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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13:1
갈수록 경쟁이 치열해지는 것 같습니다. 뒤쳐질까 불안하고 초초하여 몸과 마음이 쇠약해 집니다. 실상은 풍요가 갈등과 다툼을 더 많이 야기 하고, 더 차지하려는 욕심이 여기저기서 불꽃을 튀깁니다. 욕심 때문에 불화가 가득한 세상에서 과연 믿는 하나님의 백성들은 어떤 모습으로 살아야 하는가? 우리는 대개 보고 싶은 대로 보는 경향이 있는 것 같습니다. 문제는 그것이 우리의 가치관이 되고, 그 가치관을 욕망하면서 핀트가 어긋나게 되는데 남의 떡이 네 것보다 더 커 보이는 것도 한 예인 것 같습니다.
Competition seems to be getting fiercer. I'm nervous about falling behind and my body and mind are weakened. In reality, abundance causes more conflict and strife, and greed to occupy more sparks here and there. In a world full of discord because of greed, how should the people of God who believe live? It seems that we usually tend to see what we want to see. The problem seems to be that it becomes our values, and the focus is shifted while we desire those values, and it seems that another example is that other people's rice cakes look bigger than you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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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렬한 연애 끝에 결혼을 하고 신혼여행을 간 신랑이 꿈같은 첫날밤을 보내고 아침을 먹으러 갔는데 식당에 앉은 커플의 신부들이 자기 신부보다 훨씬 더 예뻐 보이더라고 이죽거리는 말은 농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애급에서 나온 아브람은 땅의 약속을 받은 후 맨 먼저 예배로 화답한 지역인 벧엘과 아이 사이(12:7,8)로 올라갑니다. 애급 행의 실수를 통해 깨달은 후 다시 한 번 하나님이 유일한 주인임을 고백합니다. 그리고 “눈을 들어” 보게 하신 곳을 보고 헤브론으로 이동한 후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 단을 쌓았습니다.
After a passionate relationship, the groom, who got married and went on a honeymoon, had a dreamy first night and went to breakfast, and the couple's brides sitting in the restaurant looked much prettier than their brides. Abram, who came out of mourning, goes up to the area between Bethel and Ai (12:7,8), the first place to respond with worship after receiving the promise of the earth. After realizing it through the mistakes of the love life, I confess once again that God is the only master. And when I saw the place that made me see it, I moved to Hebron, where I built a platform for Jehov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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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급에서 각시 덕에 한 밑천을 잡았고 가나안에 돌아온 후에도 재산이 크게 불어났던지 조카 롯과 함께 거할 수 없게 되어 급기야 결별을 결정하였는데, 뜻밖에도 아브람이 선택권을 롯에게 주었습니다. 바로 어제까지 자기 살겠다고 각시를 팔았던 위인이 어떻게 기름지고 비옥해 보이는 강남땅을 초연하게 양보했는지 모를 일입니다. 우리가 아는 대로 양보는 단순한 예의나 도덕이 아니고 가치관의 문제입니다.
Abram unexpectedly gave Lot the choice when he was unable to live with his nephew Lot, perhaps because he had a fortune thanks to Gakshi, and after returning to Canaan, he made a decision to separate. It is unknown how a great man who until just yesterday sold Gakshi to live gave up the fertile and fertile land of Gangnam. Concession is not just a matter of courtesy or morality, as we know it, but a matter of valu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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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어도 옛 사람이 죽고 새 사람이 되었을 때 새로운 가치관과 여유 있는 이웃 사랑의 모습이 나타날 수밖에 없습니다. 과거를 청산한 성도는 소유보다 소망을, 소득보다 의미를, 성공보다 생명을 추구합니다. 롯은 애급과 에덴동산처럼 물이 넉넉한 요단 들을 선택하고는 동쪽으로 이동합니다. 이곳은 약속의 땅 가나안의 경계이며, 훗날 심판을 피하지 못한 악의 도성 소돔과 고모라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롯이 “눈을 들어” 영적인 시각이 아닌 물질적인 시각으로 바라보았음을 암시합니다.
At least when an old person dies and becomes a new person, new values and relaxed love for neighbors are bound to emerge. Saints who have liquidated the past seek hope over possession, meaning over income, and life over success. Lot chooses Yordan, who has plenty of water, such as Ae class and Garden of Eden, and moves east. This is the boundary of Canaan, the promised land, and includes Sodom and Gomora, the evil capital, who later failed to avoid judgment. It implies that Lot "raised his eyes" and looked at it from a material perspective, not from a spiritual perspectiv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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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롯이 떠난 후 하나님은 아브람에게 다시금 땅과 자손에 대한 약속을 주시되 이번에는 더욱 구체적으로 확증해주십니다. 이로써 땅의 주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믿고 롯에게 먼저 거할 땅을 선택하게 양보한 아브람의 믿음을 인정하신 것으로 보입니다. 아브람이 “눈을 들어” 본 동서남북은 롯이 차지한 땅까지 포함합니다. 그가 보고 밟는 모든 땅이 아브람의 몫이 될 것이고, 땅의 티끌만큼 많은 자손도 주실 것입니다.
After Lot's departure, God again gives Abram the promise of the land and the descendants, but this time he confirms it more specifically. This seems to have acknowledged Abram's belief that he believed that the sovereignty of the land was in God and gave Lot the choice of land to live first. The east, west, north, and west that Abram "raised his eyes" includes the land that Lot occupied. All the land he sees and steps on will be Abram's, and he will give as many descendants as the dust of the la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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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나는 약속의 비전 없이 그저 내 힘으로 내 것을 만들어 보려고 발악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다가 이웃의 마음에 상처를 주고 물질의 유혹에 눈이 어두워 하나님도 몰라보고 산 세월을 어쩌란 말입니까? 다툼과 불화의 세상에서 믿는 백성은 어떤 모습으로 살아야 하는가?
But I was just trying to make mine on my own without a vision of promise. Then, what should I do with the years I have lived without even God's knowledge because I hurt the hearts of my neighbors and am blinded by the temptation of matter? What kind of way should the people who believe live in a world of quarrels and discor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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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게브와 벧엘 근처로의 이주(1-4)
a.애급에서 네게브로:1-2
b.네게브에서 벧엘 근처로:3-4
아브람과 롯이 헤어짐(5-13)
a.아브람과 롯의 갈등:5-7
b.아브람과 롯이 헤어짐:8-13
약속을 재확인하시는 하나님(1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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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람이(1a)
애급에서 나올 새(1b)
그와 그 아내와(1c)
모든 소유며(1d)
롯도 함께하여(1e)
남방으로 올라가니(1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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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람에게(2a)
육축과 은금이(2b)
풍부하였더라(2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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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남방에서부터(3a)
발행하여(3b)
벧엘에 이르며(3c)
벧엘과 아이 사이(3d)
전에 장막 쳤던(3e)
곳에 이르니(3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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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처음으로(4a)
단을 쌓은 곳이라(4b)
그가 거기서(4c)
여호와의 이름을(4d)
불렀더라(4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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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람의 일행 롯도(5a)
양과 소와(5b)
장막이 있으므로(5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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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땅이(6a)
그들의 동거함을(6b)
용납지 못하였으니(6c)
곧 그들의(6d)
소유가 많아서(6e)
동거할 수 없었음이라(6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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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아브람의(7a)
가축의 목자와(7b)
롯의 가축의 목자가(7c)
서로 다투고(7d)
또 가나안 사람과(7e)
브리스 사람도(7f)
그 땅에 거하였는지라(7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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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람이(8a)
롯에게 이르되(8b)
우리는 한 골육이라(8c)
나나 너나(8d)
내 목자나 네 목자나(8e)
서로 다투게 말자(8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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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앞에 온 땅이(9a)
있지 아니 하냐(9b)
나를 떠나라(9c)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9d)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9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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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롯이 눈을 들어(10a)
요단 들을 바라본즉(10b)
소알까지 온 땅에(10c)
물이 넉넉하니(10d)
여호와께서(10e)
소돔과 고모라를(10f)
멸하시기 전이었던 고로(10g)
여호와의 동산 같고(10h)
애급 땅과 같았더라(10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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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롯이(11a)
요단 온 들을 택하고(11b)
동으로 옮기니(11c)
그들이 서로 떠난지라(11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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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람은(12a)
가나안 땅에 거하였고(12b)
롯은(12c)
평지 성읍들에 머무르며(12d)
그 장막을 옮겨(12e)
소돔까지 이르렀더라(12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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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돔 사람은 악하여(13a)
여호와 앞에(13b)
큰 죄인이었더라(13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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롯이(14a)
아브람을 떠난 후에(14b)
여호와께서(14c)
아브람에게 이르시되(14d)
너는 눈을 들어(14e)
너 있는 곳에서(14f)
동서남북을 바라보라(14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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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는 땅을(15a)
내가 너와(15b)
네 자손에게 주리니(15c)
영원히 이르리라(15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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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네 자손으로(16a)
땅의 티끌 같게 하리니(16b)
사람이 땅의 티끌을(16c)
능히 셀 수 있을 찐대(16d)
네 자손도 세리라(16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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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일어나(17a)
그 땅을(17b)
종과 횡으로 행하여 보라(17c)
내가 그것을(17d)
네게 주리라 (17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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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에 아브람이(18a)
장막을 옮겨(18b)
헤브론에 있는(18c)
마므레 상수리(18d)
수풀에 이르러 거하며(18e)
거기서 여호와를 위하여(18f)
단을 쌓았더라(18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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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백성이 사는 방식_the way God's people live._
믿음과 불신이 보인 차이_the difference between faith and disbelief_
하나님이 위로하시는 방식_God's way of consolation.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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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 저도 아브람처럼 재물을 얻기 위해 나의 정체성을 잃어버렸고, 아내로부터 남편에 대한 불신을 자초하였나이다. 눈에 보이고 손에 잡히는 것보다 하나님과의 교제와 동행을 먼저 생각지 못한 저의 과오를 용서하옵소서. 이제 아브람이 애급 행 탈선의 죄를 씻고 다시 말씀의 원리에 따라 살겠다는 다짐으로 벧 엘에 단을 쌓은 것처럼 후로는 결정의 상황에 직면할 때마다 하나님의 비전을 저버리지 않고 선택하게 하옵소서.
Like Abram, I lost my identity to gain wealth. Did he bring discredit on his husband from his wife? in sight and hand Rather than being caught, I didn't think of my relationship with God first. Forgive me for my mistake. Now, Abram has cleared himself of the sins of the paraplegic derailment, and he's gone back. As if he had built a platform in Elle with the promise of living according to the principles of his words, he would not abandon God's vision every time he faced a situation of decision Let me choose.
2026.1.19.mon.Clay
신학 비평//
풍요가 갈등을 낳는 시대에, 하나님 백성의 믿음은 무엇으로 증명되는가?
더 많이 가질 수 있는 상황에서, 우리는 무엇을 내려놓을 수 있는가?
1. 애굽에서 나왔으나, 아직 끝나지 않은 애굽
창세기 13장은 애굽에서 “나온” 아브람으로 시작합니다. 본문은 그가 애굽을 완전히 떠났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아브람은 애굽에서 살아남았고, 재산을 얻었고, 아내도 되찾았습니다. 그러나 그가 잃었던 것은 단순한 명예가 아니라 정체성이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첫 행선지는 새로운 땅이 아니라, 이전에 단을 쌓았던 자리 벧엘과 아이 사이입니다(13:3-4) 신학적으로 이는 매우 중요합니다. 회복은 전진이 아니라 귀환으로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아브람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하나님께 간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다시 고백하기 위해 돌아옵니다.
2. 풍요가 시험이 되는 순간
본문의 아이러니는 여기에 있습니다. “아브람에게 육축과 은금이 풍부하였더라”(13:2) 기근이 끝난 후 문제가 해결된 것이 아니라, 풍요가 새로운 문제를 만들어냅니다. 소유가 많아지자 땅은 좁아졌고, 관계는 긴장되었으며, 목자들 사이에 다툼이 일어났습니다. 성경은 분명히 말합니다. 갈등의 원인은 땅이 아니라 소유입니다(13:6). 이는 오늘의 현실과 정확히 맞닿아 있습니다. 부족해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더 가질 수 있다고 느낄 때** 싸웁니다.
3. 양보는 도덕이 아니라 신앙의 고백이다
놀라운 장면은 여기서 나옵니다. 아브람이 롯에게 말합니다.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13:9) 이것은 미담이 아닙니다. 도덕 교과서도 아닙니다. 신학적 선언입니다. 아브람은 이렇게 말한 셈입니다. “땅은 내 생존 조건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이다.” 그래서 양보는 손해 감수가 아니라 소유에 대한 신학적 재해석입니다. 어제까지만 해도 자기 목숨을 위해 아내를 내놓았던 사람이
오늘은 땅을 내어놓습니다. 이 변화는 성격이 아니라 가치관의 변화입니다.
4. 같은 ‘눈을 듦’, 다른 세계
본문에서 두 사람이 모두 “눈을 듭니다.” 롯: “이에 롯이 눈을 들어 요단 들을 바라본즉…”(13:10) 하나님: “너는 눈을 들어 동서남북을 바라보라”(13:14) 겉으로는 같은 행위지만, 보는 기준이 다릅니다. 롯의 눈은 물이 넉넉한가-지금 좋아 보이는가-애굽과 닮았는가, 아브람의 눈은 약속이 있는가-하나님이 주신 것인가-아직 보이지 않지만 믿을 수 있는가로 롯은 에덴처럼 보이는 땅을 선택했지만 그 땅은 곧 심판의 땅이 됩니다. 아브람은 척박해 보이는 땅에 머물렀지만 그 땅은 영원의 약속이 됩니다.
5. 하나님은 왜 롯이 떠난 후에 말씀하시는가?
본문의 결정적 문장은 이것입니다.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13:14) 하나님은 아브람이 양보한 **이후에 약속을 확증하십니다. 이는 거래가 아닙니다. 보상의 논리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이 이미 약속을 신뢰하고 선택했음을 확인하신 것입니다. 믿음은 약속을 받기 위해 행동하는 것이 아니라, 약속을 믿기 때문에 행동하는 것입니다.
6. 다툼의 세상에서 하나님 백성의 방식
이 본문이 오늘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은 분명합니다. 우리는 무엇을 기준으로 눈을 들고 있는가?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우리는 더 움켜쥐는가 더 내려놓는가? 풍요 앞에서 믿음은 사라지는가, 드러나는가? 하나님 백성의 차이는 얼마나 가졌는지가 아니라, 무엇을 잃지 않으려 하는가에 있습니다. 아브람은 땅을 잃지 않으려 하지 않았습니다. 대신 하나님과의 관계를 잃지 않으려 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