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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가요대백과 원문보기 글쓴이: 청운클럽
<퍼옴>
뭘까요?
전전주 관악산에서 궁금해 핸펀에 찍었네요.
게시물로 올려 여쭤볼가하다 포기했습니다.
그리고 2주후,,,
갤러리방에 올라온 자작나무 그림에 필이 꽃쳐 검색을 했어요.
유사한 사진을 보았는데 자작나무 열매라네요,,,,ㅎㅎ
둥근 이파리에 끝이 톱니처럼 튀어나온게 영락없는 자작입니다.
한웅이 태백산 신단수(神壇樹) 아래서 神市를 세우는데,그 신단수가 박달나무입니다.
그래서 박달나무 단(檀),임금 군(君)의 檀君이고.
박달나무는 자작나무科로 이파리가 비슷해 혹 박달나무인지도 모르겠습니다.
▲ 5월 초엔 연둣빛 잎을 피운다.
자주는 아니지만,자작나무(white birch)는 사진으로나 글을 통해 적잖게 접한다.
하얀 피부에 쭉쭉 뻣어 오르는 자작나무군을 보면 왠지 기분이 좋다.
이른봄 연두색 잎이 상큼하다.
가을에 노랗게 물든 잎이 떨어지면 추위와 함께 자작나무는 본격 빛을 발한다.
설경 속 집단의 모습에 경이롭다.
서양에서는 자작나무를 숲속의 여왕이라 부른다.
요정이 살고있다고 여겼다.
우리네 백일홍 처럼,귀족들은 정원에 자작나무를 심었다.
그러면 공작,후작,자작,,,,그 자작나무일까?
▲ 하늘이 에머랄드에 코발트 빛으로 경의롭다.
사물에 관심을 갖게되는 데에는 어떤 계기가 있기 마련이다.
소나무,참나무도 아닌 좀 이국적인 자작나무에 관심을 둔 계기가 몇번 있었다.
1) 경주 천마총에서 발견된 '천마도'의 캔버스가 바로 자작나무 껖질이였다.
2) 해인사 팔만대장경 원판 중 일부가 자작나무였다.
3) 충치 예방의 자일리톨껌의 원료가 자작나무에서 추출된다.
4) 영화 '닥터 지바고' 설원의 숲들이 자작나무라는 것도 최근에 알았다.
5) 론스타가 수조원 차익 챙겼던 역삼역 스타타워 조경수가 자작나무인데 자주 스쳤었다.
▲정말이지 속기란곤 찾을 데가 없다.
나에게 고구려 하면 먼저 떠오른게 고분벽화이다.
벽화가 그려진 고분만도 전기 압록강 연안의 집안과 후기 수도인 평양 주변에 총 95기나 된다.
고분벽화엔 고구려인의 문화,삶,종교,내세관,사유가 다 들어있다.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제되어 세계 어디서도 볼 수 없는 유니크에 'only one'이다.
최고로 추앙받는 이중섭이지만,
그의 데생력,화풍이 바로 고구려 고분벽화에서 비롯되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치 않다.
평양 인근서 태어난 이중섭은 중딩시절 고분에 들어가 벽화 모사에 혼이 빠졌다.
평양 인근 그 유명한 사신도가 그려진 강서대묘의 현실(玄室)은 그의 작풍의 모태였다.
그리고 곁엔 미술사학자 고유섭 선생이 있었다.
신라에는 빛나는 금관이 있다.
지금까지 여섯 고분에서 출토되었는데 금관은 신라만의 특성이다.
금관은 현실서 사용한게 아니라 부장용이요,평시에는 권위를 표하기 위한 전시용이였다.
경주 수학여행을 가면 사진도 찍고 꼭 들어가는 고분이 있다.
천마총(天馬塚)이다.1973년 발굴 당시 금관등 1만여점의 유물이 출토 되었다.
천마총이라는 이름을 얻은 이유는 뭘가?
천마도가 나왔기 때문이다.금관이 나왔기에 금관총(塚)이듯.
당시 신라인들의 장례문화는 이랬다.
왕이 죽으면 나무관에 넣고,안치할 관 주변은 목곽으로 짜 관을 보호한다.
쉽게 말해 2중 관인 것이다.
그리고 목곽을 돌로 층층이 둘러싸고 마지막으로 흙으로 봉분을 만든다.
우리가 경주 중심가 대릉원에서 만날 수 있는 고분들은 모두 이 형태로 소위 적석목관분(積石木槨墳)이다.
관 바로 위쪽엔 죽은자와 관계되는 부장품들을 목곽상자에 담아 넣어둔다.
바로 그 부장품 중의 하나가 천마도이다.
지금은 국보인 천마도(天馬圖)는 천마가 구름을 헤치며 하늘로 향하는 모습이다.
천마도는 그린 캔버스 재질은 무었이기에 1천 5백여년을 버텼을가?
바로 자작나무 껍질이다.
그동안 신라에서는 고구려와 달리 그 어떤 벽화도 나온 적이 없었다.
최초로 신라고분에서 발견된 그림이기에 천마총이라는 이름을 얻었다.
자작나무 표피는 방부제 효소가 있고 습도에도 강해 1500년 동안 부패를 면한 것이다.
그러면 신라인들은 무덤 속에서도 수백년을 버티는 자작나무의 습성을 어찌 알았을까?
문화든 종교든 독불장군이 없다.영향을 받고,준다.
당시 신라고분에선 유리로 만든 부장품도 다수 나왔다.
생산지가 로만 그라스로 똑 같은 형태들이 로마에서도 발견되었다.
유리는 바빌로니아서 5천년 전 발명되었다.
지금의 대롱불기법으로 유리 제작의 획기적인 발전을 이룩한 곳은 이스라엘,레바논 지역이었다.
지금도 이지역의 유리 공예는 페르시안 양탄자 만큼이나 인기가 높다.
당시 흑해 연안,남러시아 초원지대는 기원전 7~2세기 경 스카타이족이 초원을 장악하고 있었다.
스키타이 문화는 황금문화로 한반도 역사와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
이들에 의해 그리스,로마,페르시안 물품이 서남아시아,몽고초원,만주 요녕성을 거처 신라까지 전달된 것이다.
육로만이 아니었다.
가야국의 시조 김수로왕의 부인 허황옥이 바다서 온 인도 여인이였듯이 해로를 통해서도 이루어졌다.
당시 인도~동남아~중국 연안 무역이 성행했다.
▲수평으로 한커플 벗기니 여인네 속살이다.벗겨진 표피에 글을 쓴다.
자작나무 껍질의 사용도도 그리 전해졌을 것이다.
자작나무 껍질은 이집트,그리스의 파비루스처럼 이미 인도에서 사용되고 있었다.
소크라테스가 기원전 5세기에 소피스트들과 논쟁을 벌일 때 사용한 필기도구는 갈대잎,즉 파비루스를 통해서였다.
인도에선 자작나무 껍질을 이용한 패다라(貝多羅,Pattra)를 가지고 불교경전을 기록하고 보관하였다.
조개로 껍집을 문질러 제품화했기에 패엽경(貝葉經)이라 한다.
패다라는 자작나무 껍질을 건조,증해한 후 다시 말려 양면을 소라나 돌로 문질러 만들었다.
자작나무는 표피는 하얗고 윤이난다.표피를 만지면 하얀 가루도 묻어난다.
종이처럼 얇게 벗겨진다.
보통 나무의 껍질은 수직이지만 자작나무는 수평으로 책장 넘기듯 벗겨진다(윗사진 참조)
자작나무는 인류의 등불이기도했다.
예전엔 자작나무 껍질에 불을 붙여 사용했다.
껍질은 물에 젖어도 불이 잘 붙어 불쏘시개로 중요하게 쓰였다.
물 속에 담갔다가 꺼낸 것도 성냥불을 갖다 대면 불이 붙는다.야영등 산사람들이 알아둘 상식이다.
시인 프로스트는 시원하게 타는 자작나무 껍질에 반했나보다.
<자작나무>라는 시에서 '나는 자작나무 타듯 살아가고 싶다' 했다
결혼식을 '화촉(華燭)을 밝힌다'고 한다.
한때 그 화촉으로 자작나무 껍질을 사용했다.
기나긴 겨울밤에 깊은 산골에선 호롱불 대신 사용하기도 했다.
화촉하니 갑자기 생각이 인다.
연인을 데리고 저승세계서 이승으로 나오기 직전,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는 약속을 끝내 저버려 다시 저승으로 떨어지는 희랍신화를 아실게다.
그 오르페우스와 에우뤼디케의 결혼식이 있던 날이였다.
이들은 이미 결혼하던 날 불길한 징조가 있었다.
혼인의 신인 휘메나이오스도 초대받았다.
그러나 휘메나이오스는 횃불로 화촉을 밝힌게 아니라 연기로 두 허니문 커플을 눈물 나게했다.
자작 껍질로 화촉을 밝혔으면 해피 엔딩이였을까?
오르페우스와 에우뤼디케 얘기는 서양문화사 최고 슬픈 연애사이다.
▲그림인지,사진인지?
자작나무는 우리의 정서와는 좀 거리가 있다.
소나무처럼 일상서 보는 나무는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나 백두산 자작나무 숲은 장관이다.백두산 사람들은 자작나무를 보티나무라 한다.
우리는 태어나면 솔가지로 금줄을 치고,소나무 아래서 딩굴고,솔가지로 밥을 한다.
그리고 소나무집에서 살고,죽어서는 소나무 관으로 들어간다.
백두산 사람들은 자작나무 아래서 태어나,아래서 딩굴고,죽어 자작나무 껍질에 쌓여 무덤으로 들어간다.
▲고대인들은 저리 솓구치는 자작에서 신성을 보았을 게다.
시베리아 횡단 철도는 가도가도 자작나무 숲이다.가로수도 자작나무다.
위스키,브랜디,와인이 참나무 오크통에서 숙성하듯 러시아 보드카는 자작나무 통에서 숙성한다.
흔이 보는 원뿔 모양의 몽고족의 이동 천막을 '겔'이라한다.
겔의 지붕도 자작나무로 덮는다.
▲흰눈,흰자작나무 사이로 회색뿔의 사슴이 노닌다면...
자작나무는 자작이라는 작위를 받았는지 피부가 이리 고운 나무도 없다.
크게 자라 기본이 20미터이다.
땅의 중력에도 자유스러운지 한치의 뒤틀림도 없이 하늘로만 솟구친다.
자작나무는 군락을 이뤄야 제격이다.
군락을 이루며 설원과 함께하는 자작나무숲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개체로 보면 키만 깡충하다.
자작나무는 흰 표피로 자신의 정체성을 구현하지만 가을 단풍도 한목한다.
단풍은 영하로 떨어지지 않고,조금씩 온도가 내려가고,습도가 적당하며,일사량이 많을 때 최적이다.
단풍 현상은 나무가 겨울철에 살아남기 위한 일종의 '몸맘들기'다.
길어야 20여 일에 불과한 기간에 나무들은 낙엽만들기를 준비한다.
나뭇잎에 남아 있는 여러 물질을 나무 밑동으로 내려보내거나 조직의 일부분으로 통합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여 영양분이 사라진 나뭇잎은 낙엽으로 변해 떨어진다.
잎은 나이 순서에 따라 맨 밑에 달린 잎부터 끝에 달린 잎순으로 단풍이 든다.
▲ Jennifer Vranes 作 birch tree/oil on canvas,,,,,우리네 자작나무
노란 단풍과 달리 은행잎 처럼 선명한다.
단풍에도 색상별 대표선수가 있다.
붉은색은 단풍나무, 신나무, 옻나무, 화살나무, 담쟁이덩굴이 대표선수이다.
이중 담쟁이덩굴,옻나무가 가장 먼저 단풍을 선보인다.
노란색은 은행나무,아까시나무, 피나무, 호도나무, 튜립나무, 생강나무, 물푸레나무가 대표선수이다.
단풍나무과의 고로쇠와 우산고로쇠는 맑은 갈색을 띈다.
감나무 잎은 두툼한 질감에 홍과 황이 섞여 아름답다.
상수리나무, 신갈나무 등 참나무류나 너도밤나무는 노란갈색이다.
자작나무도 은행처럼 노랗게 단풍이 든다.
다른 단풍잎하곤 달리 흰색의 표피와 어울리면서 기품이 더하다.
러시아에서는 자작나무는 만병통치약이다.
나무에 상황버섯,차가버섯이 기생한다.
감기,기관지염 등에 효능이 좋아 자작나무 달인 물을 먹기도 한다.
자작나무 달인 물로 목욕을 하며 한증탕의 재료로 쓴다.
우리나라 사우나에서 쑥이라면 핀란드에서는 자작나무이다.
이파리 달린 자작나무 줄기를 꺽어 한증탕에서 어깨 등을 치면 혈액순환이 좋아진단다.
수액은 술을 만드는데도 이용한다.
조선풍수의 비조 도선(道詵,827∼898)이 경칩 전후 섬진강이 바라보이는 광양 백운산 기슭서 참선에 들었다.
일어서려는데 다리가 펴지지 않았다.
주변의 나무줄기를 잡고 일어섰고 잡은 줄기는 끊어졌다.
줄기서 수액이 흘렀다.맛을 보니 달짝지근한게 좋았고 며칠을 먹었다.
다리가 낳았다.뼈를 이롭게 하기에 骨利水,고로쇠가 되었다.
미네랄이 40배나 된다니 도선의 얘기가 과장만은 아니다.
고로쇠 물은 산중 보약이다.고로쇠 물은 일교차가 큰 경칩 전후 3월 한달 채취한다..
영하로 떨어지면 줄기가 수축 물을 흡수하고,영상의 낮에는 팽창해 수액을 발산하는 원리이다.
자작나무에서도 거제수나무나,고로쇠나무 같이 수액을 체취한다.
근데 수액 체취가 좀 잔인하다.
고로쇠는 고무액 체취처럼 수피에 V자 홈을 내 채취한다.
반면 자작나무는 드릴로 몸통을 4~5센치 깊이로 구멍을 뚫고 고무 호수를 박아 수액을 낸다.
자작나무는 키는 크지만 몸채가 어딘지 유약해보인다.
마치 하얗게 화장한 키큰 삐에로 같다.
정령이 살고 귀기가 서린 것 같기도 한데 드릴이라니 잔인하다.
자작나무는 곡우 무렵에 수액을 받아 마시는데 고로쇠에 비해 소량이다.
신경통, 류머티스 관절염, 소화불량 등에 효험이 있다.
로열 패밀리 생수로 불리는 ‘버치 샙’을 아시는지?
버치는 birch로 자작나무라는 뜻이다.
핀란드에서 수입한 자작나무 수액이 주원료다. 가격은 500㎖ 한 병에 2만원이나 한다.
원래는 마시는 것이었지만 피부미용에 좋다고 알려지면서 얼굴에 뿌리는 사람이 늘었단다.
수입 판매업자의 말에 의하면,
북유럽에서도 보습은 물론이고 자외선 차단 기능까지 뛰어나 피부미용,건강음료로 인기라는데 사실인지 모르겠다.
쉽게 말해 자작나무 수액은 필란드 고로쇄 물이다.
외에도,수액을 내어먹는 수종으로는 고로쇠나무,거제수나무,박달나무,층층나무,호깨나무,노각나무,머루덩굴,다래덩굴,
으름덩굴,자작나무,단풍나무,서나무,피나무,삼나무,대나무(죽순)등이 있다.
▲강원도 횡성에 있는 자작나무미술관
자작나무는 가로수는 물론 호수나 강변 주변변에도 잘 어울린다.
골프장,아파트 등의 진입도로에도 인기다.
고층빌딩의 녹지공간에 심으면 흰색과 초록이 대비를 이뤄 세련되 보인다.
도심지 조경에 품격 높은 이미지를 선사하는 매력적인 자작이다.
횡성엔 자작나무미술관이 있다.
1991년에 심기 시작 1만2천여 그루나 가꾸어져 알음알음 인기가 높단다.
서울서 가장 높은 건물은 타워 팰리스다.
IMF 이후 세워진 타워펠리스 이전 강남서 가장 높은 건물은 역삼역 인근 스타타워였다.
수조 차익 남기고 팔고 도망간 론스타가 한동안 소유였던 스타타워 조경수가 자작나무이다.
수십 그루가 만들어낸 휜 아우라가 깔끔한 주변 환경과 어울린다는 생각을 하곤했다.
▲건국대 일감호 주변의 자작나무
자작나무는 박달나무 처럼 단단하고 결이 고와서 가구,조각에도 좋다.
벌레도 잘 먹지 않는다.
'박달나무에도 좀이 선다'라는 말은 뛰어난 사람도 가끔은 실수를 한다는 뜻이다.
그만큼 박달나무는 부패에 강하다는 뜻이다.
박달과 친족인 자작나무도 그렇다.
해인사 팔만대장경 경판의 일부도 자작나무이다.
산트크리스트 경전이 중국으로 전해지면서 번역과 대중화가 시급했다.
배껴쓰는 필사에서 대중화를 위한 시도가 이루어진다.
그래서 나무 대장경판이 제작되는데 최초로 983년 '북송대장경판'이 나왔다.
두번째로 대장경을 만든 나라가 고려다.
1011년 '초조대장경'으로 북송 것보다 876권이 더 많다.
이어 대각국사 의천에 의해 또한번 제작되는데 그래서 '속장경'이라 불린다.
그러나 둘은 현존하지 않는다.경판 일부가 송광사에,일부 판본이 일본에 있다.
초조대장경은 대구 팔공산 부인사에 봉안되었다가 몽고 침입 어느 시기에 불탄다.
그러면 우리가 배운것 처럼 몽고군에 의해 불탄 것일가?
몽고 2차 침입은 처인성 전투서 살리타이가 승장 김윤후의 화살에 맞아 사망하고 퇴각했다.
경상도와 강원,충청의 경계인 소백산맥을 넘지 못했으니 사실이 아니다.
대장경 판각과 보관은 지역민에 많은 잡세와 노역을 낳았다.
농민들이 부인사를 습격하고 대장경판을 방화한 것이다.
대몽항쟁의 시기,다시 대장경판이 만들어진다.
당시 최우 무신정권은 강화도에서 안전했으나 백성들은 장기간 맨몸뚱이로 방치되었다.
부패 권력들은 백성의 불만을 종교적으로 해소하려는 정치적 고려가 컸다.
종교적,문화적인 이벤트로 저항을 완충하려는 시도는 동서고금을 막론한다.
경판이 8만여 매여서 팔만대장경이다.글자로는 무려 5천 2백만 자다.
동아시아서 만들어진 당시 20여종 중 으뜸이고 나이도 가장 많다.
작업은 벌목에서 시작한다.
바닷물에 담궈 진을 빼고,그늘서 건조하고,판을 켜고,경전을 한지에 쓰고,판에 붙혀 판각한다.
무슨 나무일까?
산벗나무가 주종이고 돌배나무,자작나무,단풍나무가 사용되었다.
현미경 관찰 결과 자작나무는 4% 정도였다는 연구결과도 나왔다.
벗나무 하니 일본이 떠오르는데 일본 벗나무 원산지가 한반도이다.
자작나무는 중부 이북에서 자라는데 어디서 구했을까?
백두산 인근에도 군락을 이루고 있듯 인근 지리산등 고산 지대에서 구했을 것이다.
당시 팔만대장경은 남해서 제작되어 배로 강화도 선원사로 옮겨졌다.
해인사로 이전은 조선 태조 때이다.
강화도 수로를 타고 한강을 거쳐 충주서 하역한 다음 문경세재를 넘었다.
상주서 다시 낙동강 타고 의성 개경포에서 다시 하역,연인내들 머리에 이고 해인사로 이동했다.
대장경을 내렸다 해서 개경포(開經浦)이다.
자작나무,,,
이름도 생김새도 여리고 유약해 보인다.
그러나 사실은 오지랍 넓고 인류문명과 절친했다.
홀로 깡마른 자작나무도 군락을 이루면 금세 늠름해지며 누구 말마따나 혁명의 냄새를 피운다.
러시아 혁명 때 파르티잔들이 피로에 지쳐 돌아오던 곳도 자작나무 숲이였다.
1958년 노벨문학상 수상작가 보리스 파스테르나크는 '닥터 지바고'를 썼다.
역사의 거친 소용돌이 속에서 지바고와 라라의 비극적인 사랑을 주제로 한 것이지만,
역사,문학,혁명,예술 속에서 갈등하는 인간군의 大서사시이기도 하다.
그 닥터 지바고가 달빛을 틈타 볼세비키 혁명군을 등진 것도 자작나무숲이였다.
말년에 농사꾼이 되었던 파스테르나크 농장 뒷편도 자작나무 숲이 울창하단다.
지금도 러시안들은 자작나무로 연서를 쓰고,자작나무 노트를 선물하기도 한다.
자작나무 명함도 있다.러시안에 자작은 문화 자체이다.
▲ 백두산 천지 인근 자작나무숲.
시베리아 샤먼들은 주술을 부릴 때 머리에 사슴뿔,자작나무등 나무 가지를 썼다.
시베리아 평원의 옛주인 스키타인 부족장들은 머리에 황금관을 썼다.
황금관은 바로 사슴뿔과 나무줄기 이파리를 형상화한 것이다.
고목은 높은 데서 하늘과 소통한다.
사슴뿔의 회색은 자작나무의 표피 그리고 설원과 닮았다.
하늘과 소통하는 중간자로서 샤먼,부족장은 자작나무의 줄기,사슴뿔을 구현한 왕관을 통해 통치의 힘을 차용했다.
자작나무는 기본이 20미터이다.큰 건 30미터이다.
30미터면 10층 높이이다.5층에서 자유낙하하면 그냥 사망이다.
고대인에 30미터의 자작나무는 신령이 사는 곳이었을 게다.
신라의 왕관도 바로 스키타이 문화의 영향을 받아서이다.
왕관 형태도 시베리아 샤먼 처럼 사슴,새,나무 이파리의 형상화한 것이다.
천마도에서 자작나무 표피의 용도를 알게된 것도 이들의 영향이었을 게다.
단군신화도 알고 보면 나무숭배사상이다.
환웅(桓雄)은 아버지 환인(桓因)의 허락을 받아 천부인(天符印) 3개를 받는다.
그리고 풍백(風伯)·우사(雨師)·운사(雲師)를 거느리고 태백산 꼭대기의 신단수(神壇樹) 아래에 내려와 이를 신시(神市)라 했다.
웅녀(熊女)가 아이를 갖게 해달라고 빈 곳도 신단수,즉 박달나무 아래였다.
한웅이 태백산 신단수(神壇樹) 아래서 神市를 세우는데 그 신단수가 박달나무이다.
그래서 단군은 박달나무 단(檀),임금 군(君)의 단군이다.
단군도 박달나무 아래서 박달나무의 신성을 받고 태어났다고 볼수 있다.
하늘을 향해, 설백의 줄기를 타고 검은 가지에 올라
나무가 더 견디지 못할 만큼 높이 올라갔다가
가지 끝을 늘어뜨려 다시 땅위에 내려오듯 살고 싶다.
프로스트의 시 '자작나무'의 일부이다.
높이 솟은 자작나무에 대한 고대인의 마음은 아닐런지?
▲ 평창군 진부면 상월오개리 자작나무숲의 단풍