에도 자주 등장했다. '솔 스터러스'(Soul Stirrers:영혼을 흔드는 사람들)라는 중창단은 인기가수 샘 쿠크를 배출했고, 1970년대의 가스펠 가수로는 안드레 크라우치가 유명하다.
영어로 된 종교적·민속적 성격의 찬미가.
북아메리카 백인과 흑인의 민속음악의 일종이다.
백인영가에는 전도 집회 및 신앙 부흥을 위한 모임에서 부르던 노래 등 여러 찬송가들이 포함된다. 시편의 구절을 한 줄 한 줄 따라 부르던 관습에서 비롯되었으며 이러한 관습은 적어도 17세기 중반에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다. 회중들은 대개 글을 읽을 수 없었으므로 선창자가 시편송의 가사를 먼저 한 줄씩 읊으면 회중은 동일한 가사를 친숙한 선율에 실어 노래 불렀고, 이 둘이 계속 교대되었다. 느린 곡조에 경과음이나 돈꾸밈음, 그밖의 장식음들로 장식되었으며, 가수마다 자신에게 맞는 음높이에서 고유한 즉흥 장식을 해나갔다(이러한 양식은 20세기에 와서도 흑인과 백인 교회 중 일부 지역에서 계속되었음).
백인영가의 첫번째 원천이 시편송과 관련되는데 비해, 2번째 원천은 찬송가를 부르던 노래 관습과 연관된다. 찬송가는 감리교 존 웨슬리와 찰스 웨슬리 같은 18세기의 종교적인 반대자들이 도입했는데 이들은 세속 민요 같은 기존의 곡조에 새로 만든 찬송가 가사를 붙였다. 복음주의파들의 이러한 찬송가들 중 대부분이 구전으로 전해졌다.
18세기 말엽에서 19세기 중반까지에는 신앙 부흥 운동이 여기저기서 일어났고 그결과 야영 집회나 전도 집회가 유행했으며 여기서 사람들은 열기에 가득 차서 집단 노래를 불렀다. 어떤 식으로 불렀는지는 완전히 알 수 없지만, 화성이 붙지 않았고, 특히 남성 고음 성부가 먼저 노래를 시작하고 여성 성부와 남성 저음 성부(베이스)가 옥타브 위나 아래에서(혹은 편한 음정으로) 중복해서 불렀던 것으로 짐작된다. 위에서 설명한 시편창처럼 부름과 응답의 방식으로 불렀으며 선율은 장식음으로 장식했다. 가사는 시구와 후렴구로 이루어졌으며 후렴구는 노래마다 같았다. 뿐만 아니라 민속 전통에서 선율을 가져왔기 때문에 새로운 노래도 어렵지 않게 즉흥연주를 할 수 있었다. 약속된 땅으로 돌아가는 내용이나 사탄의 패배, 죄를 극복하는 내용 등이 주제에 포함되었고, 전형적인 반복구로는 '흐르는 요단 강', '글로리아 할렐루야' 등이 있었다. 기존의 민속 전통에서 가져온 찬송가도 많이 불렸고, 대부분 구전되다가 후일 셰이프 노트 기보법(shape-note notation:미국 개신교의 선교 과정에서 사용하던 비정통적인 기보법)에 의해 민속 찬송가집에 기보되었다. 19세기에 신앙부흥운동과 관련된 영가와 그밖의 여러 민속찬송가들은 표준화된 유럽 찬송가 양식들이 들어오자 도시 교회에서 그 인기가 떨어지게 되었다. 그러나 구전의 전통이 지속된 몇몇 지역들과
셰이프노트 찬송가집을 사용하던 사람들에 의해 계속해서 사용되었다. 19세기에는 영가의 일종인 가스펠이 생겨났다. 정통 유럽 음악의 영향을 받은
가스펠은 선율과 가사를 새롭게 작곡했고, 기악 반주가 따랐으며 민속 찬송가와는 달리 화성이 붙었다.
한편
흑인영가는 주로 시골의 백인민속 찬송가가 변형된 형태였다(흑인은 백인과 함께 같은 신앙 부흥 야영집회에 참석했으며 흑인의 연주 양식은 백인 연주 양식에 영향을 끼쳤을 뿐 아니라 영향을 받기도 했음). 따라서 흑인영가 중에는 백인민속 음악의 전통 속에서 만들어진 노래들이 많았고, 그렇지 않더라도 미국 백인들의 세속 노래나 영국의
민속음악 선율과 많이 닮았다
(→ 미국 흑인). 그러나 흑인영가는 5음음계와 장조 음계로 된 선율들을 많이 빌려왔던 점이라든지 보컬의 성질이나 보컬 효과, 리듬 반주의 유형 등에서 백인영가와 뚜렷이 구분된다. 흑인영가는 또한 찬송가로서뿐만 아니라 노동요로도 불렸고 가사의 내용은 흔히 노동의 구체적인 내용을 반영했다. 흑인영가는 음악적으로 볼 때 아프리카의 민속 음악적 요소와 백인의 민속 음악적 요소가 한데 섞인 것이며 이 두 요소는 또다시 서로 영향을 끼쳤다. 부름과 응답의 방식이나 음계, 특정 음의 유동적 억양 등이 그 예가 된다. 아프리카 음악의 영향은 아프리카 특유의 노래 양식 및 복잡한 복리듬적 타악기 반주, 다성적인 합창 양식 등에서 볼 수 있고 원을 이루면서 소리치던(영가를 부를 때는 종교 춤이 따랐고 또한 타악기로 리듬을 쳤음) 아프리카 선조들의 관습까지도 나타났다.
남북전쟁 뒤에 흑인영가는 북부인들에 의해 '발견'되어 화성을 붙인 상태로 새롭게 발전했으며 직업 합창단이 불렀는가 하면, 한편으로 시골과 특정 교파에서는 옛 전통 양식 그대로 보전하기도 했다. 근대 흑인 가스펠 송은 백인 가스펠 송과 마찬가지로 영가에서 발전한 형태이며 반주가 따른다. 흑인 가스펠 송은 세속 흑인음악과 깊이 관련되었으며(영가가 노동요와 블루스에 밀접하게 관련된 것처럼) 흔히 재즈의 리듬과 재즈 악기, 전통적인 손뼉 반주 및 춤이 포함된다. 가스펠 송은 대개 새롭게 작곡되었지만 대중적인 곡조가 재즈에서 즉흥연주의 기초로 쓰인 것처럼 그 선율은 교회 예배에서 즉흥 연주의 기초로 사용되었다
찬송가 (그리스도교 음악) [讚頌歌, hymn]
(hymn은 신이나 영웅 등에 대한 '찬미의 노래'라는 뜻의 hymnos에서 유래).
그리스도교 예배에 사용하는 노래.
대개 회중들이 모여 부르는 유절형식을 가진 박절적 노래로 성서 이외의 가사를 갖는다. 고대 수메르나 그리스 등에서 비롯된 다른 모든 문화권에도 이런 유형의 노래들이 있다.
그리스도교의 찬송가는 히브리 사원에서 시편송을 부르던 관습에서 비롯되었다. 완전하게 보전된 최초의 가사는 그리스의 '포스 힐라리온'(Phos hilarion:19세기 미국의 시인 롱펠로가
〈가자, 즐거운 빛으로〉라는 제목으로 번역)으로, 그 기원은 200년경 또는 그 이전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찬송가가 체계적으로 발전한 것은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그리스도교를 공인한 기원후 313년 이후의 일이었다. 가장 먼저 번성했던 시리아에서는 시편송을 모방해 찬송가를 부르던 그노시스주의자(이단시 된 그리스도교 초기의 한 분파) 및 마니교도(3~7세기 페르시아에서 교세를 펼침)의 관습이 전해졌고, 그것이 비잔틴 교회에 의해 수용되었다. 비잔틴 교회의 예배 의전에서는 라틴 예배에서보다 찬송가가 더 중요한 위치를 차지했고, 따라서 비잔틴 찬송가는 카논이나 콘타키온(→
비잔틴 성가)과 같은 복잡한 유형들로 발전했다. 4세기 메소포타미아의 부사제이자 시인, 찬송가 작가였던 성
에프라임은 '그리스도교 찬송가의 아버지'라고 불렸다
(→ 비잔틴 제국).
서방지역에서는 포이티에르의 성
힐라리우스가 360년경에 찬송가 가사집을 만들었다. 거의 비슷한 시기에 밀라노의 성
암브로시우스는 회중들이 부르는 시편송과 찬송가를 모아 책을 만들었는데, 이것은 일면 정통 그리스도교와 이념적인 갈등을 보였던 아리아족의 찬송가를 견제하기 위해 만든 것이었다. 4행 연으로 된 약강 10음보 형식으로 된 이 초기 찬송가들은(이것들의 선율은 간단하고 민속적인 것으로 짐작됨) 당시 그리스도교권에 있던 라틴어 시에서 유래했다. 중세 말기에 이르면 훈련받은 합창단원들이 회중과 함께 찬송가를 불렀다. 새로 만들어진 선율은 장식이 더 많아졌고 기존의 것들도 종종 장식되었지만, 그 어느 경우라 하더라도 한 음에 붙는 가사의 음절 수는 대개 1개였다. 간혹 찬송가를 다성음악으로 만들기도 했는데, 이때는 대개 단성성가와 교대되었으며 특히 오르간 음악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예배 의전에 의한 회중 노래의 관습은 종교개혁 기간에 독일 루터교도들에 이르러서야 다시 나타난다. 독일 루터교 찬송가 선율인 초기
코랄은 화성이 붙지 않았고 반주도 없었다
(→ 코랄).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성가대와 오르간, 회중들이 함께 또는 따로 연주하는, 화성 붙은 형태들도 사용하게 되었다. 어떤 것은 새로 작곡하기도 했지만, 대부분 단성성가나 자국어로 된 봉헌송, 세속노래에서 가져온 것이었다. 세속 서정시 역시 루터와 같은 시대 루터교도들의 찬송가 가사에 영향을 끼쳤다. 중요한 초기 모음집으로는 루터와 요한 발터의 찬송가집(1524), 게오르크 라우의 찬송가집(1544) 등을 들 수 있다. 17, 18세기 루터 교회의
경건파는 서정적·주관적인 성격의 노래를 새롭게 독일 찬송가집에 수용했다. 이중에는 루터교도들의 것도 있지만 모라비아 교회 같은 다른 교파의 노래도 포함되어 있었다
(→ 개신교).
칼뱅교도들은 스위스에서, 그리고 나중에는 프랑스·영국·스코틀랜드 지방에서
시편송을 번역해서 즐겨 불렀다. 이들의 시편송은 규칙적인 박자를 갖고 있었고, 무반주 유니즌(제창)으로 불렀다. 영국 및 스코틀랜드의 프로테스탄트는 시편송만 허용했고, 특히 영국에서의 시편송은 프랑스·제네바의 시편송에서 가져온 가락에 가사를 붙여 불렀다. 따라서 영국의 프로테스탄트 시편송은 프랑스 시편송과 마찬가지로 규칙적 박자를 갖추었지만 프랑스어의 운율에 기초해서 만들었기 때문에 가락이 상당히 복잡하다. 한편 영국 시편송은 프랑스 시편송과는 달리, 몇 개의 운율 유형만을 사용했고, 처음엔 개개의 가락에 특정한 시편 가사만을 붙여 부르다가, 나중엔 서로 다른 노래에 같은 가사를 사용하게 되었다. 흔히 사용하던 운율은 영국 발라드의 운율 형태와 같은 8, 6, 8, 6(각 행의 음절수)으로, 영국 찬송가의 전형적인 운율로 계속 사용되었다
(→ 시편영창). 영국 찬송가의 결정적인 전환은 17세기말 독립 교회파(조합교회주의) 찬송가 작가였던 아이작
와트에 의해 이루어졌다(〈찬송가와 종교 노래 Hymns and Spiritual songs〉 1705~19). 18세기 중반 감리교의 창시자인 존
웨슬리와 찰스
웨슬리가 주도한 복음주의 운동은 영국과 미국에서 찬송가 노래의 기반을 확고히 했다. 찰스 웨슬리의 수많은 시들은 실험적으로 만든 다양한 운율들을 사용했고, 존 웨슬리는 독일의 훌륭한 찬송가들을 다수 번역했다. 이 두 사람은 또한 여러 독일 선율들을 사용하기도 했고, 이들의 후기 찬송가들에는 헨델 양식으로 된 음악도 상당수 포함되어 있다.
영국교회가 찬송가의 노래 관습을 정식으로 인정한 것은 1820년에 이르서였고, 이것은 셰필드의 한 교회의 찬송가 노래 관습에서부터 계속된 사람들의 요구에 의한 것이었다. 1833년에는 옥스퍼드 고(高)교회파(High Church:영국국교회 내의 일파로, 교회의 권위와 의식, 성찬 등을 중시) 운동이 일어, 찬송가의 작곡과 중세 찬송가의 번역, 단성성가 선율의 사용을 자극했다. 오늘날 사용하고 있는 영국 찬송가집의 역사에서 보전된 최초의 것은
〈신구 찬송가들 Hymns Ancient and Modern〉(1861, 개정 최종판 1950)인데 이것은 양식이 엄격하고 영국 성공회의 〈기도문〉에서 가사를 그대로 가져왔으며, 한 선율에 한 가사씩만을 붙여 만들었다
(→ 옥스퍼드 운동). 20세기로 접어들면서 2가지 중요한 모음집이 나타났다.
〈야텐돈 힘널 Yattendon Hymnal〉(1899)은 영국 시인 로버트 브리지가,
〈영국 힘널 The English Hymnal〉(1906)은 퍼시 디어머와 작곡가 랠프 본 윌리엄스가 편집했다. 특히 〈영국 힘널〉에는 여러 시편송과 민요 선율들이 포함되어 있다. 주로 루터교의 모범에 따른 대륙의 찬송가에서는 그밖의 전통도 찾아볼 수 있다. 이탈리아에서는 왈덴파 교회가 그 지방의 민요 및 오페라 양식들에 영향을 받아 회중 찬송가들을 사용했고, 16세기
반(反)종교개혁으로 인해 로마 가톨릭에서도 훌륭한 찬송가들의 작곡이 고무되었다. 19세기말에는 찬송가에 대한 관심이 다시 일어나 영국에서 〈웨스트민스터 힘널 West minster Hymnal〉(1940)을 탄생시켰다. 1960년대말에 미사 집전 중의 회중 노래가 부활됨으로써 새로운 형태의 찬송가 작곡을 자극했고, 또한 가톨릭 전통 이외의 유산들로부터 여러 찬송가들을 채택하게 되었다.
한국에서 찬송가는 근대음악의 발전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한국 최초의 찬송가는 감리교회 로스 와일러와 존스가 공동 편집한
〈찬미가〉로서 악보 없이 가사만을 적었으며, 1894년 언더우드가 악보가 들어 있는 〈찬양가〉를 편집·간행했다. 1905년 윤치호가 편집한 〈찬미가〉는 한국인에 의해서 만들어진 최초의 찬송가라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이후 1983년 75그리스도교 교파가 공동작업한 총 558장의 〈통일찬송가〉가 간행되어 한국 찬송가 사용의 일치를 보게 되었다.→
동형진행,
영가,
유사선율,
테데움라우다무스
성가 (음악) [聖歌, psalm]
종교적 성악곡.
일반적으로 가톨릭의 전례음악(典禮音樂)을 말하나, 프로테스탄트 교회의 찬송가를 포함한 그리스도교 종교
음악 전체를 가리키기도 한다. 성가의 기원은 유대교의 집회음악에서 찾을 수 있다. 이후 여러 형태로 발전하여 르네상스 시대의 그레고리오 성가에서 정점을 이루었는데, 이전까지 독창자 위주였던 성가에 합창 양식이 도입되었고 오르간 등의 악기반주도 따르게 되었다.→
교회음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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